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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아 자신을 제고해 더 많은 중생을 구도

글/ 흑룡강 대법제자 문주(文姝)

【명혜망 2008년 12월 7일】 2001년 나는 주동적으로 자료점 사업을 맡았다. 이 항목에서의 수련은 지불이 비교적 컸고 감당하는 것도 많았다. 현지의 진상자료를 책임져야 할 뿐더러 또 다른 현, 시의 진상 자료도 책임져야 했으므로 아주 바빴다. 하루에 아주 많은 자료를 만드는 외에도 어떤 때는 또 나가서 현수막을 걸고, 표어를 쓰며, 재료를 배포하곤 했다. 이렇게 하다보니 법공부 시간은 더욱 적어져, 일만 하고 법리상의 제고가 없는 현상을 조성했다.

당시, 법을 갓 얻은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나와 함께 이 큰 자료점을 맡았다. 그녀는 속인 가운데서 담이 아주 컸고, 또한 총명했으므로 나는 그녀에게 아주 의지했다. 그녀가 많은 일에서 법에 있지 않을 때도 나는 정념으로 대하지 않았고 속인의 참음으로 얼버무렸다. 나중에 그녀는 협조인에 의해 외지 여러 곳에 파견되어 역시 자료를 만들었다. 하지만 후에 그녀는 납치당해 악경의 내선(內線 역주: 특무)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 몇몇 동수들이 모두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녀가 특무라는 것을 몰랐고 여전히 그녀를 아주 정진하는 동수로 여겼다.

–본문 중에서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나는 사부님의 제자가 된 것을 기쁘게 여긴다. 위대한 불법(佛法)은 나를 새롭게 귀정(歸正)시켰다. 대법 속에서 나는 11년이란 수련 노정을 걸어왔는데 이는 내 일생에서 최대의 행복이다. 정법 수련 9년 동안, 중공 사당은 끊임없이 선량한 군체(群體)에 대해 죄를 저지르고 있다. 나는 수천수만의 대법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무고하게 박해 당하여 일자리를 잃었고 집을 떠나 떠돌게 되었으며, 가족들까지 연루되었다. 하지만 나는 사존을 확고히 믿고 대법을 확고히 믿으면서 수련 중에 종래로 동요해 본 적이 없으며 회귀의 여정에서 확고하게 걸어가고 있다.

아래는 나의 일부 수련 체득이다.

(1) 자비심을 닦아 신변의 친인을 구도

‘7.20’ 박해 이후 나는 즉시 걸어나와 법을 실증했고 각종 방식으로 진상을 알렸는데 일찍이 네 차례 북경에 갔다. 그 때는 대법이 좋다는 것만 알았을 뿐 법리가 분명하지 못하여 많은 방면에서 원용하지 못했다. 정념으로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은 더욱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 몇 년 동안은 줄곧 박해를 승인하는 가운데 수련했다. 그러므로 직업을 잃어 봉급이 없었고 납치되어 간수소, 정신병원, 노교소 등에 가서 박해를 받았다.

내게는 남들이 아주 부러워하는 가정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나는 젊고 예쁘며, 기질이 훌륭하고 사업이 훌륭한데다 또한 재능 있는 출중한 사람으로 보였다. 남편 및 가족들도 사회에서 모두 일정한 직위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공장장, 경리(經理 기업 책임자), 과장 및 처장급 간부들도 있었다. 나는 전에 그들의 자랑이자 과시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내게 들이닥친 이런 좌절을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고, 모두들 내가 파룬궁을 수련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이해할 수 없어 했으며 분개했고 사부님과 법을 존경하지 않았다. 대신 악인과 힘을 합쳐 나에 대한 박해를 가중시켰고 나를 정신병원에 보냈다.

2001년 3월 나는 핍박에 의해 집을 떠나 떠돌게 되었고, 5월 22일에는 또 다시 납치당하여 불법으로 노동교양 3년을 받았다. 가족들은 적극적으로 나를 구출하지 않았을 뿐더러 내가 더 오래 갇혀 있기를 원했다.

나는 정념으로 탈출한 후 남에게 고발되어 또 다시 집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했다. 부모님은 내가 집을 버리고 ‘지하공작’을 한다고 했다. 당시 그들도 아주 두려워했고, 친척, 가족들은 모두 나를 감히 받아주지 못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대법제자의 책임을 잊지 않았고 방법을 찾아 줄곧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당에게 너무도 엄중하게 기만당했기 때문에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을 뿐더러 심지어 비웃고 풍자하며 때리고 욕했다. 때문에 속인 중에서 내 자존심은 심한 상처를 입었다. 나는 비록 자비로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럴 방법이 없었으며 속으로 그들은 미워하게 되었다.

어느 해 추석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집에 돌아가 진상을 알려 주려고 생각했고 딸을 데리고 친정에 갔다. 그러자 온 가족이 몹시 기뻐했고, 어머니는 풍성한 저녁 식사를 차려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보는 것이 괴로워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반시간 가량 앉아 있다가 식탁에 앉지도 않은 채 진상자료만 조금 남겨 놓고는 구실을 대며 나와 버렸다. 그 때 나는 원망하는 마음이 아주 컸다. 그들이 대법을 대하던 태도를 생각하기만 하면 나는 참을 수 없었고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친정에서 돌아온 후 나는 또 매우 후회했다. 그들은 얼마나 딸이 행복하기를 바라는가, 나는 왜 그들을 대신해 생각해 보지 않는가? 나는 어떻게 해야 그들의 집착에 따라 말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고, 당시는 법리가 분명하지 못하여 이것을 사람에 대한 사람의 박해로 여겼으며, 그들이 사악을 도와 나를 박해 한다고 여겼을 뿐 그들도 피해자로서 사악의 통제를 받았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래서는 안 돼, 그들이 대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대법에 나쁜 영향을 저지를 지도 모른다. 나는 자비심을 닦아 꼭 그들을 구해야 하며 더는 그들은 미워해서는 안 된다!’

2004년 설, 친척들이 모여 설을 쇠기 위해 우리 온 가족을 청했다. 나는 이것도 그들을 구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라 생각했다. 99년 이후 나는 줄곧 그들과 함께 있어본 적이 없었고 금년에 처음으로 그들과 만나는 것인데 30여 명이 함께 모여 아주 흥성했다. 나는 자신에게 반드시 마음을 내려놓고, 꼭 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당시 여러 사람들은 나에게 아주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은 일종의 간격이며,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다. 나는 단숨에 일종의 열등감 같은 것이 솟아 올랐다. 나는 간수소에 들어갔고, 또 노동교양도 당했으며, 지금은 몸에 일전 한 푼도 없다. 예전의 나와는 천양지차이니 내가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도 그들이 내 말을 듣고 접수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중에 내가 술을 부을 차례가 되자 나는 식탁에 자리한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시 한 수를 읊어 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홍음』 「일월담을 거닐며」를 외워 주었다.

일월담을 거닐며

한 늪의 맑은 호수

노을빛 아름답게 비껴드누나

몸은 난세 중에 있거니

홀로 아름답기 참으로 어렵네

모두들 훌륭하다고 말하였지만 나는 당시 이것이 사부님의 시라는 것을 말할만한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필경 나는 이때부터 그들과 가까워졌고 나의 심태도 많이 평화로워졌다. 일이 지난 후 자신을 보니 여전히 자아에 집착하고 체면, 허영심 같은 것을 내려놓지 못했으므로 법을 실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지(理智)로써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써 진상(眞象)을 똑똑히 말하고, 자비로써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救渡)하라”(『정진요지2』 「이성」)고 말씀하셨다. 2006년 9월 나는 주동적으로 집에 돌아가 가족들에게 말했다. “곧 휴가가 있을 예정이니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 주고 싶어요. 산도 좋고 강도 좋으니 경치가 좋은 곳을 골라 보세요. 될수록 집에서 좀 먼 곳을 선택하세요.”(당시 나는 아직 우려하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이 몇 해 사이에 나는 처음으로 이러한 요구를 제출했으므로 그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고, 아주 중시했다. 비교적 멀리 떨어진 피서 산장을 마련했고 첫날 식사예약을 했다.

이날 모두 7대의 승용차에 37명이 함께 갔다. 나는 그들에게 명백한 일면이 있어, 표면상으로는 놀러 가는 것이지만 실은 모두 진상을 알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정념으로 사악의 교란을 해체하고 정정당당하게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지혜로 사람을 구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나는 사진을 찍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중에 진상을 말해 주었고 3퇴도 해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진상 호신부를 가져갔다. 이 때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또 집안에 들어가서 어르신들에게도 진상을 알렸다. 이 몇 해 사이에 그들은 나를 처음 만났고 내가 박해 당한 정도를 알고 있었다. 한 분은 나를 붙잡고 대성통곡 하면서 오래 동안 진정하지 못했다. 또 한 분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나는 진작부터 너희가 좋은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당시 분위기는 아주 상서로워 마치 또 다시 평화적인 시기에 그들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이 때 비가 그치고 날이 갰다. 누군가 크게 외쳤다. “빨리 나와 보세요. 무지개가 걸렸어요!” 천 미터도 안 되는 곳에 무지개가 저수지를 가로질러 양쪽이 산기슭에 내렸다. 무지개 아래 끝을 통해 산기슭의 단풍이 든 나뭇잎들이 또렷하게 보였는데 손만 내밀면 만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두들 다 신기하다고 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입원해 수술을 받게 되었다. 가족들은 내가 사악에게 발각될까 봐 병원에 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가야 했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올 것이므로 바로 이 기회를 이용해 그들을 구도할 수 있다. 둘째, 나는 반드시 사람마음, 평형을 이루지 못한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어머니로 하여금 딸의 효도를 직접 느끼게 하여 대법의 아름다움을 펼쳐보여야 한다. 비록 사악이 나를 찾고 있긴 하지만 나는 이런 배치를 승인하지 않으며, 일체 교란을 부정하고,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 병간호에 참가할 것이다. 간호하는 과정 중에 나는 지혜롭고 이성적으로 대법진상을 말해주었고, 한 사람이 수련하면 온 집이 혜택을 볼 수 있으며, 파룬따파하오를 묵념하면 사부님께서 엄마를 보호해 주실 것이니 비록 큰 심장수술일지라도 아무 문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등등을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서 처음으로 ‘파룬따파하오’를 외웠고 회복이 무척 빨라 의사마저 기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엄마와 같은 병으로 했던 수술들은 많이는 실패했다. 이 과정에 내가 접촉한 사람들은 모두 탈퇴했다. 몇 년동안, 남편, 동생, 매부, 부친 등 모두들 3퇴에 대해 줄곧 이해하지 못해 몇 번을 권유해도 효과가 없었다. 나는 먼저 나 자신을 귀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06년 법공부를 할 때 나는 깨달았다. 대법제자의 길은 후세 사람들에게 남겨 주는 것이다. 나의 길을 어떻게 하면 바르게 걸어갈 수 있고, 어떻게 더 훌륭하게 대법을 실증하며, 나에 대한 구세력의 경제적 박해를 어떻게 부정하는가도 아주 중요한 것이다.

나는 줄곧 대법자료를 만들었으므로 일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작은 자료점들이 이미 곳곳에 피어났고, 자료 인쇄에도 많은 동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나는 또 장기간 자료점에 봉폐되어 있다 보니 많은 방면에서 수련이 제한돼 있었다. 나는 상태를 개변할 때가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동수가 외지에서 나에게 일자리를 얻어 주었다. 경제적인 상황변화로 인해 나에 대한 가족들의 경제부담도 줄게 되었다. 가족들도 더는 내가 극단으로 간다고 여기지 않게 되었으며, 그들은 지금 나의 상태를 아주 인정해 주었고, 늘 나에게 바깥에서 안전에 주의하라고 타일러 준다.

원래 ,나는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는 것이 곧 수련이라고 여겼고, 주변에 있는 속인들의 감수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극단으로 갈 때가 많았다. 이 때문에 가족들이 나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고, 대법에 대해 아주 나쁜 영향을 초래했던 것이다. 지금 나는 알게 되었다. 수련 과정에 더욱 마땅히 가정 관계를 원용해야만 비로소 그들이 대법의 아름다움을 감수할 수 있게 할 수 있고 그들이 구원받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서히, 예전에 냉냉했던 남편의 얼굴이 변해 웃음기를 띠게 되었다. 특히 금년 설에 온 집에서 독해를 제일 심하게 받았고, 가장 완고했던 큰 남동생, 매부, 남편, 이모부 등이 모두 3퇴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아버지와 작은 남동생뿐이지만 나는 확고히 믿는다. 그들이 정법시기에 인간세상으로 올 결정을 한 이상, 또 대법제자와 친인으로 될 것을 선택한 이상 그들은 꼭 알게 될 것이며, 머지않아 꼭 구도될 것이다.

(2) 집착심을 닦아 버리고 법리에서 제고하여 정정당당하게 중생 구도

2001년 나는 주동적으로 자료점 사업을 맡았다. 이 항목의 수련은 지불이 비교적 컸고 감당하는 것도 많았다. 현지의 진상자료를 책임져야 할 뿐더러 또 외부 현, 시의 진상 자료도 책임져야 했으므로 아주 바빴다. 하루에 아주 많은 자료를 만드는 외에도 어떤 때는 또 나가서 현수막을 걸고, 표어를 쓰며, 재료를 배포하곤 했다. 이렇게 하다보니 법공부 시간은 더욱 적어져, 자신에게 일만 하고 법리상의 제고가 없는 현상을 조성해 주었다.

당시, 법을 갓 얻은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나와 함께 이 큰 자료점을 맡았다. 그녀는 속인가운데서 담이 아주 컸고, 또한 총명했으므로 나는 그녀에게 아주 의지했다. 그녀가 많은 일에서 법에 있지 않을 때에도 나는 정념으로 대하지 않고 속인의 참음으로 얼버무렸다. 나중에 그녀는 협조인에 의하여 외지 여러 곳에 파견되어 역시 자료를 만들었다. 하지만 후에 그녀는 납치당해 악경의 내선(특무)으로 되었고, 우리 지역의 일부 상황을 모두 제공했다. 그래서 우리 몇몇 동수들은 모두 블랙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고, 사악은 도처에서 우리를 찾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녀가 특무 일을 한다는 것도 모르고 여전히 그녀를 아주 정진하는 동수로 여겼다.

한번은 동수가 그녀를 데리고 우리 법공부 팀에 와서 내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 후부터 사악이 내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남편이 전화를 받았는데 그더러 파출소에 출두하라고 했다. 그가 문을 나서자 사악이 올라왔다. 나는 이때 이미 어떻게 할 사이도 없어 문을 잠그고 집안에 앉아 발정념을 했다. 그들은 밖에서 열쇠로 문을 열었지만 (예전에 그들은 열쇠로 우리 집 문울 연적이 있다) 열리지 않자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안 되니 창문으로 기어 올라 유리창을 깼다. 당시 집안에는 80여 세 되는 시어머님이 계셨는데 단호하게 그들이 문을 부수지 못하게 했다. 아파트 앞뒤에는 경찰차들이 가득 들어섰고 나는 줄곧 발정념을 했다.

이렇게 10여 시간 대치하고 있었는데 저녁 8시 이후 길가에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구경하자 그들은 이 길을 봉쇄해 버렸다. 나중에 그들은 소방차 몇 대를 불러왔고, 6명의 소방원이 창문을 부수고 기어 들어온 후 문을 열었다. 한 무리 강도와 악경 20여 명이 들어왔다. 나를 납치하는데 참여한 단위들은 성 공안청, 시 공안국, 구 공안분국, 관할 파출소, 소방대대, 가도 지역 사회 위원회 등 6개 부문이었다.

당시 내게는 아주 우려되는 것이 있었다. 만약 내가 이렇게 납치된다면 그건 대법제자의 수치이고, 앞으로 사람을 구하는 데도 장애를 조성할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발정념을 하면서 절대 그들이 목적을 이룰 수 없게 할 것이며, 이번 박해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사부님께 가지와 도움을 청했다. 사악은 한 무리 굶주린 승냥이 떼처럼 악독하기 그지없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집안을 발칵 뒤졌는데 뒤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뒤지는 한편 “베란다를 가 봐!” “가방을 뒤져!” “침대 안을 봐!” 침대 널판자를 모두 뒤집고는 “옷장을 봐”라고지휘했다.

나는 눈앞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줄곧 발정념을 했다. 사악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사악은 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투덜거렸다. “온 종일 집 앞뒤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고 사람은 날아가려 해도 갈 수 없을 텐데!” 그들 20여 명은 20여분 동안 난장판을 벌려 우리 집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나중에 그들은 집에 있던 만 원짜리 손목시계를 훔쳐 갔고, 현금 등 재물을 빼앗아갔으며, 사부님 법상과 대법서적을 들고는 우쭐거리며 가버렸다. 놀란 시어머니는 마비된 채 소파에 쓰러져 떨고 있었다.

이와 같은 공포 속에서 어떻게 정념을 수련해 내고, 법리상에서 제고하여, 박해를 조성하게 된 근본 원인 및 정체와 개체에 존재한 누락을 찾아내고, 사악에게 틈 탈 기회를 주는 이런 물질을 해체할 것인가 하는 것은 앞으로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는데 대해 아주 필요하다.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나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정체적으로 찾아보면 개인적인 인식으로, 자료점 동수는 반드시 진수하는 동수가 해야 하며, 반드시 착실한 수련기초가 있어야 한다. 이는 한 가지 아주 엄숙한 일로써 이렇게 하자면 협조인이 이 일에 대해 마땅히 안배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안배하는가 하는 일과 관련된다. 바로 앞에서 제기한 그 수련생처럼, 법을 늦게 얻어 수련기초가 없고 단지 열정, 담이 크고 총명하며 또 아주 주동적이라는 데만 의지해 그를 자료점에 참여시켰다. 비록 그녀가 법에 있지 않고 늘 소란을 피웠지만 모두들 아주 마비되어 있었고, 그녀에게 기술이 있다는 이유로 협조인은 또 다른 시 구에 그녀를 배치했다. 바로 그녀 때문에 수십 명이 납치되었고, 몇 개 시의 자료점이 파괴당했으며 그 중 두 동수는 박해로 치사했다. 지금까지도 그녀 때문에 수감 중인 동수가 있다. 이는 우리가 법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자료점을 속인의 사업으로 여기고 속인의 능력에 따라 안배했으니 수련의 내포를 완전히 소홀히 한 것이다. 이 일의 발생은 또한 법리상 똑똑하지 못한데서 야기된 것이다.

개인적인 원인을 찾자면, 나는 속인 때에 의지심이 아주 강했는데 그것을 수련 중에 지니고 들어왔다. 남에게 의지할 때가 아주 많았고 자립하지 않았다. 이 방면의 것들이 강대한 집착이라는 것을 나는 의식하지 못했다. 이런 집착으로 인해 나는 위에서 제기된 그 수련생에게 줄곧 양보하였고 그녀가 법에 있지 않은 일마다 나는 모두 무절제하게 참고 지냈으며, 수련하지 않았다! 그때는 많은 동수들이 걸어 나오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때에 내가 자료점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수련을 아주 잘한 것이며, 아주 영광스럽고 아주 대단하다고 여겼고, 잠재했던 환희심이 또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의식하지 못했던 집착이 또 있었는데 바로 극단으로 간 것이다. 집안의 많은 일을 상관할 정력이 없었고, 상관 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자신은 무엇이든 다 내려놓았고, 집착심도 아주 적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가족들의 몰이해를 조성했다. 동시에 자료점 사업을 하는 가운데 줄곧 매우 강한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사악이 줄곧 나를 찾고 있는데 대해 근본 상에서 박해를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박해를 불러온 것이다.

이런 원인들을 찾아내자 나는 마음이 아주 홀가분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아주 오랜 동안의 수련 과정에 나는 서서히 많은 집착심을 닦아 버릴 수 있었는데 특히 두려운 마음이었다.

올림픽이 임박해서 파출소 경찰 두 명이 직장에 나를 찾아와 나더러 파출소에 가서 등록하라고 했다. 당시 나의 심태는 아주 평온하여 추호의 두려움도 없었다. 비록 사악이 어떻게 내가 대법수련을 하는 것을 알아냈는지 알 수는 없지만(당시 나는 다른 도시에 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표면적인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다만 사악의 배치를 견결히 부정하고, 결코 사악에 배합하지 않으리라는 것만을 생각했다. 그 두 경찰이 말했다. “듣자하니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한다던데 파출소에 가서 등록만 하면 되고, 당신을 돌아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무슨 말을 들었던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며, 내가 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 당신들이 관할할 일이 아닙니다. 나는 절대 당신들을 따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나중에 그들은 풀이 죽어 돌아갔고 다시는 오지 않았다.

(3) 자아를 내려놓고 법에 용해되어 정체적으로 승화

2006년 8월 중순경, 나는 낯선 도시에 와서 일하게 되었다. 이튿날 바로 동수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이곳 동수들은 우리 그 곳 동수들과는 상태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지역에서는 “파룬따파하오”와 “3퇴” 표어가 도처에 붙어 있어 수시로 볼 수 있었고, 진상 자료와 ‘9평’은 건물 복도에 모두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보기가 힘들었다. 나는 곧 현지 자료점 동수와 교류했다. 그 때는 일도 바쁘지 않았으므로 자료점 사업에 참여하여 할 만한 일을 좀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만나는 동수들마다 모두 이곳에는 자료점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상태를 보고 그들이 정진하지 않고 있다고 여겼으므로 아주 조급하여 늘 그들을 제고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물어본 동수가 많아지자 그들은 나더러 특무라고 하면서 서로 당부했다. “그녀를 경계하고 그녀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말라.”

그들이 이러는 것을 보자 나는 자신이 수련해야 할 것이 있음을 의식하게 되었고 착실하게 수련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했다. 몇 달 후 두 동수가 납치되었다. 나는 사실을 확인한 후 소식을 명혜망에 보도 하였다. 기존의 경험에 의하면 나는 아주 잘했다고 할 수 있다. 동수도 폭로시키지 않았고 박해 상황도 설명할 수 있은 것이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다른 한편의 보도는 아주 상세히 썼고 마땅히 보도하지 말아야 할 일마저 죄다 폭로해 냈다. 당시 우리도 모두 이런 소식은 비이성적이라고 여겼다.

동수들은 보고 난 후 모두 내가 한 짓이라고 하면서 나에 대해 아주 의견이 많았다. 얼마 후 이 두 동수를 납치하도록 지시한 악경이 보응을 받아 차 사고로 죽었다. 나는 반복적으로 확인한 후 또 개별적인 동수들과 교류하고서 이 일을 사이트에 폭로했다. 한 동수는 이 일에 대해 아주 의견이 많았다. 현지에는 동수가 적은데 이렇게 하면 동수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냐고 여겼다.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왜 우리 그곳에서는 아주 예사로운 일, 아주 옳게 한 일이 이곳에서는 모두 틀리는가? 당신들이 하지 않으니 내가 했는데도 의견이 있는가?

또 한 번은, 명혜망에 사부님 신경문이 발표되자 나는 가장 빠른 시간 내에 4부를 복사해 가까이에 있는 동수들에게 세 부를 주었다. 그러자 또 한 동수가 말했다. “왜 함부로 이렇게 하는가? 마땅히 통일적으로 자료점에서 나와야한다.” 이 몇 가지 사건을 겪은 후 나는 내가 도대체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이젠 그걸 생각지 말고 더는 이런 일을 하지 말자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더는 자료점 일을 물어보지 않았고, 더는 그들의 부족을 비교하지 않았다. 마치 마음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동수를 구출하는 일에서 나는 또 견해가 있게 되어 협조인을 찾아가 교류하고, 우리 그 곳에서 동수를 구출한 방법을 그에게 소개해 주었다. 협조인이 말했다. “안됩니다, 속인의 그런 기세 드높은 형식은 쓸 수 없습니다.” 별수 없이 나는 동수들과 발정념으로 동수를 구출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 우리 현지의 원래 동수들과 자신이 어디서 잘못했는지를 교류하였다. 두 지역 동수들의 수련 상태에 차이가 아주 큼에도 나는 원래의 방법을 그대로 옮겨다 했으니 많은 일들은 전혀 합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법리상에서 동수들과 교류한 것이 아니라 일에서 일하는 방법을 말했던 것이다. 나는 법에 대한 동수의 이해를 깊이 요해하지 않고 다만 그들의 표면만 보았던 것이다. 그 때 나는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지 못하고 늘 남을 지도하는 마음을 지니고 남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사실 두 지역 동수들의 격차는 단숨에 동일한 페이스에 도달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급히 성공하려는 마음을 지니고 현지에서 잘했다는 과시심으로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당시 동수가 말한 것처럼 되었다. “보세요, 그 동안 그녀가 우리 이곳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었는지.” 내가 이런 부족을 보아냈을 때 동수들은 나에 대해 아무 의견도 없었고, 전반적으로 큰 전환이 있었다.

나중에 그 곳의 한 노년 동수가 나를 믿어주어 나더러 자신을 도와 설비를 사고 인터넷에 접속하게 했고, 나는 기술동수를 보내주어 그를 가르쳐 주게 했다. 다른 동수들도 주동적으로 우리와 접촉하고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또 평상시 동수 가족들과의 접촉에 주의했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등 이런 형식을 이용하여 그들과 진상을 말함으로써 수련환경을 열어 놓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대법을 그다지 이해하지 못했던 동수 가족들이 대법진상을 접수하고 동수를 받아들이기 시작 하였다. 서서히 우리에게는 법공부 환경이 마련되었고 법공부 팀도 곧 생기게 되었다. 동수들의 제고도 아주 빨라 동수에 대한 나의 견해도 개변되기 시작했고 더는 표면을 보지 않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당시의 수감된 동수를 구출하는데 대한 그 동수의 견해를 다시 볼 때,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반박해 형식은 아주 많은 것으로, 무슨 방식을 취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심태만을 보아야 한다. 어떠한 사람마음이라도 섞어 넣는 것은 모두 바르지 않은 것이다. 이곳은 동수가 적어 우리 그곳처럼 대면적으로 들끓게 하는 효과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구출하기 위해 구출하는 것은 법에서 누락이 있는 것이다. 표면상으로 보건대는 다만 간단한 하나의 방식 ㅡ 발정념으로 구출하는 것이지만, 오직 법의 요구대로 한다면 효과는 꼭 좋을 것이며, 속인의 표면형식에 제한받지 않는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 동수들은 법공부와 수련에서 서로 비기고, 모두 각자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 정체적으로 끊임없이 제고하고 끊임없이 승화하고 있다.

(4) 사람마음을 닦아 버리고 인연 있는 사람을 구도

이 작은 도시에 와서 일한 후부터 나는 이 환경에서 어떻게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할 것인가를 줄곧 생각했다.

한번은 식탁에서 사장이 동료 앞에서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그 때로부터 먼저 동료들 가운데서 진상을 알리고 탈퇴를 권했다. 내가 부사장과 진상을 말했는데 그녀는 나를 아주 인정해주면서 상해에 있는 여동생 및 부모에게 전화를 쳐 모두 3퇴하게 했고, 남편도 탈퇴시켰다. 나중에는 아들을 데려와 그더러 직접 내가 말하는 진상을 듣게 하여 아들도 3퇴 하였다. 당시 나는 진상을 말할 때 똑똑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는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 주시는 것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또 다른 책임자에게 진상을 말했다. 일로 접촉하면서 늘 그에게 말해 주었는데 이리하여 그에게 명백하게 말해줄 수 있었고 그도 알게 되었으며, 그의 부모님들이 그를 보러 오거나 아들, 아내도 볼일이 있어 찾아 올 때면 나는 열정적으로 그들을 접대하고 기회를 타 한담을 하였고, 따라서 그들이 죄다 3퇴하게 하였다. 3퇴를 말하는 과정에 그는 진상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하는 중에 그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진상을 말할 때면 그도 싱글벙글 하면서 조용히 듣고 있어 나로 하여금 사업 중 진상 알리는데 아주 편리한 조건을 갖게 하였다.

나중에 나는 우리 직장의 직원 30여 명을 죄다 탈퇴시켰는데 그 중에는 그들의 가족도 있었다.

이후 나는 더는 직장 환경에만 국한하지 않고 직장 밖의 사람들에게도 진상을 알리기 시작 했다. 왜냐하면 직장의 업무 왕래로 많은 사람을 접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관계가 아주 혼잡했는데 많은 일에서 직장과 모순이 있었고 우리에게 빚을 지고 있어 내가 가서 빚을 받아와야 했다. 이런 모순적인 관계 속에서 또 진상도 잘 말하자고 하니 일정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 내게는 아주 큰 사상 장애가 있었는데 그들이 접수하지 못할까 봐, 그들이 고발할까 우려했던 것이다. 본래 원래의 도시에서 유리실소하게 되어 이곳에 왔는데 금방 이곳에 와서 사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안정만을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엇이 제일 안전한 것인가?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는 것이 제일 안전한 것이며, 정념으로 일체를 대하는 것만이 가장 안전한 것이 아닌가!

그때로부터, 나는 여가 시간이면 의식적으로 그들과 접촉하여 거리를 가까이 함으로써 사업 중에 형성된 갑을 쌍방의 그런 모순관계를 제거하고 융합된 개인 관계를 건립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자 말하기도 좋았다. 사부님은 나에게 이런 소원이 있는 것을 보시고 나에게 사람을 접촉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환경을 안배해 주셨다. 나는 창구에서 일하도록 안배되었는데 접촉하는 사람도 더 많아졌고 내가 구도한 사람도 더욱 많았다. 물론 접수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웃으며 지났고 다음에 구도되기를 바랐다. 이 때 나의 신분은 이미 공개적이 되었고, 사람들은 내가 파룬궁 수련을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2007년부터 직장에서는 경영 항목을 확대하려고 내부공사를 했는데 많은 노동자들이 오게 되었다. 나는 거의 그들을 쫓아다니다시피 하면서 진상을 알려 또 많은 사람이 탈퇴했다. 나는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서 자신을 수련했다. 탈퇴에 성공해도 기뻐하지 않고, 탈퇴하지 않아도 맥이 풀려 하지 않았다. 일하러 온 많은 직원들 중 거의 전부 탈퇴(다만 주를 믿는 한 사람만 제외)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진상을 안 후 대법제자를 아주 존경하였고, 늘 자기 집에 청했다. 나는 바로 이런 환경을 이용하여 진상하기를 바랐으므로 종래로 사절하지 않고 가서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탈퇴를 권했다.

내가 처한 환경에서 사람을 접촉할 때 나는 될수록 진상을 똑똑히 말해 주었기 때문에 효과는 아주 좋았다.

내가 말하는 진상을 듣고 대법을 아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친척을 내 직장에 데리고 와서 내가 말하는 진상을 듣게 했다. 또 나를 그녀 친척집에 데리고 가서 진상을 말하게 하였다. 그녀 친지들만도 나는 십여 명 탈퇴 시켰다.

2008년 초 직장에서는 또 항목을 늘여 60여 명의 직원을 모집했다. 나는 더 시간을 다그쳐 그들과 접촉하면서 그들 전부를 탈퇴시켜 사당의 짐승표기를 지워 주었다.

이번에 모집한 관리인원들은 모두 젊었는데 현대인의 변이된 사상의 교란을 받아 소질이 아주 낮았다. 함께 있을 때면 늘 다투고 싸웠으며 사업 가운데서도 규정에 따라 일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말썽꾸러기렸다. 이런 사람들이 어찌 기업을 관리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내게는 사람마음이 일었고 갈수록 그들을 바로 보지 않게 되었다. 사실 이때엔 이미 속인의 그 곳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나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려놓을 수 없어 동수와 토의했다. 자신은 명예심, 질투심, 허영심이 있었다. 자신이 이만큼 나이 먹고 겪은 일만 해도 너희들이 본 것만도 더 많은데 너희들은 여기에서 아무 짓이나 하는구나, 오늘 초빙해온 직원을 내일이면 해고 시키고 말테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10여 일 일하고는 해고시켰고 또 다른 사람을 모집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들볶아 대었다.

내가 자신의 집착을 찾아내고 마음이 조용해 졌을 때 갑자기 발견했다. 모집해 온 직원에 대해 나는 모두 진상을 알리고 게다가 탈퇴까지 시켰는데 관리인원에게 해고 당하고 그런 다음 다시 다른 사람을 모집했다. 관리원은 나의 진상 알리기를 위해 환경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들은 자신이 나를 도와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아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은 것이다. 사유가 전환되고 법리상으로 문제를 인식하자 일체는 모두 변하였다. 다시 그들을 보니 괴롭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끊임없이 사람을 바꾸고 있지만, 나는 일체 기회를 다잡아 이곳에 온 모든 사람에게 모두 진상을 알리고 탈퇴를 권한다.

나는 또 휴식시간과 여가 시간에 시골에 내려가 동수가 없는 곳에 가서 진상을 말해 주고, 자료를 배포하고 시디를 배포한다. 어떤 사람들이 하는 말도 들었다. “다시 오기만 하면 그녀들을 잡아갈 테다.” 하지만 아직도 그렇게 많은 중생이 구원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또 다시 가게 된다. 정념으로 사악의 일체 배치를 부정하고 될수록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다.

또 한 번은 30년 전에 하향했던 곳에 가서 진상을 알리기로 동수와 약속했다. 동수의 남편이 말했다. “그들 그런 사람들은 모두 무슨 서기요 주임이요 하는 따위의 완고파들이라 탈퇴 하지 않을 것이니 쓸데없이 모험하지 말아요!” 나와 동수는 마땅히 속인의 어떠한 관념이든 내려놓고 사람을 가서 구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 해 사당 서기를 했던 노인은 나를 보자 마치 오래 이별했던 친인을 만난 듯 너무도 기뻐했다. 그는 이 여러 해 동안 늘 나를 걱정했다면서 자신도 내가 박해당한 일을 알고 있었다. 진상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즉시 3퇴 하였고, 또 나를 데리고 많은 사람들한테 가서 진상을 말하게 했다.

나는 또 예전에 익숙히 알고 지내던 친구들 집에 가서 말하였고, 오직 생각해 내기만 하면 나는 모두 가서 그들에게 말해 주었다. 그들도 아주 기뻐하였고 매번 효과가 아주 좋았다.

지금 내 직장 및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한 번은 한 속인이 다른 사람이 찢어버리려는 진상자료를 빼앗아 나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걸 나는 모두 보았어요. 난 그가 찢어 버리지 못하게 했는데 당신에게는 꼭 쓸모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록 모두가 나를 알고 있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원래 일을 하면 사람 구하는 일을 지체할 것이라고 줄곧 여겼는데 지금 그것은 모두 사람의 관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오직 마음을 법에 놓기만 하면 어디든 모두 진상을 알릴 수 있는 훌륭한 환경이다. 사업은 대법 실증에 더욱 유리하다. 물론 , 많은 것을 지불해야 하고 많은 고생을 해야 한다. 나는 일체 시간을 다그쳐 이 위대한 역사적 시각에 진정 사부님 요구대로 하여 끊임없이 사람마음을 닦아 버리면서 더 많은 세인을 구도할 것이다.

(명혜망 제 5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 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 2008년 11눵 7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8/12/9/102878p.html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11/7/1881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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