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화북지구 대법제자 심련
[ 명혜망 2005년 11월 12일] 나는 2000년 7월에 법을 얻은 제자이다. 금방 법을 얻었을 때 나는 너무나 행운이었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또 내가 법을 너무 늦게 얻은 것이 유감스러웠고 후회되었다. 나는 열심히 법 공부를 하는 동시에 또 동수들과 교류를 하였다. 그때 우리지역의 동수들은 벌써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하고 있었다. 한 노 제자가 나에게 물었다 – 당신은 감히 진상자료와 전단지를 배포할 수 있습니까? 나는 말했다 –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대법제자입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습니다. 노 제자가 능히 할 수 있다면 나도 능히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몇 장씩 배포하기 시작한데로부터 나중에는 몇 십 장씩 배포했다.
어느덧 2001년이 되었다. 천안문의 거짓 분신자살사건이 있은 후부터 동수들은 계속 북경으로 법을 실증하러 갔다. 나는 동수들과 북경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준비가 잘 되지 못하여 북경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가 집을 이사한 후 아는 동수들과 거리가 멀어졌다. 동수들은 북경에 다 갔는데 나 혼자만이 가지 못하였다. 동수들의 도움과 고무 하에서 2001년 하반기에 북경에 가게 되었다. 길을 떠나기 전 옆 동네 동수가 말했다 – 당신이 북경에 가면 책과 자료들을 모두 가지고 오세요, 만약 일이 생기게 되면 이 많은 책들이 얼마나 아까와요! 나는 속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가져오든 가져오지 않던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니까.
내가 버스를 타고 버스 역으로 갈 때 금방 버스에 올라앉자마자 경찰이 차안에서 신분증을 검사하고 있었다. 내 앞에 두 여자가 신분증을 내보였다. 그 경찰은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차표를 산 후 앉아서 발정념을 했다. 기사와 승객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지금 북경에는 아주 엄하다. 외국에서 온 30여 명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북경에서 붙잡혔다고 한다. 북경에 들어가는 차량과 사람들은 모두 검문하고 신분증을 검사한다고 했다. 이때 나는 차멀미가 좀 나서 앞 의자 등에 엎드렸다. 한 경찰이 올라왔다. 그때 나의 마음은 흔들렸다. 마음을 바꾸어 상관치 말자고 생각했다. 계속 엎드려 있었다. 이때 경찰이 나의 어깨를 툭 쳤다. 나는 머리를 들었다. 경찰이 말했다 – 괜찮습니다. 주무십시오! 차에 오를 때,점심 때 쯤 북경에 도착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결국 도중에 길이 막히고 북경에 거의 도착할 때 안개가 끼어서 12시경이 되어서야 북경에 도착하였다. 광장에서 장대를 찾아서 현수막을 걸고, 천안문 동쪽에도 현수막을 걸어놓고 오후 6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은 아무 일도 한 것이 없고 오직 법을 실증하려는 하나의 마음이었다. 나는 또 알게 되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께 달렸다.” 큰 시비 앞에서 자신을 능히 깨끗이 가려낼 수 있어야 하고 고비를 넘길 때는 능히 심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동수들과 교류할 때 동수도 나에게 큰 뜻도 품어야 하지만 작은 일에도 주의해야한다고 깨우쳐주었다. 참는 것을 자신으로서는 해내기가 아주 어려웠다. 문제에 부딪칠 때는 화를 잘 낸다. 화를 낸 다음에 후회한다. 참지 못하고 또 선한 마음과 자비를 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나는 또 가정에 마난이 있는 동수들과도 교류하려고 한다. 2003년 “사스”시기 동네 한 여자애가 우리 집에 왔다. 나는 그녀에게 진상을 말했다. 그녀도 알게 되었다. 그 여자애가 간 후, 아들이 야단치는 것이었다. 당신이 혼자 집에서 배우면 그뿐이지 집에 온 사람에게 말할게 무엇이냐고, 당신이 잡혀 들어가면 나는 공부조차도 하지 못하게 된다. 아들은 중학생이다. 나는 급히 아들에게 말했다 – 괜찮아, 우리가 하는 일은 다 좋은 일이야! 아들은 울면서 엄마가 정말로 붙잡힌다면 나는 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아들은 듣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알지 못했다. 아들이 왜 그러는지, 평상시에는 대법을 인정하고 진상도 잘 알고 있는데 왜 이러는지? 나는 손을 입장하고 발정념을 하면서 아들 뒤에서 조종하는 일체 사악을 깨끗이 없앴다. 그 이튿날 아들은 나에게 말했다 –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정성을 들여 이야기하세요. 처음 법공부 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엄마에게 말씀하셨더군요. 엄마도 그 사람들처럼 그렇게 이야기 해주세요. 나는 갑자기 청성해졌다. 원래 아이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라 아이의 뒤에서 사악의 요소가 조종하여 교란하였던 것이다.
또 하나는 나와 옆 마을 동수의 일이다. 내가 아는 동수는 조금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동수가 나를 찾아오면 나는 그녀를 만나기 싫었다. 원인은 그녀가 이지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두 번이나 나를 찾아왔으나 나는 그래도 그녀를 만나기 싫었다. 2005년 5월 어느 날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법공부도 적게 했고 동수들과 교류하는 기회도 적었다. 한 번은 화를 내면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쓰러져 넘어졌다.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일이 지난 후 자신을 찾아보았다. 어디 잘못했는지? 평상시 무슨 일이 부딪쳤을 때 나는 안으로 자신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항상 다른 사람을 보면 눈에 거슬렀다. 완전히 법의 요구와 어긋나게 행동을 했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낡은 세력의 안배를 승인했다.
이때 이 동수는 또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녀와 같이 법공부를 하면서 교류했다. 나의 다리가 낫지 않아 그 동수가 자료를 배포했다. 그녀와 교류를 통해 나는 그녀의 몸에서 불꽃 튀는 점을 발견했다. 그녀는 가정의 모든 압력을 극복하고 돈을 모아 자료를 만들었다. 진상을 알리는데 조급성이 있어서 어떤 때는 과격할 때가 있었다. 이럴 때 나는 그녀에게 지적해준다. 그녀의 몸에서 나의 부족한 점도 보아낼 수 있었다. 우리들은 같이 법공부하고 어떤 때는 같이 진상자료도 만든다. 한 번은 한 문제에서 우리 둘은 모순이 생겼다. 처음에는 둘 다 상대방을 원망하면서 밖으로 찾았다. 둘 다 자신을 찾지 않았다. 한동안 지나서야 심태가 안정되었을 때 법으로 대조하여 보니 우리 둘은 다 틀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련하는 사람이지 속인이 아닌데 어떻게 남의 잘못만 보고 자기 수련을 하지 않겠는가? 후에 와서는 우리 둘은 마음을 터놓고 교류하였는데 둘 사이도 처음과 같이 좋아졌다.
집착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속의 돌덩이가 없어진 것만 같았다. 나 자신도 몇 년을 수련했는데 이제야 자신을 찾는 것을 배우는 것 같았다. 금방 법을 얻었을 때 무슨 일을 하던지 모두 노 수련생이 하는 대로 따라했고, 입에서는 말한다는 것이 나는 대법제자로서 어떠어떠하다고 했다. 최근 이 2년 동안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대법제자라고 할 수 있나 없나,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하는지 도달하지 못하는지를 법으로 대조해 보고 동시에 동수들과의 차이도 본다. 이 심득체험을 쓸 때 많이 힘들었다. 자신의 문화수준이 낮아서 잘 쓰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동수들의 격려로 이 글을 썼다. 이제 나는 진심으로 과거와 지금의 나를 많이 도와준 동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더욱이 우리를 위해 지대한 대가를 지불하시면서 자비로 고도(苦度)하시는 우리의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허스!
제2기 대륙대법제자 심득수련 서면교류대회 교류원고
문장완성:2005년 11월 10일
문장발표:2005년 11월 12일
문장갱신:2005년 11월 11일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11/12/1142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