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서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1일] 나는 1998년에 법을 얻었다.
옛말에 이르기를, ” 여든 살 나이에 나팔을 배운다”고 했다. 나는 83살 고령에 컴퓨터를 켜고 끄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로그인을 쥐게 되었고, 기술 동수가 내 손을 잡고 참을성 있게 가르쳐 준 덕분에 나는 점차 각종 진상 자료를 찍고 호신부를 제작하며, 시디를 굽는 것을 배워 냈다. 지금 나는 허풍 떠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젠 인쇄 고수이다. 학교도 다녀보지 못한 나 이 노파의 몸에서 대법의 초상적인 것과 신기함을 충분히 체현하고 실증 하였다.
ㅡㅡ본문작자
1, 오래된 기대, 다행히 얻은 법
1998년 딸이 친척 방문으로 집에 왔다. 그 애는 법을 얻은 지 겨우 몇 달밖에 안 되었는데 몸과 마음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하였으므로 몸이 허약하고 병이 많은 아버지께서 수련하길 바랐고, 그 때 볼 수 있은 전부의 대법책을 가져 왔다. 그 때 그녀는 나에게 어느 책이든 보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무의식중에 <<전법륜>> 책을 들었다. 펼쳐 보니 사부님 사진이 그렇게도 자비롭고 상화로웠다. 창졸히 읽어보는데 직감적으로 나에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 “이 책은 경서이다” (나도 괴상하게 느꼈다. 이 한평생에 출가하려 했지만 한 평생 지금까지 경서를 읽은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이 책이 경서라는 걸 알까?) 나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단숨에 읽어 내려갔고, 보면 볼수록 이는 수련을 가르치는 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어 참으로 손에서 놓기 아쉬웠고, 즉시 딸을 따라 연마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수련의 숙원을 성취하게 되었다 ! ” 그토록 행복하고 기쁜 심정은 말로 이루 다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 그 해 나는 78살이었다. 마침내 이 날을 만나게 된 것이다!
딸의 휴가가 길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애가 돌아간 후 나는 남편과 함께 집에서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면서 부근에 연공장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지내다가 1999년에야 비로서 연공장에서 단체 연공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바람에 큰 일이 났다. 세 번째 날 아침 연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일이 생겼다. 하늘땅이 빙빙 돌며 마구 어지러운 게 마치 옛 병이 도진 것처럼, 토하고 쏘고 하였는데 기세가 대단 하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 몸을 청리 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기뻐하였다. 결과 아주 빨리 지나가 버렸고, 그때로부터 온 몸이 가벼워 졌으며 오래됐던 병이 더는 다시 발작하지 않았다.
나는 노안으로 백내장이 아주 엄중하여 눈이 흐리고 물건이 잘 보이지 않아 일년내내 대량의 눈약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수련 후 날마다 법공부 하느라 책을 읽어도 눈은 점점 더 밝아지고 피로하지 않았다. 지금 날마다 컴퓨터를 마주하고 있어도 그 무슨 전자파의 영향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 딸은 내 눈이 흑백을 분명히 가릴 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 자신도 시력이 갈수록 좋아짐을 느끼며 눈약도 필요 없게 되었다.
나는 이전에 심장 조기 박동이 아주 엄중하여 몇 번 뛰고는 정지하여 정상적일 때가 별로 없어 상관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이가 많으니까) 수련 후 우연히 딸 (의사)이 맥을 짚어 보더니 놀랍게도 조기 박동이 없어지고, 맥박도 아주 고르게 뛰었다! 이를 실증하기 위해 나에게 24시간 심전도를 하였는데 그 결과 정말로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나는 허리 뼈, 무릎 관절은 어려서부터 얻은 병이고, 늙어서는 또 허다한 크고 작은 지방 혹이 첨가되어 무릎 관절을 둘러쌌는데 관절이 모두 변형돼 그야말로 편안한 날이 없었다. 날씨가 추워지거나 비가 오거나 봄이 되어 따스하게 되면 모두 발작하여 하지가 부어나고 엄중할 때는 두 다리가 한 쌍의 빨래 방망이 같아 너무도 아팠고, 부어서 투명하고 빛이 났다. 그러면 걸을 수도 없었고, 다리를 들기도 힘들었다. 일 년 내내 고약을 붙였으나 잠시동안 지통 될 뿐이었다(때문에 가부좌의 난도는 남보다 훨씬 컸다) 나는 나의 업력이 너무 크므로, 모두 사부님더러 나를 대신해 감당하시게 해서는 안 되며 나 자신이 반드시 일부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이런 것들이 이젠 아주 적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도 늙을수록 신체가 더 좋아지고 한 해 한 해 점점 더 좋아질 수 있으며, 이렇듯 엄중하던 관절병이 약을 쓰지 않고도 나을 수 있은 것은 오직 대법수련에서만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기적이다.
나에게는 또 많고 많은 병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죄다 나았다. 내 금년에 88살인데도 귀가 잘 들리고 눈이 밝으며, 허리가 곧고, 잘 먹고 잘 자며, 잘 걸을 수 있고 정력이 충족하다. 또 컴퓨터 조작 기술을 배워 진상자료를 만들고 하루 6.7시간씩 일해도 피곤을 모른다. 이 모두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으로서 대법 중에서 수련할 수 있게 된 것이 그야말로 너무나 행복하다!
2, 정관을 넘다
박해가 막 시작 되자, 원래 나와 함께 수련하던 남편이 몇 십 년 동안 공산사당의 역차로 되는 정치운동의 시달림에 겁을 먹었기 때문에 (그는 예전에 “그물에서 빠진 우파”, “반동 학술 권위”, “ 대백기” 등등이었다) 공산당이 으시대는 모양을 보니 또 “문화 대혁명” 이 온 것이 아닌가 하면서 즉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마구 떨려서 연공할 수가 없어,” 또 나보고 연마하지도 말고 동수와도 만나지 말라고 하였다. 연공장이 없어졌고 보도원은 직장에서 조직한 대회에서 비판 투쟁을 받고 연마하지 않았다. 안팎으로 단번에 죄다 변해 버렸지만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반 년 후, 남편은 갑자기 뇌경색에 걸려 혼미해 졌다. 응급치료를 거쳐 그 날로 침대에서 내려와 소변을 볼 수 있었지만 그는 이것이 수련이 그에게 가져다 준 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완전히 속인 상태에 빠졌다. 결국 대법은 몸으로 스쳐 지나 가 또 다시 구도될 기회를 잃고 말았다. 그때로부터 업력에 조종되어 정신은 때로는 맑았다 때로는 흐렸다 하였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더니 3년 후에는 속인의 생명과정을 끝마치고 가고 말았다.
나는 남편과 함께 68년을 살았기에 정이 아주 깊었다. 남편을 잃은 비통한 나날에, 애절한 그리움 속에서 나는 사부님 말씀을 생각 하였다. “속인의 생로병사 이런 일은 모두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이다”,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七情六慾)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 담담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그런 것들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수련해 내지 못한다.” (<<전법륜>>) 나는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고 재빨리 깨달았다. 인간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대법수련에 투입 하였다.
그 3년 동안은 병원에서 남편을 간호하면서 어렵게 지냈다. 비록 한 동수의 특별한 보살핌으로 사부님 경문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나에게 보내주어 법공부에서는 그래도 따라섰다고 할 수 있지만 연공할 시간이 아주 적어 동수와 많이 떨어졌다고 느꼈다. 그 때 나는 단 가부좌하기도 아주 어려웠지만 일을 악물고 사존의 “참을 수 없는 것도 참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한다”는 가르침을 명심하였다. 하여 드디어 일년후에 쌍 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해 내 나이 이미 84 살이었다.(지금은 이미 한 시간 쌍 가부좌를 할 수 있다)
3 , 진상을 알리다
대법의 인도하에 나는 남편을 잃은 검은 그림자 속에서 재빨리 해탈되어 나왔다. 법공부 연공 이외의 첫 째 가는 일이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이었다. 시작에는 안면도 없는 사람 앞에서 더듬거려져 말이 잘 나가지 않았다. 그때는 그 무슨 자료라는 것도 없어 나는 스스로 손으로 썼다. 붉은 종이를 13cm 길이에 5cm 넓이로 베어서는 “파룬따파 하오”, “쩐, 싼, 런 하오” , “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 대법을 착하게 대하면 복 받는다”등 진상을 써 넣은 것과 풀을 갖고 가서 바깥에 붙였다. 벽에, 지하도, 가로등 전봇대, 등에 모두 붙였다. 후에 프린트한 진상자료가 있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각종 전단지, 소책자, 호신부, 스티커가 있어 하기도 좋았고, 집집마다 보내거나 직접 만나서 말해주기도 하였다.
정법진행의 추진과 법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새로운 자료들을 읽을 것이 더 많아졌고, 진상 알리기도 무척 쉬워졌다. 사부님의 보살핌 아래, 정념의 위력 속에서 나는 날마다 나가면 많은 인연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진상자료도 기쁘게 받았는데 주동적으로 자료를 요구하고는 감사를 드리는 사람도 있었다. 진상 알리는 일을 하기만 하면 두 다리는 걸을수록 가벼워 져, 몇 시간을 걸어도 조금도 힘든 줄 몰랐다. 만약 속인의 일이었다면 얼마를 못가서 쉬곤 했을 것이다. 나는 진상 알리기는 근본적으로 신의 몸이 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어떤 땐 악당에 깊이 미혹되어 태도가 열악한 사람을 만날 때도 있는데 나는 그가 가련하게 느껴질 뿐 조금도 억울한 감이 없다.
한 번은 내가 길 옆에서 중학생처럼 보이는 두 여학생에게 진상을 말해 준 후 내가 살고 있는 주택구의 정원 호수가 돌 의자에 앉아 다리를 쉬고 있는데 한 경찰이 급히 오더니 나를 보며 묻는 것이었다. “흰 머리 노파를 보지 못했습니까? 그녀가 파룬궁 전단지를 배포 했습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있는데 곁에 앉은 아는 사람이 즉시 말을 이었다. “ 없어요 없어, 우린 날마다 이곳에 앉아 있지만 보지 못했어요” 그는 몸을 돌려 뛰어가 버렸다. 나 이 백발 노파를 보지 못한듯이 말이다. 나의 가방에는 아직도 다 배포하지 못한 자료가 있었다. 정념의 작용은 참으로 컸다.
나는 사당의 흑수가 교육계에 뻗쳐 중, 초등학교 교과서에 모두 대법을 비방하는 내용을 밀어 넣어 청소년을 독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각 학교 교장, 교원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고 따라서 겨냥성 있는 진상 자료를 첨가 하였다. 또 각지 공안국, 감옥, 노동 개조국, 노교소 등의 책임자에게 선을 권하는 편지를 썼다. 명인책에 따라 각성 지명인사들에게 진상자료를 부쳐주었다. 동수와 가족은 각종 통로를 거쳐 몇 권이나 되는 두터운 통신록, 전화 전호부를 얻어왔기에 진상을 각개 계층에 보내는데 편리하게 되었다.
4 . 자료를 만들다
<<명혜주간>>에서 늘 자료점 동수들의 곤란한 상황을 보고 나는 줄곧 한 몫 도와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남에 따라 사부님께서 나의 염원에 따라 2003년의 하반년에 협조인이 우리 집에다 자료점을 꾸릴 것을 갑자기 제출하도록 했다. 나는 적당하다고 여겼다. 집도 넓고 식구도 간단했다. (다만 나와 우리 집에 여러 해 있은 보모뿐이었다) 가장 주요한 것은 나의 염원에 부합된 것이다. 나는 기쁘게 접수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옛말에 이르기를, “여든살 나이에 나팔을 배운다”고 했다. 나는 83살 고령에 컴퓨터를 켜고 끄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로그인을 쥐게 되었고, 기술 동수가 내 손을 잡고 참을성 있게 가르쳐 준 덕분에 나는 점차 각종 진상 자료를 찍고 호신부를 제작하며, 시디롬을 굽는 것을 배워 냈다. 지금 나는 허풍 떠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젠 인쇄 고수이다. 나는 학교도 다녀보지 못한 노파의 몸으로 대법의 초상적인 것과 신기함을 충분히 체현하고 실증 하였다.
나는 컴퓨터와 프린터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것들은 나의 법기이다. 나는 그들에게 “명명”, “혜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사업할 때면 함께 대법음악을 듣는다. 그들의 사업량이 크고, 프린트 질량이 정상이 아닐 때면 나는 늘 그들에게 발정념을 해 주고 사상 교류를 한다. “명명, 혜혜. 너희들도 영성이 있는 생명이다. 지금은 정법시기인데 너희들은 대법에 선택된 행운으로 법기가되었고, 대법의 한 분자로 되었다. 대법제자는 모두 시간을 다잡아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고 있으니 너희들도 부지런히 일하여 자료를 더 많이 내고 잘 내어 중생구도에 공헌해야 한다” 말하자면 참으로 신기하였다, 그들은 즉시 쏴, 쏴 하면서 찍기 시작하였고 질량이 너무 좋았다! 어떤 땐 잉크를 공급하는 관이 비어 있는데도 한 무더기나 찍어 낸다. 이럴 때면 나는 기쁨에 겨워 그들을 칭찬한다. “고마워! 너희들 수고 많았어, 공로가 있어” 물론 나는 그들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 적당한 때에 그들에게 휴식시간을 안배해 준다. 6년래, 자료점의 사업은 기계 고장 때문에 정지된 적이 종래로 없었다. 아울러 우리의 자료는 색상이 아름다워 찬양을 받았고, 늘 주변 시 현 동수들이 가져다 인쇄 샘플로 썼다.
나는 공작실에 사부님 법상과 법륜 도형을 걸었고 날마다 향을 피우고 과일을 놓고 공양하며, 사부님 발아래에서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한다. 동수가 오면 먼저 사부님께 경례한다. 모두들 이 장은 아주 순수하고 에너지가 크다고 말한다. 매 번 진상하러 나가기 전에 나는 사부님께 인사하고 사부님 가지를 청구하는데 매 번마다 무사히 돌아왔다.
한 번은 한 직장에 있었던 노 동료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전단지 한 장을 주었는데 그는 오히려 나를 직장에 고발 하였다. 그래서 직장의 퇴직 관리 사무실에서 나의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다. 나는 즉석에서 내 손으로 쓴 카편을 꺼내 보였다. 위에는 쩐, 싼, 런을 해석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들은 보고나서 “이건 정말 훌륭한 말이네, 당신은 부처를 배우는구먼” 그리고는 나를 자세히 보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음, 당신 정말 부처모양이네, 아주 선해요” 그리고는 가버렸고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파출소에 고발하였다. 퇴직 사무실 사람이 또 왔다. 마침 내가 집에 없었고 본 직장의 한 동수가 사부님 법상 곁에서 법공부 하고 있었다. 나의 공작실이 그들에게 보여졌다. 컴퓨터와 네 대의 프린터, 사부님을 공양하는 법당, 하나도 빼놓지 않고 죄다 보았다. 내가 돌아와 보니 그들은 <<전법륜>> 한 권과 연공테프 하나를 가져갔을 뿐 다른 것은 그대로 있을 뿐만 아니라 후에 말이 없었다. 나는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여기에 계시는데 누가 감히 어쩔 수 있겠는가? 동시에 또 깨달았다. 세인들 각성이 아주 빠르다, 대법제자에게 두려운 이 마음만 없다면 그 어떤 마난도 존재하지 못한다. 이 여러 해 동안 나의 두려운 마음은 확실히 갈수록 적어졌다.
5 , 병업관을 넘다
노인 동수들에게 보편적으로 “병”관 문제가 존재 하였다. 나에게도 몇 차례 있었는데 이 기회에 써 내어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나에게 손발에 쥐가 나는 오랜 결함이 있었는데 수련 후에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 때때로 일어나곤 하였다. 나는 두려워서 어떤 땐 속인처럼 중약 몇 첩씩 먹기도 하면서 “칼슘부족”으로 여겼다. 2004년 12월 28일 밤중에 갑자기 발작하여 손발이 동시에 극심하게 쥐가 났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가중해 졌다. 나중에는 아래 배 마저 쥐가 났다. 종래로 없었던 극통이 놀랍게도 거의 세 시간이나 지속 되었다. 나의 머리 속에 갑자기 한 의식이 나타났다. “오늘저녁을 넘기지 않으면 아마 죽을지도 몰라”하지만 즉각 또 생각되는 것은 난 아직 원만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원만을 생각하자 그제야 사부님이 생각나 그 자리에서 외쳤다. “사부님 살려 주세요!” “사부님 절 구해 주세요!” 그러자 기적이 나타났다. 아픔이 줄어들고 십 몇 분 후에는 죄다 나아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해 감당하신 것이었다!
후에 동수들은 내가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한 방면으로는 자신이 여전히 연공인 답지 않게 쥐나는 것을 병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여 이 집착심이 구세력에게 틈탈 기회를 준 것이란 것을 인식하게 하였다. 하지만 주요하게는 구세력의 교란, 박해로서 나더러 자료 만드는 일을 못하게 하는데 도달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이 “병”이라는 마음을 철저하게 내려놓자, 더는 쥐가 나는 일이 없었다.
2005년 6월, 갑자기 잔등 중앙에 사발 아구리 만큼 한 부스럼이 났는데 벌겋게 부어나고 중간에는 허다한 물집이 생겼다.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튿 날 아침 연공을 하는데 몹시 아픈 감이 났다. 왼쪽 겨드랑이 아래로부터 가슴에 이르기까지 물집이 가득 돋은 것을 발견 하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후에 보모가 의사인 딸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나 이 팔순이 넘는 사람과 함께 있으므로 책임감을 느꼈던 것이다) “대상포진”(带状疱疹)이란 것을 알게 된 그들은 아주 긴장해 하였다. 이런 병은 젊은이들도 견디기 어려워하고, 노인은 등이 휠 수 있는데 엄만 이렇게 많은 연세에 어떻게 이런 병을 다 얻었냐고 하면서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결연히 거절하면서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나는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사부님께서 관할해 주신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고 하면서 그들더러 시름 놓으라고 하였다. 특히 의사인 딸은 (동수) “나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다” (信师信法)는 이 한 마디를 듣고 거대한 진동을 받았다 (그녀는 그 때 상태가 극히 나빠, 병 치료 하려는 마음이 아주 중했다). 나는 속으로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수련인에게는 에너지가 있으며, 우리의 세포는 병독을 이길 수 있고 면역력이 강하다.
내가 “병”이라는 집착을 내려놓고 구세력의 교란과 박해를 단호히 부정하며, 일체를 사부님에게 바쳤기 때문에 이 “대상포진”은 결국 다른 사람과는 완전히 달랐다. 시종 그다지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 자료 만드는 일을 하루도 중지하지 않았다. 정말로 편안치 못할 때면 한 잠 자고 나면 즉시 편안해 졌다. 허다한 의사 동수들은 모두 말하는 것이었다. “대상포진을 이렇게 쉽게 넘기는 것을 처음 보았다. 특히 당신은 이렇게 연세가 높은 분인데도”, “이는 그야말로 대법수련의 기적이다!” 우리는 또 깨달았다. 그 때 자료점에서는 주요하게 <<9평>>을 만들었다. 구세력과 공산사영은 온갖 방법을 다해 교란 파괴하였는 바, 수련인이 부딪친 어떠한 일이든 우연한 것이 없으며, 어느 때 어디서나 한 수련인으로서 정념을 유지하는 것은 첫째가는 중요한 일이다.
2006년 10월, 약간 변질된 계란에 고추를 볶아 먹은 게 격렬한 구토 설사를 초래 하였다. 나흘 낮과 밤을 나는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다. 물 한 술 마셔도 토하였다. 이튿날 외지에 있는 딸이 돌아왔는데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두 눈이 움푹 패여 들어갔고, 눈언저리가 거멓게 되었으며, 말소리가 낮아 전신엔 중한 탈수 현상이 나타났다. 나흘째가 되어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녀는 마음을 안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한 학우(주임 의사)를 청해 다 진찰을 하였다. 이 학우는 와 보더니 놀라서 펄쩍 뛰는 것이었다. “이런 환자를 병원에 응급치료를 하고 위급 통지를 내려야 합니다. 지금 당장 링겔을 맞으시오, 더 끌다가는 후과를 수습할 수 없게 됩니다” 그녀가 돌아간 후 딸도 긴장해서 말하였다. “나도 더는 버틸 수 없어요, 하루 밤 더 지내보고 내일도 이러면 병원에 가자요” 나는 말했다. “ 오늘저녁엔 꼭 낫는다. 너 근심 말고 가서 자거라” 그날 저녁 나는 물 한 모금을 마셔 보았다. 토하지 않자 나는 또 한 모금 더 마셨더니 역시 토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잠들었다. 밤 3시에 깨어나니 정신이 많이 든 감이 나서 또 물 두 모금 마시고는 날 밝을 때까지 잤다. 이튿날 아침 딸이 건너와 보더니 기뻐서 소리 질렀다. “정말 나았네요, 얼굴색 많이 좋아 졌어요” 아주 빨리 나는 회복되어 또 다시 내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하였다.
나는 깨달았다. 이번 관은 첫째로 나의 편식하는 집착심을 버리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딸의 병치료 집착과 모녀정의 마음을 버리라는 것이다. 나는 일관적으로 썩은 고기, 썩은 계란에 고추를 볶아 먹기 즐긴다. 남들은 냄새가 싫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구수하게 여겼다. 수련 후 나쁜 줄 알고, 집착임으로 끊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입맛이 없고 밥먹기 싫을 때면 곧 자신을 방임하였다. 이번에 비록 조금 먹긴 했지만 번연히 알면서도 저질렀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 기회를 빌어 나를 일깨워 주셨고, 내 몸에 몇 십 년 동안 쌓였던 구리고 더러운 물건을 죄다 배출시켰던 것이다. (나흘 동안 토하고 쏘고 한 것이 죄다 구리고 더러운 것들이었다) 그 이후부터 2년 동안 더는 병업 증상이 없어졌고 갈수록 정신이 났다. 내 딸은 이번 일을 통해 병치료에 대한 자신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다는 것과, 어머니에 대한 정이 아주 중하고, 어머니를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고험 앞에서 어머니의 뒷 다리를 당겼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안을 향해 찾는 것을 통하여 내가 연속 3년 동안 넘은 “병”관은 주요하게 비록 구세력, 사악의 교란이긴 하였지만 자신에게도 허다한 누락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겨울이 되어 추우면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이 일어 밖에 나가 진상 알리기를 싫어하면서도 스스로 위안하여 말한다. 집에서 자료를 만들어도 마찬가지야, 동수들은 내가 만든 자료가 이쁘다고 칭찬하면서 모두 가지길 좋아하고 가져다 복사 견본으로 만들고 있으니 나는 아주 기쁘면서 환희심이 일었다. 듣자니 이렇게 나이 많은데도 컴퓨터를 배워 냈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한다. 나에겐 곧 과시심이 생겼다. 자신이 대단한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내 신체가 좋다고 하면서 88살 같지 않고 70대 같아 보이며, 얼굴이 불깃하고 주름이 적으며, 행동이 민첩하고, 두뇌가 영활하며, 글자를 멋있게 잘 쓰고 문장도 잘 쓰며, 진상 알리기에도 두려운 마음이 없어 성위 정원에도 감히 가며, 그 무슨 “민감시기”란 개념이 없다고 했다. 듣고 나서 자신이 정말로 괜찮다고 여기며 찬양 앞에서 이것은 고험이란 것을 잊었다. 나는 갑자기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사상은 모두 법을 빗나간 것이고 아주 위험한 것이며, 자신의 제고를 엄중히 방애하는 것으로서 자신을 책임지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금년에 88살이다. 나의 원래의 생명 과정은 아마 진작 종결 되었을 것이나, 대법이 나의 생명을 연장해 주었다. 만약 정진할 줄 모르고 소중히 여길 줄 모른다면 아주 위험한 것이다. 금후 꼭 착실하게 세 가지 일을 잘하고, 확고하게 신사신법 하며, 어느 때 어디서나 안을 향해 찾으면서 최후의 이 회귀의 길을 잘 걸어, 사부님 따라 원만하여 돌아가겠다.
이상의 깨달음에는 많은 부당한 곳이 있을 것인즉, 동수께서 자비로 바로 잡아 주길 성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명혜망제 5회 중국 대륙 대법제자 수련 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 2008년 11월 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1/1/1878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