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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칭시 린뎬현 1중학교 우수 교사 왕펑천,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다칭(大慶)시 린뎬(林甸)현 1중학교 우수 교사이자 파룬궁 수련생 왕펑천(王鳳臣)은 4년의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고 후란(呼蘭)감옥에서 박해로 심각한 종양이 나타났다. 대량으로 피를 토하고 숨을 쉴 수 없어 생명이 위급했는데, 결국 2020년 8월 9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올해 50여 세인 왕펑천은 억울한 옥살이 만기가 오직 6개월 남았었다. 그러나 후란 감옥에서는 사람의 목숨을 풀처럼 여겨 석방을 거부했다. 6월 26일, 후란 감옥에서는 또 가족을 핍박해 반드시 책임면책서(免責任書)–‘왕펑천이 감옥 안에서 죽으면, 감옥 측은 책임지지 않고 또 검사를 끝낸 다음 신체는 반드시 감옥으로 돌아온다’라는 협의에 강제 서명하도록 했는데, 서명하지 않으면 검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왕펑천과 아내 렁슈샤(冷秀霞)는 모두 다칭 린뎬현 1중학교에서 뛰어난 우수 교사였다.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을 굳게 지켜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 직업적으로도 도덕이 좋은 교사로서 성실하게 가르치고 선물을 받거나 뇌물 받는 것을 거절했다. 왕펑천은 고등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쳤는데 흥미진진하게 강의하여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집중하여 들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았다. 왕펑천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깊은 신임을 얻어 해마다 대학 입학시험을 보는 진학반을 맡아야 했다.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왕펑천, 렁슈샤 부부는 거듭 박해를 당했다. 2000년 10월 1일, 렁슈샤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5일 후 납치돼 돌아왔다. 게다가 족쇄에 채워져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동시에 왕펑천도 불법 감금당했고, 집안에는 단지 일곱 살인 딸만 남겨져 연로하신 시어머니가 보살펴 주었다. 렁슈샤가 불법으로 구금당한 14개월 동안에 직장에서 담보해 천 위안(한화 약 17만 원)을 갈취하고서야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게다가 엄밀하게 감시해 자유를 제한했다. 2개월 후, 왕펑천, 렁슈샤는 거듭 납치, 가택수색, 감금을 당했다. 렁슈샤는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 여자 마약 중독자 재활원으로 보내졌다.

2017년 1월 18일 오후, 왕펑천, 렁슈샤 부부는 집에 들이닥친 한 무리의 사복 경찰에 의해 납치돼 가택 수색을 당했다. 경찰은 동시에 또 폭력으로 왕펑천과 같은 주택 단지에 거주하는 린뎬현 1중학교의 기타 세 명의 교사 리롄성(李連生), 왕쿤(王坤)부부와 아이자오제(艾教傑)를 납치했다. 왕펑천과 리롄성, 아이자오제는 린뎬현 공안국에서 다른 정도의 고문 학대를 당하고 린뎬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고, 렁슈샤는 다칭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2017년 10월 11일, 린뎬현 법원에서는 왕펑천, 렁슈샤 부부 및 아이자오제, 리롄성에 대해 불법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왕펑천과 아내 렁슈샤는 4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각각 3만 위안(한화 약 513만 원)의 벌금을 갈취당했다. 2018년 봄, 렁슈샤는 헤이룽장 여자감옥에 불법 감금당했고, 왕펑천은 후란 감옥에 불법 감금당했다.

2020년 5월 31일, 후란 감옥에서는 가족에게 왕펑천의 병이 중해 2개월 넘게 기침을 하고 현기증이 나고 혼미하다는 통지를 내렸다. 가족은 전화로 감옥 6감구 대대장 리촹(李闖)에게 연락했는데, 그날 저녁에 왕펑천을 감옥병원으로 보내 치료를 받게 하고 단지 폐렴이라고 말하며 소염 주사를 맞혀 치료했다고 알려주었을 뿐이다.

6월 18일, 감옥병원에서는 왕펑천을 감옥 관리국 중심병원으로 보내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제기하며, 가족에게 입원 담보금 만 위안(한화 약 170만 원)을 달라고 했다. 그 기간에 가족이 다시 병세를 물었는데, 폐에 감염됐다는 통지를 받았다.

가족은 왕펑천의 병이 호전이 없는 것을 보고 거듭 감옥 측에 외부의 병원으로 가서 검사받고 병세를 확진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 약 일주일이 지난 후 감옥 측은 동의했다. 6월 26일, 후란 감옥에서는 죄책을 벗어나기 위해 가족을 핍박해 반드시 책임면책서라는 강제 협의에 서명하도록 했는데, 서명하지 않으면 검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위해 가족은 핍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무리한 협의에 서명한 후에야 왕펑천을 하얼빈 눙컨(農墾) 종양병원으로 보내 검사를 받게 했다. 검사 과정 중에서 왕펑천은 피를 토해 두 가지 검사를 할 수 없어 검사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전염병 때문에 병원에서도 입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렇게 검사하기 가장 좋고 치료하기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다. 왕펑천이 각혈한 시간이 길어 피를 지나치게 흘려, 숨이 올라오지 않아 이미 기관지경 검사를 할 수 없었다.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지혈제를 사 주사로 지혈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7월 2일, 재검사를 요구하자 감옥 측은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생명이 위급한 왕펑천은 또 후란감옥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6월 30일, 왕펑천은 생명의 위험이 나타나 감옥 측에 의해 하얼빈 눙컨 종양병원으로 보내졌다. 7월 1일 저녁 8시쯤, 감옥에서는 가족에게 왕펑천이 호흡이 어려워 ‘응급처치’를 받아야 한다고 알리고, 아울러 가족에게 돈을 요구했다. 가족이 병원에 달려갔을 때, 왕펑천의 코와 입에 전부 피가 있는 것을 보았다. 병원 측에서도 언제든 생명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7월 2일, 가족은 후란 감옥 측에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반드시 진단서가 있어야만 신청할 수 있고 하얼빈 눙컨 종양병원은 싼자(三甲)병원이 아니므로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는 보고를 할 수 없다고 말하며 곤란하다고 했다. 가족은 또 무슨 싼자병원을 알지 못했는데, 어쩔 수 없이 민원사무실에 도움을 청해서야 감옥 측은 비로소 마지못해 잠시 절차를 밟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여전히 진단서를 요구했다. 가족에게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감옥 측은 치료할 돈이 없으면 계속 감옥으로 돌아와 사망하거나 형기가 만기 될 때까지 징역살이하고 석방한다고 결정했다.

7월 6일, 하얼빈 눙컨 종양병원에서는 병이 위급하다는 통지를 내렸다. 왕펑천은 대량으로 각혈하고 숨이 올라오지 않아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하지만 이때 왕펑천의 아내 렁슈샤는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었다.

가족이 줄곧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한 상황에서도 감옥 측은 풀어주지 않았다. 왕펑천은 8월 9일 일요일 아침 5시쯤, 하얼빈 눙컨 종양병원에서 사망했다.

관련 박해 책임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0년 8월 1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11/4103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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