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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궁주링시 73세 왕성,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지린 보도) 지린성 궁주링(公主嶺)시 파룬궁 수련생 왕성(王勝, 73)은 수년간 박해당해 유랑생활을 했다. 2004년 5월 24일 조카딸 집에서 경찰에게 포위, 납치당한 뒤 생명이 위독해졌다. 2014년 4월 26일 거듭 납치돼 학대당했고, 불법적으로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출소할 때 몸이 수척하고 극도로 허약했지만, 또 여러 차례 괴롭힘을 당했고, 결국 2021년 4월 3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왕성은 1993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후 주색잡기, 흡연 등의 나쁜 습관을 끊게 됐으며, 신체의 각종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되었다.

2000년 10월 말, 왕성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경찰에게 폭행당해 얼굴, 입 등에 피가 흘렀다. 왕성은 베이징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공안국에서 밤낮으로 몇 차례나 자신을 납치하려 했던 것을 알게 됐다. 공안국에서는 사람을 배치해 그의 집을 불법 감시했다. 결국 왕성은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다. 그 며칠 동안 현지의 20~30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집안에서 납치당한 후 구치소, 유치장에 불법 감금당했다. 가족은 연좌 등 위협을 당했고, 자식들은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도 군인이 될 수도 없었으며, 직장이 있는 사람은 해고당하거나 월급 지급을 중지하는 등 시달림을 당했다. 본래 왕성에게 지급해야 할 돈은 불법적으로 공제 당했고, 왕성의 가족의 돈도 주지 않았다.

왕성은 5년간의 유랑생활 중 생각지도 못한 고생을 겪어야만 했다. 설날에도 집으로 돌아가 단란하게 모일 수 없었고 연락할 수조차 없었다. 집에서는 왕성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했고, 그도 집의 상황을 전혀 몰랐다. 한 번은 한밤중에, 양다청쯔(楊大城子)향, 610, 파출소, 보조 경찰 20여 명이 불법적으로 왕성의 친척 집에 들이닥쳤는데, 앞뒷문을 모두 가로막았다. 갑자기 많은 사람이 들이닥쳐 어른, 아이들이 모두 깜짝 놀랐으며, 그들에게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는 놀라서 계속 울었다. 이튿날, 친척이 파출소로 찾아가 당신들이 아이를 놀라게 해 병이 났다고 말하자, 파출소에서는 그 친척을 구타해 내보냈다.

2004년 5월 24일, 왕성은 조카딸 집에 있었는데, 오후 1시가 넘어 경찰차 세 대가 와서 건물 전체를 포위했다. 문 어귀에도 20~30명 경찰, 사복 경찰이 있었다. 쓰핑(四平)시에서도 경찰이 왔는데, 궁주링시 공안국장이 인솔했으며, 국장은 총을 지니도록 명령했다. 이것은 파출소 소장이 왕성과 이야기한 것이다. 그들은 밖에서 문을 부수어 열었고, 10여 명이 들어와 왕성을 포위했다. 그리고 5~6명이 강제로 왕성을 눌러 놓고 불법적으로 수갑을 채우고 허리띠를 빼내고는 왕성을 건물에서 밀어냈다. 그들은 왕성 조카딸의 집을 뒤져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왕성은 박해를 반대하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다. 13일째 되었을 때, 의사는 경찰에게 그가 정말 위험하다고 알려주었다. 경찰은 책임질까 두려워 이튿날 왕성을 병원에 보내고 관리하지 않았다. 의사는 그의 가족에게 후사를 준비하라고 전달했다. 그런데도 중국 공산당원은 또 왕성에게 3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불법적으로 결정했다.

2014년 4월 26일, 왕성은 친척의 결혼식에 갔다가 창춘에서 돌아와 막 열차에서 내렸는데, 뒤에서 몇 명의 사람이 오더니 갑자기 그를 붙잡았고, 앞쪽의 사람이 손을 뻗어 구타했다. 누구인지 대답도 없이 구타하고 발로 걷어찼으며, 백주대낮에 도로 옆에서 많은 사람이 에워싸고 구경하는 상황에서 그 당시 60여 세인 왕성의 발을 걷어차 부러뜨려 놓고도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왕성을 구타한 사람들은 궁주링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대장 리젠치(李建奇) 등이다.

왕성은 불법적으로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2015년 3월 2일에 궁주링 감옥으로 이송됐다. 왕성은 입감대에서 5개월 동안 박해당했다. 온종일 강제로 좌반(坐板)에 앉았는데, 아침에 앉으면 저녁 8시까지 앉아 있어야 했다. 감찰과에서는 강제로 감옥 규정을 외우도록 했는데, 외우지 못하면 벽에 기대어 서 있게 했고, 교육과에서 온종일 세뇌당했다. 교육과의 왕(王) 과장은 사오한 유다를 거느리고 각종 방법을 이용해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했다. 2016년 12월 28일, 왕성이 출소했을 때, 그의 정신과 육체는 극심한 상해를 입었다.

경찰이 늘 집으로 와서 소란을 피웠기에, 왕성은 외지에서 유랑생활하면서 일을 해 생계를 유지했다. 궁주링시 톄베이(鐵北) 파출소와 톄베이 지역사회에서는 늘 전화를 걸거나 왕성의 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우고 사진을 찍었다. 게다가 가족에게 왕성과 연락이 끊겼다고 보고하라고 말했다.

2017년 9월 초, 두 무리의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왕성을 교란했다. 한 무리는 호적지가 있는 테베이 파출소 경찰들이고, 한 무리는 현재 집 주소가 있는 허난(河南) 파출소 경찰들인데, 따로따로 집으로 찾아와 왕성의 행방을 조사했다. 아내가 왕성이 집에 없고 외지로 일하러 갔다고 말하자, 경찰은 왕성 아내의 사진을 찍고 떠났다.

왕성의 박해 관련 내용은 밍후이왕 문장 ‘지린 궁주링시 70세 왕성, 예전에 박해당해 사경을 헤맨 적 있다’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www.minghui.org/mh/articles/2021/5/14/4253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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