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성 보도) 다칭(大慶)시 파룬궁수련생 뤼관루(呂觀茹)가 2018년 11월 9일 다칭시 랑후(讓胡)로 공안국 경찰에 납치됐다. 2019년 7월 1일 다칭시 랑후구 법원에서 억울하게 7년 형을 선고받고 벌금으로 4만 위안(약 701만 원)을 강탈당했다. 뒤이어 헤이룽장(黑龍江)성 후란(呼蘭)감옥에서 박해받았다. 뤼관루는 자신의 신념을 견지해 대법 수련 포기를 강요하는 ‘전향’을 거부했다. 2019년 11월 또 헤이룽장성 타이라이(泰来)감옥에 납치돼 박해당했다. 2021년 4월 4일, 뤼관루는 박해당해 ‘뇌출혈’로 사망했는데, 향년 69세이다.
뤼관루는 예전에 다칭 석유관리국 주택건설회사에 근무하면서 주택건설 예산을 담당했다. 1994년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고, 심신에 이로움을 얻어 몸의 모든 병고, 치료되지 않던 고질병이 완쾌됐다. 그는 직장에서 공인하는 좋은 사람이었고, 해마다 직장에서 모범직원으로 선정됐다.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뤼관루는 중공 사당(邪黨)에 납치되어 불법 감금당해 끈으로 묶기·냉동·장시간 세워두기·몽둥이로 머리 구타·비행기 몰기(開飛機)·구두 뒤축으로 깎기(鞋跟刨) 등 여러 가지 고문을 당했다. 또한 핍박에 못 이겨 18년간 유랑생활을 했으며, 여러 차례 거처를 옮기고 집을 이사하게 되었다.
1. 베이징에 가서 평화 청원, 1개월 불법 감금
2000년 4월 12일, 뤼관루와 아내 쑨중핑(孫忠萍)은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했다가, 베이징 주재 다칭 청원사무실에서 악인에게 납치되었고, 1개월간 다칭으로 납치돼 돌아와 불법 감금당했다. 뤼관루는 다칭시 룽펑(龍鳳)구치소에 불법 구금되었으며, 그의 아내 쑨은 다칭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룽펑 구치소에서 루관루는 경찰이 선동한 형사범들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해, 치아마저 흔들렸다. 구치소에서 뤼관루는 삭발을 당했다. 그가 베이징에 갔을 때 입었던 새 옷과 바지, 새 가죽 신발, 가죽 벨트도 죄수들에게 빼앗겼다. 뤼관루와 그의 아내가 같은 날 돌아왔을 때 그들은 죄수가 던진 찢어진 옷, 찢어진 바지, 슬리퍼를 신고 허리띠를 들고 돌아왔다.
2. ‘작은 방’에 갇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받고, 4시간 연속 혹독히 구타당하다
2000년 6월 18일, 루관루와 아내 쑨중핑은 다칭 석유관리국 남쪽 광장에서 단체 연공을 하다가 납치당했다. 며칠 후, 다칭 청펑(乘風)파출소 경찰 리수신(李樹新), 차오쩡언(曹曾恩), 다칭시 랑후구 공안분국 경찰은 뤼관루를 어느 작은 건물에 끌고 가서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뤼관루는 생전에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그들은 나를 작은 건물에 끌고 가서 문을 닫았는데, 검고도 수척한 한 경찰이 강제로 나를 치켜들게 했다. 그런 다음 가죽 신발을 집어 들고 신발 뒤축으로 엉덩이를 찍었고 또 내 머리를 구타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줄곧 4시간 구타했다. 그 기간 나를 때린 경찰은 너무 피곤해서 때때로 팔을 흔들었다. 내가 감방으로 돌아와서 경찰이 떠나간 후, 감방 안의 죄수들은 ‘그들이 당신을 왜 이렇게 때리는 거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베개를 가져가 욕실 유리에 받치고 나에게 ‘유리 거울’로 자신을 보도록 했다. 내가 보았더니 머리가 온통 부어오르고 눈은 가는 틈처럼 보였다. 손을 뻗어 둔부를 만졌는데, 지각이 전혀 없었다. 누운 후, 둔부가 고무 조각처럼 느껴졌는데 이미 검보라색이었다.”
이 납치 사건에서 루관루는 불법 징역형 1년을 선고받았고, ‘전향’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로 수감 기간은 1개월 7일 연장됐다.
3. 다칭시 둥펑 신촌 노동교양소에서 고문 학대당하다
다칭시 둥펑(東風) 신촌(新村) 노동교양소에서 뤼관루는 ‘전향’을 거부해 끈에 묶기·추위에 떨기·장시간 세워 두기·몽둥이로 머리 구타·비행기 몰기·구두 뒤축으로 깎기 등 각종 고문을 당했다.
밤에 연공을 해 ‘끈으로 묶기’ 고문 학대당하다
뤼관루는 밤에 연공을 하다 ‘끈으로 묶기’ 고문을 당했다. 이 고문은 심하게 하면 끈이 살을 파고들어 간다. 노동교양소 2대대 경찰 대대장 왕시춘(王喜春), 라이(賴) 모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동안 책상 앞에 앉아있고, 경찰 장왕주(張旺柱), 디훙펑(翟洪峰)이 끈으로 묶기 고문을 했다.
뤼관루는 생전에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그들은 새끼손가락 굵기의 끈으로 목부터 두 팔을 감은 후 살 속까지 패어 들어가게 했습니다. 한쪽 편의 두 사람은 힘껏 끈을 잡아당겨 단단히 조이고는 다시 뒷면에서 매어 결박해버렸어요. 네 사람이 힘을 쓴 후, 신체가 조여져 마치 나무가 된 것 같았고 전신이 어디가 아픈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과정 중에 또 끈으로 조인 부위를 손바닥으로 쳐서 고의로 더 아프게 했어요. 15분 후 다시 한 차례 끈을 조였는데, 끈을 풀었을 때는 팔이 이미 약간의 혈색도 없이 한줄기 한 줄기 깊게 패어 들어가 마치 빨래판 같았어요. 제가 아파서 큰소리로 외치자, 한 경찰은 넓은 테이프로 제 입을 봉했어요. 그리고 다시 한발로 걷어차 넘어뜨렸어요. 걷어차여 시멘트 바닥에 고꾸라졌는데 극히 고통스러웠어요. 그러나 오히려 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당시 감각은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습니다.”
겨울에 영하 20℃가 넘는 실외에서 옷이 벗긴 채 추위에 떨다
2001년 2월, 2대대 경찰은 연공을 견지하는 파룬궁수련생의 옷을 모두 벗기고 -20℃ 이하로 떨어진 실외로 끌고 가서 수갑으로 십자형 쇠틀에 채워 놓았다. 밖에서 두 시간 추위에 떨었는데, 수련생들은 얼어서 기절했고 지각을 잃었다. 뤼관루의 두 손은 쇠기둥과 농구대 위에 채워져 차가워졌다. 이로 인해 그는 몸에 지각이 없었다. 심지어 사상도 없었다. 경찰은 정체불명의 물건을 가져다 그의 사지를 찔렀다. 게다가 큰소리로 “뤼관루! 뤼관루!……”라고 불렀다. 당시 파룬궁수련생들을 감시하던 경찰은 솜옷과 솜바지를 입었고, 몸에 당직실 솜이불을 쓰고도 추위 속에서 끊임없이 발을 굴렀다.
여름에 밖으로 밀려 나가 모기에게 물리고, ‘비행기 몰기’ 고문을 당하다
뤼관루는 생전에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늘 우리에게 대법을 모함하는 보증서를 쓰도록 했어요. 우리에게 반성하는 이런 유형의 문장을 쓰게 했는데, 우리는 쓰지 않았어요. 여름이면 우리 많은 파룬궁수련생을 밖으로 밀어내서 모기에 물리게 했어요. 저녁이면 우리를 방안에 들어오게 한 후, 머리를 숙이고 손을 치켜들고 있게 했어요. 뒤로 두 손을 들어 올리게 했는데, 마치 비행기 날개처럼요. 얼마나 오래 치켜들었는지 모르지만, 사람마다 머리 아래쪽 바닥은 온통 땀이었어요. 당시 2대대의 경찰 교도원 펑시(馮喜)가 밀걸레를 들고 우리 머리를 구타했는데, 밀걸레가 구타로 몇 마디나 부러졌어요.”
4. 억울한 징역형 7년을 선고받고, 타이라이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하다
2018년 11월 9일, 뤼관루는 다칭시 랑후(讓胡)로 공안분국 경찰 청룽(程龍), 천시(陳曦)에게 납치당했다. 그날 헤이룽장성 다칭 지역에서 경찰은 파룬궁수련생 60여 명을 납치했고, 약 100명에게 불법 가택수색과 교란으로 공갈 협박했다. 소식에 따르면, 이번 납치는 헤이룽장성 공검법사(공안·검찰·법원·사법)에서 오랫동안 꾸며, 경찰에게 명단에 있는 파룬궁수련생의 집에 가서 불법으로 납치한 거라고 했다.
다칭 구치소에서 불법 감금당한 기간, 뤼관루는 경찰에게 세워두기 고문, 족쇄 차기, 불법 심문을 당했다, 뤼관루는 여러 차례 단식 방식으로 박해를 저지했다가 경찰 및 죄수에게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박해당해 위출혈 증상, 생명 위험이 나타나 수차례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2018년 12월 15일, 뤼관루는 랑후로구 검찰원에 모함당했고, 랑후로구 검찰원에서는 불법 체포령을 비준했다.
2019년 6월 6일, 다칭시 랑후로 법원에서 선량한 파룬궁수련생 뤼관루, 류언취안(劉恩權)을 불법 재판했다. 뤼관루의 변호사 두 명과 류언취안의 변호사 한 명이 그들을 위해 이치에 맞고 근거가 있는 무죄 변호했다. 맨 마지막에 뤼관루와 류언취안은 자신이 무죄임을 진술했다.
2019년 7월 1일, 뤼관루는 다칭시 랑후로구 법원에서 억울한 징역형 7년을 선고받았고, 4만 위안의 벌금을 갈취당했다. 다칭시 중급인민법원에 상소를 제기했는데, 2019년 7월 23일 다칭시 중급인민법원에서는 법을 왜곡하여 재결해 억울한 징역형을 유지했다.
2019년 7월 30일, 뤼관루는 여전히 병원에서 응급처치받는 중 비밀리에 헤이룽장성 후란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당했다. 후란감옥의 감옥 경찰은 데려오는 사람은 모두 수감한다고 말했다.
후란감옥에서 뤼관루는 수련을 견지해 ‘전향’을 거부했다. 2019년 11월 또 헤이룽장성 치치하얼(齊齊哈爾) 타이라이감옥으로 납치당해 계속 박해당했다.
2021년 4월 4일, 뤼관루는 타이라이 감옥에서 박해로 ‘뇌출혈’ 증상이 나타나 사망했다.
헤이룽장성 타이라이감옥은, 줄곧 헤이룽장성 610(장쩌민이 발동한 파룬궁 박해 전문 불법 조직)과 헤이룽장성 감옥관리국의 폭력적인 전향과 잔혹한 박해를 진행하는 ‘집중구역’이 되었다. 이른바 ‘전향하는 4서(四書)’를 거부한 사람은, 여러 가지 고문 박해와 체벌 학대를 당한다. 예를 들면, 큰 괘에 올리기·비행기 만들기·세워 두기·쭈그려 앉기·밤을 새우기[아오잉(熬鷹), 연속 며칠간 수면 불허]·고춧물 주입하기·물 감옥에 세워두기(겨울에 두 발이 차가운 물 속에 잠긴 채 서 있음)·영창에 가두고 바닥에 쇠고랑으로 채우기·호랑이 의자에 앉히기·악독하게 모욕하고 욕설 퍼붓기 등이다. 치치하얼시 중의원 파룬궁수련생 류징밍(劉晶明)은 2007년 2월 8일 타이라이 감옥으로 보내져, 46일 후 박해로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39세였다.
다싱안링(大興安嶺) 지세세무국 간부 루위핑(盧玉平) 수련생은 2009년 5월 30일 타이라이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예전에 6명의 생명을 구한 적이 있는 파룬궁수련생 판번위(潘本餘)는 타이라이감옥에서 박해로 간복수 증상, 심근경색, 각혈, 심장병,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 전신 경련 증상이 나타났고 끊임없이 신음이 나왔다. 결국 2011년 7월 17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뤼관루 부부가 당한 박해에 관해 밍후이왕 문장 ‘끈으로 묶기·냉동·노예 노동 당한 전 다칭 주택건설회사의 우수직원이 장쩌민(江澤民)을 고소’, ‘다칭 뤼관루와 류언취안이 불법 재판받다’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4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27/4238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