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베이(河北) 장자커우(張家口) 대법제자 장리화(張麗華)
【명혜망 2004년 10월 25일】(계속 이어집니다)
나는 장자커우 십삼리 구류소에 15일 동안 감금된 후 쉬안화(宣化)간수소로 압송되었으며 또 새로운 동수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 함께 법을 학습하고 암송하였다. 이튿날 쉬안화 간수소에서 감옥을 몽땅 수색하였는데, 나는 줄곧 사부님의 『전법륜』과 볼펜으로 베껴 쓴 사부님의 경문을 팔소매 안에 넣고 암송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대법책은 찾아내지 못했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우주진리(宇宙眞理)에 대한 견고하여 파괴될 수 없는 정념(正念)은 선량한 대법제자(大法弟子)의 반석같이 확고한 금강지체(金剛之體)를 구성했는데, 일체 사악(邪惡)으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케 하고, 방사(放射)해 낸 진리의 빛은 일체 생명 (生命)의 바르지 못한 사상 요소를 해체시켰다. 얼마나 강한 정념(正念)이 있으면 얼마나 큰 위력(威力)이 있는 것이다. 대법제자들은 참으로 속인 중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역시 두세 마디를 말하다 (也三言兩語)』)
3일 째 되는 날, 경찰들은 나와 궈구이위안(郭桂媛)에게 수갑을 채우고 불법으로 장자커우구와 멀리 떨어진 상이셴(尙義縣) 간수소에 감금시켰다. 그곳에서 나의 오리털 잠바를 직장 운전 기사에게 가져가라고 하였다. 그 옷에는 『전법륜』과 손으로 베껴 쓴 경문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그 책이 없으면 안 되기에 나는 간수에게 “다른 것은 다 가져가도 되지만 그 옷만는 안 된다.” 고 하였다. 그랬더니 나의 견정한 정념하에 그 옷을 끝내 남겨 놓았다.
비록 감금된 기간 동안 단식으로 항의하며 시달림을 당해 각혈을 하였지만, 법이 있는 한 고생스럽다는 감각이 없었다. 불법으로 감금되어 있는 기간 5.1로(五一路)파출소에서는 만위안을 벌금으로 내라고 협박하였다. 나와 함께 있던 많은 사람들은 울면서 이렇게 좋은 사람을 붑잡아 가두고 또 벌금까지 물게 한다면서, 모두들 진심으로 나를 위하여 기부하였다. 나의 담당자는 상급자가 알까봐 무서워하며 맹목적으로 그 일을 눌러 놓았다. 전 남편은 외도를 하면서 돈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모르는 상황에서 딸이 아껴서 결혼식 때 쓰려고 남겨놓은 2000위안도 모두 공갈로 빼앗았다. 이렇듯 나쁜 사람들은 내가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지 않을 줄 알고는, 나의 친척들을 협박하여 보증서를 쓰게 하고 나를 불법으로 감금하여 1개월이 지난 후에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0년 5월 무렵,장씨의 위협 하에 직장에서는 나를 정공처(政工處, 역주:정치공작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판공실로 옮겨 잡일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그 곳에서 나 혼자 34명이 하는 일을 하게 하였다. 흙을 쳐내고, 화장실 청소, 물을 긷고, 복도 청소, 유리 청소, 그때는 또 직장에서 집수리를 할 때라 일이 특히 더 많았다. 저녁에 딸과 동생이 나를 데리러 와서는 나를 도와 흙을 버리고 땅바닥을 닦기도 했다. 원래의 선전 표어 등도 나에게 쓰게 하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깊이 되새기고, 비록 일은 많았지만 모두 진지하게 잘 하였다. 이 기간 5.1로 판사처, 파출소에서는 직장, 식구들의 감독하에 나더러 연공하는 사람들과 내왕하지 못하게 하였다. 장씨 정치깡패집단의 위압하에 딸과 여동생들은 매일 택시를 불러 나를 출퇴근시켰다.
2000년 5월 13일 어느 날, 내가 층집의 복도를 청소하고 있는데 직장 경리가 와서는 들리는 말에 100명이 넘는 파룬궁 제자들이 붙잡혔으니 나에게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였다. 여기까지 들은 나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오늘은 法輪大法의 날이다. 사부님께서는 법을 전하고 중생을 구도하시기 위하여 온갖 고초를 다 겪으셨다. 장씨의 잔혹한 박해하에 사부님께서 모욕당하고, 대법이 모함당하고, 대법제자는 청원하러 가면 박해를 받는다. 어떻게 마음이 편안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할 일들을 다 해 놓고 열쇠를 남겨놓고 뒷문을 통해 직장을 빠져나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떠났다.
베이징으로 가는 도중에 동수 왕아이링(王愛玲)등을 만났다. 저녁에 융딩먼(永定門) 정거장에서 휴식할 때 왕아이링이 나를 보더니 사부님의 법을 보고싶다고 하였다. 내가 『전법륜』책을 주어 그녀가 한참 읽고 있는데 갑자기 한 경찰이 와서 각 방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게 신분증을 보자고 하면서 몸을 수색하였다. 왕아이링은 손을 뒤로 넘겨 책을 나에게 넘겨 주었다. 당시 나는 한 가지 일념밖에 없었다. ‘이 보배책을 절대로 그들의 손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책을 받아서 내가 입고 다니는 옷 주머니에 감췄다. 경찰은 나의 옆에 있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였다. 깊은 밤 융딩먼 파출소에서 불법으로 심문당할 때 25세 정도의 한 뚱뚱한 경찰이 심문하면서 물었다. “당신의 몸에 책 한 권이 있지요? ” 나는 울면서 그에게 이 책의 내력을 이야기하면서 부탁하였다. 대법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바로 자신의 생명을 중히 여기는 것이니 이 책만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그는 다시는 더 물어보지 않았고 또 다른 사람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 이튿날 우리는 장자커우(張家口) 베이징 판사처로 압송되었다. 장자커우 공안국장 리징윈(李景雲)은 기세 사납게 욕을 하였다. 또 당신 왕리화인가? 그리고 나서 5.1로(路) 판사처에 돈을 요구했다. 5.1로 판사처 창샤오칭(常小青)은 나를 핍박하여 직장에서 사람을 부르게 하면서 또 식구들에게 2000 위안의 돈을 아무런 절차도 없이 갈취하였다.
2000년 6월, 생각할수록 이렇게 좋은 법이 박해를 받고, 사부님께서 모욕을 당하고, 제자들을 왜 이렇게 못살게 만드는지, 나는 갑갑하여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잠든 틈에 신을 손에 들고 슬그머니 빠져나와 또 다시 베이징으로 대법을 실증하러 떠났다. 아침 4시에 톈안먼 진수이교(金水橋)에서 가부좌를 하다가 베이징 주재 판공실 사람들에게 납치되어 5.1로 파출소에 잡혀갔다. 그 곳 파출소 판사처에서는 식구들에게 1000 위안을 내고 데리고 가게 하였다. 당시 여동생이 그들에게 언니가 당신들에게 시달려 피를 토하고 또 월급도 받지 못해서 나에게는 겨우 300 위안 밖에 없다고 하여 300 위안을 받고서야 나를 풀어주었다.
2000년 7월 22일, 내 일생 중 제일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다. 당시 나의 일념은 그 누가 가지 않아도 나 혼자라도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려고 하였다. 이 날은 딸의 휴가날 이었다. 딸이 달콤하게 자고 있는 기회를 타서 집에서 슬그머니 나와 장자커우 5.1로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5.1로 파출소 판사처의 얼굴이 검고 야윈 사람과, 공안국 리잉빈(李迎賓) 등이 나를 협박하여 불법으로 장자커우 13리 구치소에 감금 시켰다. 내가 단식으로 항의한 7일 째 되는 날 장자커우 시위원회 서기 양더친(楊德慶), 시 공안분국 국장 옌즈유(閻志有), 부국장 마푸웨이(馬福維) 등의 직접적인 조종하에 5.1로 파출소 리잉빈과 화위안가(花園街) 파출소 공안이 나와 팡슈전(方秀珍), 장중리(張仲麗) 등 5명의 동수들을 직접 탕산(唐山) 카이펑(開平) 노교소로 압송하였다. 당시 나는 피를 토하고 체온이 39도로 올라가 당산에서는 감히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리잉빈은 억지로 저항하면서 접수하게 하였다. 노교소에서는 나의 생명이 위험한 것을 보고는 금방 나를 내보냈다.
* 몸은 비록 마귀굴에 갇혔지만 정념으로 노교소를 뛰쳐 나오다.
2000년 8월 8일, 이른 아침 6시에 어머니 집에 있는데,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는 남동생인 줄 생각하고 문을 열었는데, 5.1로 판사처 서기 창샤오칭(常小青)이었다. 그가 어머니에게 내가 여기에 있는지 묻자 모친은 있다고 하였다. 그는 급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가 한 무리의 경찰들을 불렀다. 한 무리의 경찰들은 집으로 뛰어 들어와 안팎을 수색하고는 연로한 모친을 보고 물었다. 팡슈즈(方秀枝), 장중리가 어디로 갔는가? 하면서, 그를 찾아 몇마디 할 말이 있다고 하여 모친은 속아 넘어갔다. 이리하여 나는 큰 차에 묶여 압송되었다.
당시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나는 옷을 얇게 입고 있었다. 악인 창샤오칭, 리잉빈이 나를 강제로 탕산 카이핑 노교소로 압송하던 중, 나는 당시 기회만 있으면 정념으로 탈출하려고 하였는데, 내가 집에 있을 때 봉쇄된 상태에 있다보니 기타 동수들과 접촉하지 못하였으므로, 노교소에 가면 많은 대법 제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착오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바로 바르지 못한 일념으로 인하여 나는 마귀 굴에 떨어져 심한 고통을 받게 되었다.
노교소에 막 들어가자마자 강제로 몸을 수색 당하여 사부님께서 외국에서 설법하신 것을 베껴 쓴 경문을 모두 빼앗겼다. 나는 보귀한 대법책을 잃어버려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나중에 단식으로 항의하여 그들이 수색해 간 대법책을 되돌려 오게 하였다. 노교소에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사부님의 설법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동수들은 내가 되찾아 온 대법책을 서로 전하면서 베꼈다. 내가 밥을 먹고 국을 좀 먹겠다고 대답한 그 이튿날 가부좌하고 있을 때 하나의 금황색 유리컵에 물이 절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한 일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고 점화시켜 주셨다. 사흘째 되는 날 가부좌 했을 때, 눈앞에 두 개의 금꽃 테두리가 있는 사발이 엎어져 있었다. 나는 단번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다. 그 금꽃 테두리가 있는 사발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남겨주신 제일 좋은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잇따라 우리는 사부님의 신경문 『이성(理性)』과 『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去掉最后的执着)』두 편의 경문을 보았다. 학습하고, 암송하여 나는 금방 깨닫게 되었다. 이 노교소는 수련인들이 있을 곳이 아니다. 더는 여기서 사악들에게 묶여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로서 중생을 구도하는 중대한 사명을 어깨에 짊어졌으니, 더욱이 사악들이 제멋대로 좌우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만약 한 수련자가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생사의 생각을 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사악한 것은 틀림없이 두려워한다. 만약 모든 수련생들이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사악한 것은 바로 자멸(自滅)할 것이다.”(『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去掉最后的执着)』)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말씀은 나의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당시 나는 속으로 단식은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이것은 박해를 제지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느꼈다. 따라서 각종 음식물의 유혹하에서 나는 억제하려고 노력하면서 식욕을 극복하였다. 마귀굴에서 빨리 나와 빠른 시간내에 세인을 구도하는 거센 흐름 속에 뛰어들기 위하여 견정한 신념으로 단식을 끝까지 견지하여야 했다.
2000년 10월 노교소에서는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를 가중시켰다. 대법제자들을 나눠서 감금하여 매일 강제로 행진을 시키고 군대식 자세를 취하게 하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또 우리 대법제자들을 핍박하여 대법을 모욕하는 비디오 테이프를 보게했으며, 강제로 대법을 모독하는 녹음을 듣게 하였다. 또 강제로 세뇌반에 넣어 박해하면서 대법제자들끼리 서로 말을 못하도록 하고, 화장실 가는 것도 정해놓은 시간이 있었다. 누가 가부좌를 했다 하면 악경들이 그 사람을 침대에서 끌어내 죽도록 폭행했다. 그들은 나와 비옌전(畢艶珍) 등 대법제자들을 여러 번 수갑을 채워 침대의 쇠 난간, 큰 교실의 쇠난간에 묶어놓거나, 채소밭의 나무에 묶어놓는 등 ……박해를 진행하였다. 제일 고생스러운 것은 노교소를 여러 번 수색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슨 핑계를 대어 모두 밖에 내보내고는 기회를 타서 연공인들이 엄중한 혹형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친필로 베껴 쓴 사부님 설법을 몽땅 수색해 갔다. 이렇게 사부님의 설법을 빼앗긴 수련생들은 비할바 없이 비통하여 안타까운 마음에 슬피 울었다.
그후 모든 대법제자들은 기회를 찾아 당신이 한 단락, 내가 한 단락 법을 학습하였다. 2001년 원단이 지난 어느날 저녁 11시가 훨씬 넘어 돌연 사부님의 경문 『더는 참을 수 없다(忍无可忍)』, 『사악을 질식시키자(窒息邪恶)』와 명혜 편집부 문장이 나팔소리 처럼 생생하게 전해왔다. 사부님의 법을 들은 후 , 우리 대법 제자들은 모두 할 말을 잊고 통곡하였다. 그 이튿날 노교소에 새로 감금되어 들어온 대법제자 리수팡(李淑芳), 그녀가 들어와서 우리에게 큰 목소리로 사부님의 새로운 경문을 암송하였다. 그리고 글로 써서 가스관 틈으로 다른 동수들에게도 보내줬다.
2001년 구정 전 어느 날, 아침 6시가 좀 지나 동수들은 약속도 없이 다 같이 소리내어 사부님의 『홍음』중에서
「법을 돕다(助法)」
“중생을 제도하리라 품은 마음, 스승을 도와 세상에서 행하네, 나를 도와 법륜을 돌리나니, 법은 이루어 천지간에 행하네”.
「위덕(威德)」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거니, 진선인이 마음속에 있네, 세상에 대나한을, 귀신도 굉장히 두려워하네.”
또 기타 등등의 사부님의 법을 읽어 전 노교소를 깜짝 놀라게 했으며, 우주를 진동시켰고, 정법을 저애하는 사악을 없애버렸다. 이러한 정념의 마당은 연속 며칠동안 지속되었다. 그랬더니 여자 교도원들이 2~30명의 남자 교도원들을 불러왔다. 그들은 모두 술에 취해서 흉기를 들고 흉악하게 소리를 질렀다. “누가 또 암송하면 밖에 끌고 가 얼게 하고, 수갑을 채워 달아 매고, 노동교양 기간을 연장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40여 명의 대법제자들을 나무에 수갑을 채워 달아 맸다. 대법 제자들이 그들에게 톈안먼 분실 자살 사건은 가짜라고 말하면, 그들은 올라와서 뺨을 여지없이 때렸다. 대법제자들의 얼굴은 모두 맞아서 흑자색으로 변하였다. 많은 대법 제자들을 얼렸으며, 하루 밤낮을 달아 매 놓았다. 친황다오(秦皇島)대법제자 부웨이핑(付偉平)은 박해를 받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여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
엄동설한의 어느 날, 날이 밝기도 전에 악경들은 대법제자들의 두 팔을 뒤로 돌려 장기간 나무에 달아 매고, 쇠난간에 달아 매면서 여러 번 박해를 진행하였다. 또 한 번은 내가 사부님의 경문을 암송하고 있었는데 감시원 자오샤오훙(趙小紅)이 와서 나를 때려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교도원 위쥔(魏群)은 전기 방망이를 대법 제자의 입과 입안에 넣고 전기 충격을 가하였다. 대법 제자 캉수샹(康淑香)의 입은 전기충격으로 인하여 온통 물집 천지여서 말도 못하고 음식도 넘길 수 없었다. 대법 제자 하오젠린(郝建林)의 얼굴과 입은 모두 붉은색과 자색의 상처가 생겼다.
참혹하고 비인간적인 박해 하에 2001년 구정이 지난 후 노교소의 98%의 대법 제자들은 단식으로 이 참혹한 박해를 제지하고 중지할 것을 항의하였다. 전 6반의 전체 대법제자들은 연속 20여 일을 단식하고 있었는데 사악한 낡은 세력은 대법 제자 저우시멍(周西蒙)의 가족들이 보내 온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가져왔다. 맛있는 것으로 유혹하여 4,5명의 대법 제자가 연이어 음식을 먹었다. 그들은 또 나의 입에도 그 음식을 넣었는데, 저녁에 나의 꿈에서 연속으로 밥을 먹은 동수들은 산꼭대기로 올라갈 때 모두 굴러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점화시켜 주신 것이었다. 우주의 진정한 보위자로서 나에게 의지를 견정히 하고 나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음식물에 대한 욕망을 해체시킬 힘을 주셨다. 나와 다른 대법 제자들은 계속 단식을 견지하며 모두들 서로를 고무하고 격려하였다. 동수들은 경찰들이 육친의 정[親情]을 이용해 보내 온 각종 음식을 모두 되돌려 보냈다. 인간성이 없는 참혹한 박해를 제지하기 위하여 대부분의 대법 제자들은 각종 유혹, 각종 시달림에도 대법에 대한 반석같이 굳은 마음을 변하지 않았다.
단식을 기본적으로 지키며 우리는 또 종이와 볼펜을 요구하였다. 그리고는 고소장을 쓰고 가족에게 편지도 보내고 우리들의 친한 벗들에게도 텔레비전에서 연기한 것은 모두 가짜라고 알렸다. 며칠이 지난 후 노교소에서는 우리들의 유일한 종이와 볼펜 등을 모두 몰수해 갔다. 동수들은 방법을 생각하여 자기의 손가락 끝을 터트려 제일 깨끗한 침대보를 찢어 혈서로 우리들의 마음의 목소리를 썼다. 또 우리 사부님은 청백하다! 또 대법은 청백하다! 사부님께서 귀국하실 수 있게 하라! 모든 감금된 대법 제자들을 석방하라!…… 이렇게 정념이 아주 강한 나날을 보내며 내가 기억하는 것은, 끌려 나가 행진 걸음을 할 때 야위어서 가죽만 남아 있었다. 경찰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경찰이 나를 불러서 말하기를 “당신들은 내가 여기 무얼하러 왔는지 아는가? 우리가 바로 당신들을 파괴하러 왔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마음으로 느끼고 눈으로 본 가장 탄복할 만한 것은 바로 당신들의 사부와 법에 대한 그 견정한 마음이었다.”고 하였다.
참혹한 박해 중에서 장기적으로 단식을 하며, 법을 보지 못하여 하루가 일 년같이 지루하였다. 사부님의 설법을 기억하기 위하여 길을 걸을 때, 식당으로 밥먹으러 갈 때, 누워 잘 때, 우리는 각자가 기억한 법을 상대방에게 알려주었다. 이렇게 극히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앞뒤로 모두 『이성』, 『미국 서부법회에서의 설법』, 『사악을 질식시키자』, 『강제로는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없다』, 『북미 대호구법회에서의 설법』후반 부분, 『대법 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 『더는 참을수 없다』와 명혜 편집부 문장 『엄숙한 교훈』 중 사부님의 설법 등을 암송하였다.
내가 단식으로 불법 박해를 항의하기 시작한 지 130일이 되는 날, 교도원이 나의 머리를 잡아채고는 침대에서 아래로 끌어 당겨 사지를 쇠침대에 묶어놓고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 없게 하고는 강제로 매일 나에게 음식물을 주입시켰다. 장기적인 참혹한 박해로 인해 나는 혈압이 40~60으로 내려가서 조금만 움직여도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하였다. 남은 것은 앙상한 뼈 뿐이었다. 나에게 음식물을 주입시키던 한 범죄자는 나를 보고 “왕언니! 조금만 드세요, 다만 두끼라도 드세요!” 라고 하였다. 나는 여기에 먹고 마실려고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매일 사부님의 법을 암송하면서, 이러한 욕심이라는 마(魔), 먹고 싶어하는 마(魔)를 사부님의 법은 이러한 것들을 일찍 없애 버려주신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나를 병원으로 보냈는데 금방 들어온 동수가 차에서 조용히 사부님의 정법 구결을 알려 주었다. 이튿날, 범인들이 행진할 때 교관은 단식하는 대법 제자들을 앞으로 불러 내어 강제로 그들의 걷는 모습을 보여 주어 대법 제자들을 모욕하려고 하였다. 대법제자 왕단화는 대열에서 나와 “法輪大法好!(파룬따파 하오)를 높이 외쳤으며, 나도 대열에서 뛰쳐나와 “法正乾坤 邪惡全滅”하고 높이 외쳤다. 그랬더니 경찰과 교관들은 무서워 하면서 올라 와서 나의 뺨을 불이나도록 치면서 “이 할머니가 왜 이렇게 앞장을 서는거야” 하였다.
3일 째 되는 날, 그들은 강제적으로 나를 마자거우(馬家溝) 병원에 입원시켰다. 나는 이 기회를 빌어 의사, 간호사 ,병실의 모든 사람들에게 “천안문 분실 자살 사건”은 가짜로 연극하여 파룬궁을 비방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비방하는 것 때문에 노교소에서 98% 이상의 대법 제자들이 모두 단식하고 있다. 또 우리 사부님는 청백하시다! 대법은 청백하다! 나는 이전에 온 몸이 병 들어 곳곳에 다니면서 약을 썼지만 효과가 없어 날마다 고통스러운 생활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이 法輪功을 수련한 후 한 알의 약도 먹지 않았는데도 온 몸의 병이 모두 나았다. 지금 나는 불법으로 감금되었고 금식으로 100여 일 동안을 항의하였지만 나는 병이 없다. 그들이 나를 박해하여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 따름이다……
교도원이 나의 말을 제지시키자 병실의 간호사는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가, 말하게 하세요, 우리는 이 사람의 말을 듣고 싶어요.”라고 하였다. 이 때 옆에 있던 환자의 아들이 조용히 나에게 “이 공법은 정말 좋습니다. 이후 나도 연공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수액 주사를 놓을 때 나는 주사 바늘을 뽑아 놓고 그들에게 나는 병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들이 나에게 음식물을 투입하려고 하여도 할 수 없었다. 하루는 갑자기 가슴이 아파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여 생명이 위험하였다. 노교소에서는 자기들이 책임질까 두려워 하며 가족에 알려서 데려가게 하였다. 그 이튿날(바로 2001년 6월 16일) 나의 여동생이 제부(弟夫)와 같이 나를 데리러 왔는데 노교소에서는 그들에게 1600 위안의 돈을 갈취한 후에야 나를 집으로 보내주었다.
내가 노교소에서 참혹하게 박해받은 날들을 회상하여 볼 때 나는 매일 사부님의 일체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법과 생사를 내려놓으라는 법을 반복적으로 암송하였다. 자신을 시시각각 법에 맞추어 일사일념도 늦추지 않았고, 법과 사부님에 대한 마음은 더욱더 견정해졌다. 표면적으로는 생명이 위험한 것 같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법에 대한 반석같은 마음이 다른 공간 사악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던 것인데 이렇게 했기 때문에 비로소 나를 집으로 보낸 것이다.
2001년 6월 16일, 나는 집에 돌아 간 후 시간을 다그쳐 사부님의 『전법륜』, 『경문』을 얇은 비닐 종이에 베껴 몸에 지니고는, 또 다시 베이징에 법을 실증하러 가려고 준비하였다. 후에 동수들과 교류한 후 나는 ‘사부님의 정법 노정은 모두 순서있게 배치된 것이다. 그 때는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는 것이었고, 지금은 시간을 다그쳐 세인을 구도하는 것이다.’ 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악들의 참혹한 박해 중에서 비록 나와 식구들이 고생을 적지않게 겪었지만 마난을 두루 거치면서(노교소에 불법으로 감금된 기간 나는 두 가지 일을 제거하게 되었다. 고통스럽게 단식하고 있는 중에 남편은 나와 이혼하자고 하였고, 딸은 어머니니 감금되어 박해를 받고 아버지는 외도를 하면서 집에 오지 못하게 내쫓자, 출가하지 않은 상황에서 극히 고통스럽고 불안한 마음으로 나에게 24장이나 되는 편지와 전화로 계속 교란하고 있었다. 부부정, 자식정, 혈육의 정이 함께 교차되면서 나를 거의 붕괴하게 만들었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위하여 거대한 심혈을 지불하셨다. 많은 동수들의 고무하에 나는 반복해서 머리에 “대법을 굳게 믿고 스승을 따라야 하나니”(경문 『심자명』에서)를 아로 새기고 있으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이 일체를 모두 감당할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 되어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안배하실 것이며 심성이 표준에 도달하자 사부님께서는 가족들의 모순을 모두 선해(善解)시켜 주셨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제1회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 서면교류대회의 교류원고
문장완성 : 2004년 10월 8일
문장발표 : 2004년 10월 25일
문장갱신 : 2004년 10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http://minghui.ca/mh/articles/2004/10/25/875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