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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사부님의 법을 명심하면 잘할 수 있다

– 9년동안 법을 실증하면서 약간한 체득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6일】 ……내가 경찰에 체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족들이 나 몰래 공안분국 사람을 만나 식사대접을 하면서 사악의 두목은 다시는 나를 체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걸 후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곧장 뒷날 아침에 공안분국에 가서 서명하라는 통지를 가족에게 보내 왔는데, 내가 이른바 파룬궁의 [집회활동]에 참가했다고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이 일에 대해선 나는 아주 명백했는데, 이는 사람에 대한 사람의 박해가 아닌데, 속인의 방법을 이용해 어떻게 수련인의 일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가족들 한 명씩 돌아가며 나에게 서명하도록 권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면서 말했다. “이 글에 나는 절대 서명하지 않습니다. 이 글이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이 글에 서명하라는 건 나의 목숨을 요구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나는 이미 마음으로 똑똑히 알고 있었다. 어떤 상황이든지 막론하고 한 대법제자로서 대법을 비방하면 안 되고, 사부님한테 미안하고 대법에 미안한 일을 하면 안 되며, 자신의 수련의 길에 오점을 남겨놓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족들은 나에게 어떤 말을 해도 서명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는 나를 핍박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가정과 직장, 공안분국의 일체 교란은 모두 없어졌다.

——본문작자

“제5회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서면 교류대회”를 빌어, 제자는 자비하신 사부님께 인사드립니다!
동수들한테 인사드립니다!

인터넷법회 투고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제1회 법회에 참가했지만 발표되지 않았다. 2차,3차,4차의 기회는 나자신 때문에 놓쳤다. 지금은 예전의 내 생각이 틀린 것임을 알게 되었다. 대법의 한개 입자로서, 수련의 길에 이런 글을 쓰면서 자기수련을 총체적으로 회고한다는 것도 대법에 대한 실증임을 깨달았다. 아래에 나는 9년 동안 법을 실증하면서 수련한 약간한 체득을 동수들과 교류하려 하니, 부당한 점이 있으면 자비하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1, 법공부를 견지하고, 사악의 핍박과 압력, 세인의 교란에 직면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1999년 3월에 대법을 수련하는 행운을 얻었다. 당시 32세였던 나는 여러 질병을 앓고 있었고, 병마에 시달려,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살고 싶지 않았다. 법을 얻은 후 법공부와 연공을 통하여, 짧은 시간내에 사부님께서는 나의 신체를 정화시켜 주셔서, 나는 병이 없는 가벼운 상태에 도달하게 되어 진짜로 병이 없는 행복한 감수를 체험하였다. 동시에 나의 세계관도 바뀌게 돼 금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다시는 그렇게 흐리멍덩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대법은 나한테 두 번째 생명을 주었다. 그렇게 내가 한창 대법의 아름다움 속에 잠겨있던 그 해 “720”, 사악의 발광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온종일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떠드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비방선전에 직면하여, 나는 그것이 진짜라 믿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한 것은 틀리지 않음을 깊이 알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사악의 이른바 고험 속에서 걸어 지나 온 것은 이런 바른 일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9년 7월 20일 갓 박해를 시작했을 때, 내가 살던 정부부문에서는 각 단위 영도들에게 본 단위의 파룬궁수련자의 명단을 회보하도록 해 통일적으로 세뇌를 진행하려고 했다. 내가 있던 직장 책임자는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나와 다른 한 명의 대법제자를 보호해 박해를 피하도록 해 줌으로써 자신들의 위치를 정했고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 나는 비교적 법을 늦게 얻었기에 (“720”까지 수련기간이 4개월) 법공부가 깊지 못했고, 갑자기 닥쳐온 탄압과 박해 앞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후에 내 주위의 동수들은 법공부를 통하여, 우리는 응당 북경에 가서, 실제정황을 반영하고, 연공의 자유를 회복해달라고 요구해야 함을 깨달았다. 며칠 후, 어느 동수가 우리 집에 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우리 집 대문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날 북경에 간 몇 명 동수들은 도중에 사악의 저지를 받고 박해를 당했다. (지금 보면 당시는 사람마음을 섞어 법을 실증하러 갔고, 사악은 빈틈을 탔다) 나는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없었고,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람마음과, 정념이 부족하여, 끝내 걸어 나와 북경에 가 법을 실증하지 못했던 게 평생의 유감이다. 그 일을 돌이켜보면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이렇게 많은 것을 바치셨는데, 나는 도리어 관건적인 시각에 사람에서 걸어 나와 사부님과 대법을 위하여 공정한 말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후에, 사부님의 설법을 학습하면서「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法은 일체 사악한 것을 타파할 수 있으며, 法은 일체 거짓말을 제거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하게 할 수 있다.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나는 오직 법공부를 견지하고, 법을 지침으로 삼아야, 사람마음을 버릴 수 있고, 낡은 세력의 배치를 타파할 수 있으며, 정법노정을 따라갈 수 있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해주신 수련의 길을 온당하게 잘 걸어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반드시 공부해야 할 “전법륜”을 견지하여 배우는 외, 일부 흩어진 시간을 이용하여 사부님께서 쓰신 경문과 <<홍음>>, <<홍음2>> 및 사부님께서 각지에서 하신 일부 설법을 암송하였다. 실천이 증명하듯이 대량의 법공부는, 내가 이후에 법을 실증하는데 양호한 기초를 닦아주었다.

악당 유망 집단은 탄압할 구실을 찾기 위해, 텔레비전에서 하나 또 한 가지 거짓말을 조작했다. 2001년 1월 23일, 중공과 장씨 집단은 탄압을 유지하기 위해, 세인들에 대한 독해가 가장 심한 이른바 “천안문분신자살사건”을 조작했다. 이렇듯 어마어마한 거짓말은 국내외 인사들을 단번에 속였다. 우리 가족과 직장 책임자 및 회사원들 모두 부동한 정도의 독해를 당해 나의 수련을 교란했다.

우선 친인들이 교란했다. 2001년 정월 초3일 오후, 내 동생은 차에다 언니, 형부와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시댁에 찾아와 연공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당시 나와 남편(동수)은 모두 집에 있었다. 그들이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그들이 악당이 날조한 선전의 독해를 받아 우리에게 수련을 포기하라는 것임을 알았다. (그 이전에, 그들 모두는 대법을 수련함으로써 가져온 거대한 변화를 보았기에, 우리의 수련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연공을 많이 하면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처럼 아이와 집을 돌보지 않고, 또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다가 박해를 당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기억에 의하면 그날 사악의 장이 아주 컸다. 시아버지는 우리를 앉혀놓고 우선 나에게 물었다. “계속 연마하겠냐?” 나는 견정하게 말했다. “네, 연공하는 건 아무 잘못이 없어요, 사부님께서는 우리한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잘못이 없어요, TV에서 말한 것은 전부 거짓말이니, 당신들은 절대 믿지 마세요.” 이어 그는 또 남편한테 물었다 “내 말을 듣겠니, 안 듣겠니?” 남편은 말했다. “하신 말씀이 맞으면 듣고, 안 맞으면 안 듣겠어요.” 아직 수련해버리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정이 남아있었기에 당시 남편은 노인이 감당하지 못할까봐 연마하겠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했다. 시아버지는 재차 물었다. “연마하겠냐? 하지 않겠냐” 남편도 대답하지 않았다. 시아버지는 남편이 대답하지 않자, 성이 나서 탁상에 있는 유리컵을 내던져 부셔버렸고, 소파에 누워 입으로 끊임없이 말했다. “너희들이 내말을 듣지 않으면, 그럼 나는 죽겠다.” 그러자 남편도 정이 나와서 “죽지 마세요, 내가 죽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을 그를 핍박하지 마세요! 인명사고 나겠어요.” 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동생이 나를 발로 걷어 차 나는 2미터 밖의 소파에까지 나가 떨어졌다. 당시 나는 조금도 아픈 감을 느끼지 못했고, 바지에 깊고 큰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나는 우리가 잘 하지 못한 것을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감당하셨음을 깨달았다.

모든 게 난장판이 되었을 때, 시아버지가 말했다. “오늘 일은 이렇게 합시다! 당신들은 가지 마세요!(친정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키면서) 여기서 식사하세요!” 그리고는 우리 둘에게 주방에 가서 식사준비를 하게 하였다. 순식간에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고, 일체가 고요해졌다.

사악의 교란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의연히 멈추지 않았다. 며칠 후, 정월 초열흘에 출근하자마자, 직장 책임자는 정부부문에 불려가 파룬궁에 관한 회의를 열었고, 나에게 좀 있다가 이야기 하자고 했다. 이전에 그들도 내가 줄곧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고, 이번 담화도 상부의 압력에 의해서였다. 그날, 나는 아주 이성적이었는데, 사부님께서 내 신변에 계시는데, 나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으며, 오늘은 마침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파룬궁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하여, 내가 왜 파룬궁을 수련하고, 대법이 나한테 가져온 심신변화와, 대법이 전세계에 널리 전해지는 정황 및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잘못된 것임을 이야기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아주 똑똑하게 알려주었고, 당시 그 장은 아주 상화롭고 순정하였다. 직장책임자는 진상을 듣고 난 후 말했다. “파룬궁이 그렇게 좋으면, 당신은 집에서 잘 연마하세요!”

이 두 가지 일이 있은 후 몇 년 동안, 직장책임자와 친척들은 다시는 사악의 형세와 환경의 교란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연마하지 말라고 하던 말을, 안전에 주의하라고 귀띔해주는 말로 변했다. 나는 수련의 길에서, 얼마나 큰 마난에 부딪쳤든지, 오직 사부님을 견정히 믿고, 법을 믿으면 넘어가지 못할 관이 없음을 깨달았다.

2,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사악의 박해 음모를 두 차례 정념으로 타파

2005년 5월,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자료를 만들던 한 동수가 사악에게 납치된 뒤 박해당했다. 그 후 이 동수는 또 악경의 고문으로 나를 포함한 10여명 동수들의 이름을 자백했다. 악경은 동수가 자백한 명단에 따라 한 사람씩 체포해 갔다. 남편은 두 번째 붙잡혀갔는데, 남편은 공안분국에서 정념정행하지 못하고, 5일후 [보증인이 보증]하는 방식으로 풀려 나왔다. 남편의 직장은 협박당해 벌금 5천원을 냈고, 이 벌금은 몇 달 동안 남편의 노임에서 공제했다.

기억에 의하면 남편이 석방되던 그날 아침, 내가 출근하자마자 경찰은 우리 직장에 전화를 걸어, 나더러 공안분국에 가 사람을 데려가라고 했다. 안 가면 사람을 내놓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기실 그들은 전날 이미 우리 가족들에게 오늘 사람을 내놓는다고 통지하였고, 이른 아침 나의 시부모님은 그를 데리고 분국에 갔었다.)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가면 갔지, 한 대법제자로서 내가 사악을 두려워할 것 같느냐고 생각했다. 나는 한편으로 걸으면서 한편으로는 발정념을 하였다. 조종당하는 경찰 배후의 일체 사악한 생명과 인소를 청리하고, 사악이 어떠한 구실로도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경찰은 무조건적으로 그를 석방하라. 당시 자신의 정념이 아주 강하다고 느꼈다. 그때 사부님의 한마디 법이 나의 뇌리에 들어왔다. “어떠한 환경이든지 막론하고 모두 사악의 요구와 명령 지시에 배합하지 말라”(<<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 사부님의 법은 그제서야 나를 청성하게 만들었다. 나는 가서는 안 된다. 만약 내가 간다면 이는 사악의 요구에 배합하는 게 아닌가?

그날 오전 내가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자 부모님들은 공안국에 남편을 데리러 갔다가 데려오지 못했고, 오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시아버지는 나에게 “공안국사람들이 자네도 붙잡으려 한다.”고 하면서 조심하라고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원래 나에게 사람 데리러 오라고 한 것은, 이런 방식으로 나늘 납치하려는 흉계였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사악이 나의 공간장에서 존재하게 된 것은, 긍정코 나한테 좋지 않은 마음이 있어 사악한테 빈틈을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을 향해 찾았다. 그동안 나는 오랜 시간 법을 실증하는 것만 중시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며 안을 향해 찾는 것을 홀시하였다. 아주 강한 과시심, 환희심, 명을 구하는 마음, 색욕심 등 집착이 나타나는 것을 초래하였지만 느끼지 못했다. 이런 집착심을 찾은 후 나는 그것을 부정하고, 배척하고, 그것을 청리하였으며, 사부님께 가지해주시기를 빌었다. 나는 앉아서 반시간동안 발정념을 하였는데, 현저하게 자신의 공간장에 사악이 적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략 오후 2시 30분경, 직장 책임자가 전화로 나를 찾기에 갔더니, “당신이 연공하는 것을 우리는 관계하지 않지만, 우리한테 시끄러움을 더해주진 마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우리 연공인은 어느 곳에서든지 모두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하기에, 누구한테 시끄러움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발정념을 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 책임자를 찾아왔다고 해서 그는 나더러 가보라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남편이 돌아오는 일을 염려하고 있었기에, 직장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날 내가 떠나자마자, 그들은 직장으로 나를 잡으러 왔다고 한다. 자비하신 사부님의 보호 하에, 사악의 음모는 또다시 물거품이 되었다.

내가 경찰에 체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족들이 나 몰래 공안분국 사람을 만나 식사대접을 하면서 사악의 두목은 다시는 나를 체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걸 후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곧장 뒷날 아침에 공안분국에 가서 서명하라는 통지를 가족에게 보내 왔는데, 내가 이른바 파룬궁의 [집회활동]에 참가했다고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이 일에 대해선 나는 아주 명백했는데, 이는 사람에 대한 사람의 박해가 아닌데, 속인의 방법을 이용해 어떻게 수련인의 일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나는 깨달았다. 나는 오직 사부님께만 가지해 주시기를 청하고, 사악이 나한테 강요한 박해를 견결히 승인하지 않으며, 내가 잘하지 못한 것도 사부님께서만 관리하시고, 대법 속에서 바로잡을 수 있지만, 절대로 어떠한 사악도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마음속으로 한번 또 한번 사부님의 법을 암송했다. “나는 李洪志의 제자이다. 기타의 배치는 모두 싫으며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적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하여 처리해줄 것이다. 게다가 사부님 주위에 또 많은 호법(護法)이 있으며 많은 불(佛), 도(道), 신(神)이 있으며 또한 더욱 큰 생명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참여할 것이다. 왜냐하면 승인받지 못하고 강제로 박해하는 것은 법을 범하는 것으로 우주의 낡은 이치 역시 허용하지 않으며 무리한 박해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낡은 세력도 감히 하지 못한다. 가급적으로 여러분들이 올바르게 걷도록 하라.” (《2003년 정월 대보름 미국 서부법회에서의 해법(解法)》)

이렇게 하여 나는 정념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느꼈고, 사상중의 좋지 않은 반응도 점점 약해졌다.

이 일을 되도록 빨리 해결하기 위하여, 가족들은 각자 따로 와서 나에게 서명하도록 권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면서 말했다. “이 글에 나는 절대 서명하지 않습니다. 이 글이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이 글에 서명하라는 건 나의 목숨을 요구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나는 이미 마음으로 똑똑히 알고 있었다. 어떤 상황이든지 막론하고 한 대법제자로서 대법을 비방하면 안 되고, 사부님한테 미안하고 대법에 미안한 일을 하면 안 되며, 자신의 수련의 길에 오점을 남겨놓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족들은 나에게 어떤 말을 해도 서명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는 나를 핍박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가정과 직장, 공안분국의 일체 교란은 모두 없어졌다. 정말로 “제자가 정념이 족하니, 사부가 회천력이 있도다” (《홍음(洪吟二)》〈사도은(师徒恩)〉)

직장에서 내가 잘하지 못할 경우, 세인들이 대법에 대한 오해를 조성할까봐 (연공 때문에 직장마저 안 다닌다고 오해), 석달 후 나와 한 동수는 함께 작은 가게를 꾸렸다. 당시의 출발점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 우리는 비오고 바람이 불든지, 아니면 엄동설한이든지 모두 진상을 견지하였는데, 내가 직장에 돌아가 출근하기 직전까지였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후에는 동정과 지지로 변했다. 법공부하고 마음을 닦으며, 안으로 찾음에 따라, 끊임없이 법속에서 바로잡았다. 몇 달 후 나는 응당 직장책임자를 찾아서 출근을 요구해야 하고, 원래 나의 소속이었던 직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직장에 가서 찾아온 뜻을 설명했다. 책임자는 말하기를 “공안분국의 일은 다 해결했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가서 해결하지 않았지만, 이미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들은 다시는 나를 찾아 시끄럽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마음속이 아주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 (《홍음2》〈슬퍼하지 말라(别哀)〉) 그는 출근에 대해서는 설지난 뒤 다시 보자고 했다. 정월 18일 직장에서 한번 왔다 가라고 전화를 해 왔다. 그러자 납치에 대한 염두가 또 나왔지만, 이번에 나는 두려워하는 이 마음에 끌려가지 않고, 마음속으로 설사 사악이 있더라도 나는 그것을 직면할 것이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나의 신변에 계시는데,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내가 직장에 도착해 문에 들어서자 책임자가 나한테 물었다. “당신은 무슨 생각 있습니까?” 나는 말했다. “나는 출근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오늘 당신을 부른 것은 출근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8개월이라는 마난을 거친 후, 법의 가르침 하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아래, 정념으로 낡은 세력이 나에 대한 박해를 타파하고, 나는 또 정정당당하게 원래 직장으로 돌아왔다.

또 한 번은 2004년 3월, 사당(邪党)의 양회 기간에, 사악은 또 우리 시의 대법제자들을 크게 교란하면서 납치를 진행했다. 기억에 의하면 그날 오전, 3명의 경찰이 차를 몰고 내가 출근하는 곳에 왔는데, 당시 그곳에는 오직 나 한사람만 있었다. 그들을 보자 나의 마음은 약간 불안했지만, 재빨리 나는 대법제자이기에 무서워하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십시오! 라는 일념이 생겼다. 그중 한명이 물었다. “모모모가 있어요?”(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이때 나의 심태도 조정되었고,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반문했다. “당신들은 무얼 하는 사람입니까, 무슨 일로 그녀를 찾는가요?” 그들은 대답하기를 “그녀의 친척인데, 일이 있어 그녀를 찾습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나는 그들에게 끌려가면 안 된다. 한편으로 지혜롭게 그들과 말하면서 한편으로 발정념을 했다. 몇 분 후 그들은 가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았는데, 또 이 완고한 과시심과 환희심이 사악한테 빈틈을 타도록 한 것임을 발견했다. 나는 수련의 엄숙성을 깊이 알고 있었기에 자신한테 물었다. 나한테 과시심과 환희심이 나타나게 만든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법공부를 깊게 하지 않았기에, 사부님의 법을 잊어버렸다. “수련은 자신한테 달렸고, 공은 사부님한테 있다” (《전법륜》) 나는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이 했던지를 막론하고, 우리는 단지 그러한 염원만 있을 뿐이고, 기실, 모든 것은 법이 하고 있고, 사부님께서 하신다. 잘했을 때는, 우리가 법에 부합되었던 것이고, 잘 하지 못했을 때는 우리가 법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법리가 똑똑해지자 그 이후부터, 나는 다만 묵묵히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3가지 일을 했고, 이 좋지 못한 마음으로 인해 다시는 사악한테 이용당하지 않았다.

내가 사악에게 교란받은 두 번째 사건에서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한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반드시 시시각각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마음에 진선인을 품었거니 파룬따파는 이뤄지리라 때때로 심성을 수련하노니 원만은 묘하기가 무궁하여라(心存真善忍 法轮大法成 时时修心性 圆满妙无穷)」(《홍음》〈진수(真修)〉)어떤 일에 부딪쳐도, 모두 법으로 가늠해야 하고, 시시각각 자신의 언행을 주의하여야 하며, 자신의 사상반영에 주의해야 하고, 안을 향해 찾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교란이 적어질 것이고, 박해가 감소 될 것이다. 교란이 온 뒤에야, 박해를 당한 다음에야 안으로 찾으면 안 된다. 그러면 대법에 손실을 조성할것이고, 친인들한테 정신적 고통을 가져올 것이며, 직장 책임자한테 압력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응당 엄숙하게 수련으로 이 일을 대해야 하며, 단지 대법의 아름다움을 세인들한테 가져다줄 수 있을 뿐, 대법에 먹칠하면 안 된다. 이래야만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고, 우리의 사전 염원을 완성 할 수 있다.

3. 법리를 똑똑히 하고, 동수를 도와서 정체적으로 제고

나는, 일을 할 때 정체를 고려하고, 대법을 원용해야 하며, 또 재빨리 하나의 반석처럼 견고한 정체를 형성해야 하고, 사부님께서는 한 명의 제자도 남겨두지 않으시려고 하기에, 주동적으로 동수를 도와주는 것은 나의 책임임을 깨달았다. 내가 참가하고 있는 이 법공부 소조는, 거의 모두가 두려운 마음이 비교적 심하고, 몇 년 전에 걸어 나오지 못한 동수들이다. 동수들이 정법노정에 따라가게 하고, 이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기 위해, 나는 여러 사람을 조직하여 사부님의 각지 설법과 매주 명혜주간 등 문장을 학습하였다. 법에 대조해보고, 주간에 나오는 동수들이 한 것을 참고하여, 저절로 격차를 찾게 하고, 부족점을 찾게 했다. 여러 사람이 모두 수련하려는 마음이 있기에,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하여, 또 사부님의 끊임없는 점화로, 현재 몇 명 동수들은 모두 자기가 처한 층차에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정법노정이 맹렬하게 진행됨에 따라, 나는 주위의 동수들이 자료를 배포하는 수량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유는 이렇게 몇 년 동안 배포했는데, 똑똑히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고, 모르는 사람은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료를 찢어버려 자기 자신한테 업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정황에 직면하여 나는 여러 사람을 조직하여 법리상에서 토론하고 교류하고 제고하였다. 나는, 정법노정의 끊임없는 추진에 따라, 다른 공간의 사악도 많이 청리되어 얼마 남지 않은 때, 세인을 조종하는 배후의 사악한 인소도 점점 적어질 것이고, 사람의 명백한 일면도 가서 진상을 찾을 것이며 진상을 들을 것이다. 우리는 응당 세인들에게 구도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고, 자신의 관념에 저지되어서는 안 되며, 한 대법제자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이 일에서 소극적이고 무감각하며 태만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에 갈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는 법에 따라 해야 한다. 교류를 통하여, 여러 사람들은 모두 자료를 적게 배포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 많이 배포해야 함을 인식하였다.

4, 자료점 건립

명혜 편집부에서 자료점이 도처에 꽃이 피도록 하라고 제기한 후, 정법시기의 한 대법제자로서 나도 응당 정체적으로 배합하는 형식속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응당 동수를 대신해 일부를 분담하고, 기다리고 요구하고 의지하는 현 상황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의 생각을 가끔씩 내왕하는 한 여동수(독신)한테 말했고, 그녀 또한 나와 같은 염원이 있었다. 자료점을 건립하더라도 기술을 모르면 안 되지 않는가! 그때 나는 컴퓨터를 접촉한 적이 없었기에, 우선 저녁시간을 이용해 컴퓨터학습반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직장에 출근한 뒤 신문에 학습반을 여는 광고를 살펴보니, 한눈에 우리 집 부근에서 컴퓨터학습반을 연다는 광고가 나와있었고, 그 날이 마침 개강하는 날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40일 간 학습해 컴퓨터 기초지식(타자, 조판, 편집, 인쇄를 포함 )을 장악하였다. 학습반이 결속될 무렵 동수에게 부탁해서 컴퓨터와 프린터기를 샀고, 2004년 8월 고정 자료점을 동수 집에다 정식으로 설립했다.

며칠 후 협조인이 외지 동수를 데리고 와 우리 현지 몇 명의 동수들에게 인터넷에 오르고, 다운로드 설치계통 등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동수가 가르쳐 줄 때 될수록 동수에게 시끄러움을 주지 않기 위해, 나는 동수가 말한 모든 문제를 모두 하나하나 종이에 적었다. 그런 후 다시 시간을 내어 연습하고, 기억을 증강했다. 명혜망에 투고하려면 반드시 타자를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타자실력을 기르기 위해 나는 경상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휴식하는 시간을 이용해 타자연습을 하였다. 후에 타자는 내가 담당했고 각자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맡아서 했다.

자료점 일이 끊임없이 많아짐에 따라, 법공부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감소되다 보니 우리는 마음을 조용히하고 법공부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고, 안을 향해 찾는 것을 홀시하였다. 보편적으로 일하는 마음이 나왔고, 마치 속인들이 대법 일을 하는 것 같았으며, 이렇게 신성한 일을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한다고 여기지 않고 마치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만 일하는 것 같았다 . 그러다보니 설비가 여기에 고장 나지 않으면 저쪽에 문제가 생겼고, 동수지간에도 아주 많은 마찰이 나타났다. 그중 한 동수는 정의 집착 때문에 사악을 가강하고 확대시켜 사부님의 여러 차례 점화에도 깨닫지 않았다. 2006년 4월 우리 이 자료점은 끝내 사악한테 파괴당했고 이 동수는 핍박으로 유리실소(流离失所)하게 되었다. 이번 교훈을 접수하고, 우리는 법공부를 가강하였으며, 안을 향해 찾았고, 심성제고를 중시하였으며, 여러 가지 곤난을 극복하였다. 아주 빨리 우리는 또 각자의 자료점을 건립하여 법의 가르침과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아래, 몇 년 동안 줄곧 안전하고 평온하게 오늘날까지 운행되고 있다.

5,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심성을 제고

나는 2000년 가을부터 진상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동수에게서 가져 온 진상전단지를 가지고 혼자 한 주민구에 와서, 1층 문에서 2층에 올라가 자료를 놓으려 준비하고 있는데, 윗 층에서 쾅하고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놀라서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나오는 것 같았고, 두 다리도 떨고만 있지 발걸음을 내디딜 수 없었다! 나는 걸을 려고 해도 걸을 수가 없었는데, 한참 기다려도 윗 층에서 사람이 내려오지 않았는데, 원래는 사악의 교란이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두려움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알게 되었고, 두려워하게 하는 마음이 내가 아님을 알았다. 나는 우주 중에서 가장 바르고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데 무서워 할 필요가 없고,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누구도 나를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바로 그 첫걸음이 내가 이후에 대법진상자료를 배포하는데 아주 좋은 기초를 다졌다.

이후부터 법을 실증할 때 두려운 마음이 나타나기만 하면 나는 그것을 청리하고, 다시는 두려움에 교란받지 않았으며, 무엇을 해야 하면 무엇을 하였는데, 법을 실증하는 길이 갈수록 더욱 넓어짐을 발견했다. 현재는 도시든, 시골이든, 아니면 낮이든, 밤이든, 혹은 자료를 놓든지 아니면 자료를 붙이든지 모두 태연하게 할 수 있다. 매번 출발하기 전에는 나는 발정념으로 내가 도착하는 곳에서 세인이 구도 받을 수 없게 교란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과 인소를 제거한다. 또 자료를 놓을 때, 대법제자가 당신들을 구도하려고 왔어요! 빨리 깨어나세요! 라고 생각하였는데, 대다수는 모두 아주 순리로웠다. 몇 년 전에, 나는 여러 차례 주민구에 가서 자료를 배포했는데,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당시 그들은 내가 자료를 놓은 것 을 보지 못하였고, 다만 의심하였다. ) 다른 공간의 사악한테 조종당하는 세인 앞에서, 나는 놀라지도,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그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 발정념을 하였다. 오직 염만 내보내도, 그 사람 배후의 사악한 생명은 청리되었고, 그는 다시는 사악해질 수 없었다. 그런 후 나는 진상을 알렸고, 그를 구원받게 하였다. 일이 끝난 후 나는 안으로 찾았는데, 모두 자신이 사람표면의 안전을 중시하지 않았거나 혹은 머리에 일부 아주 미묘하게 낡은 세력의 박해를 승인하는 염두가 나타났지만 제때에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성된 것이었다. 현재는 이렇게 사악한테 교란당하는 일이 점점 더 적어졌다. 기실, 오직 우리가 경상적으로 정념을 유지하고, 이지적으로 지혜롭게 가서 한다면, 아주 안전한 것이다.

인민폐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는 것은 내가 법을 실증하는 또 하나의 형식이다. 이 과정에서 나의 아주 많은 사람마음을 제거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내가 쓴 글자가 다른 사람에게 식별되어 박해를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이 일념이 내가 아니고, 낡은 세력이 내보낸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것을 청리하고, 그것을 승인하지 않았는데, 몇 번 쓰자 이런 염두가 없어졌다. 인민폐에 진상을 쓰는 것은 일정한 시간을 점유하는 것이었고, 자신의 사상을 조금만 늦추면 또 시끄러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나는, 진상폐를 쓰는 것은 반드시 마음을 다해 해야 한다. 왜냐하면 써낸 글자가 대법제자의 형상을 대표하기 때문에, 글자체는 반드시 똑바르게 세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써야만 구도받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진상폐를 쓰는 과정 중, 어떤 때는 세인들이 진상폐를 들고 큰소리로 읽었다. 파룬따파좋다, 쩐싼런 좋다. 그럴 때 마음이 아주 기뻤는데, 안으로 찾아보면 환희심이 일어난 것이었다. 어떤 때는 더 많이 쓰기 위해 필요없는 물건도 집에 사왔는데, 안으로 찾아보니, 또 수량을 구하는 마음이 일어난 것을 발견했다. 나는 오로지 걸어나와 여러 가지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참가하여, 법으로 가늠하고, 안으로 찾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심성제고에서 하나의 비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9평》이 나온 후, 동수들은 대규모로 3퇴를 권고하고 진상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얼굴을 직접 대하고 3퇴를 알리는 중, 나는 아직도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3퇴를 말하고, 3퇴를 권고하지 못하고 있다. 늘 체면을 생각하는 마음, 어색한 마음, 고려심, 분별심, 두려워하는 마음 등에 막혀있는데, 이후 이 방면에서 꼭 돌파할 것이다.

9년간 법을 실증하면서 절실한 체득과 심령여정을 돌이켜보니, 아직도 부족한 점이 아주 많이 있다. 나는 수련의 엄숙성을 깊이 알고 있다. 마지막에 갈수록 법이 우리에 대한 요구도 더욱 높고, 갈수록 응당 정진해야 하며, 제한된 시간에 매 한걸음을 바르게 잘 걸어가,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와 중생의 기다림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동수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허스!
(명혜망제5회중국대륙대법제자수련심득교류회)
(English Translation: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8/12/15/103005p.html)

문장발표:2008년11월06일
문장갱신:2008년12월18일 20:21:11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1/6/18852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