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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박해로 사망한 산둥 멍후이현 쑨피진이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산둥 보도) 산둥성 린이(臨沂)시 멍후이(蒙陰)현 둥루라이(東儒來)촌 파룬궁수련생 쑨피진(孫丕進)은 6월 17일에 자기 집 밭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멍후이현 파출소에 의해 납치됐고, 이튿날 박해로 사망했다. 가족이 그의 시신을 살펴보다가 뇌가 흘러나오고, 한쪽 안구가 없으며, 몸이 평평한 것을 발견했다.

6월 18일, 중공(중국공산당) 불법 인원은 쑨피진이 멍후이현 중의원에서 우한폐렴 검사에 협력하지 않아 건물에서 뛰어내린 이유로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고 말했다. 진실한 상황은 조사해야 한다. 그 당시 공안 경찰이 중의원을 봉쇄해 소식이 봉쇄됐다. 쑨피진의 시신은 지금 멍후이현 장의사에 놓여 있다.

현재 쑨피진의 딸 자오자오(嬌嬌, 아명)는 집에서 멍후이현 파출소 인원에 의해 납치됐고, 가택수색을 당해 적잖은 물품을 강탈당했다. 현재 여전히 린이(臨沂)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다.

쑨피진의 아내 위짜이화(于在花)는 자신의 믿음을 견지한 이유로 현지 중공 경찰에게 여러 차례 생사의 난을 겪었다. 핍박에 못 이겨 10여 년간 유랑생활을 했는데, 결국 2015년 8월 19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47세였다.

쑨피진, 위짜이화 두 부부는 파룬궁을 배워 연마하기 전에는 각종 병을 앓았다. 아이의 몸도 허약하고 가정 형편이 매우 가난하고 생활이 암담했다. 다행히 파룬궁을 배워 연마한 후, 어른과 아이의 병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전부 나아졌다. 위짜이화는 대법 중에서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깨닫고, 인생의 의의를 깨달았다. 그녀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 효도해 가정이 화목하고 즐거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시댁 사람들은 위짜이화가 대법을 얻은 후의 심신의 변화를 보고 많은 사람이 수련에 들어섰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박해한 후, 쑨피진과 위짜이화는 대법을 굳게 수련해 잇달아 멍후이진 왕스신(王世鑫), 궁피바오(公丕寶), 장화이중(姜懷忠), 왕신(王欣) 등 사악한 당의 불법 인원과 멍후이 ‘610 사무실(파룬궁 박해기구)’의 레이옌청(類延成), 팡스민(房思敏), 왕신(진에서 사람을 구타해 이름이 난 후 610으로 전근돼 졸개가 됐음) 등 졸개의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집은 깡그리 강탈당했다. 쑨피진은 2003년에 5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웨이팡(濰坊) 감옥에서 학대를 당했다. 위짜이화는 악독한 경찰 왕웨이(濰坊)에게 발로 걷어차여 쇄골이 부러졌다. 그리고 예전에 여러 차례 세뇌반, 유치장, 구치소에 감금됐고 불법 노동교양처분도 받은 적이 있다.

2004년 정월 초열흘 날, 위짜이화는 파룬궁수련생 왕푸청(王付成)과 함께 멍후이진 시와(西窪)의 셋집에서 대법 책을 제본하고 있었는데, 멍후이 2경찰구역의 악독한 경찰 쑨푸리(孫付利)가 한 무리 경찰을 거느리고 들이닥쳐 납치됐다. 왕푸청은 혹독한 구타를 당해 쇼크 했다. 얼굴에는 또 구타로 생긴 네댓 갈래 손자국이 있었다. 정월 14일쯤, 위짜이화는 멍후이 구치소에 의해 중의원으로 보내져 검진을 받았는데, 현 ‘610’ 두목 레이옌청이 병원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는 “죽은 체하라고 해요. 꼭 그녀에게 음식물 주입을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남편이 위짜이화에게 심전도를 해주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극도로 괴로워했다. 한 중의원 의사는 “그녀는 구토하지 않아요. 엄살입니다!”라고 말했다. 레이옌청은 곧 주사 바늘로 위짜이화의 다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찌르면서 “엄살을 피워라, 엄살을 피워라!”라고 말했다. 현 ‘610’의 악인 레이옌청, 팡스민은 “위짜이화, 당신은 죽고 싶은 거지. 당신이 죽고 싶다면 이 침대 위에서 죽게 할 거야. 장더전(張德珍)이 이 침대 위에서 죽었고, 쑨(孫) 씨도 이 침대 위에서 죽었지”라고 말했다.

2020년 10월 25일 오전 8시가 넘어서 현지 파출소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일행 5명(네 사람은 경찰복을 입었고 한 사람은 입지 않았음)이 쑨피진 집으로 와서 소란을 피우며, 현지의 현 정부 소재지의 한 원허(汶河) 호텔로 가서 이른바 ‘공부(세뇌 작업)’를 하게 했다. 그리고 건강 검진을 해야 한다고 했다. 쑨피진은 당시 마침 집에 없었는데 그들은 가지 않으면 강제로 집행한다고 위협했다. 떠날 때, 40여 세이고 키가 178㎝가 넘으며 네모난 얼굴의 남자(파출소 지도원 왕 씨)가 핸드폰을 꺼내 쑨피진 가족의 자동차 번호판을 찍었다. 가족이 핸드폰을 꺼내 그들을 사진 찍으려 했지만 이 사람이 한 줌에 빼앗아갔다. 약 40~50세에 키가 170㎝가 넘으며, 둥근 얼굴인 남자가 다가와서 오른손으로 쑨피진의 가족의 목을 조였다. 그리고 왼손으로 가르키며 “당신은 무슨 근거로 찍지? 어디 더 찍어 봐”라고 날뛰었다. 이때 이웃 부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사람이 오자 급히 쑨피진의 가족을 놓아줬다.

쑨피진, 위짜이화 부부가 당한 박해에 관해 밍후이왕 문장 ‘남편이 5년의 불법 징역형 선고받고, 아내가 유랑생활을 하다’, ‘생사 난을 다 겪은 산둥 멍후이현 위짜이화가 억울하게 사망’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6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6/29/4275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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