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장춘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2일】1999년 7월 20일, 대법에 대한 사악의 박해가 시작됐다. 가련한 것은 어머니가 아직 공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나는 남편을 졸라 여러 방면으로 찾은 끝에 대도시 공원에서 수련하는 이름 모를 노인에게 『法輪大法 대원만법』비디오 테이프를 얻었다. 그후 나와 어머니는 진정으로 행복한 대법수련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노수련생의 견지가 있었기에 나와 가족들이 나중에 대법을 널리 알릴 기회가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나는 농민이다. 중국의 농민의 생활은 힘도 들고 고생도 많다. 사회 도덕이 총체적으로 미끄러져 내려감에 따라 많은 가정에서도 육친정(亲情)이 없어졌다. 한 대법제자로서 오직 당신의 마음이 시시각각 사부님과 같이 있기만 하다면 건너지 못할 장애란 없다. 지난 9년의 인생여정은 생명 중의 한순간에 불과하며 이 한순간에 나는 행운스럽게도 신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제자는 위대하신 사존께서 다시 만들어주신 은혜를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오직 내 생명의 전부를 완전히 사부님께 맡기는 것만이 만고의 기연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본문작자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명혜망의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 서면 교류회는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우리 대륙제자들에게 정체 승화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나는 처음 3회까지 잘 쓰지 못할 것이라는 관념의 장애로 기연을 놓쳤고 수련의 노정에서 유감을 남겼다. 제 4회 때는 원고를 쓰고도 각종 원인으로 발표하지 못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유감을 헤아리시고 우리에게 5번째 기연을 주셨다. 유감을 보완할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를 드린다!
명혜 교류에 많이 참가하는 과정에서 내가 인식한 것은 명혜교류 원고는 글을 쓰기만 한다고 하여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실제적인 수련체험과 깨달음의 진실한 기록이며, 대법 제자의 또 다른 수련 기연이고 대법제자의 위덕을 체현하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제자는 시시각각 대법 속의 행복과 영예에 잠겨 있음을 느꼈다. 법을 실증하는 중에 대법제자 생명 중의 매 한 점에서 법의 휘황함과 위대함이 스며 나왔다! 오직 순정한 마음을 바치는 것만이 사부님께서 부여하신 이 만고의 기연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위대한 법회에서 신우주의 위대하신 사부님과 동수들에게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생각하면 무량한 신성함과 영광을 느낀다.
위대하신 사존께서는 『2007년 뉴욕법회설법』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각종 업종, 각종 사회 계층에 다 있으며 각종 업종에서 모두 중생을 구도하고 있고 법을 실증하고 있으며 대법제자의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당신들이 각종 업종 중에서 당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체를 잘한다면 당신은 바로 수련하고 있는 것이다. 세간의 각종 업종은 모두 당신에게 제공한 수련장소이다.”
나는 농민이다. 중국의 농민의 생활은 힘도 들지만 고생도 많다. 사회 도덕이 전반적으로 미끄러져 내려감에 따라 많은 가정에서도 육친정(亲情)이 없어졌다. 어머니는 19살 때 어떤 사람이 인생이 고생스럽고 힘들어도 사존께서 오시어 법을 전하시는 그날을 기다려야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1999년, 59세의 어머니는 간경화 복수(腹水) 말기였다. 복수가 심할 때는 밥은 고사하고 물도 마시기 힘들었다. 돈이 없어 치료도 하지 못하고 촌 위생소에서 친지들의 도움에 수액(링거)을 맞으며 생명을 유지했다. 이때 나는 이미 38세였다. 하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인생과 같은 고달픔을 어쩔 수 없이 반복했다. 3월 말 어느 날, 남편이 우리에게 보서(寶書) 『전법륜』을 가져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사부님의 광주 설법을 빌려왔다.
어머니는 테이프를 보신 후 남편에게 물었다. “강의하시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는가?” 남편은 “리훙쭈 선생님께서 설법하는 강의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울면서 말씀하셨다. “어쩐지 TV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부처님을 봤는데 정말 신이 오셨구나!” 어머니는 금생에 40년을 고생하다가 마침내 대법을 만났다! 어머니의 기연으로 식구들은 대법을 수련하거나 하지 않거나 모두들 대법을 인정했다.
1999년 7월 20일, 대법에 대한 사악의 박해가 발생했다. 가련한 것은 당시 어머니가 아직 5가지 공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는 남편을 졸라서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한 끝에 대도시 어느 공원에서 수련하는 이름 모를 노인에게서 『法輪大法 대원만법』비디오 테이프를 얻을 수 있었다. 그 후로 나와 어머니는 진정으로 행복한 대법 수련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와 우리 가족에게 대법을 널리 알릴 기회를 준 노수련생의 견지에 감사드린다.
어머니는 법을 얻은 지 한 달만에 복수가 사라졌고 병도 없어졌으며 약도 버렸다. 그 후 열마지기 밭을 혼자 가꾸셨다. 어머니는 밭에 일을 나갈 때 손에는 도시락을 들고 어깨에는 작은 카세트를 메고 다니셨다. 어머니는 비록 글을 모르는 문맹이지만 사부님의 설법 강의 테이프를 계속 들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막론하고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나는 소중한 『전법륜』얻은 후 첫달에 7번을 통독했다. 당시 아직 연공을 배우진 않았지만 『전법륜』을 읽고 14일째 되는날 440도나 되는 근시 안경을 벗어버렸다. 매 달마다 2통이나 먹던 구심환(救心丸) 도 버려버렸다. 거친 성격도 선과 관용으로 바꿨다. 그 후, 대법수련은 우리 생명의 전부가 되었다! 속세의 그 어떤 것도 회귀하는 우리의 발걸음에 장애가 될 수 없었다!
2000년 초, 많은 수련생들이 북경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TV에서 매일 대법을 욕하는 요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죄를 저지르게 했는가?! 우리 집만 TV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진 않았다. 최저한도로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대법은 우리를 구하러 왔습니다. 신문이나 TV의 요언은 믿지 마세요. 그것은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와 상의했다. 김매기 작업을 끝내고 여름 방학 때 도보로 외가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시간을 내서 충분한 준비를 했는데 색종이를 많이 사서 다양한 크기로 재단했다. 어머니가 반평생 모은 천조각과 내가 몇 년 전에 장사하다 남은 천을 모두 사용했다. 남편은 저녁마다 나와 함깨 붓으로 표어를 썼고 어머니와 딸은 이것을 재단했다. 처음에는 붓글씨를 쓸 줄 몰라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기적은 신이 창조한 것이다. 신이 제자의 손을 이용해 인간 세상에서 기적을 창조했다! 우리 색종이에 쓴 글은 매 글자마다 아주 예뻤다. 뿐만아니라 나는 또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의 천에 큰 붓을 휘두르기도 했다. 내가 쓴‘真善忍好!’, ‘法轮大法好!’란 글이 천위에서 미소를 띠며 빛을 뿌렸다. 어머니는 “글자들이 살아 있구나”라고 말씀하셨다.
2000년 7월 우리는 처음으로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8살난 딸은 종래로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았다. 딸은 아이스크림 하나가 표어 하나라고 말했다. 우리의 여행가방과 백 딸의 책가방에는 모두 사람을 구하는 진상 자료가 들어있었다. 우리는 붙일 수 있는 것은 붙였고 걸 수 있는 것은 걸었으며 돌릴 수 있는 것은 돌렸다. 물건을 살 때나 물을 찾을 때나 어디에 가든지 우리는 사람들과 몇 마디 말을 했다. 사람들은 어머니가 만년에 대법을 만나 새 생명을 얻어 회귀의 길을 가는 것이 하늘이 준 축복이라고 했다. 마침 고향 산천과 친척들을 잘 볼 수 있었다. 해가 뜰 무렵부터 해질 때까지 100리가 넘는 길이었다. 딸은 나뭇가지를 찾아 현수막을 걸기에 여념이 없었고 내 등에 두 번 업혀 휴식을 취했다. 저녁에 외삼촌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잠을 잤다. 나의 두 발에도 물집이 생겼는데 60세의 어머니는 피곤한 기색이 없으셨다. 우리를 만나러 온 친척들과 저녁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련이 깊어짐에 따라 우리는 사부님께서 법을 바로 잡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하는 일의 더 깊은 함의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도보 여행이 괜찮다고 여겼고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을 이용해 도보로 친척 방문을 했다. 서로 다른 친척을 찾아갔는데 갈 때마다 다른 길로 갔다. 이렇게 하는 과정 중에서 우리는 사부님의 많은 점오와 격려를 받았다. 트럭 기사들은 이유 없이 손을 흔들고 미소를 보냈다. 한낮에 햇빛이 강할 때면 꼭 구름 한 점이 우리 머리 위의 태양을 가려 주었다. 어떤 때는 길을 걸을 때 방향을 분별하지 못했다. 가면서 알았지만 그곳이 현수막을 걸 수 있는 가장 적당한 곳이었다.
위대하신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기회를 주시어 선량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다. 한번은 해 질 무렵 포도농장에 도착해 물을 마시게 되었다. 농장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 얘기를 듣더니 우물에서 펌프를 치웠다가 작은 아들에게 말했다. “다시 펌프를 가져다 물을 길어 주거라!” 또 한 번은 삼륜 자전거를 타고 대파를 팔러 가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잠이 들었는데 영문도 모르고 5리 길을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리하여 마침 우리와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위로하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아버지는 탄식을 하면서 이번 잠이 헛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만약 우리를 만나지 않았다면 대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 우리를 보고 자신의 친척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왔다. 그들은 우리 곁에 와서야 사람을 잘못 보았다고 했다.
우리는 친척집에 며칠간 머무르며 마땅히 만나야 할 친인들을 모두 찾아 다녔다. 봐야할 산수도 모두 보았다.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니고 친척집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틀어놓고 듣게 하였다. 외사촌 오빠와 조카는 우리와 같이 다니기를 즐겼는데 심지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우리가 나가면 오빠는 발 씻을 물을 데워놓고 우리를 기다렸다. 오빠는 꿈에 자신의 친정집 복숭아 나무에서 3개의 가지를 잘랐다고 했다. 그 후 오빠는 간경화로 병원에 입원해 많은 피를 토했으며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의사는 후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튿날 병실에서 일어나 혼자 걸을 수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두 의아해했다. 그 후 우리는 매년, 외사촌 오빠를 찾아갔다. 오빠는 우리를 보자마자 “이번에는 무슨 자료를 가져왔니?”라고 물었다.
또 다른 외사촌 오빠가 있었는데 그는 다른 사람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으면 분개했다. 오빠가 어머니를 보러왔다. 들어오는 순간 그는 사부님의 강의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는 단지 나쁜 사람을 단속하려 한다.’ 그러면 당신은 가서 경찰이나 되라고 나는 말한다.”(『전법륜』)
오빠는 “왜 나를 말하지?”하면서 앉았다. 한 강을 다 들은 후 그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오빠는 진정한 신이 왔다는 말을 듣고 말했다. “나는 신의 말씀을 따르겠다. 쓸데 없는 일에는 상관하지 않고 장래에 나도 대법을 수련하겠다.” 그 후 정말로 사람이 변했고 다시는 다른 사람과 싸운 적이 없다.
내가 법을 얻기 전에 시부모님과 시동생은 집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 부부를 내쫓았다. 당시 딸이 아직 태어나기 전이었다. 우리는 줄곳 안정할 곳 없이 떠돌아 다녔다. 무수한 고난과 원망이 우리를 동반했다. 나는 앞으로는 영원히 시댁 사람들과 왕래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1992년 시아버님이 세상을 뜨셨지만 나는 보러가지 않았다. 2000년에는 시어머님이 중병에 걸렸는데 소나무로 관을 만들어 묻어달라고 했다. 이 일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남편과 두 아주버님을 어렵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우리의 원한은 계속 엉켜 내려가야 하는가? 사부님께서는 제자더러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정각으로 수련하라고 하셨고 나는 정법 중에서 자신의 적을 사랑하지 않으면 원만할 수 없다는것을 안다. 내가 또 계속해서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다면 신이 와도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럼 장래에 누가 그들을 구할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자비로 사람을 대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자비로워야 한다.’
아직 이전 일을 생각하기만 하면 마음이 상하긴 했지만 나는 마음을 다져 먹고 남편과 상의했다. 집을 지으려고 마련한 창틀 재료로 시어머니 관을 만들자고 했다. 남편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우리가 몇 년간 모은 전 재산이야.” 나는 “그렇게 많이 생각할 거 없어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합니다. 형님들을 힘들게 해선 안 됩니다. 우리는 신이 돌보고 있으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에요. 기껏해야 몇 년 더 지난 후에 집을 짓겠지요.”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다른 눈으로 보았으며 그들을 구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관을 짜기 위해 모셔온 목수 아저씨도 “신과 가까운 사람들이라 정말 다르군요. 지금 사회에 이런 자식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7일 동안 일을 했지만 겨우 100원만 받았다. 그 후 우리 집은 도처에 비가 새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의 직장 상사가 우리의 형편을 알고는 돈을 빌려주었으며 직접 차를 운전해 목재를 사서 가져다주었다. 또 회사 동료들을 파견해 집짓는 일을 도와주었다. 이웃들도 서로 나서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도와주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오직 그들에게 신이 왔으니 기연을 잃지 말라는 것만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나는 줄곧 대법음악을 틀어놓았고 모두들 듣게 했으며 그들에게 내가 인식한 수련의 내포를 알려주었다.
한 대법 수련자로서 당신의 마음이 사부님과 같이 있기만 하면 넘지 못할 장애는 없다.
2002년 말로 기억된다. 노교소에서 풀려나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는 먹을 것도 땔감도 없었다. 쌀, 밀가루, 기름은 외상으로 살 수 있었지만 땔나무는 어디에 가서 구한단 말인가? 천지는 눈으로 덮여 있었고 또 어느 집에서 땔감을 파는지도 몰랐다. 연말이 되었지만 살림은 해야 했다. 어떻게 한단 말인가? 마음을 다져먹고 그것을 상관하지 말자. 며칠 땔 수 있으면 며칠을 때자. 일단 사부님의 설법을 모두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우선 이전에 알고 지내던 동수 언니에게 100원을 빌렸다. 사람들은 모두 음력 섣달 초파일에 눈이 녹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이때 며칠간 줄곧 날씨가 따뜻했다. 섣달 23일까지 눈이 다 녹아버렸고 눈속에 묻혀 있던 마른 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일주일동안 풀을 긁어모았다. 족히 한 차 분량의 땔감을 모았다. 하늘에서는 그믐이 지나서야 함박눈이 내렸다. 내가 나무할 때 이웃들은 자기들 것을 가져다 때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실과 득의 관계를 말씀하셨고 대법 수련은 덕을 지켜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이웃들은 “파룬궁을 수련하더니 살림을 하는 것도 착실해졌다”고 했다. 좀 가까이 지내던 이웃 동생은 울면서 말했다. “언니는 생활이 이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매일 웃을 수 있어요?” 나는 알려주었다. “나는 일을 할 때 마음속으로 법을 외우는데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만 해도 위로가 된다!” 그러자 동생은 장래에 기회가 닿으면 자신도 법을 배워보겠다고 말했다.
설을 쇠기 위해 장을 보는 날, 동수에게 빌린 100원으로 살 것을 전부 샀다. 닭, 오리, 물고기를 전부 산 후 딸에게 계란을 몇 개 사게 했고 이제 조미료만 사면 됐다. 손에는 아직 20원이 남았다. 나는 갑자기 설을 쇠는데 중요한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는 누구도 내게 감히 자료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친인들에게 무언가 표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옛날 방법을 쓰자. 색종이를 사서 재단하자. 하지만 돈이 없지 않은가! 많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 색종이를 사고 보자. 나는 작은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주인은 문옆에서 트럼프를 치고 있었다. 내가 색종이를 사러왔다고 하자 주인은 시간이 없으니 혼자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색종이를 보고 손을 뗄 수 없었다. 매 색깔마다 10장씩 모두 50장을 샀다. 가게 주인은 물건을 놓아두기만 해서도 안 되고 당신이 가져가면 쓸데가 있을 테니 돈을 안 받을 수는 업고 5원만 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종이도 사고 계란도 사고 조미료까지 산 후에도 2원이 남았다. 마침 설날 딸에게 세뱃돈이 되었다. 정월 초하루 동수 언니가 딸에게 사과 다섯 개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기뻐서 “마침 사부님께 올릴 과일이 없었는데 잘됐다”고 말했다.
어느 덧 새해 봄이 되었다. 내가 집에 담을 쌓고 있는데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모두 와서 보았다. 나는 카세트를 밖에 갖다놓고 사부님 설법을 틀어 놓았다. 사람들이 오고 가며 듣는데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나는 어머니처럼 높은 볼륨으로 틀어놓았다. 자신이 일을 하면서 법을 들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는 더욱 많은 사람이 와서 불법의 복음을 들었으면 했다. (안전이 중요하니 무조건 따라하지 말 것) 한번은 밭에서 집안에 들어가 테이프를 뒤집으려 하는데 마침 이웃 아주머니가 손자를 업고 우리 마당에서 설법을 듣고 있었다. 또 한 번은 다른 이웃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견지하는 것을 보니 진정한 것을 얻은 것 같다. 우리집 영감이 그러는데 당신 마당에서 선악(仙乐)이 들리는데 들을수록 편안하다고 한다.” 나는 그들에게 그것이 대법 음악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해에 나는 PVC공장에서 일을 했다. 매일 3교대로 매번 2명이 각자 기계를 관리했다. 한번은 야근인데 일이 있어서 5분 늦게 도착했다. 이튿날에는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가 30분 늦게 나와 교대를 했다. 나는 이것은 전날 내가 시간을 지키지 않아서 조성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료는 한 시간만 일하고 열 몇 살짜리 남자아이에게 부탁하고는 자기는 잠을 자러 갔다. 매번 12시 발정념 시간이 되면 동료가 내 기계를 지켜주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 일을 하는 남자 아이는 잠에 못 이겨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기계 두 대를 보면서 파이프도 감고 원료도 넣어야 했다. 쉴 틈 없이 일을 하고 6시 교대 시간이 될 때는 땀투성이가 되었고 목소리마저 변했다. 교대하던 동료가 원인을 물어 보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다른 동료들도 찾아와 불평을 토했다.
7시에 동수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만나자마자 내 목이 쉰 원인을 물어 보았다. 나는 또 사실대로 말했다. 동수는 한마디로 “아직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했다. 돌아와서 나는 줄곧 생각했다. ‘대체 어느 곳이 제위치에 도달하지 못했을까?’ 이때 갑자기 마음속이 밝아졌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누구나 잘 대해주라고 하셨고 누구나 똑같이 대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했는가? 예를 들어 늦게 나온 사람이 내 동생이라면 그가 어떻게 했든지 남들에게 말했겠는가? 사장이 그를 해고할 것을 근심하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이 그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질까 걱정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원인은 그가 내 동생이 아니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말한 것이 아닌가. 이 얼마나 큰 사심인가?! 사부님을 생각하니 나는 부끄러워 울었다.
다시 저녁에 교대할 때 여러 사람들이 아침에 있었던 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열정적으로 나를 맞이했다. 나와 같이 일하는 파트너가 복이 있어 흉금이 넓은 사람과 함께 일한다며 시샘했다. 나는 또 한번 눈물을 흘렸다. 나는 부끄러워서 그들에게 말했다. “칭찬하지 마세요, 만약 그 사람이 내 친동생이었다면 당신들에게 말했겠습니까? 사부님께서는 누구나 다 잘 대해주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잘하지 못해서 사부님께 괜한 걱정만 끼쳤습니다!”
모두들 내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더 이상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 한참 후 여러 사람들이 싫어하고 세상을 업신여기며 공경하지 않는 한 남자가 큰소리로 말했다. “파룬궁 만세! 대법 사부님 만세! 전 지구인들이 당신 사부님의 말씀에 따른다면 무슨 비행기나 원자폭탄이 필요하겠는가? 정녕코 전쟁이 없을 것이다. 장래에 우리 모두 파룬궁을 수련합시다!” 그 후 공장 책임자부터 전 직원들이 모두 시간만 나면 찾아와 자신들이 들은 파룬궁 소식을 전해 주었다. 듣자하니 한번은 파출소에서 사장님을 찾아와 파룬궁 일을 조사하러 온 적이 있었다. 이때 사장님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공장은 당신들 관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후 파출소에서는 다시 나타나지 못했다.
물론 나 역시 심성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며칠 동안 퇴근 후 집에 가니 남편이 계란을 먹고 있었다. ‘남편이 계란을 다 먹어버리면 딸은 무었을 먹는단 말인가?’ 나는 계란 바구니를 감춰버렸다. 이튿날 출근 후 공장에서 물건을 일어버렸다면서 회의를 했다. 회의를 하는데 사장님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 회의를 마치고 불편함을 느껴 사장님에게 왜 나를 찾지 않으셨는지 물어보았다. 사장님은 “그녀는 수련하는 사람이니 탐욕심이 없다. 그러니 물건을 훔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웃고 말았다. 집에 와서 딸에게 이 일을 말하자 딸은 웃으면서 말했다. “계란이야 누가 먹든지 먹은 것이 아닌가요. 아직도 고만한 정을 버리지 않으셨어요?” 생각해보니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나는 계란 바구니를 원위치에 갖다 놓았다. 다음날 출근하니 공장에서 잃어버렸던 물건을 찾았다고 했다.
그 후부터 나는 진정으로 수련인의 심태가 주위 환경을 제약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진정한 수련자라면 반드시 심성을 지켜야 하며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 잡고 엄숙하게 대법의 요구 표준에 따라 자신의 수련노정을 대해야 한다. 또 매 시각마다 자신의 언행을 검토해야 한다. 나는 매년 추수를 도와주러 가는데 어떤 일을 시켜도 따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도 모두 한다. 주인집에 힘든 일이 있으면 나를 찾는다. 주인이 연세가 있는 분들이면 나는 묵묵히 바닥도 쓸어주고 밥도 지어주며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휴식하게 한다. 모두 자기 집에서 일하는 것처럼 열심히 한다. 때문에 내가 갔던 마을에서는 다시 나를 찾는데 또 수련의 일을 묻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사부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대법수련자로서 진정으로 수련하려면 반드시 진정으로 믿어야 한다! 절대 에누리해서는 안 된다! 사람과 접촉할 때 의심이 많으면 절대 잘 지낼 수 없다. 더욱이 대법을 수련하려고 하지 않는가? 대법에 대한 반석같이 확고한 바른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수련해 나가겠는가?!
사존께서 탈단 성명을 발표하신 이틀 후, 우리 집에서는 몇십 명이 단번에 사당과 일체 부속 조직을 탈퇴했다. 어머니는 “사부님의 정법이 인간 세상에 다가오고 있다. 누가 마를 제거하는데(탈당) 동참한다면 그 사람은 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우리 식구들은 대법 수련을 하든 하지 않든지 막론하고 문만 나서면 9평을 지니고 다닌다. 이웃이나 친척들은 본인들이 와서 직접 가져가기도 한다.
인생은 온갖 풍파가 있기 마련이고 수련인의 여정은 더욱이 도처에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다. 특히 중국 대륙 이 사악의 심장 속에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혼탁한 흐름 중에서 얼마나 많은 마난과 격투가 있었는가? 이 당문화의 구덩이 속에서 대법제자들은 각종 환경 중에서 자신의 순수함과 선량함으로 파룬따파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실증하고 있다!
사실 진정한 수련인이라면 가장 고생스러울 때는 바로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법에서 승화하지 못할 때이며, 가장 즐거울 때는 좋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바로 잡을 때이거나 혹은 법 속에서 관념이 승화할 때이다. 심성을 엄격히 지키고 사부님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우리가 사람 중에서 하는 생활의 전 과정이 모두 수련의 기회이다. 생활 중에서 어떤 환경이던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안배해주신 수련장소이다. 옛말에 훌륭한 스승 밑에 뛰어난 제자가 나온다고 했다. 위대한 법이 위대한 생명을 육성시키고 있다! 대법 속에서 목욕하는 생명은 영원히 행복하고 영예로울 것이다!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는 자그마한 것도 모두 위대하다!
지난 9년간의 인생 여정은 생명 중의 한순간에 불과하다. 나는 이 한순간에 다행스럽게도 신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제자는 사부님께서 다시 창조해주신 은혜을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제 생명의 전부를 완전히 사부님께 맡기는 것만이 만고의 기연을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원고는 작년부터 쓰기 시작해서 올해에 완성했다. 수련 중에서 정진하거나 즐거운 적도 있었고 느슨하거나 실수할 때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믿고 진정으로 수련하는 것이다. 지난 9년간의 조사정법에서 나 역시 넘어지면 일어나면서 지나왔다. 그러나 이번 문장에서 나는 자신이 실수한 부분은 쓰지 않았다. 정면으로 법을 실증하는 데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수련심득교류기회를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위대한 기연에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 번 다시 창조해주신 사부님의 깊은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 제게 사심 없이 도움을 주신 동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명혜망 제5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심득 교류회 원고)
문장완성 : 2008년 9월 25일
문장발표 : 2008년 11월 2일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8/11/2/1881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