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간쑤성 보도) 2020년 9월, 간쑤(甘肅)성 칭양(慶陽)시 전위안(鎮原)현 법원에 의해 억울한 4년 형을 선고받은 파룬궁수련생 창웨이슈(強維秀)는 간쑤성 란저우(蘭州)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창웨이슈(52)는 1968년에 간쑤성 바이인(白銀)시의 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적부터 체질이 약하고 잔병이 많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심한 신경쇠약에 걸려 40여 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이후 빈혈 등의 증세를 보여 온종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1992년에 창웨이슈는 간쑤 농업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을 멀리 떠나 칭양시 전위안현 농기국에서 일했다. 1997년 6월, 창웨이슈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를 다년간 괴롭히던 질병이 모두 사라졌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당(邪黨)은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창웨이슈는 여러 차례 납치당해 구치소, 노동교양소에서 고문 학대를 당했다.
1. 베이징에서 진상을 설명하고, 평화적인 청원을 해 박해당하다
1999년 연말, 창웨이슈는 베이징에 가서 진상을 설명하고 파룬궁을 위해 평화적으로 청원했다. 톈안먼 광장에서 경찰에게 납치된 후 전위안현의 경찰에 의해 구치소에 갇혀 두 달간 박해를 당했다. 그 기간 창웨이슈가 가부좌, 연공을 견지하자 악독한 경찰은 수갑, 족쇄를 채웠다. 창웨이슈가 여전히 다리를 틀어 올려 가부좌하자 악독한 경찰은 여러 차례 그녀를 폭행했다. 창웨이슈는 매일 폭행을 당했는데, 풀려날 때야 비로소 수갑과 족쇄를 벗을 수 있었다.
구치소에서 풀려난 지 한 달 만에 창웨이슈는 또 전위안현 구치소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창웨이슈는 박해를 단식으로 저지하다가 사흘 만에 입을 비틀어 여는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고, 장시간 동안 등 뒤로 수갑 채우기 고문을 당했는데, 일주일 후에야 풀려났다.
2000년 봄, 창웨이슈는 두 번째로 베이징에 갔는데, 도중에 전위안현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돼 구치소에 감금당해 박해를 당했다. 창웨이슈는 연공을 견지해 수갑 족쇄에 채워졌고 때로는 며칠째 등 뒤에 채우기 고문을 당했으며 여러 차례 발길질을 당하며 끌려다녔다. 한 달 후, 창웨이슈는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2. 첫 번째로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다
2000년 가을, 창웨이슈는 아침에 실외에서 연공을 하다가 전위안현 110에 의해 납치돼 전위안현 구치소에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창웨이슈는 수갑과 족쇄에 채워졌고, 악독한 경찰에게 여러 차례 발길질을 당하며 끌려다녔다.
2000년 11월 7일, 창웨이슈는 란저우시 핑안타이(平安台) 제1노동교양소에 불법 감금당해 1년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보름 넘게 수갑을 찬 채 갇혀 있던 창웨이슈는 4~5명의 죄수가 번갈아 지키고 있었다. 그녀에게 낮에도 밤에도 서 있도록 강요하여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창웨이슈는 두 발이 부어 신발을 신을 수 없었고 걷는 것마저 매우 어려웠다. 발을 약간만 움직여도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있었고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가라앉았다.
창웨이슈는 단식으로 박해를 저지하다 사흘 만에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경찰 대장의 지시에 따라 여러 수감자가 그녀를 억눌렀는데, 팔과 다리, 발을 누르거나 코를 잡고 입을 비트는 사람이 있었다. 열흘 후 창웨이슈는 병원으로 끌려갔다. 손발을 침대에 묶고 음식물을 주입하는 관을 삽입하고 강제로 링거를 맞혔다.
한번은 악독한 경찰이 창웨이슈에게 수갑을 채우고 중간에 밧줄을 묶어 창문 철제 난간에 매달아 놓고 발끝만 땅에 닿게 해 박해하기도 했다. 경찰의 지시하에 어느 한밤중에 창웨이슈는 두 명의 마약범에게 외진 곳으로 끌려가 한차례 폭행을 당한 후 갑자기 숨이 막혀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정원에 쓰러져 있다가 한참 만에 숨을 돌렸다. 또 한번은 외부 방갈로에서 수갑이 채워져 발끝만 땅에 닿게 매달리기도 했는데 이런 고문은 짧은 시간에도 극도로 고통스러워 설명할 방법이 없다. 박해는 일주일 동안 지속됐다. 장시간 동안 매달렸던 창웨이슈의 두 손목은 문드러져 흉터가 남았다.
3. 유랑 중 납치돼 두 달간 박해당하다
2009년 9월, 유랑 생활을 하던 창웨이슈는 란저우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경찰에게 납치돼 시 공안국으로 끌려갔고, 족쇄와 수갑에 채워져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데 이어, 투구까지 씌워졌다. 칭양시 시펑(西峰)구의 두 명의 악독한 경찰은 수차례 그녀를 발로 차고 올라가 수갑을 잡아당기며 밤새도록 고문했다. 다음 날, 창웨이슈는 전위안현 구치소에 끌려가 박해를 당했다.
창웨이슈가 2개월 동안 감금당한 후, 청관(城關)진 파출소 경찰 팡즈창(方志強)은 아내와 아들, 그리고 한 명의 친구를 데리고 기사 장우탕(張五堂)과 결탁해 강제로 창웨이슈를 간쑤성 핑안타이 제1노동교양소로 옮기려고 했다. 도중에 차량이 고장 나 정비를 하던 중 창웨이슈는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출하다 10m 가까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바람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팡즈창 일당은 창웨이슈를 차에 태워 핑안타이 제1노동교양소까지 장거리를 이동시켰다. 노동교양소 측은 수감을 거부했다. 팡즈창 등은 인맥을 찾아 창웨이슈를 란저우시 제2노동교양소로 데리고 갔으나 그곳에서도 수감을 거부했다. 창웨이슈는 다시 전위안현 구치소로 끌려 돌아왔고 그녀가 마비될까 봐 두려웠던 일당은 책임을 피하고자 이틀 후 집으로 돌려보냈다.
4. 두 번째로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다
2004년 5월 상순, 창웨이슈는 전위안현 공안국으로 납치돼 특수 제작된 철의자에 양손이 채워져 불법 심문을 받다가 한밤중에 간쑤성 위중(榆中)현 류거우허(柳溝河) 여자노동교양소(이하 여자노동교양소)로 끌려갔다. 노동교양소는 창웨이슈에게 심장병이 발견된 데다 척추 두 곳의 골절이 완쾌되지 않아 수감을 거부했다. 결국 창웨이슈는 노동개조 병원으로 옮겨져 감금 박해를 당했다.
창웨이슈는 납치당한 날부터 줄곧 단식으로 박해를 저지했다. 2004년 6월 26일, 창웨이슈는 노동개조 병원에서 45일 동안의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한 후, 란저우시 위중현 허핑진 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돼 구금됐다.
한번은 경찰이 독방에다 창웨이슈에게 수갑을 채우고 이층 침대 난간에 감아 그녀를 매달았는데, 발끝만 땅에 닿게 했다. 다음 날 점심때가 돼서야 풀어주었다. 창웨이슈는 독방에서 일주일 동안 박해를 당했다.
5. 억울한 4년 형을 선고받고, 란저우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당하다
2018년 7월 4일 저녁, 창웨이슈는 거주지에서 전위안현 국가보안경찰에게 납치된 후, 닝현(寧縣) 구치소에 불법 수감돼 있다가, 2019년 3월 12일, 전위안현 법원에서 불법 재판까지 받았다. 그 후 억울한 4년 형을 선고받고, 2020년 9월에 란저우 감옥으로 끌려갔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0년 10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27/4142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