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북지구 대법제자 차오반
【명혜망 2005년 11월 15일】(앞 문장 계속)
3. 자신을 내려놓고 주동적으로 협조인의 책임을 짊어지다
나는 줄곧 정체적인 배합에서 매 하나의 일들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겉으로 보기에도 확실히 이러했다. 법회도 기본적으로 참가하고 서로 간의 교류에도 모두 참가했으며, 진상을 알리는 면에서 동수지간에 서로 교훈을 섭취하고 부족한 점을 찾고 또한 동수들을 구출하는 일이거나 여하간 법을 실증하는 일에서 동수들이 통지만 하면 꼭 참가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정체에 배합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한 동수가 나를 찾아 나의 의견을 구했다. 잠시 자료점의 일을 다른 동수한테 맡겨서 더욱 많은 동수들이 참여하게 하고 협조인을 맡아 하면 안 되겠는가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여태껏 협조인 하고는 나 자신을 연관시켜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성격이 내성적이고 말주변도 없었기에 늘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협조인은 반드시 성격이 활달하고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 같은 사람이 어찌 할 수 있겠는가고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고 자기를 찾으며 반문해 보았다. 왜 협조인을 하는 것을 이처럼 두려워하는가? 사실 협조인 책임을 맡지 않았어도 나는 그러한 작용을 이미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자료들을 공유하는 면에서 동수들이 어떠한 유형의 자료들을 수요하면 목적성 있게 제작해 내보냈는데 효과가 매우 좋았다. 부동한 계층의 중생들에게 부동한 자료들을 선택하여 보냈으며 좋은 경험들을 법회에서 혹은 서로 전해주면서 서로 간에 교류들을 진행하였다. 더 기쁜 것은 진상 자료들을 매우 예쁘게 포장하니 중생들이 잘 받아갔을 뿐만이 아니라, 잘 해나가는 과정에서 발견하기를 두려운 마음이 있어 아직 걸어 나오지 못한 동수들도 이렇게 보기 좋은 진상자료들을 가지고 진상을 하기를 좋아하였다. 가져다가 처음에 적게 하던 데로부터 점차적으로 많이 하면서 마지막에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고 법을 실증하는 길로 들어섰는데 효과가 매우 좋았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이러한 것들이 모두가 협조가 아닌가? 어찌하여 나한테 책임을 맡긴다고 하니, 되려 하지 않겠다고 했는가?
안을 향해 찾으니 아직도 그 두려운 마음, 책임을 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잘하지 못하면 체면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총적으로 명을 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법의 기점에 서서 법을 위해 책임지고 무엇이든지 모두 해야 하며 오직 법에 대해 유리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법을 실증한다면 응당 가서 해야 한다. 잘 하고 잘 못하는 것은 이 하나의 진실한 마음을 보며, 심성이 되어있고 사부님께서 가지하여 주시면 잘 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수련은 자기가 하고 공은 사부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의 이 마음이 정말로 법의 기점에 서 있다면 족하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법은 초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고 끝에 법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으며 협조인을 맡는데 동의했다.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의 매 하나의 일은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며, 자기와 상관이 없는 일은 절대로 당신의 신변에 오지 않는다. 오직 법을 실증하는 일에 유리하면 가서 했는데, 협조하는 과정 중에서, 아직도 하나의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다. 모든 몸과 마음을 다 정체 속에 투입하지 못했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나의 그 작은 범위를 생각했고, 동시에 때때로 난을 두려워하는 정서가 생겼는데, 강한 것을 보면 뒤돌아섰고, 고생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언제나 익숙한 자료점에서 일을 하면 그리 마음도 섞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숨겨진 무서운 마음이 나타날 때면, 매번 동수 A와 함께 외지에 가서 협조할 때면, 비록 나 이 사람은 갔지만 심성이 제자리에 닿지 못했기에 따라서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났다. 차에 앉아도 어지럽고, 정념도 강하지 못했으며, 비록 협조방면에서 A동수의 노력 하에, 상호 원용하여 모두 아주 좋은 효과가 있었지만 말이다. 매번 돌아올 때면 모두 일종 그 속에서 신심을 증강하고 견정하게 법을 실증하는 매 한 걸음을 걸어가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신이 고생을 하지 않으려는 여러 가지 구실을 없애버렸다. 예를 들면 자신이 나이가 많고 문화가 높지 않아 말을 잘 할 수 없다는 등등 부정확한 생각과, 대법제자는 연령의 많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오직 법을 실증하는 이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였다. 물론 문화의 차이는 구별이 있다. 만약 문화층차가 아주 높고, 만약 정말로 법의 기점에 서 있다면 물론 빨리 깨달을 수 있고, 법리를 인식하는 것도 똑똑하다. 만약 이렇지 않다면 도리어 생각이 복잡하고 자신을 저애할 것이다. 문화가 낮아도 이런 문제가 있는데, 일심으로 법의 기점에서 문제를 본다면 아주 단순하며, 어떠한 관념도 없다면 아주 많은 시끄러움을 감소하게 된다. 관건은 자아를 내려놓는 것인데, 법공부 하는 중 자기를 제고하고, 모든 걸 잘 하며, 법의 요구표준에 도달하는 것인데, 마음을 쓰는 대소에 따라 구별을 볼 수 있음을 체현하였다.
한번은 농촌에 내려가서 교류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전에 바르지 못하고 자기를 위하는 생각을 철저히 개변하게 되었다. 나와 A동수 그리고 동수 B와 함께 그곳에 정체배합이 잘되지 않아 걸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교류 형식을 통해 서로 간에 심성에서 문제를 찾고, 법공부 팀을 구성하여 법의 기점에서 문제를 볼 것을 건의했다. 금방 시작하자 문 앞에 경찰차가 와서 서더니 경찰 여러 명이 차에서 내렸다. 이 집은 장사를 하고 있는 집 가게였다. 우리들은 안쪽에 있었으며 여 주인도 대법제자였다. 경찰은 판매대에 집 주인이 없는 것을 보았다. 이때 물건을 팔고 있던 동수가 지혜롭게 주인이 물건을 가지러 갔다고 했다. 우리 안쪽에서 20여명 대법제자들은 일제히 동수 A와 다른 동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A동수와 눈을 맞추면서 당황해 하지 말고 정념을 견정히 하라고 했다. “하나가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압한다.”(《미국 중부 법회에서의 설법 》)이지적으로 즉시 발정념 하여 주변의 공간마당과 법회 상공에 있는 사악한 요소들을 제거했다. 사부님께 가지해 달라고 도움을 청하고,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우주에서 제일 바른 일이며, 어떤 생명이나 사악한 요소들이 교란할 자격이 없다 라고 강한 정념을 내보냈다. 약 20분가량 지나서 판매대에서 있던 동수가 돌아와서 그들이 모두 돌아갔다고 했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가 이번에 있은 모든 위험을 제거했다. 교류 중에 동수 지간의 모순들도 제거되었으며 각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게 되었으며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해야 한다는 신심을 높이게 되었다. 비록 새벽부터 오후 3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누구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으며, 곤란 중에서 성숙에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과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을 더욱 체험하게 되었으며, 매 일보를 잘 걷는가 하는 것은 법공부가 관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 사부님께서 제자에 대한 자비한 보호와, 제자들이 법을 실증하는 매 한걸음을 모두 정념정행 할 수 있기를 기대하신다는 것을 느꼈고, 사부님의 자비한 고도와 더욱 많은 고생스러움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그런 위사위아, 곤란에 봉착하면 뒤로 물러나는 생각들을 생각해보니 정말로 부끄러웠다. 나는 가만히 사부님 앞에서 다시는 사부님이 걱정하시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증했다. 나의 심태가 바로잡아진 후, 정말로 달랐다.
한번은 B동수가 찾아와서 다른 지역으로 법을 실증하러 가는데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 꼭 협조를 잘하여 누락이 없도록 하려고 생각했으며, 이전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잘하지 못했던 그러한 심태를 바로잡고 대법에 유리한 일이라면 반드시 동수들과 배합을 잘하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장시간 동안 가야했는데, 나는 차에 앉자 발정념을 하여 차에 타기만 하면 어지럽고 메스꺼운 증상이 나타나게 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다. 대법제자의 신체는 초상적인 것이며, 또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우주 중에서 가장 바른 법을 실증하는 일이기에, 어떠한 생명도 나를 박해하지 못하며, 일체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며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정법의 길을 견정하게 걸어간다. 이렇게 하고 나서 나는 진정으로 대법의 위력을 체험하게 되었다. 오직 몸과 마음이 모두가 법의 기점에 서 있기만 하면 모든 것이 막힘이 없으며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와 보호를 체험할 수 있었다.
6-7시간 차를 타고, 중도에서 다시 한번 갈아타고 또 5-6시간 차를 탔지만 집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것처럼 편안했으며 괴로운 느낌이 없었다. 동수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고 정념으로 바르지 못한 요소들을 제거하기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동수들과 배합하여 이번에 법을 실증하려고 한 일들을 훌륭하게 완성했다. 또한 작은 법회를 열어, 동수들과 어떻게 협조인의 책임과 사명을 더욱 잘 해나가겠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교류를 진행했으며, 두 지역 사이의 동수지간에 1년간 협조가 잘 되지 않았던 모순들을 해결하였다. 양쪽의 협조인들은 교류를 통해 대법제자가 짊어진 책임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으며, 함께 배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데 대해 소중히 여기게 되었으며, 심성을 제고하고 자신을 향해 찾으며 각기 자기 지역의 법을 실증하는 형세를 잘 협조하여 사악의 간담이 서늘케 하는 원용불파의 정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대법제자의 대부분은 그러한 천체(天體)를 따라 왔고 사람마다 인연을 맺었다. 일단 원만하여 돌아간 후에는 당신들이 다시 만나고 싶어도 거의 모두 불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당신들은 당신들의 이 한 단락의 연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당신들의 이러한 연분은 모두 서로 교차되는 식으로 매 한 생, 매 한 세에 같지 않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참으로 쉽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을 함에 있어서 협조를 잘 해야 하며 매 대법제자의 일은 모두 여러분들의 일이다. 개개인은 모두 작디작은 조그마한 일로 인하여 서로 아주 큰 간극이 생기지 말아야 한다. 이는 모두 안 된다. 소중히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법의 일을 함에 있어서 협력해야 하며 잘 협력하도록 해야 한다.”(《대 뉴욕 지역 법회에서의 설법》)
4. 가정을 잘 원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집에서 가정환경을 잘 원용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몇 년래 집 식구들은 나의 안전에 대해 매우 근심을 하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수련을 하지 않지만 대법이 좋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고 있는 어떤 일들에 대해서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내가 몇 년간 박해를 받을 사실들을 모두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가급적이면 자신의 고통을 마음속에 묻고 모든 면에서 집식구들을 먼저 생각하고 돌봐주었다. 집 식구들은 나의 몸에서 대법제자가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았으며 점차 대법에 대해 정확한 인식이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노교소에 수감되어 있을 적에, 집식구들은 집에 있던 모든 대법서적들을 잘 간수 해 두었으며 내가 집으로 돌아오자 책들을 나한테 내 놓았다.
예전에 집 식구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나는 이들도 응당 구도해야 할 중생으로 대하지 못했다. 그들은 사회상에서의 혼란하고 부패한 현상들을 알고 있지만, 진상 이야기들을 하면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법제자들이 하는 일은 계란을 가지고 돌에다 메치는 격이라고 한다. 악당에게는 총도 있고 대포도 있는데 그들을 어찌한단 말인가 라고 하면서 어떻게 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되지 사악한 자들의 박해를 받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9평>>, <<예언중의 오늘>>,<<추배도>>, 대법진상을 거의 모두 알고 있으며 중공에서 퇴출하기도 했지만 과연 그럴까 하면서 반신반의하고 있으며 두려워하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도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그러나 과일 같은 것을 사게 되면 먼저 사부님께 올리라고 나한테 일러주며, 친척이나 친우들을 탈당하라고 권고도 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자사자리하며 이익 앞에서 좋지 않는 일을 할 때가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사람으로서의 표준을 이야기 해주면, 그들은 심정이 유쾌하면 들어도 잘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생억지를 쓰거나 마구잡이로 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속인은 “似是而非、言不由衷”이란 말씀을 생각한다. 이때 나는 자신을 향해 찾는데 내가 그들에 대한 요구가 높으며 선한 마음이 부족하고 상화롭지 못하거나 정이 있으며 “사”가 있는 것은 발견하게 된다. 집식구들이니까 말하게 되면 매우 높게까지 말했는데 이러다 보니 잘하지 못했다. 이것을 인식하고 나서는 이후에 이야기 할 때 많이 상황이 개변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당신들의 가장 큰 사명은 바로 법을 수호하는 것이다. 대법을 파괴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당신은 관계하지 말고 ” “왜냐하면 그것은 법이 인간세상을 바로잡을 (法正人間)때 해야 할 일이다.”《미국 플로리다 법회에서의 설법》나의 심태가 바로잡아지자 그들은 나한테 사과를 하면서 저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한다.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에게 나는 당신들을 책임지기 위해 말하는 것이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알고 있으면서 당신들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당신들에게 미안한 것이다. 우리는 한집식구인데 모두가 매우 큰 연분이다. 나는 내가 꼭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내가 잘하지 못한 것이며, 언제나 집사람들이라고, 정의 성분을 넣었던 것이다.
5. 사심을 제거하며 동수들과 함께 공동 정진하다
동수지간에 모순이 생기면 협조를 잘하여 모순을 해결하고 정체적 원용을 해가면서 법을 실증하고 능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갔다. 예를 들면 한 동수가 있었는데 그는 이 지역의 정체적인 협조에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었으며,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3가지 일과 정법의 노정에 따라가는 주도적 작용과 추진 작용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도 부족한 일면이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법제자들의 책임자는 실은 단지 하나의 협조자이고 연락인이며 한 전달인(傳達人)에 불과하다. 당신들은 그들을 사부님처럼 대하지 말라. 그처럼 큰 희망을 걸고 당신들 수련의 의지로 여기고 무슨 일이든 그가 반드시 다 잘 해야 한다고 여기지 말라.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 이 책임자가 정말 사부님처럼, 또는 문제를 생각함에 있어서 전면적이고 절대 틀리지 않는다면,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수련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가 제일 전면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당신이 생각할 것이 없으며, 그가 한 일이 가장 좋으므로 역시 당신이 할 것이 없게 된다. 바로 이런 도리가 아닌가?” “대법제자들이 자율적으로 공동협조하고 곤란을 극복하며 대법제자의 지혜를 충분히 발휘해서 일을 잘 하고 더욱더 완벽하게 할 것이다. 책임자가 이 일에 대하여 충분한 생각을 못했고 심지어는 실수가 있기 때문에 대법제자들이 일하는 과정 중에서 그것을 확보하기 마련인데,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위덕이다. 곤란 앞에서 원망하지 말고 또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도 하지 말라. 사부님은 볼 수 있고 뭇 신들이 볼 수 있다. 잘 하였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의 영원한 위덕이다.”
법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바로 잡으며 자신을 향해 찾는 중에서 나는 그 동수와 협조를 하는 방면에 나 자신을 집착하고 있는 “이기심”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동수는 어느 한 시간, 장소든지 가리지 않고 사심이 없이 나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었다. 물론 어조는 선하지 못할 적도 있었지만 마음만은 좋은 것이다. 비록 어떤 때는 얼굴이 가려워 질 때도 있었지만 나는 모두 받아 들였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나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라는 것을 완전히 깨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는 부족한 점을 보아내고 제때에 지적해 주는 사람이 이 지역에서는 그렇게 많지 못했다.
나는 박해를 받고 돌아온 후 많이는 찬양하는 소리를 들었으며 부족한 점을 지적해 준다는 것은 정말로 고마운 일이었다. 나로 하여금 점차적으로 자아를 찾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오늘에야 비로소 나에게 숨어있던 매우 큰 이기심을 보아 냈는데, 깨닫지 못하면 그저 동수가 나를 도와서 제고하게끔 하기를 바라고 있었으며 진정으로 책임감에서 다른 동수를 도와주지 못했다. 설령 하였다 해도 진정한 마음으로 하지 못했으며 방법도 그렇게 합당하지 못했다. 넘기 어려운 난이나 집착이 생기면 그 동수를 찾아가서 교류를 하면서 답안을 찾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당시 심성이 제고되지 못하고 법리도 깨닫지 못했기에 교류를 통해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았으며, 또 다시 대법제자가 응당 해야 할 일들을 해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동수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못했으며 그도 집착이 있으며 심성이 제고되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 그 자신이 법에서 깨달아 제고하기만을 바랐다. 그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응당 선의적으로 지적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무엇이 동수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인가?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책임을 져주기만 바라고 나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아서야 되는가? 이것이 수련인의 심태인가? 틀렸다.
물론 어떤 수련자도 동수가 지적해 줄 적에 부동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한 동수가 자기만 지켜본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착오적인 인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진정 법에서 자신을 찾을 때 자기가 집착하고 있는 것을 인식했을 적에 그는 “한번의 실수는 천고에 한을 남기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먼저 동수를 도와서 문제를 인식하게 하고 제고하게 했으며 이 최후의 순간에 자신에 유감을 남기지 말라고 하면서 공동으로 정진하여 최후의 길을 잘 걸어가자고 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수련인인가 하는 것은 사부님께서《전법륜》제 1강의에서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속인들은 자신의 장점으로 다른 사람의 단점을 비기며, 자기 것은 모두 좋고 옳다고 여기면서 결함과 부족한 부분은 숨기며 찬양소리만 들으려고 한다. 그러나 수련인은 이와 반대로 자기의 단점을 다른 사람의 장점과 비기며, 수시로 자신을 향해 찾으며 부족한 것을 수련하며 폭로하고,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수들이 도와서 지적하여 제거하게 하며 이렇게 진정으로 자신을 제고하여 올라간다.
그렇다면 자기에게 집착이 있을 적에 동수들이 지적하여 준다면 이것이 좋은 일이 아닌가? 왜 저촉하는가? 당신이 저촉할 때 동수들이 보다가 조급해 하면서 때로는 회피한다. 이것을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가 받아들이던지 받아들이지 않든지 간에 모두 선의적으로 방법을 대어 도와주어야 한다. 나의 주변에 한 동수가 있는데 오랫동안 발정념을 하면 손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는 몸과 마음을 다 하여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에 대한 수련을 중시하지 못하고, 법공부를 착실하게 하지 못했기에 장시간 상태가 좋지 못했다. 동수들은 줄곧 그가 정념이 강하기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여겼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줄곧 그와 우리들에게 정체적으로 깨달을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진정으로 효과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비록 그 동수한테 지적해 줄때도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대로 놔둬 버렸으며 근본상, 법리상으로 그를 깨우치지 못했기에 진정으로 동수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대하지 못하고 하나의 견고한 정체를 이루지 못했다. 마지막에 이 동수는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와 박해를 받게 되었으며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으로 사악의 박해를 저지했기에 그렇게도 큰 것을 감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동수는 정말로 대단했는데 오늘까지 줄곧 사부님과 대법을 견정하게 믿으면서 지나왔다.
그렇다면 우리 더욱 많은 동수들의 교훈은 무엇인가? 동수가 집착이 있을 적에 가서 선의적으로 지적해주어 동수로 하여금 기로에서 나오게 하지 않고 박해를 받게 되어서야 다시 가서 그를 구출해 내와야 되는가? 오늘에야 나는 비로소 무엇이 “조사 정법”이고 동수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사부님께 덜 심려를 끼치게 할 수 있는가를 깨달았다.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동수의 잘 수련된 부분만 늘 입에 담지 말고 응당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해야 하며, 서로 배합하는 중에서 책임을 지고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만 동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인가 하는 것을 해내고 생각해야 한다. 하나의 진정으로 견고하여 타파할 수 없는 정체를 이루어, 공동으로 3가지 일을 잘하며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정법의 마지막 단계이며, 아직도 걸어 나오지 못한 동수들이 있고, 중생들이 구도되기를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응당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잘하는 동시에 대법제자가 응당 해야 할 일들을 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 지견 >>으로 동수들을 면려한다.
지견《志坚》
고난 속에 태어나
생계를 위해 허덕이며 버티어 왔구나
어느 날 아침 대법을 얻었거니
되돌아 가는 발걸음 멈추지 말거라
(제2차 대륙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
문장완성:2005년 10월 20일
문장발표:2005년 11월 15일
문장갱신:2005년 11월 15일 13:07:00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11/15/11429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