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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제자, 법을 실증하며 성숙해 지다

글/ 연변 대법제자 월상연

[명혜망 2008년 11월 4일] 나는 연변 대법제자이다. 1995년 8월 24일 대법을 얻었다. 2003년 가을부터 자료점을 건립하기 시작했지만, 이전에는 동수에게 대량의 자료를 가져다 배포하고 붙이기도 하였다. 어느 날 자료를 가지러 갔더니 자료제작을 하던 동수들 모두 박해를 받아 자료가 없다며 아직 컴퓨터 한 대와 기계 한 대가 남아있으니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 당시 나는 컴퓨터를 전혀 다룰 줄 몰랐을 뿐 아니라 또한 “문화대혁명”시기에 초등학생이어서 컴퓨터에 관련된 아무 지식도 없는데 어찌 감히 자료점을 열 생각이나 하겠는가? 그런데 집에 돌아와 동생들과 토의하자 여동생이 말했다. “가져와요, 우리 가서 가져 옵시다”라고 해 우리한테 컴퓨터와 기계가 오게 되었지만 사용할 줄 모르는데 누구에게 배우겠는가? 동수는 나에게 기술동수를 보내 배워주게 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들에게 교란이 생겨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속인을 찾아 며칠 저녁동안 배웠고 3일째 저녁에 병음을 다 배웠다. 이렇게 우리의 자료점은 세워졌다.

ㅡㅡ본문작자

우선, 제 5회 대륙 대법제자수련 심득 교류회의 기회를 빌어 위대하신 사부님께 문안을 드립니다 !
전 세계 동수님들에게 문안을 드립니다!
아래에는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정법수련을 했고, 어떻게 사부님의 보살핌 속에서 자신을 바르게 수련하였으며, 어떻게 정법시기의 진정한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는가를 사부님과 동수들에게 회보하려 합니다.

-법을 얻다-

나는 연변 대법제자이며 1995년 8월 23일 인연이 있어 대법을 얻게 되었다. 법을 얻기 전에 중병을 앓고 있었다. 가정이 파탄되어 심한 스트레스로 심장병이 강하게 재발하는 바람에 밥도 지을 수 없었고, 빨래도 할 수 없었으며, 계단도 내려갈 수 없어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유명한 의사와 병원 여러 곳에서 치료해도 낫지 않았고, 수많은 좋은 사람들이 민간요법을 알려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집도 없고 돈도 없는 고통스런 시각, 육체적, 정신적으로 이중고를 겪다보니 생명이 덧없게 느껴져 나는 수면제를 사 왔다. 그 때 이웃집 아주머니가 침대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파룬궁을 해봐, 이것 봐 ,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 후 배속에 있던 딴딴한 덩어리가 없어지지 않았나, 자네두 해 보게나”라고 해서 나는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어찌 아침 4시에 일어나 연공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몇 번인가 권하고, 또 어머니와 여 동생도 함께 권유하기에 돈도 없는데 약도 주사도 쓰지 않는다는 데 이끌려서 한 번 시험 삼아 해보자는 생각으로 연공장에 나갔다. 처음에 연공장에 갔을 때는 남들이 벌써 절반을 다 했을 때였다. 뜻밖에도 열흘가량 지나자 심장이 많이 편해진 감이 들었다. 그렇게 막히거나 답답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수련을 시작해 지금까지 십 몇 년 동안 줄곧 약 한 알, 주사 한 대 쓰지 않았지만 정신은 아주 충실하다. 이 일체는 모두 대법에서 온 것이다.

개인 수련을 하던 몇 년 동안에 깨달은 것과, 깨닫지 못한 게 많았다. 수많은 수련 이야기가 있었고, 넘어지고 부딪치면서 오늘까지 걸어 왔다. 난관을 넘을 때 아주 고생스러웠지만 그 아름다운 미래를 보면 또 위안을 느끼곤 하였다. 우리 모두 한 단락 수련 역사를 우리들의 수련 역사책에 길이 빛나도록 하자.

자료점을 꾸리다

2003년 가을부터 자료점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자료를 배포하기도 하고 붙이기도 한 것은 동수한테 가서 대량의 자료를 가져 왔던 것이었다. 한 번은 자료를 가지러 가니 동수가 자료제작을 하던 동수가 모두 박해 받게 되어 자료가 없다고 하면서, 아직 컴퓨터 한 대와 기계 한 대가 있으니 필요하다면 가져가라고 했다. 당시 나는 컴퓨터를 전혀 다룰 줄 몰랐을 뿐만 아니라 또한 “문화대혁명”시기 초등생이었기에 아무 지식도 없는데 어찌 감히 가져올 생각이나 하겠는가? 집에 돌아와서 동생들에게 이야길 하니까 동수인 여동생이 “가져와요, 우리 가서 가져 옵시다”라고 했다. 그래서 기계는 우리에게 오게 되었지만 사용할 줄 모르는데 누구한테서 배우겠는가? 동수는 나에게 기술을 아는 사람을 보내 배우게 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교란이 생겨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술을 아는 속인을 찾아 며칠 저녁을 배웠고 사흘에 걸쳐 병음을 다 배워 냈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자료점은 세워졌다.

자료점을 세운 후 많은 구체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당시에 인터넷에 접한 동수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자료를 보면서 일부를 복사해 내고 편집하기도 하였다. 문화가 낮기 때문에 편집해낸 자료에 틀린 글자가 많았다. 동수에게 보내 주었더니 되돌아 와 손실도 많았다. 인터넷에 접속하려는 마음이 절박하다 보니 나를 가르쳤던 속인에게 “猫”(고양이)이를 사다가 접속하게 하였다. 그는 우리의 대법사이트에 오를 줄 몰랐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좀 두려웠다. 어느 날 우리는 모진 품을 들여서야 겨우 명혜망을 찾았고, 사부님께서 2003년 애틀랜다 법회에서 설법하실 때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당시 나는 기쁜 나머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이 분이 바로 나의 사부님입니다. 이 분이 바로 나의 사부님입니다.” 그가 사부님 사진을 다운로드 한 다음 더는 명혜망을 찾을 수 없었다. 후에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고무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 100회 《명혜주간》이 발표될 때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명혜망에 접속할 줄 아는 동수를 찾았다. 우리는 몹시 기뻤다. 제일 처음으로 6부의 《명혜주간》을 제작해 내고는 생각 했다. 우리가 마침내 주간을 만들 수 있게 되었구나! 이 일체는 모두 대법에서 온 것이고 사부님의 보살핌이다.

프린트 하는 과정에도 많은 곤란에 봉착했다. 한 번은 인쇄기에 잉크를 갈아 넣을 줄 아는 사람이 얼마 없었고,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으므로 상가에 가서 돈을 주고 잉크를 넣을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을 한 후 우리가 나이가 많아 상가에서 의심할 것 같았고, 사복특무가 미행할 것 같아 겁이 났다. 그 때는 정념이 강하지 못했고 무엇이 정념인지도 몰랐다. 사람마음이 중하고, 안전에 주의하는 외에는 그저 조심하는 것 밖에 몰랐다. 그러다보니 죄다 사람의 방법을 사용했다. 후에 돈도 많이 들고 안전하지 않으니 우리 스스로 하자고 하였다. 한 번은 나와 여 동생이 잉크를 갈아 넣으려고 나사를 풀고 꺼낼 때 주의하지 않아 용수철이 튕겨 나왔다. 허지만 이 용수철을 들고 어디에 꽂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디에 꽂아도 맞지 않았다. 나는 조급한 마음에 힘도 들어 온 몸에 땀이 배어도 꽂을 수 없어서 나중에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남동생과 여 동생은 내가 우는 것을 보자 “이 다음 숙련되면 괜찮을 걸요, 이후엔 다 좋아질 건데요”라며 위안했다.

몇 년 사이에 고생도 적지 않게 하였고, 넘어진 적도 적지 않았으며, 박해도 받았다. 시련 속에서 기술도 많이 숙련 되었고, 현재까지 이미 8,9개 자료점을 세웠고, 간단한 기계수리는 모두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모두가 대법이 나에게 열어준 지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금후 정법노정에서 마땅히 수련의 길을 더 잘 걸어서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나게 하고 더 아름답게 피어나게 해야 한다.

새롭게 인식

법 공부로 마음을 닦는 도리는 모두 알고 있지만 흔히 구체 문제에 봉착하면 완전히 법에 서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다. 2004년 5월 13일, 우리 지역에 천 여 폭의 “세계 대법일”현수막이 걸려 사악을 진감 시켰는데 이는 틀리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안배한 시간이 너무 구체적이었다. 사악이 이 날을 “민감일”로 정하고 공안국, 파출소가 전부 출동하여 숨어 있다가 대법제자를 체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법공부가 깊지 못하고 정념이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집에서 5천 위안을 들여서야 57일 만에 석방돼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당시 법리에서 진정하게 사악이 우리를 박해하는 근본 원인을 똑똑히 알지 못했고, 구세력에 대해 전면 부정하지 못했으며, 돌아온 후에도 자신의 안에서 잘 찾아보지 않았다. 얼마 안 되어 자료제작에 일손이 딸리게 되자 또 급급히 일하기 시작 하였다. 그 기간에 일 할 때 법공부와 마음 수련을 연계해 보지 못하고 단지 일하기 위해 일을 하였다. 자신을 잘 조정하지 않은 채 또 컴퓨터 한 대와 두 대의 프린터를 더 갖추어 놓았다. 프린트 할 때 늘 순조롭지 못하고 종이가 끼이는 등 결함이 많았다. 당시에는 법공부가 부족하고 씬씽이 제고되지 않으면 마가 교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고, 후에야 그것은 법공부가 결핍했기 때문에, 반드시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 때는 오성도 차하여 기계는 씬씽을 따라 간다는 것을 모르고 줄곧 기술적인 원인을 찾았다. 지금에 와서야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나야 한다는 더 깊은 층의 내포를 알게 되었다.

사존께서는 법에서 말씀 하셨다. “우리 사람은 수련과정 중에, 한 연공(煉功)하는 사람으로서 버려야 할 마음이 너무나도 많은데, 과시심∙질투심∙쟁투심∙환희심, 많고 많은 각종 집착심 그것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실(失)은 하나의 광의(廣義)적인 것으로서, 전반 수련과정 중에 속인의 그런 모든 집착, 각종 욕망을 마땅히 잃어야 한다.”(《전법륜》)

법 공부도 잘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하기 위해 일을 하면서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아주 나쁜 마음, 이를테면 과시심, 질투심, 쟁투심, 일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제때에 안을 향해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한 무더기나 되는 집착이 쌓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2006년 또 한 차례 박해를 당하게 되었다. 이번 박해는 손해가 침중하여 기계, 소모재료만도 현금으로 치면 십 몇 만 위안에 달하였다. 이번에 나에게 준 타격은 실로 커서 그야말로 수련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부님을 뵐 면목이 없었고 동수를 대할 면목이 없었다. 간수소에 들어가 며칠 동안이나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속으로 이제 어떻게 더 수련한단 말인가, 잘하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지 않는가라고 생각하였다. 넘어져 봐야 아픔을 느낄 수 있듯이 이 무거운 망치는 진정으로 나를 때려서 깨어나게 하였다.

간수소에 불법 수감 된 후, 나는 동수와 함께 같이 했던 날들을 심심히 돌이켜 보았다. 겉으로는 여러 사람과 아주 화목한 것 같았으나 실은 간격이 있었고, 마음 깊은 곳에는 많고 많은 좋지 못한 마음, 일하는 마음, 과시심, 질투심, 쟁투심 등등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도 씬씽 수련을 안전에 주의하는 것처럼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중한 손실을 빚어낸 것이다. 침통한 교훈은 참으로 명기해야 할 바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강대한 정념이 없다면 불법 판결에 직면할 것이었다. 마귀굴에서 날마다 법공부하고 외우고 베껴 쓰면서 자신의 정념을 강화 하였다. 당시에도 정념으로 뛰쳐 나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큰 정념이 없었고 전혀 할 수도 없었다.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뛰쳐나갈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소식이 전해 왔다. 모모가 단식 정념으로 뛰쳐나갔고 또 한 동수는 지금 단식 중에 있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후 정념을 강화하고 발정념으로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고, 발정념으로 신변의 교란을 청리하고는, 방법을 대어 수감된 기타 동수들에게 통지 하였다. 나는 쪽지를 넣은 오리 알을 방법을 대어 관리원에게 주어 보내도록 하였다. 동수는 받은 후 즉시 단식하여 12일 후에 석방 되었다 .

나도 단식으로 10일 후 석방되어 집에 돌아 왔다. 집에 온 나는 후회하며 대성통곡 하였다. 참으로 메울 수 없는 느낌이었고, 수련을 잘하지 못해 일체를 대할 면목이 없었다. 나는 사부님 법상 앞에 꿇어 앉아 사부님께 속죄를 빌었다. 이런 부족이 있을 때 시시각각으로 나를 고무격려 해 주시어 나더러 용맹정진을 잊지 말게 해 달라고. 또한 집의 동수도 우리를 위해 힘을 강화하여 릴레이 발정념으로 우리를 가지해 주어 몹시 감사하다. 이번의 침통한 교훈으로 나는 잘 수련하여 이 일체 손실을 메우려는 결심을 했다. 나는 속으로 한 가지 염원을 품었다. 이번에 넘어진 것을 헛되게 넘어진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부터 시각마다 법 공부를 잘하고, 시각마다 엄격히 자신을 요구한다. 일에 부닥치면 안을 향해 찾고, 일하는 가운데 절대로 법을 떠나지 않는다. 이번의 침통한 교훈을 통해,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세 가지 일을 하라고 하신데 대해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당전 대법제자 수련 상태에 완전히 부합되려면 내가 생각하건대 그것은 곧, 쩐, 싼, 런의 법리를 명기하고 대법 원칙인 안을 향해 닦고, 안을 향해 찾는 것을 명기하는 것이다. 비평을 감히 받아들이고, 결함이 있고 착오가 있어도 덮어 감추지 않으며 감히 일체를 직면하여, 정정당당하고 착실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어야 한다.

대법 책을 보호

사부님께서 《북미 순회 설법》을 발표했을 때 일인데, 경찰이 남동생과 여동생을 찾아와 나와 담화하겠다고 했다. 마침 남동생이 금방 술을 마신 뒤라 경찰에게 욕을 퍼 부었다. 욕을 들은 경찰이 가만히 있을 리 있겠는가? 이 점을 생각한 우리는 그 날 저녁으로 대법서적과 대법 진상 자료를 다른 곳으로 이전 시켰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7.8명 경찰이 왔는데 마침 나와 여동생은 병원으로 일보러 가고 없었다. 남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낮은 소리로 경찰이 또 왔다고 말하였다.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으니 악경들은 110을 불러다 문을 열고 들어 와서 남동생에게 여동생이 연공하는 것을 물었다. 그리고는 이곳저곳 뒤지더니 테이프 하나를 찾아냈다. 창고 열쇠를 찾아내고는 창고도 뒤져 봤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자 남동생의 물건을 뒤집어 보고 남동생을 파출소에 데려 갔다. 12시가 넘어서야 여동생 집에 돌아온 남동생은 대법책을 어디에 감추었는지 물었다. 위층의 친척집에 감추었다고 말하자 동생이 급히 말하였다. “난 아마 그 집을 폭로한 것 같아” 이 바람에 여동생과 매부가 급해져서 자루를 갖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 와 말하였다. “물건 둔 곳을 오빠가 모르고 그만 말한 것 같아요 어떡해요? 얼른 이전 시켜야죠.” 듣고 나서 나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침착하게 말 하였다.” 너희들 먼저 돌아가라,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그 때 나는 즉시 발정념을 하여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다. 발정념할 때 갑자기 교외에 살고 있는 한 신수련생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새로 법을 얻은 이 신수련생 집에 갔는데 큰 소리로 부르지도 못하고 문도 크게 두드릴 수 없었다. 그의 집에는 야채를 심은 큰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나는 비닐에 구멍을 내고 들어갔다. 안에 있는 문 역시 비닐로 되었기에 뚫고 들어간 후 문 뒤에서 조용히 그들을 불렀다. 나는 그들이 일시 접수하지 못할 까봐 천천히 말을 하였다. 그랬더니 그들은 그제서야 접수하였다. 당시 나는 얼마나 기뻤던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는데 마음 속으로 제자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사부님께서 꼭 도와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삼륜차를 몰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 책을 실었다. 4층에 두었던 대법책이 아주 많아 몽땅 내려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고무바닥 신을 신고 가벼운 솜씨로 모든 책과 자료를 모두 한 차에 가득 실었다. 다 실은 후 낡은 탄자로 덮고는 끌고 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이미 3시가 넘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8달 동안 보관해 두다가 겨울에는 또 방법을 대어 농촌으로 보냈다. 이렇게 우리는 대법책을 보호 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얼마나 어렵던 간에 오직 우리가 성심으로 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모두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본다.

진상자료 인쇄 “설비”를 보호

그것은 2005년의 어느 하루였다. 그날도 우리가 자료를 넘겨주는 날이었다. 나는 한 꾸러미 자료를 넘겨주기 위해 동수의 집으로 가져가고 있는데 동수 몇 명이 길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모모 동수가 어제 사악에게 납치됐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자료를 든 채 집으로 얼른 돌아왔다. 돌아와 생각하니 납치된 동수 집에 다른 동수들이 며칠 전에 갖다 둔 낡은 컴퓨터와 아직 뜯지 않은 새 프린터 한 대가 있다는 게 생각났다. 사악이 수색해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시 사상 투쟁이 좀 있었지만 후에 또 생각하니 이는 대법의 자원이므로 사악의 손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되며, 우리는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가는 길에 나는 줄곧 발정념을 하였으므로 두려운 감을 느끼지 않았다. 계단을 오를 때 정신을 조정하고 생각 하였다.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다, 내가 하는 일체는 모두 가장 바른 일이므로 사악이 나를 박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정정당당하게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 들어서 보니 바깥 방, 안방 바닥 모두 흙이 가득 하였고, 바닥에 새 구두 한 쌍이 있었는데 가지런히 놓인 게 아니라 여기저기에 한 짝씩 놓여 있었다. 나는 문 어구에 서서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 하였다. 아마 집안에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있다면 이 구두는 가지런히 놓였을 텐데. 그래서 나는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 온돌 위는 죄다 흙이 덮여 있었다. (조선족 온돌방)이런 장면을 본 나는 머리칼이 곤두섰다. 그 기계는 본래 안방 침대위에 놓았었는데 안방에 들어가 보니 침대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즉시 유감을 느끼면서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문밖에 나가니 가슴이 쿵쿵 뛰었고 문을 잠그는 두 손이 와들와들 떨렸다. 그래도 속으로는 자꾸만 자신을 위안 하였다. 무서워 말아, 무서워 말아. 나는 몸을 돌려 바깥 베란다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뒤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행동이 좀 자유로워 졌다. 실은 속으로 매우 두려워했고, 또한 매우 유감스러웠다. 이 일을 통해 진정으로 자신의 부족을 보았고, 자신에게 두려운 마음이 엄중하다는 것을 발견 하였다. 돌발적인 사건하에서야만 자신의 두려운 마음, 집착심이 아직도 얼마나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금후의 수련 속에서 반드시 그것을 닦아 버릴 것이다. 당시 감히 자료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전거를 타고 몇 바퀴 돌다가 또 동수 집에 갔다가 9시 넘어서야 돌아갔다. 며칠 후에 겨우 마음이 온정 되었다.

가상

2004년 “5.13” 세계 파룬따파일을 맞아 지난 해 납치된 후 두려운 마음이 뚜렷이 가중 되었다. 그것은 우리를 납치하기 위해 사악은 앞당겨 숨어서 기다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수막을 걸 때 사악은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자동차 큰 불을 켰던 것이다. 나는 당시 너무나 긴장해서 깜짝 놀랐다. 이 놀램이 많은 두려운 물질을 가중시켰고 이어서 뒤따른 것은 바로 가상이었다. 한 번은 복사지를 살 때인데 바로 차에다 싣고 있는데 사복 경찰 같은 사람이 공문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서 문어귀에 서서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내가 차에 싣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당시 마음이 곧 긴장해 지면서 주간에서 본 소모재료를 살 때 미행당했다는 많은 일을 생각 하게 되었다. 그래 나도 미행당한단 말인가? 나는 기사더러 고의적으로 몇 바퀴 돌게 하였다. 차가 달린지 얼마 안 되어 택시 백미러를 통해 뒤를 보았더니 뒤에는 흰색 공안차 한 대가 있었다. 나는 몹시 긴장하여 눈을 감고 발정념을 하면서 입으로 사부님의 정법구결을 낮은 소리로 외웠다. 외우고외우고 몇 번이나 외웠는지 알 수 없는데 기사가 듣고 말하였다. 당신 중얼중얼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는 멍해 있다가 다시 뒤를 보니 그 차가 아직도 있었다. 그때에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 했다. 내가 하는 일은 가장 바른 일이니 어떠한 것들도 나를 박해하지 못하고, 나를 교란하지 못한다. 나는 정념을 강화하고 사부님 한 단락 법을 생각하였다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 놈은 와서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 “(《홍음2》) 나는머리를 가로 저으며 교란 받지 말라, 그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전면 부정해 버려, 하고 생각하였다. 굽이를 돌 때 나는 무식 중 또 뒤를 보았더니 그것은 나를 따라 굽이를 도는 것이 아니라 곧추 서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제야 가슴에 얹혔던 돌이 떨어진 것 같았다. 돌이켜 안을 향해 찾아보면 바로 두려운 마음이 빚어낸 가상으로서 나에게 두려운 마음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한 번은 내가 경찰 아파트에서 일할 때, 가져온 자료를 먼저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배포한 후 다시 동수에게 주려 하였다. 이번에 나는 한 꾸러미나 되는 숫한 자료를 갖고 왔을 때는 이미 10시가 다 되었다. 막 대문 안에 들어서려 할 때 철갑모를 쓴 경찰 3,4명이 밖에 서 있었다. 당시 뭘 하고 있는지 똑똑히 보지도 않고 놀라기만 하였다. 어쩐다? 이미 문어귀까지 왔는데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세히 볼 엄두도 못 내고 곧장 가로질러 지나갔다. 지나간 후 차에서 내려 되돌아 자세히 보니 보초 교대를 하고 있었다, 그제야 겨우 마음이 가라앉았다. 일이 지난 후 속으로 이건 자신에게 아직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게 아닌가, 발견했으니 꼭 그것을 버리고야 말겠다.

한 번은 날이 아직 밝지 않았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자료를 동수 집에 가져 가려고 공원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사복경찰처럼 보이는 사람이 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서 손을 저으며 큰 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가슴이 덜컥 하였다. 그가 왜 날 부를까, 나는 알아보았을까? 혹은 내가 가진 물건을 알고 있는 것일까? 달리 생각하니 그럴 리 만무했다, 그가 어떻게 내가 자료를 지녔다는 걸 알 수 있겠는가, 다시 머리 돌려 봤을 때는 그는 택시에 앉고 있었다. 정말 바보야, 또 가상에 놀라지 않았는가, 나는 즉각 이는 또 하나의 가상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가상이 나타나면 물질이 존재한다. 이 몇 번의 가상의 연화를 통해 분명히 알게 된 것은 반드시 근본상으로부터 인식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해 버려야만 금후의 정법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연 있는 사람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나는 각종 장소에서 각종 류의 사람을 당면하여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큰일을 하였다. 현재 정법은 이미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려주는 시기에로 들어섰다. 나는 비록 많이 말하지는 못했어도 그래도 줄곧 하고 있었다. 몇 번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난 것만 말해 보려 한다.

하루는 자료 전해 주려고 저녁에 집을 나섰다. 그 날은 몹시 추워 다운재킷을 입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리고 있는데 누가 “언니! 언니!” 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돌아다보니 그녀는 사람을 잘못 알아 봤으니 미안하다고하는 것이었다. 나는 가려고 하다 즉시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며 유쾌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바로 동생의 언니가 아닌가? 그는 좀 계면쩍어 하였다. 나는 기지를 발휘하여 말하였다. “동생이 나를 언니라고 부른 게 곧 인연이예요, 내가 좋은 일 한 가지 동생한테 알려 줄게요.”나는 진상을 그녀에게 알려 주었고 몇 마디 말에 그녀는 탈퇴하였으며 나중에 가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재미있어요, 고마워요”

한 번은 자전거 쇠사슬이 고장 나 수리한 후 돈을 치르면서 그에게 진상을 하려고 생각 하였다. 방안에 아직 세 사람이 있으므로 그가 일시 접수하지 못할 것 같아 나는 나와 버렸다. 나와서 차를 타려고 열쇠를 자전거에 꽂았는데 단번에 부러지는 것이었다. 웬 일일까? 나는 즉각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나더러 돌아가 그들을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어떻게 하지? 열쇠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 집안에 다시 들어갔을 때는 그 세 사람은 이미 가 버렸다. 나는 즉시 온화한 말씨로 그와 말을 건넸다. 당신 참 복이 있어요, 언제 입대, 입단을 했는지 물었다. 그리고는 사천 대 지진 때 무릇 3퇴 한 사람은 모두 살아났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그는 솔깃하게 듣더니 몇 마디 말에 곧 탈퇴 하였다. 나는 또 그에게 탈당 소책자를 주었다.

또 한 번은 고추가루 살 때인데 노점상에게 진상을 말해 주었다. 그는 남방에서 왔으며 탈당에 대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도 입당을 했었고 다만 자기를 탈당시켜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따름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웃었다, 당신 정말 복 있어요, 당신이 탈당하면 장래 구원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아주 멀리 가서야 자전거의 줄 달린 열쇠가 없어진 것을 발견 하였다. 가방 안을 죄다 뒤져봐도 없기에 노점으로 되돌아와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노점 가까이에서 보니 그 노점상이 10원짜리 진상 돈을 들고 읽고 있었다. “탈당 좋네, 탈당 좋네, 3퇴하면 더욱 생명 지킬 수 있네”그는 내가 오는 것을 보더니 바삐 돈을 집어 넣는 것이었다. 나는 자전거 키를 보지 못했는지 물었다. 그는 찾아보더니 없다고 하였다. 그때 노점 안에서 한 사람이 총총히 걸어 나오더니 내 앞에 와서 “당신들 조직이 어디에 있는가? 당신들 그 물건을 나에게 보여 달라”고 했다. 나는 조직이 없다고 했더니 그는 오히려 진작부터 들었지만 자신을 탈퇴시켜줄 사람을 찾지 못했다면서 자신은 부대에서 입당 했었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한 시름 놓았다. 금방까지도 나는 그를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역시 인연 있는 사람으로서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이 정경을 보면서 나는 당면해서 진상을 알리는 일에 더욱 신심을 갖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녹화의 제일 마지막에 제자에 대해 시름 놓을 수 없는 일을 말씀 하셨다. 안으로 찾으라. 매 번 사부님의 당시의 표정과 말씀을 생각할 때면 마음속으로 아주 부끄러움을 느낀다. 십 몇 년을 수련 했다는 내가 수련 가운데서 많은 때에 자신은 흔히 밖을 향해 볼 때가 많았고, 자신의 부족점을 볼 때가 적었으니 진정한 수련인이라고 할 수 없다. 금후의 수련 가운데서 마땅히 해야 할 일체를 잘 하여, 정법시기 대법의 수련 속에서 만족스런 답안을 바칠 수 있게 하겠다.

명혜망은 우리 뭇 대법제자들이 대법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무대이다. 과거에는 깨닫지 못했는데 이는 나의 결함이다, 오늘 깨달았으니 나는 꼭 지지할 것이다. 비록 내가 쓴 것이 그리 원만하지는 못하고 문장도 매끄럽지 못할 뿐더러 문장 부호마저 쓸 줄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드디어 명혜망 대법제자 사이트에 나의 첫 부의 원고를 써 보내어 이 몇 해 동안의 대법수련 가운데서의 또 하나의 공백을 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명혜망 제5회 중국 대륙 대법제자 심득 교류회 )

문장발표 : 2008넌 11월 4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11/4/1886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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