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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자

글 / 서남지구 대법제자 륙매(六梅)

【명혜망 2005년 11월9일】 사부님의 <<홍음(2)>>중의 아래 단락 법을 정중하게 받들어 자신의 수련과정을 심득체험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가로막지 못하리>

수련의 길은 같지 않으나
모두 대법 가운데 있거늘
만사에 집착이 없으면
발아래 길은 스스로 열리노라

대법제자는 그 어떤 역사시기의 일반적인 수련인과도 같지 않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맡겨 주신 중임(重任)인 법공부, 발정념, 진상 이 세가지 일을 전면적으로 잘해야 한다. 이것은 또한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마련하신 특수한 수련환경이다. 진수제자들은 반드시 잘해야 한다. 여기에서 나는 자신의 7년 간의 수련과정 중에서 세가지 일을 어떻게 했는가와 집착심을 제거한 과정을 말하려고 한다.

처음 진상을 말할 때 나는 ‘안전하지 않으면 붙잡힌다.’라고 생각하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문제가 끊임없이 출현했다. 즉 진상을 말한 후 다른사람에게 고발당하는가 하면, 상부에서 경고전화가 왔으며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서두르다가 전화카드도 잃어버렸다. 하나는 만원이 넘는 전화카드였고, 하나는 5천원 넘는 카드였다. 컴퓨터를 켰을 때, 문밖에 소리만 들려도 가슴은 쿵쾅거리며 뛰었고, 진상을 알릴 때도 정념이 없어 다른 사람이 반박하면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이런 상태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누구의 도움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법공부 중에서 제고해야 만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두려워하는 것도 일종의 집착심이다.’ (<<전법륜>> 중) 이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두려움은 영원히 나를 감돌 것이다. 나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명혜망의 동수들 교류 문장을 착실히 보았고 동시에 반성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는 진상을 말하는 것을 하나의 완성해야 할 필수 임무로 보았던 것이다. 아주 깊게 숨겨져 있는 것은 자신이 진상을 말하지 않으면 떨어지게 되고 도태된다는 마음이었다. 이러한 상태로 진상을 말하는 중에서 마음이 동(動)할 때가 많았으며 임무를 완성한다는 마음으로 진상을 했던 것이다. 결국은 일종의 개인의 원만을 구하는 자사(自私)한 마음이었지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는 자비심은 없었다. 인위적으로 자신에게 장애를 설치한 것은 이처럼 깊이 숨겨진 집착심이란 것을 알았다. 법공부를 계속 하는 중, ‘당신들은 이미 상생상극(相生相克)의 법리(法理)를 알고 있고, 두려움이 없다면 또한 당신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할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진요지 2>> 중 ‘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 그러한 진실한 감수를 느꼈다.

문제를 찾은 후, 진상을 말하는 중에 이를 제거하기에 힘썼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차츰차츰 소실되었지만, 순풍에 돛단 것처럼 쉽지는 않았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나면 또다른 하나의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다. 이후에 법공부와 실천 중에서 두려움은 점차적으로 없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부님께서 나의 신변에 계시고, 아주 가깝게 있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심에 푹 젖어 있었다. 이후 전심으로 진상을 말하는 하늘 아래에서 제일 바른 일을 하니 기적이 자주 나타났다. 예를들면, 프린터의 먹통에 연속적으로 20병의 먹물을 바꾸어 놓아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동수들과 천안문에서 법을 실증할 때 태연하게 광장에서 “파룬따파 하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나의 사부님의 청백을 돌려달라!”를 높이 외쳤으며, 난간과 공항에 대법의 진상표어를 걸어놓고도 안전하게 돌아왔다. 한번은 일이 있어 친구(동수) 집에 갔는데, 갑자기 검찰원이 집수색을 했다. 나도 온 몸을 수색당했지만 가방과 친구 서랍에 있는 모든 진상자료들은 안전했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 확실히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니 대법제자를 두렵게 할 수 있는 요소가 없었다. 사악은 올바른 것을 이기지 못하므로 아무리 사악한 물건들이라도 대법제자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진상을 알릴 때 나의 마음은 또한 체면이 깎일까봐 두려워했다. 한번은 교장들이 참여한 소형 집회에서 나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분신’하는 진상테이프를 돌렸다. 이 일은 상부의 주관부문의 귀에 들어갔다. 후에 나에게 한차례의 경고가 들어오기도 했다.

어떤 때는 고생스럽게 많은 진상을 말할때, 안타까워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신은 지식인인데 어쩌다가 이런 일들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특히 사람들에게 삼퇴를 권할 때, 더욱 많은 좌절을 만났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권하지 말라. 나는 당신보다 아는 것이 더 많다. 나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만 믿는다.” 라고 했다. 이런 정황들에 부딪쳤을 때, 나는 체면이 깍이는 것을 느꼈으며 할 말이 없었다. 속으로는 ‘영원히 당신에게 진상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착오적인 인식이 생겨 주변의 사람들은 대부분 엘리트 계층이므로 그들에게 진상을 말하고 삼퇴를 권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즉, 진상을 하는 중 ‘체면이 깍인다’ 는 이런 정서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는 두려워하는 마음의 일종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자신의 특성으로만 생각했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워하는 특성 말이다. 그러나 법공부를 하는 중, 시종 심성수련(心性修煉)을 하는 대법제자로서 개인의 특성이 어찌 자신의 집착심과 결함을 감추는 천막으로 될 수 있겠는가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끊임없는 법공부 중에서 이 일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는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집착심이 작용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심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전법륜>> 중, ‘그것은 자비심(慈悲心)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다. 그의 명리심(名利心)은 전혀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비심이 전혀 나올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잃을까봐 두려워 자기가 이 병을 얻지 못함을 한스러워 하는데, 그는 이 정도로 명성을 잃을까봐 두려워한다.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렬한가!’ 이 단락 법을 보고 자신이 진상을 말하는 중에서 명(名)을 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체면이었다. 명리심은 자비심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마치 속인과 같이 멍청하게 아무런 말도 못하는 것이다. 곧 이렇게 진상을 말할 기회가 나의 코앞에서 하나씩 지나쳐가 버렸다. 후회하면서 이런 기회가 또다시 올 것을 희망했으나 기회는 영원히 지나간 것이었다. “기회를 놓치면 지나가버리며, 지나간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나의 명리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9평 공산당>>을 본 후, 나는 깨달았다. 사악한 당문화의 장기간 영향 하에서 사악한 당의 흉악함과 잔혹함이 나의 성격을 비뚤게 했던 것이다. 출신이 좋지 않고, 담이 작고, 일을 두려워하고, 가정을 위해 명성을 떨치기 원했다. 자신의 소위 전도(前途)와 가정의 행복을 위해 규칙적인 행동하는 인간이 되어 일을 하고 공부하는 것에만 몰두했다. 사람들이 나를 한가지에만 몰두한다고 했으며 나는 좋은 명성을 얻었다. 칭찬을 많이 들었으며 많은 영광을 얻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일을 잘한다. 발전하려고 노력한다.’ 라고 하면서 동료들 중에서 나를 높이 대우했으며, 나는 이것을 향수했다. 이렇게 나는 조심스럽게 이것을 진귀하게 여겼으며 극력으로 이 한층의 껍데기를 보호하려고 노력했다. 명리심도 따라 나왔으며 가중해졌다. 마지막에 자신의 온 몸은 병(病)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도 힘들어 만사가 다 귀찮았다. 이 점을 인식한 후 나는 <<전법륜>> 중, ‘직장에서,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아마 당신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당신이 꼭 정말로 나쁜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말했다 하여 당신이 꼭 정말로 좋은 것도 아니다. 한 수련자로서, 이 특성에 동화되기만 하면 당신은 바로 도(道)를 얻은 사람이다. 바로 이렇게 간단한 이치이다.’ 라는 단락을 보면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에 대하여 진정으로 심각한 인식이 있었다. 당문화가 엄중하게 나의 수련을 교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속인 중에서 나는 장시간 속인의 평가로 자신을 규범화시켰다. 다른 사람이 나를 좋다고 말하면 기분이 좋았고 마음은 위안이 되었으며 다른사람이 나를 나쁘다고 말하면 마음이 괴로웠으며 행동 중에서 극복하기에 힘썼다. 그때 나는 이렇게 조심스럽게 사람의 마음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마음은 매우 피곤했다.

현제 진상을 말하는 것이 최대의 자비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진상을 똑똑히 말하는 대법제자는 우주 중에서 제일 좋은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잘 하지 못하고 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 중에서 말씀하신, ”쩐(眞)·싼(善)·런(忍)’ 이런 특성은 우주 중에서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 라는 법리를 많이 읽었지만 6~7년 동안이나 수련한 나는 이 ‘유일한 표준’을 생각하지 못하고 장기간 자신의 큰 집착을 없애지 못했다. 잠재적인 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사악한 당문화의 표준으로 좋고 나쁨을 가늠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진감(震感)을 가져오게 했으며 나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였다! 나는 자신의 법공부 중에서 차이점을 찾았고, 결심코 법공부를 잘하겠다고 맹세했으며 법공부 중에서 체면을 지키고자 하는 이 집착심을 제거하였다.

이후에 사부님께서는 내가 진상을 할때 승화하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친구와 동료들을 찾아가 진상을 말하고 <<9평>>을 주었으며, 체면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말하고 안되면 또 말했다. 내려놓지 못할 마음이 무엇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이미 10여번, 20여번씩 말했다.) 나는 진정한 마음으로 진상을 말할 때 자비로운 말이 패부에서 우러 나오는 것을 느꼈다. 자비심은 나로 하여금 감동적인 곳을 말할 때,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말하게 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감동되어 진상자료를 받았으며 삼퇴를 하였다. 한 젊은이는 진상을 듣고 <<9평>>을 본 후, 눈에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는 당신의 말을 듣는다! 당신은 진심으로 우리를 이렇게 생각해주고 있는데, 나는 삼퇴를 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후에는 자신의 아내도 탈당하게 하였다.

최근 사부님의 신경문을 보면서 나는 진일보로 나의 명리심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부님의 말씀은 직접 나를 놓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인류사회는 바로 고난(苦難)과 이익의 향수(享受)가 병행하는 세계이며 인생은 바로 많은 고난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얼마나 많은 돈이 있고, 어떠한 사회계층에 있든지 막론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프게 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고난에 대항(對抗)하게 하는데 목적은 좀 행복하게 살려는 데 있다.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는 중에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상해(傷害)를 받지 않고 어떻게 잘 살며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공명을 성취하며 어떻게 더 많은 것을 얻고 어떻게 강자가 되겠는가 하는 등등이 형성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경험이 있는 동시에 또한 인생의 관념이 형성되었고 경험은 또 실천 중에서 관념으로 하여금 완고(頑固)하게 변하도록 하였다.’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중) 자신의 그 몇 십 년을 회상하면 이러한 관념이 자신을 속박한 것이었다. 나를 사(私)를 위하는 마음에 어둡게 지배되어 ‘고난에 대항’하는 명리(名利)의 길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의 법은 단번에 나의 몸에 있던 단단한 껍데기를 녹였고 나는 법에 융화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후부터 진상을 말하는 기회가 생겼다. 학생들이 나를 찾아와 유심론(唯心論) 등의 문제를 탐구하러 왔고 학생가장도 집에 찾아와 삼퇴를 권하는 일도 훨씬 쉬워졌다. 특히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국장이 일이 있다고 하면서 나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과거에 내가 그에게 진상을 말했을때 그는 듣는 것을 거절했을 뿐만아니라 자료도 받지 않았었다. 그리고 대법에 대하여 불경한 말을 했다. 당시 나는 다시는 그에게 진상을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후에 또 그를 만나게 되어,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준 다시 찾아온 기회로 생각하고 절대 놓치지 않았다. 마음 속에는 일념(一念) 밖에 없었다. 진상을 말한다! 결국 효과는 아주 좋았다. 그와 그가 데리고 온 4명의 젊은이들도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그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끊임없이 나를 도와주면서 예를 다하였다. 정말로 ‘제자들 정념이 족하거니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 2>> 중) 와 같았다.

사악한 당의 피어린 통치 하에서, 나는 행복을 추구하면서 자신이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많은 경험과 교훈을 총결했다. 시비에 적게 참여해 시끄러움을 적게 한다는 관념, 학업과 업무를 잘하고 가정을 중히 여기어 정감을 중히 여기는 정이 많은 사람 등이 되고자 하였으며, 이는 하나의 정에 쉽게 집착하는 사람을 의미한 것이었다. 속인사회의 생활 중에 형성된 이러한 관념을 없애기 위한 반복적인 수련이 많이 있었고 고험도 적지 않게 겪었다. 만약 사부님의 자비가 아니었다면 나 자신은 넘어졌다 일어서기 힘들었을 것이다.

수련 중에서 나는 정에 빠져 가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자식을 내려놓지 못했다. 더욱이 자식의 직업과 혼인문제를 걱정하면서 잠재의식 중에는 생활 중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관념이 존재했다. 진상을 말할 때 듣지 않고 태도가 좋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원망이 생겨 진일보의 노력을 포기했다. 스스로 이런 문제의 엄중성을 인식하지만 이것을 도피하려고 했다.

법공부 중에서 나는 끊임없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에게는 정이 있기 때문에, 화를 냄도 정이요, 기뻐함도 정이요,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서 산다. 그렇다면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한 초상(超常)적인 사람으로서 곧 이런 이치로 가늠할 수 없으며 이런 것을 돌파해야 한다.’ (<<전법륜>> 중)를 읽으면서 자신을 격려했다.

이 집착심을 제거하려는 생각이 있고 또한 일정한 노력을 거치면서 정황은 좋게 변했다. 그런데 법에 확고하지 않을 때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았다. ‘그러나 실제 수련 중에서 고통이 왔을 때, 모순이 심금을 충격할 때, 특히 일단 사람의 그 완고한 관념을 충격할 때면 여전히 관을 넘기가 아주 어려우며 심지어 고험(考驗)임을 뻔히 알면서도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다.’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중) 이런 정황 하에서는 나는 자신이 한개 층차에만 머물러 있으면서 큰 진보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설법을 많이 읽어도 그리 명확한 수확이 없었다. 자신이 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나는 몇번이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왜 수련이 이렇게 힘든가?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신은 아직 수련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리면서 사부님 법신상을 향해 ‘사부님 제자를 도와주십시오. 나는 이 정을 꼭 제거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어떤 때 나의 귀에 작은 소리로 “법공부 하라, 법공부를 잘하라”고 말씀하셨고 또 어떤 때는 친인의 입을 빌어 나를 점화하셨다. 어떤 때는 사부님께서 일부 관을 세워 나를 일깨워 주실 때도 있었다. 나중에 발견한 바에 의하면, 매 번마다 정에 빠져 있으면 언제나 넘어지고 경상을 입었다.

나는 반복했지만 마음 속의 일념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에 대한 집착심을 꼭 제거하겠다는 일념(一念)이었다. 왜냐하면 수련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련 중에서 나는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이 두가지 문제를 물었다. ‘왜 정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는가?’ ‘왜 자신은 이렇게 정에 대한 집착심을 버리지 못하는가?’

‘왜 정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는가?’ 처음 수련할 때는 이 문제를 아주 적게 생각했으며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한가하게 생각하기를, 정에 대한 집착심은 수련과정 중에서 천천히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마음은 수련에 대한 긴박감이 없는 것이며 사실상 자신의 집착심을 보호하려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어떤 때는 정에 대한 집착심이 치근거리는 것을 벗어나려고 나는 더욱 힘껏 진상을 알리는 일을 많이 찾아서 한다. 이렇게 정에 대한 집착심을 밀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손의 일을 놓으면 정은 바람이 일어 구름을 몰듯이 위로 올라온다. 이렇게 새로운 반복에 빠진다. 한번은 사부님의 설법책을 펼쳐보니 그대로 나의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다. ‘이전에 또 일부 퇴직한 사람들이 할일없이 지내다가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좋다고 생각되어 사업할 것을 제출하였는데, 한가로워 참지 못할 공허감을 메우고자 함이었다. 물론 안 된다!’ (<<정진요지>> 중 ‘사업이 아니라 수련이다’)그렇다. 수련은 그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다. 나는 대법일을 하는 것으로 수련을 대체하려고 했다. 한가로와 참지 못할 공허감을 메우고자 함이었다. 이렇게 정에 대한 집착심을 버릴 수 있는가? 사실상 이것은 수련이 아니라 수련을 왜곡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관념으로 변이된 수련이므로 당연히 안 된다!

만약 꼭 이것을 수련이라고 말한다면, 이러한 수련의 본질은 대법 중에서 좋은 점만 얻으려고만 하는 것이지 지불(집착심을 제거하는 것)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깊게 숨은 있는 사심(私心)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는 대법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사람의 것을 잡고 놓지 않고 있었다. 몸에는 속인의 정을 가득 담고 있으면서 수련하려고 하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속인처럼 살아가게 되고 사람의 정에 의하여 힘들어하면서 곤란해지는 것이다. 혹은 정에 대한 집착심을 수련해 버릴까봐 두려워한 것이었다. 사람의 일면은 천방백계로 ‘합리적인’ 핑계를 찾고 ‘합리적인’ 위치를 준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한 사람이 법 공부를 하면 온 가족이 복을 얻고 친인도 진상에 의해 도태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얼마나 좋은 핑계인가? 자신이 대법에서 얻을 것만 생각하고 온 가족을 데리고 대법에서 좋은 것을 얻어 가려고만 했다! 지금 나는 이러한 이전의 사심(私心)과 욕심을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이것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하여 존경하지 않는 대표적인 표현인 것이다!

‘당신이 이런 물건에 집착하면 당신은 근본 수련하지 못한다.’ (<<전법륜>> 중) 나는 동수들이 정 때문에 바친 대가를 직접 보고 들었던 사람이다. 감히 소홀히 할 수 없다. 정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수련이라고 할 수 없고, 진정한 대법제자가 될 수 없다!

이 한 층의 법리를 명백히 안 다음 나는 감히 태만하지 못했으며 법공부 중에서 ‘힘들다.’는 글자 뒤에 숨어 있는 위험성을 보았다.

하나는 마음을 들여 법공부하는 것이 적고 형식이 많았다. 나는 과거에 법공부할 때 스스로 해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아무리 바빠도 법공부를 했으며 아무리 피곤해도 진도를 완성했다. 사실은 말뿐이지 마음으로 법공부하지 않고 진도만 추구했던 것이다. 당시 늘 법공부만 하면 졸았던 것이다. 법공부만 시작하면 이런 저런 하지 못한 일들이 생각났다. 일단 진도만 완성하면 느슨해지는 상태가 나타났다.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법에서 새로운 법리를 깨닫지 못했으며 오랫동안 법공부의 수확이 아주 적었다. 그래서 법공부를 하면서도, 정에 대한 집착은 수련의 큰 장애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근본적인 자신을 개변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인가? 왜냐하면 법공부할 때마다 나는 대부분 어린 중이 염불을 하듯이 입만 놀렸지 마음에는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실용주의를 더하여 아픈 곳을 부딪치면 회피해버렸다.

두번째는 연공을 중하게 하면서 닦는 것을 경하게 했다. 나의 연공은 비교적 착실하다. 거의 매일 견지했다. 수련을 놓고 말하면 표면상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나의 심성수련 방면에는 결점을 감추고 자만하는 현상이 있었다. 심지어는 사람의 교활한 마음으로 교묘하게 구하는 현상이 있었다. 과거에 이런 현상을 알고 있었는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착오적으로 인식하기를, 위로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아래로 비교하면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능히 원만할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수련은 닦고 또 연마하여 전체적으로 제고해야 하는 것인데, 어떤 각도에서 말한다면 나에게는 닦는 것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었다.

수련의 과정을 회고해보면 나는 닦는 방면에 있어서 그다지 정진하지 못했다. 이전에는 이 문제를 중시하지 못했다.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뿌리는 자신의 사(私)에 있었다. 이 영광스럽지 못한 사(私)는 나로하여금 원만을 구하게 하고 얻는 것을 구하라고 한다. 이것은 자신을 위해 수련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층차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법공부의 진보가 크지 않고 항상 무명(無明)의 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다.

이것을 인식한 것을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여기까지 수련했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나의 상태는 멀었다는 것이다. 어제도 아이의 혼인으로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이것은 내가 문제의 엄중성을 인식한 시작에 불과하며 빨리 따라 잡아야 한다는 일념이 있을 뿐이었다.

1999년 7.20 이후 한동안 나는 주위 환경의 압력이 항상 큰 것을 느꼈다. 친구들의 나에 대한 압력이 많아졌고 너도나도 나에게 더이상 연공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상부의 지시를 집행하면서 학교마다 나를 쓰지 못하게 하였다. 관련된 회사에서는 나를 교재 편집팀에서 제명하려고 했다. 노국장은 나에게 자신의 충고를 듣고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 경고했다. 가정에서도 남편 또한 지지하던 태도로부터 반대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반복적으로 “연공하지 말라! 공산당이 사람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많다.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라고 했다. 연공하는 것을 보면 언짢아했으며 법공부를 하면 곧 화를 냈다. “또 책을 보는가!” 하는 소리에 할 수 없이 그를 피해가면서 했는데, 피할수록 그에게 더욱 발견되었다. 한번은 내가 정신을 집중하여 법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가 큰소리로 “아직도 보고 있는가!” 라고 하여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때 나의 머리 속에서는 큰 물음표가 생겼다. “왜 볼수 없는가? 왜 숨어서 보아야 하는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이렇게 좋은 법을 내가 왜 보지 못하는가? 누가 나에게 이 법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는가?”

환경은 왜 이러한가? 나는 자신을 체크해보았다.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나의 마음 속에는 압력이 있었고 이번 박해를 인식하지 못하여 한시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 수련하기 위해 나는 집을 떠났다. 이렇게 하여 나는 많은 동수들보다 늦게 대법을 실증하는 대열에 들어섰다. 환경의 압력은 자신의 마음에서 온 것이었다.

이로부터 나는 집에서 피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남편이 아파서 병을 치료받고 있을 때 나는 그에게 <<전법륜>>을 읽어주었다. 회사에서도 매 당원마다 파룬궁에 대한 태도표시를 하는 기회에 나는 광명정대하게 나 자신은 파룬궁을 연마하고 있으며 파룬궁은 사람을 좋게 만든다고 말하면서 또한 진상을 말했다. 나는 성급 모 과학연구소의 모 교재편집 책임자에게 진상을 말하면서 파룬궁은 바르다고 알려주었다. 노 국장집에 가서 자신의 대법수련 심득(心得)을 말하면서 파룬궁이 국외에서 널리 전해진 사실을 말했다. 그에게 알려주기를, “목에 칼을 들이대고 총으로 가슴을 겨누어도 나는 파룬궁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를 주었다.

환경은 천천히 바로 잡혔다. 남편은 더는 간섭하지 않고 나를 도와 물건을 사주고 컴퓨터의 어려운 문제도 해결해 주고 있다. 상부에서 나의 연공 정황을 물으면 회사의 관리자는 응답을 거부해 버리고 각종 이유로 상부의 관련회의에 참가하는 것을 거절했다. 노국장은 더는 나를 찾지 않았고 다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주위의 환경은 바르게 잡혔다. 이것은 법의 위력이고 사부님의 위덕인 것이다.

확실한 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비록 낡은 세력이 존재해도 당신들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그것들은 방법이 없다.’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에서의 설법>> 중)와 같았다. 환경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수련의 일은 대법제자 자신이 결정한다!

작년에 나는 미국에 한번 가려고 했다. 내가 밤낮으로 생각하는 사부님을 만나고 해외 동수들도 만나보고 싶었다. 현재 국내환경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컴퓨터 기술문제와 해외의 명혜학교 정황도 알고 싶었다. 나는 사부님께, “사부님 제자가 미국을 가고 못가는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해 주십시요. 어떤 결정이든지 따르겠습니다.” 결국 비자를 받기 힘든 정황에서도 단 일주일 만에 매우 순조롭게 비자가 나왔다. 당시 어떤 사람은 전화로 예약하여 한 달을 기다렸던 것이다. 나는 순조롭게 계획대로 미국에 도착하여 소원을 모두다 실현했다. 특히 법회에서 사부님을 만났다. 당시 나는 눈물이 비오듯했고, 실성하여 통곡했다.

잊을 수 없는 경력을 통해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한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투철하게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전법륜>> 중)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법으로 동수들과 서로 격려하면서 우리의 수련의 길을 정진하면서 멈추지 말자!

‘당신에게 하나의 진리를 알려 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전법륜>> 중)

(제2기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서면 교류대회 교류원고)

문장완성 : 2005년 11월7일
문장수정 : 2006년 10월11일 03:41:11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5/11/9/114031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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