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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진상을 알려, 창춘 푸옌페이 5년의 억울한 징역형 선고받아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지린 보도) 창춘(長春)시 파룬궁수련생 푸옌페이(付燕飛 47세)는 2020년 7월 7일 납치되어 차례로 창춘시 병원 ‘병감(病監)대대’, 창춘시 제4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받았고, 2021년 1월 5일 불법적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푸옌페이의 아들은 어머니의 장기적인 박해로 자폐증에 걸려 그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함께 아이를 돌보는 일을 도왔는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다.

푸옌페이(付燕飛)와 그녀의 아들

푸옌페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창순시 얼다오(二道)구 바다오(八道)가 초등학교 인근에서 살았다. 푸옌페이는 1997년 동북사범대학을 곧 졸업할 무렵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해,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녀는 허베이(河北)성 창저우(滄州) 런추(任丘)시 화베이(華北) 석유 교육학원[현 발해(渤海)석유직업학원임]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학생, 동료와 책임자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중국공산당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푸옌페이는 여러 차례 납치, 불법 감금을 당하고, 구치소, 노동교양소, 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2015년 3월 14일 푸옌페이는 무료로 중국 신전문화를 선양한 션윈 시디를 배포하다 미행, 납치를 당하고, 가택 수색과 강탈을 당했다. 그리고 3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지린(吉林)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해 뼈만 남았다.

2020년 5월 11일 오전, 푸옌페이는 창칭(長青) 지역사회 청젠(城建) 스지자위안(世紀佳園) 주택단지에서 진상을 알려, 지역사회의 사람에게 무고를 당했다. 얼다오분국 국가보안대대장 펑셴룽(馮憲龍)과 양자뎬(楊家店) 파출소 경찰이 불법적으로 푸옌페이의 집안에 들이닥쳐, 진상 자료, 대법 서적 등 물품을 강탈했다. 푸옌페이는 그날 얼다우구 분국 국가보안대대로 납치당했다가 5월 13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갔다. 푸옌페이는 불법적으로 거주지 감시를 당했다. 양자뎬 파출소 경찰이 여러 차례 집으로 찾아와 교란했다.

2020년 7월 7일 저녁, 푸옌페이는 노동공원에서 진상을 알린 이유로, 중공의 거짓말에 독해 당한 사람에게 무고를 당했다. 그 후 허순(和順)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차오양구 검찰원에 의해 불법 체포영장을 받았다. 푸옌페이는 불법적으로 창춘시 병원 ‘병감 대대’에 불법 감금당했다. ‘병감 대대’에서는 가족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고, 옷과 일상용품, 현금 영치를 허락하지 않아 저축 카드에 저축할 수밖에 없었다. 차오양구 검찰원의 업무 담당 검찰관도 가족을 만나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검찰원 출입구의 경비처에서 경비를 거쳐 정보를 전달하거나 자료를 올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2021년 1월 5일, 푸옌페이는 5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상황은 조사해야 한다.

푸옌페이가 중공 사당에 의해 박해를 당한 일부 사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당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후, 푸옌페이는 수련을 견지해 화베이 석유 교육학원에 의해 여러 차례 연금, 감시 및 업무 부서를 조정 당했다. 2000년 10월 말, 푸옌페이와 6명의 파룬궁수련생은 베이징으로 가서 마음의 소리를 표현했다.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톈안먼 광장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이다’를 펼쳐 들어 평화적인 청원을 하다 중공 사당에게 납치당했다.

푸옌페이는 현지 구치소로 납치당해 1개월 동안 감금박해를 당했다. 그리고 또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탕산(唐山) 카이핑(開平)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박해당했다. 동시에 푸옌페이는 화베이 석유 교육학원에서 해고당했다. 카이핑 노동교양소에서 푸옌페이는 수련을 견지하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아, 구타, 묶기, 매달기, 수갑에 채우기, 전기 고문 등 고문 학대를 당했다.

고문 재연: 끈으로 묶기

2014년 6월 2일, 푸옌페이는 창춘시 허순가와 룽광(榮光)로 자오후이(交匯)처에서 진상을 알리다 창춘시 얼다우구 공안분국 지린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해 웨이쯔거우(葦子溝) 구치소에서 보름 동안 불법 감금 박해를 당했다. 2014년 11월 15일, 푸옌페이는 역시 진상을 알리다 창춘시 얼다오구 공안분국 둥잔(東站)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해 웨이쯔거우 구치소에서 5일 동안 불법 감금을 당했다.

2015년 3월 14일, 푸옌페이는 창춘시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당해, 2016년 6월 20일, 창춘시 얼다오구 법원에서 3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6년 8월 5일,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당시 8세인 푸옌페이의 아들은 어머니의 보살핌을 잃었다. 이 아이는 고통이 있어도 표현할 수 없는 심리적인 압박이 아이에게 압력을 조성했는데, 가족과 사회에서는 자폐증인 줄로 알았다.

푸옌페이는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2층 감방 안에 갇혔는데, 꼬박 3년을 갇혀 있었다. 그녀는 감옥에서 당한 학대를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2016년 8월 5일, 나와 다른 한 파룬궁수련생 자오구이룽(趙桂榮) 노인은 제4구치소에서 지린 여자감옥 소굴로 납치당했다. 문에 들어오는 건물에서 죄수복을 갈아입게 하고, 자신의 겉옷을 입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내가 파룬궁수련생인데 어찌 죄수복을 입을 수 있겠는가를 의식했다. 오후에 8감구로 갔는데, 감구역장 니샤오훙은 나에게 죄수복을 입도록 핍박했다. 게다가 바오자 쉬창핑(徐長平)과 야오란(姚籃)으로 하여금 강제로 나에게 옷을 입히도록 했다. 내가 단호히 입지 않아 그들은 입힐 수 없었다. 약 1시간 대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이 와서 나를 강제로 엄한 관리 방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줄곧 항거하며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고 외치자, 그들은 곧 나의 입을 막았다.

나를 침대 위에 눕히고 한쪽 손과 한쪽 발을 채웠다. 3~4일 동안, 첫 번째 날 밤에 내가 대변을 보려 하자 바오자 웡리(翁麗)는 교도관이 잠을 자기에 1층으로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 당직을 서는 교도관은 마땅히 반시간에 한 번씩 순시해야 하며, 반드시 나에게 수갑을 벗겨주어 화장실로 가게 해야 한다. 사심이 있는 교도관은 직무에 태만해 타인의 고통을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큰 소리로 “파룬궁수련생이 화장실로 가겠습니다!”, “좋은 사람을 박해하지 마세요. 화장실로 가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생존 권리입니다!”라고 외쳤다. 웡리는 내가 외치자 급히 가서 교도관을 불렀다. 결과 몇 차례나 불러도 오지 않았다. 심신의 고통은 내가 안정할 수 없게 했다. 더군다나 앉을 수 없었는데, 그러한 고통은 정말 형용할 방법이 없었다. 이로 인해 나는 변비 증상이 나타나 여러 날 동안 배설하지 못했다.

고문 재연: 침대 위에 채우기 고문

많은 죄수도 선량한 일면이 있었고, 웡리도 차분하게 나와 담화하고 교도관과 나에 대해 좋은 말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사당의 감옥은 바로 좋은 사람을 나쁘게 변하게 하고, 나쁜 사람을 더욱더 나쁘게 변하게 하는 곳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박해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곧 그녀들에게 점수를 공제했다. 이 때문에 웡리는 번거로움이 있으면 나에게 화를 풀었다. 어느 한 번은 그녀가 나를 욕했는데, 내가 그녀에게 욕하지 말라고 권고하자 그녀는 곧 다가와서 나를 구타했다. 여러 차례 나를 구타했다. 어느 한 번은, 내가 천(陳) 대장에게 웡리가 나를 구타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녀는 오히려 “내가 당신을 구타하면 어때서?!”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이튿날 웡리는 화장실에서 나에 대해 폭력적인 구타를 진행했고, 타일 벽에 부딪혔다. 게다가 안해연(安海燕, 북한의 살인범)에게 지시해 화장실을 닦는 솔로 나의 입을 닦았다. 오후 웡리는 또 나의 머리칼을 잡고 구타했다. 그리고 나의 몸 뒤에서 머리칼을 잡고 사납게 나의 머리를 아래로 잡아당겨 나를 침대 위에 눌러 놓았다(내가 채워진 상황에서 진행했음). 머리칼은 잡혀서 많이 떨어졌다. 내가 “사람을 구타하지 마세요!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외치자, 웡리는 베개로 나의 입을 막고 구타했다. 구타로 나의 입과 치아에서 흘러나온 피는 베개 위에 묻었다.

중공 고문 설명도: 구타, 머리를 부딪치기

8월 16일, 나는 111 방안으로 옮겨졌다. 죄수 류핑핑(劉平平, 예전에 변호사였음)은 나에 대해 극히 가혹했다. 어느 하루, 그녀는 나를 속여 감시 카메라가 없는(사실 교도관 사무실에는 모두 전방위의 감시카메라가 있었다. 단지 복도에만 없었다.) 모퉁이로 가서, 이유 없이 손을 들어 나에게 귀뺨 한 대를 크게 때렸다. 어느 하루, 그녀는 몇 차례나 연속 나를 땅 위에 밀어 넘어뜨려 나의 팔, 손마저 모두 부딪혀서 다쳤다. 그리고 또 한 번은 그녀가 나를 구타했는데, 옆방의 파룬궁수련생 징펑웨이(荊鳳偉)가 다가와서 죄수가 사람을 구타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제지하자 그녀는 손을 멈추었다. 교도관 투창(屠強)은 젊은 여자인데,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게 되어서야 나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내가 류핑핑을 폭로해서야, 비로소 그녀를 데려갔다.

감옥의 사악을, 이런 박해 행위를 교도관은 모두 감시 카메라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폭로하지 않으면, 그녀는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모르는 척했다. 죄수가 믿는 데가 있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박해 정책을 교도관이 정하기 때문이다.

9월 17일, 나는 2층에 갇혀 엄한 관리 박해를 당했다. 2층은 1층에 비해 더욱더 엄혹했다. 감방안의 관리 인원 궁추이제(鞏翠傑)는 성질이 매우 난폭했다. 사실 그녀는 정의로운 일면이 있어 생활 중에서 늘 나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그런 특수한 훈련과 양성을 거쳐 그녀는 정말 늘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급선봉으로 전락했다. 내가 연공을 하기만 하면, 그녀는 미친 듯이 나를 채워 놓았을 뿐만 아니라, 또 나를 죽이겠다고 큰소리쳤다. 24시간 동안 지정된 범위 내에서 활동하게 하며 벗어남을 금지했다! 나는 그녀들이 잠깐 신경 쓰지 않는 틈을 타 잠깐 복도로 나가 있었는데, 매일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파룬궁수련생에게 숨을 쉬는 공간을 주지 않았다.

내가 연공을 한다고 교도관 가오양(高陽)이 나를 채웠는데, 며칠 동안 채워져야 했다. 내가 식음을 전폐하자 비로소 그녀는 나를 풀어주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이치가 없음을 알고, 내가 진상을 알릴 때마다 감히 듣지 못하고 바로 도망쳤다. 내가 단호히 연공을 하자, 경제범 량샤오메이(梁小梅)와 류리(劉莉)가 다가와서 나의 팔을 잡아당겨 힘껏 뒤로 비틀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표현이 극히 사악한 ‘바오자’는 전 제1자동차집단 모 부서의 당위원회 서기 량샤오메이(梁曉梅)이다. 그녀는 여러 차례 화장실에서 나를 구타하고 걷어찼다. 내가 방안에서 걸어 다니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교도관에게 알리기만 하면 그녀는 곧 나의 전 가족을 모두 잡아 들어오게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녀는 나를 박해해 뼈만 남게 했다.

고문 재연: 매달기 고문

푸옌페이는 2018년 3월 13일, 3년의 억울한 옥살이가 끝나 지린 여자감옥에서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다.

2020년 7월 7일 저녁 무렵, 푸옌페이는 창춘시 노동공원에서 진상을 알리다 진상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모함당해 허순가 파출소로 납치당했다. 차오양구 검찰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불법적으로 창춘시 병원 ‘병감 대대’에 갇혔다. 그 후 창춘시 제4구치소로 옮겨져 불법 감금당했는데, 연공을 했다고 여러 차례 손을 등 뒤로 채워 학대했다.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2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2/20/4211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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