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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견지한 진저우 마리광, 누차 납치·수감, 구타로 치아가 빠지다

[밍후이왕]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시 헤이산(黑山)현의 칠순 파룬궁수련생 마리광(馬立光)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려다가 다섯 차례나 중공 경찰에게 납치되고 두 차례 불법 구류를 당했다. 또한, 네 차례나 불법 가택수색을 당하고 한 차례 노동교양[마싼자(馬三家)에 불법 수감] 당했으며, 2~3만 위안(한화 약 347만~520만 원) 벌금을 강요당해 어쩔 수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2012년의 한 차례 박해 중에서 마리광은 구타로 치아 몇 개가 빠졌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랴오닝성 진저우시 헤이산현 공안국의 악한 경찰과 국내안정보위국(이하 국보)의 샤오중잉(肖忠影), 비스쥔(畢士君), 장스춘(張士春), 펑구이팡(馮貴方), 왕웨이징(王偉靜), 차오펑(曹鵬) 등은 장쩌민을 따라 미친 듯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고 불법 체포, 납치, 구류 처분, 노동교양 처분을 했으며, 재판을 받게 했다.

구타로 치아가 여러 개 빠지다

2012년 3월, 마리광은 헤이산현 공안국에 납치되어 진저우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마리광이 악인에게 협조하지 않자 경찰 마신화(馬新華)는 마리광을 화장실로 끌고 가서 때려 쓰러뜨리고 발로 머리를 찼다. 마리광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니 머리가 매우 크게 부었고 눈꺼풀이 시퍼렇게 멍들었으며, 입을 벌리지 못하고 밥도 못 먹지 못했으며 온몸이 아팠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
중공 고문 설명도: 구타

보름 후 헤이산 분국은 마리광에게 불법 강제노역 1년을 처분했다. 마싼자 교도소로 가는 길에서 악한 경찰 차오펑은 차에서 마리광을 마구 구타했으며, 한 경찰이 가세하여 마리광을 때려 기절시켰다. 마리광은 치아도 빠지고 윗니가 다 흔들렸다(마싼자에 도착하니 잇몸이 상해 치아 9개가 빠졌다). 마리광은 전신이 무력해지고 호흡이 곤란해졌으며 감각이 없어졌다. 한 경찰이 “차를 세우세요. 빨리 차를 세우고 차 문을 여세요.”라고 했다. 차오펑은 “그녀는 연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마리광은 ‘그들은 너무 비인간적이어서 노인이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데도 이처럼 심하게 구타한다. 오늘 내가 깨어나지 않으면 그들은 반드시 내가 심장병이 돌발해 죽었다고 말할 것이다. 파룬궁수련생 여러 명이 이렇게 그들에게 맞아 죽었다.’라고 생각했다.

신체검사는 사람을 박해하는 것

마싼자에 도착해 신체검사할 때 마리광은 협조하지 않았다. 교도소 의사 디(翟)는 매우 악했다. 그는 마싼자 교도관에게 “이 사람은 다스리기 힘들어요. 나중에 당신들에게 번거로움을 가져다줄 거예요.”라고 했다. 교도관은 테이프로 마리광의 입을 감아놓고 교도관 네 명을 불렀다. 그들은 마리광의 손발을 잡아당겨 들고 4층으로 올라갔다. 4층에 이르렀을 때 마리광의 솜저고리와 바지가 벗겨졌다. 그들은 마리광을 비방하는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酷刑演示:顺地拖着走
고문 재연: 땅바닥에 질질 끌고 가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 마리광은 허리가 너무 아파 검사해보니 허리 디스크였다. 마리광은 그들이 몸을 억지로 잡아당겨 몸을 돌리지 못했다. 걷지 못해, 계단을 오르내리고 밥 먹을 때 두 사람이 부축해야 했다. 매일 몇몇 교도관이 교대로 마리광에게 ‘전향’하라고 압박했다. 정신적인 공포와 스트레스, 긴장된 분위기로 인해 마리광은 혈압이 높게는 190, 낮게는 110으로 나왔으며, 코피가 나고 뇌 혈전 증상도 나타났다.

한 교도소 의사는 매우 악했다. 그는 교도관과 함께 마리광을 박해했고 여러 차례 링거주사에 농간을 부렸다. 한번은 마리광에게 무슨 약을 놓았는지 시간이 좀 지나자 마리광은 얼굴과 입이 마비되었으며, 춥고 가슴이 떨리며 몸이 흔들렸다. 마리광은 “내게 무슨 약을 놓은 거야!”라고 외쳤다. 마리광은 즉시 주삿바늘을 빼고 병원에 가서 응급조치했다. 심장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마리광에게 매일 대량의 구심단(救心丹)을 복용하게 했다.

酷刑演示:打毒针(注射不明药物)
고문 재연: 독극물 주사(이름을 모르는 약물 주사)

그날부터 마리광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고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매 1분이 고통스러웠고, 서지도 앉지도 못하고 매일 대법을 비방하는 녹음과 동영상을 강제로 보아야 했는데, 소리가 매우 컸다. 작은 의자에도 앉지 못하게 했다. 마리광은 밤낮으로 몇 번이나 기절했는지 모른다.

마리광이 진선인을 포기하지 않자 교도관은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불법적으로 형을 늘렸다. 어느 날 교도관 장레이(張磊)가 마리광을 불렀다. 방에 들어가 보니 경찰 10여 명이 있었다. 그들은 ‘3서(三書)’를 준비하여 의자에 올려놓았다. 그중 한 교도관이 마리광의 왼손에 수갑을 채우고 다른 몇몇은 오른손을 잡아당겨 지장을 찍게 했다.

가족은 마리광을 만나지 못하자 매일 눈물로 지새웠다. 남편이 마싼자에 마리광을 데리러 가자 그들은 풀어주지 않았다. 마리광이 교도소에서 나올 때 10여 명이 데리러 갔다. 마리광의 딸은 어머니를 보고 울면서 “어머니, 우리는 어머니가 살아나오지 못하는 줄 알았어요. 모두 마싼자가 사악한 걸 알고 있어요.”라고 했다.

다시 박해당하다(유랑생활, 불법 재판)

2014년, 마리광은 농촌 정기 시장에서 션윈 시디를 배포하다가 현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되어 심각한 박해를 당했다. 마리광이 이름을 말하지 않자 저녁에 마리광을 현 국보대대에 보냈다. 그들은 컴퓨터에서 마리광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찾았다. 왕웨이징은 몇몇 경찰을 데리고 마리광의 집을 불법 수색했으며, 당시 마리광은 뇌 혈전 증상이 나타났다. 그들은 마리광의 딸을 협박하여 1만 위안(한화 약 174만 원)을 내고 마리광을 데려가라고 강요했다. 수개월 후 돈을 되돌려줬고, 마리광을 재판하겠다고 했다. 마리광은 어쩔 수 없이 유랑생활했다.

2016년 8월 8일 저녁 7시경, 헤이산현 공안국 국보대대 왕웨이징 등이 선양(沈陽)을 벗어난 지역에서 마리광을 납치했다. 이들은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고 진저우 구치소에 불법 수감했다. 경찰은 마리광을 모함한 자료를 헤이산 법원에 넘겼고, 마리광의 가족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9월 29일 오후, 변호사는 헤이산 법원에 가서 절차를 밟았다.

2016년 9월 30일 오전, 변호사는 진저우 구치소에서 마리광을 만났다. 훗날 마리광은 불법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3/4215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