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大法)의 위엄’을 평함
이 제자가 ‘대법(大法)의 위엄’이란 문장에서 말한 것은 아주 좋은데,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이 개인수련과 다른 점인 동시에 개인수련 중에서 견실(堅實)한 기초를 체현해 낸 것이다. 대법제자에게 선(善)이 없다면 수련인이 아니며, 대법제자로서 법을 실증하지 못하면 대법제자가 아니다. 사악을 폭로하는 그것이 바로 중생을 구원하는 것이자 자신의 세계를 원만(圓滿)하게 하는 것이다.
李洪志
2001년 7월 17일
[명혜망] 사부님께서는 해외에서 설법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법은 그의 위엄성이 있다.” “이 법은 아무 사람이나 모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의 이 말씀은 줄곧 나를 지도하여 일언일행(一言一行)을 법의 각도에서 사고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집착을 내려놓고 안으로 문제를 찾은 후, 대법의 기점에서 문제를 사고하는데 더 큰 비중을 뒀다. 이렇게 하려면 무엇이 속인 상태에 부합하는 것인지, 무엇이 진정한 선(善)인지 정확히 인식해야 하고, 무엇이 정법 수련이고 무엇이 개인 수련인지에 대해 이성적인 인식이 있어야 한다.
나는 사악의 박해로 일찍부터 집을 떠나 친지들의 도움으로 생활했다. 올해 5월 초 연휴 때 나와 아내는 한 친척을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거기서 한동안 발을 붙였다. 그런데 그 집 아들이 우리의 가방에서 몇천 위안을 훔쳐 갔다. 아내는 돈을 도둑맞은 것은 우리에게 어떤 마음이나 집착이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면서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 집 식구들이 조급해하면서 아들을 욕하자 아내는 말했다. “이미 훔친 걸 어쩌겠어요.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내는 그들의 책임을 모두 무마해주려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대법제자는 돈은 쉽게 번단 말인가? 대법제자의 돈은 쉽게 도둑질해도 된단 말인가? 이 역시 사악한 세력을 조장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안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아야 하지만 원칙이 없는 것이 아니며, 각종 사악한 요소를 방종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이 친척은 우리가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하게 도와줬고, 우리도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면 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사악이 우리의 선(善)을 이용해 틈을 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즉시 친척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아이가 돈을 훔쳤다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몇천 위안을 훔치면 완전히 형사 범죄입니다. 절대 이런 행위를 방종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그를 그처럼 잘 대해 줬는데 우리 돈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두 훔쳐 갔습니다. 이건 완전히 변이된 인간의 행위입니다. 그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부담을 내려놓고 평소처럼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친척은 내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어투로 말하자 교활한 인간의 마음으로 날 위협했다. “우리는 아이가 철이 없어 당신들을 경찰에 신고할까 봐 걱정돼요. 아이가 공안에 말해버리면 당신들은 안전하지 않을 거예요.” 당시 확실히 이 점을 걱정했던 아내는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우리를 걱정해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위협한다는 것을 꿰뚫어 봤다. 나는 친척의 바르지 않은 마음을 인정하면 그들을 해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우리의 선한 면과 신고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용하려 했다. 그래서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아이가 빨리 돌아오길 바랍니다. 아이는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24시간 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전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그 이튿날 친척은 나에게 돈을 주면서 이 돈을 갚지 않으면 평생 친척들 앞에서 머리를 들지 못할 거라고 했다. 나는 그가 도리를 알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아들 대신 갚은 돈을 평온하게 받았다.
한 수련생 아주머니는 나에게 남편이 계속 자신의 수련을 교란한다고 하소연했다. 자주 위협하고 때리고 욕하다가 최근에는 이혼까지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주머니는 남편을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재산을 나눠 갖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 교란 속에서도 대법에 대한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뭐가 두려우신가요? 아주머니는 대법제자이기에 위엄이 있습니다. 대법제자가 이처럼 착한데 거지가 되어 길거리에서 잠을 자면 되겠습니까? 이건 남편 배후에 있는 사악한 요소를 방종하는 게 아닐까요? 사실 아주 많은 사람이 변이되어 착하게 대할수록 더 깔보고 박해합니다. 자신의 불순한 요소를 버렸다면 남편에게 정정당당하게 말하십시오. ‘제가 대법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이혼하려고 한다면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내 몫에 속하는 재산은 한 푼도 빠짐없이 모두 가질 거예요.’ 그리고 발정념으로 남편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해 보십시오. 진짜 이렇게 해보세요.” 이튿날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그녀가 차분하고 정정당당하게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고 한다. “당신들 수련인은 돈과 재물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아주머니는 대답했다. “우리는 당연히 돈과 재물에 집착하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 이 점을 이용해 대법제자를 박해하려 한다면 전 가질 거예요. 원래 이 집안 물건에도 제 몫이 있잖아요.” 그 후부터 그녀의 남편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외삼촌 부부는 원래 수련생이었는데 7․20 박해의 거대한 압박으로 사악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계란으로 바위를 칠 수는 없다는 둥, 무산계급 독재는 원래 이렇다는 둥 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덮어 감췄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대법이 좋다고 생각해 몰래 수련했는데, 속인 상태에 부합돼야 한다면서 태극권이나 무용을 배우며 눈속임까지 했다. 그러나 속인들이 대법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거나 심지어 공격해도 못 본 척했다. 마치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자신은 전혀 대법의 일원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내가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는 데 대해서도 정치를 한다는 둥, 사람과 다투는 것이라는 둥 하면서 나와 왕래를 꺼렸다.
어느 날, 사부님의 신경문을 전해주러 찾아가자 외삼촌은 한바탕 날 비난하면서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바로 엄숙하게 지적했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대법에서 그렇게 많은 것을 얻으셨습니다. 또 대법은 바르지만 장쩌민 정권이 모함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인간의 더러운 마음으로 대법을 대하고 계십니다. 이게 정상적인 인간입니까? 대법제자의 자격이 있습니까? 외삼촌의 몸과 마음을 변화시킨 대법이 사악에게 짓밟히고 있는데 방관하면서 한마디도 못 하고, 친척인 제가 와도 두려워하는데 사람이 될 자격이 있으신가요? 저는 정정당당하게 대법을 수련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니 동료, 상사와 경찰들은 오히려 저를 존경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대법제자는 정정당당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전 비록 박해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지만 비할 바 없이 고상하고 당당하고 멋지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삼촌은 어떤가요? 사람도 귀신도 아니고, 어두운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이게 정상입니까?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나의 이 엄숙한 말은 정곡을 찔러 외삼촌 부부에게 즉시 자신들의 바르지 못한 마음을 보게 했다. 나는 그들에게 대법의 위엄과 대법제자의 가장 바르고 가장 바른 마음가짐이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한 대법제자는 친구의 초대를 받자 그에게 진상을 알리려 했다. 그런데 부모, 남편, 친구 및 회사 상사가 공안과 짜고 그녀를 세뇌반에 잡아갔다. 이 대법제자는 사악이 자신의 선량함과 가족 정을 이용해 박해하려 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래서 정에 휘둘리지 않았고, 자신을 도와주려고 그랬다는 가족과 친구의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바른 믿음을 가진 대법제자답게 그들에게 대법을 실증했고, 정념과 자비로 그들의 사악한 행위를 폭로했으며, 그들을 교란하고 통제하는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자신의 잘못을 빠르게 인식하고 그녀를 즉시 세뇌반에서 풀어줬는데, 가담자 모두 그녀를 잘 대해줬다. 이리하여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이 일에 연관된 많은 사람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했다.
한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러 베이징에 갔는데 여관마다 신분증을 요구해 묵을 곳을 찾지 못했다. 그는 여관을 찾으면서 생각했다. ‘이건 나더러 고생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인가?’ 그는 계속 이 각도에서 생각했지만 모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그는 생각했다. ‘내가 베이징에 온 것은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서다. 이는 우주에서 가장 신성하고 가장 바른 일이다. 가장 좋고 가장 바른 일을 하는데 어찌 잠잘 곳 하나 없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자 바로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는 괜찮은 여관을 찾게 됐다.
대법제자의 순수하고 선한 마음은 금강도 녹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고생을 추구하지 않고 난을 추구하지 않으며 ‘더러운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 몸에서 대법의 위엄이 체현될 것이다. 이때 당신은 경찰의 폭행이 자신에게 덕을 주는 것이 아니라 대법을 박해하는 것이며, 경찰이 돈과 재물을 빼앗는 것이 자신에게 덕을 주는 것이 아니라 대법과 대법제자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볼 것이다. 또 당신은 감옥에 갇히는 것을 수련으로 여기지 않고 완전히 대법을 겨냥한 박해라고 볼 것이다. 정법의 각도에서 사악의 모든 표현을 판단하고, 사악이 어떤 빈틈을 타지 못하게 사상을 방임하지 말아야 하며, 사악의 어떤 박해도 묵인하지 말아야 한다.
작년 4월, 사악한 자들은 나를 속여 구치소에 가뒀는데 그들이 심문할 때 나는 심문당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우리 대법제자의 깨끗하고 바른 일체를 충분히 체현해냈다. 나의 주의식(主意識)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아야 함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그곳에 제고하러 왔냐고 물으면서, 우리 수련생들이 모두 그곳을 좋은 수련 제고 환경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나는 바로 부인했다. “아닙니다. 이곳은 절대 저처럼 고상한 사람들이 머물 곳이 아닙니다. 저는 속아서 억지로 끌려온 겁니다. 이는 저에 대한 부당한 박해입니다. 이곳은 절대 우리 대법제자들의 수련 제고에 좋은 곳이 아닙니다. 하루빨리 절 풀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가족에 대해 묻자 나는 가족들이 교수, 박사, 교장 등 직함을 갖고 있다고 말해주어 어떤 사람들이 파룬따파를 수련하는지 알려줬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사회에서 모두 아주 재능이 있고 엘리트나 핵심 인물도 많아, 절대 정신이 공허하여 의지할 곳을 찾는 부류들이 아님을 알려준 것이었다. 그들이 한마디 할 때마다 나는 모두 그들을 바른 사람이 될 수 있게 이끌어줬으며, 나의 강대한 믿음과 주의식으로 그들을 주도했다. 나중에 그들은 모두 탄복하여 존경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면서 박해하려는 생각을 잊었다.
감방에서 나는 수감자들이 서로 때리고 싸우자 질책하지 않고 그들에게 법리(또는 도리)를 알려줬다. “악으로 악을 제압하면 사람은 악을 배우게 됩니다. 악행을 당하면 다른 사람에게 분풀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으로 악을 대하면 사람은 선을 배우게 되고 아름다운 미래를 보게 됩니다. 경찰은 겉으로는 착한 척하지만 진심은 착하지 않아 당신들은 그들의 악을 느끼고 배우게 됩니다. 따라서 강제노동은 사람의 본질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나 파룬따파는 진정으로 본질에서부터 한 사람을 개변시켜 영원히 선을 지향하게 하고, 영원히 아름다움을 동경하게 하며, 아름다운 희망을 보게 합니다.” 내 말이 끝나자 수감자들은 싸우지 않고 서로 이해해줬다.
나는 구치소에 들어가기 전에 수련생들이 감옥에서 수감자들에게 법을 알렸다거나, 감옥이 수련에 아주 좋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직접 가서 보니 이 어디 우리 수련생이 있어야 할 곳인가! 여기저기서 저질스러운 말이 오가고, 사상에서 언행까지 더러운 것뿐이었다. 나는 수감자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내 수련을 통해 대법을 알게 했지만, 어떤 이는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질문했기에 나도 허투루 말하지 않았다. 이는 대법을 모독하는 것이기에 나는 수감자들에게 법을 알리는 문제를 항상 이성적으로 대했다. 게다가 이렇게 더러운 곳이 어찌 우리 대법제자의 수련에 좋은 곳이겠는가. 나는 하루빨리 나가서 대법 일을 하겠다는 강렬한 일념을 가졌다.
나는 구치소에 들어가자마자 연공하겠다고 했지만 경찰은 허락하지 않고 수감자를 보내 감시하게 했다. 나는 일단 조급해하지 않고 간수가 날 불러 면담하는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렸다. 나는 대법 수련이 실질적으로 무엇인지 알려주고, 사악에게 영향받은 그들의 사상과 관념을 여러 각도에서 타파했으며, 그들의 일체 바르지 못한 것들을 바로잡고 선량한 일면을 일깨워줬다. 당시 나는 오직 한가지 생각뿐이었는데, 바로 나의 경지 중의 순선(純善)한 것을 이용해 그들 사상 속의 악을 녹여버리는 것이었다. 면담 때마다 몇몇 간수가 날 둘러싸고 기세등등했지만, 내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끊임없이 선한 일면으로 진상을 알리고 선한 면을 일깨워주자 그들은 모두 변했다. 수감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경찰도 변해 나에게 말했다. “내가 당직 설 때 10분간 연공을 허락한다. 더는 안 된다.” 나는 말했다. “10분이면 겨우 시작이라 모자랍니다.” “그럼 15분까지 허락한다.” 나는 웃었다. 더 말해도 소용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분을 허락하든 1시간을 허락하든 그들이 바뀌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내가 늘 싱글벙글하자 간수는 수감자들 앞에서 웃지 말라고 했다. 관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나는 내가 대법 수련으로 낙관적인 생명이 됐고 나의 본성이 그렇다고 말했다. 내가 경찰들과 말할 때 늘 싱글벙글하자 수감자들은 날 두려워했고 나와 그들의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고 여겼다. 아무리 날뛰는 수감자도 경찰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고 말하는데 감히 웃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나에 대한 감시마저 쓸모없게 만들었고 연공할 때 경찰은 날 돕기까지 했다. 그러자 수감자들은 또 무슨 대단한 거래라도 있었을 것이라고 여겼다.
나중에 나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간수는 나에게 더 이상 수감자들에게 법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저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전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호기심이 많아서 말하지 않으면 찾아와서 말을 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대법은 위엄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간수는 감방장에게 지시해 수감자들이 파룬궁에 대해 더 이상 묻지 못하게 했다. 첫날 나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즐거운 표정으로 조용히 일하면서 법을 외웠는데 연속 18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감방장은 그 이튿날 간수에게 보고했다. “이 사람은 정력(定力)이 너무 강해요. 그가 말하지 않으니 우리도 말을 못하겠어요.”
나는 구치소 안에서 갇혀 있다는 압박감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고 곧 그곳에서 나갈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마음은 호수같이 고요했지만 자유로웠고 어떤 것도 내 마음에 영향 주지 못했다. 나는 수감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형기를 모르시지만 저는 제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제가 ‘연마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바로 나갈 수 있는데, 이 한마디를 말하지 않아 계속 여기에 있는 겁니다.” 나의 일언일행은 모두 경찰과 수감자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내가 연공해도 보고하는 사람이 없었고 경찰도 말리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당직을 서는데 날씨가 더워 나는 감방장과 주변에 있는 수감자들에게 부채질을 해줬다. 그런데 감방장이 갑자기 일어나 앉더니 당황해하며 말했다. “선생님, 이러지 마세요. 이건 천리(天理)에 어긋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바로 멈추고 더 이상 이런 것을 내가 해야 할 좋은 일로 여기지 않았다. 한 달 후 그들은 날 풀어줬다. 나갈 때 간수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감방장은 나와 마지막 식사를 같이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나는 내가 외운 경문을 그에게 써줬다.
파출소에 돌아가니 경찰은 나에게 파룬궁에 대한 인식을 쓰게 했다. 왜 구치소에서 연공하고 법을 알렸는지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고 대법에 대한 인식을 쓰면서 다른 건 모두 그들의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읽어보더니 안 된다고 했다. 그들은 내가 겁도 없다고 욕하면서 강제노동 3년을 처분할 것이라고 위협하며 다시 쓰게 했다. 나는 그들의 논리를 전혀 따르지 않았고 그들의 말을 조금도 묵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게 다시 쓰게 하는 것은 아직 깊이가 부족하고 어투가 단호하지 못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펜을 들고 다시 처음부터 써 내려갔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만고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가장 위대한 정법 수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당시 나의 마음을 모두 이 한마디로 정리했는데 이것이 바로 사악에 대한 나의 대답이었다. 그들은 즉시 날 풀어줬다.
작년 10월, 성(省) 610사무실 책임자가 날 불러 면담했는데 나는 시종 대법에 대한 믿음과 지혜로 그들과 대화했다. 그들이 무례하게 사부님의 이름을 말하자 나는 평온하면서도 강하게 말했다. “우리 사부님을 반드시 존중해야 합니다. 이건 대화의 전제 조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나의 눈빛 속에서 흔들림 없는 바른 믿음을 보고 말투를 바꿨다. 그 후 우리는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한 마디 한 마디 총성 없는 대결이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용문진(龍門陳)을 치고 나의 주의식을 마비시켜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으려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들의 진실한 의도를 알아채고 대법이 준 지혜로 대처했다. 그들의 평온한 말 속에는 무수한 협박이 들어 있었지만 나의 입에서 나온 것은 모두 대법에 대한 믿음뿐이었다. 결국 그들은 허점을 찾아내지 못했고 얻으려던 것도 얻지 못했다. 나는 평온하게 말했다.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선한 마음이 있고 대법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다면 우리 대법제자들은 여러분을 구할 겁니다.” 그들은 나에게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나는 타지에 있는 한 수련생 집에 머물렀다. 그녀의 남편은 어느 학술 분야의 리더였으며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다. 그는 내가 쓴 수련 체험을 본 후 아주 탄복하며 집에서 제일 좋은 방과 서재를 나에게 내줬다. 덕분에 나는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많은 수련 체험기를 써서 대법을 실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은 통풍이 되지 않는 작은 방에서 생활하며 연구 자료를 썼다. 이를 본 수련생들은 놀라며 말했다. “우리가 가면 전혀 반기지 않고 누구든 통풍이 되지 않는 방에서 자게 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잘 대해주고 최상의 대접을 해주는군요.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
내 경험을 말한다면,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대법제자의 이성적이고 지혜롭고 평화로운 모습과 대법의 위엄을 보이면 사람들은 반드시 대법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가 날 잘 대하는 것은 내 몸에서 대법의 지혜와 위엄이 체현됐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그의 연구 분야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대법이 준 지혜로 그가 여러 각도에서 사고할 수 있게 도와줬다. 나는 말했다. “교수님, 저는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제가 방금 말한 인식은 교수님의 제자들도 말하지 못할 겁니다. 교수님의 사유도 제한돼 있으니까요. 저의 지혜는 모두 대법에서 온 겁니다.” 나는 농담조로 말했다. “교수님은 저에게 박사 학위를 주셔야 합니다.” 그는 웃으면서 반드시 ‘전법륜(轉法輪)’을 잘 연구해보겠다고 했다.
(중국 대법입자)
원문발표: 2001년 7월 17일
문장분류: 사부님 평어 문장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01/7/17/1357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1/7/17/135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