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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수련으로 심신 건강을 얻고, 12년 억울한 옥살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밍후이왕] 헤이룽장(黑龍江)성 자무쓰(佳木斯)시 둥린구이(董林桂)는 병을 없애고 몸의 건강을 위해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후, 둥린구이는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 끊임없이 자신의 도덕 품성을 제고했다. 게다가 매일 5장 공법을 연마했다. 차츰 여러 가지 질병은 치료하지 않고 완쾌됐고 마음도 넓어졌으며, 성격이 낙관적으로 변해 즐겁고 기뻤다. 그녀는 내심에서 우러나와 파룬따파가 자신에게 새 삶을 가져다준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

하지만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깡패집단은 1999년 7월부터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해 대법 사부님을 비난하고 일억 명이 넘는 대법 수련생의 바른 믿음을 탄압했다. 둥린구이는 자신이 대법 중에서 심신이 이로움을 얻었기에 배은망덕할 수 없고, 반드시 일어서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여 정부를 이해시켜야 한다고 여겼다. 그녀는 4차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4차례 납치돼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그 기간에 또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고문 학대당해 사경을 헤매자 노동교양소에서는 사람이 죽어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수감을 거부했다. 악인은 곧 그녀를 노동교양소 문밖에 던져버리고 차를 몰고 도망쳤다.

2002년, 둥린구이는 또, 12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헤이룽장 여자 감옥에서 각종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둥린구이가 박해당한 사실을 폭로함은 세인에게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당한 진상을 명백히 알리는 외에 파룬궁 수련생 박해에 참여한 경찰들을 일깨워 악행을 멈추고, 중공의 당단대(黨團隊) 조직에서 탈퇴해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희망해서이다.

둥린구이는 박해당한 경과를 다음과 같이 자술했다.

대법을 수련해 기쁘게 새 삶을 얻다

나는 둥린구이라고 부르고 한족이며, 1949년 8월 16일에 출생했다. 1992년, 남편이 병으로 사망할 당시 거액의 빚을 졌기에 나는 집도 없이 가난한 생활을 했다. 잠을 자지 못하며 사색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의의는 무엇인가? 인생의 참뜻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스러운가? 무엇이 운명인가?

남편의 사망으로 정신적인 충격과 생활고로 여러 가지 질병이 발병했다. 뇌동맥 경화증, 관상 동맥 질환, 담낭염, 담결석, 신장염, 음낭종(腎囊腫), 고혈압, 관절염, 다리 아픈 증상, 허리통 등 10여 가지 병이 나타났다. 어려움과 고생으로 사는 게 죽기만 못한 시달림 속에서 병세는 급격히 가중됐다. 나는 또 병든 몸을 이끌고 일을 하여 연명해야 했다. 정말 하늘과 땅을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1995년 4월 26일, 나는 운 좋게 ‘전법륜(轉法輪)’ 보서를 얻었다. 나는 보서를 펼쳐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읽었는데, 갑자기 좋은 사람이 되는 많은 도리, 인생의 의의를 깨달았다. 이로부터 파룬따파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나는 진심으로 선을 행해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 차츰 나의 성격은 차분하게 변하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화애롭게 대했으며, 너그럽고 참고 양보할 수 있었다. 심태가 좋아지고 정신도 좋아졌다. 차츰 여러 가지 질병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병이 없이 온몸이 가벼웠다. 그런 가벼움, 그런 즐거움, 그런 초상적임, 그런 신기함을 나는 내심에서 우러나와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렸고, 대법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

4차례 베이징으로 들어가서 진상을 알려, 4차례 납치당하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과 중공은 선량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발동했다. 하지만 파룬궁수련생은 붙잡혀 구타당하고 납치하는 광적인 박해를 무릅쓰고 박해를 멈추기 위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나도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고 톈안먼으로 가서 대법을 실증했다. 나는 톈안먼으로 가서 아직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치지도 못하고 경찰차로 불법적인 납치를 당했다. 그리고 펑타이 체육관으로 끌려가 40도 되는 고온의 뙤약볕을 쬐며 하루 동안 박해당했다. 구타당하고 욕까지 들으며 시달림을 받았다. 나는 심한 박해로 1박 2일 동안 음식물을 먹지 못했다. 되돌아오는 도중에 나는 기회를 틈타 그들에게서 벗어났다.

나는 또 한 차례 베이징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실증하러 갔는데, 막 톈안먼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곧 사복 경찰에게 한바탕 폭력적인 구타를 당했다. 그리고 또 불법적으로 경찰차로 납치당했다. 돌아온 후, 자무쓰(佳木斯) 구치소로 납치당해 3개월 동안 박해를 당했다. 닭 사료를 먹었는데, 옥수수떡 안에 쥐똥이 한 무더기 들어 있었다. 그리고 10여 m의 온돌에 30여 명이 비집고 있었다. 나는 구타당하고 욕설을 들었으며, 음식물 강제 주입을 위해 호스를 꽂는 등 각종 학대를 당했다.

酷刑演示:野蛮灌食(绘画)
고문 재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그림)

집으로 돌아온 후, 세인들에게 ‘파룬따파하오’를 명백히 알리기 위해 거듭 베이징으로 가려 했다. 나는 일찍 일어나 아침 시장에 가서 약간의 일용품을 팔아 노잣돈을 충분히 마련한 후 세 번째로 베이징으로 갔다. 그리고 또 불법적으로 납치, 구타를 당해 베이징 주재 자무쓰 사무실에 납치당했다. 그 후 자무쓰 구치소로 옮겨 더욱 심각한 박해를 당했는데 수시로 구타하고 욕했다. 내가 단식으로 항의하자, 그들은 곧 난폭하게 음식물 주입을 진행했다. 음식물 주입을 진행한 후, 위 속에 큰 호스를 꽂아 넣고 며칠이 지나도록 꺼내지 않아, 며칠 동안 호스를 위 속에 꽂고 있었다. 그런 기분은 상당히 괴로웠고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이렇게 나를 괴롭혔고 또 수작을 바꿔가며 학대했다. 그리고 대자형으로 바닥 위에 누워 꼼짝할 수도 없었는데, 그런 고통의 시달림은 사는 게 죽기만도 못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구치소에서 나온 후, 나는 또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자면서 약간의 일용품을 팔아 집세를 내고 나머지 돈으로 여비가 마련되자 곧 네 번째로 베이징으로 갔다. 톈안먼에 도착해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현수막을 펼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다 외쳤다. 주변의 대법 수련생은 모두 납치당해가고 나 혼자만 남았다. 나는 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현수막을 펼쳐 들었는데, 이때 7, 8명의 사복 경찰이 모두 나를 향해 왔다. 그들은 나를 흉악하게 뭇매질했다. 나의 신은 구타로 벗겨지고, 머리가 혼미해져 땅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나를 구타하고 또 나를 경찰차로 끌어 올렸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재연: 혹독한 구타

당시 많은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납치했는데, 한 차 가득 채워 160리 밖에 있는 한 파출소로 데려갔다. 경찰은 “각 감옥, 노동교양소, 구치소, 파출소는 전부 꽉 찼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곳에 불법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은 누구도 이런 식의 무리한 박해에 협력하지 않고 단호히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밤 12시에 우리를 허베이(河北) 지역의 황량한 야외로 싣고 갔다. 우리를 풀어줄 때 경찰은 “그쪽은 우리 지역이 아니므로 우리는 관할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네 차례 자무쓰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고문 학대를 심하게 당했는데, 매 차례마다 음식물 주입 박해를 당했다. 한 차례는 학대로 거의 죽게 되어 구치소에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를 노동교양소로 보내 계속 박해했다. 나에게 3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내렸다. 노동교양소에서는 내가 학대를 당해 위험한 것을 보고, 안에서 죽어 그들이 책임져야 할까 두려워 감히 수감하지 못했다. 악독한 경찰 천완유(陳萬友)는 나를 그곳에 버리고 차를 몰고 도망쳤다.

12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아, 헤이룽장 여자감옥에서 고문 박해를 당하다

2002년 1월 8일,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쓰레기 봉지를 들고 버리러 나갔다. 걸어가는 도중에 이유 없이 경찰에게 납치당했는데, 그들은 사납게 나의 머리를 구타했다. 이번에 나는 12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2년 사이에 나는 각종 고문 학대를 당했다. 바로 이와 같은 폭력적인 전향으로 인해 많은 파룬궁수련생은 박해로 사망했다.

2002년에 내가 12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9월 2일에 나는 헤이룽장 여자감옥에 불법 감금당했다. 그곳에 도착해 쭈그려 앉기 체벌, 구타당하고 욕을 들었다. 밤이 돼서 ‘610’의 샤오린창은 또 나에게 ‘연마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핍박했다. 쓰지 않으면 구타했는데, 팔을 빙빙 휘두르며 나에게 20여 대의 귀뺨을 때렸다. 그는 구타하다가 지쳐서 그곳에 앉아 땀을 흘렸다. 나는 구타로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머리는 계속 윙윙거렸다. 그런 다음 그들은 나를 독방에 밀어 넣고 계속 박해했다.

낮에 하는 박해로는 집중훈련 감구에 도착해서 ‘바른 걸음’으로 뛰어오르며 걷는 것인데, 뛰어오르지 않으면 전기봉으로 구타했다. 그리고 뙤약볕에 12시간 동안 쪼였고, 밤에는 ‘비행기 몰기(開飛機)’ 고문을 가해 강제 전향을 진행했다. 매일 2시간만 잠을 잘 수 있었다.

酷刑演示:开飞机
고문 재연: 비행기 몰기(開飛機)

그 후 양화(楊華)에 있는 수감소로 갔는데 박해는 더욱 흉악하고 잔인했다. 낮에는 뙤약볕에서 12시간 동안 달리기를 했고 저녁에는 쭈그려 앉기 고문, ‘비행기 몰기’ 고문을 당했다. 밤낮 폭력으로 전향을 당했는데, 연속 12일 주야를 끊임없이 구타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맨 마지막 날 저녁이 되어 그들은 사람이 정말 위험해진 것을 보고서야 나에게 2시간 동안 잠을 자게 했다. 나는 졸려서 머리가 아프고 혼미해 서기만 하면 쓰러졌고, 달리면 넘어졌다. 졸기만 하면 그들은 구타했다. 잔혹한 폭행은 끊이질 않았다. 그들은 사람이 위험해지자 곧 또 나를 독방에 가둬 계속 잔혹한 박해를 진행했다. 독방에 도착해 나는 날마다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演示:关小号
재연: 독방에 가두기

감옥에 들어간 지 1개월 되는 날 점심, 왕야리는 독방 대대장인데 그녀는 남자 경찰 린(林) 씨를 불러서 술에 취한 후에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고 구타했다. 그리고 “내가 당신을 구타해 죽이지 못하더라도 당신을 구타해 치아 몇 대를 부러 놓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큰 주먹을 쥐고 나의 머리를 때렸다. 나는 구타당해 곧 까무러쳐 아무것도 몰랐다. 그 후 치아가 몇 대나 바닥에 떨어졌는데, 맨 마지막에는 단지 8대밖에 남지 않았다. 저녁 6시에 정신을 차린 후, 혼미 중에서 한 젊은 형사범이 “감시실의 경찰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어요. 당신이 단식하고 허세를 부리다가 어떻게 죽는지를 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바로 이렇게 생명을 경시하며 인명을 초개같이 여겼다. 그들은 내가 또 깨어나면 계속 박해를 진행해, 나에게 쇠 의자에 앉도록 핍박했다. 나는 기운이 없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면 곧 자무쓰 난강(南崗)의 살인범 장수판(張淑凡)을 불러서 크고 넓은 테이프로 나의 코와 입을 봉했고, 테이프로 머리를 에워싸고 감아 나를 질식시켰다. 내가 숨이 끊긴 후, 나를 독방에서 들고 나갔다.

이튿날, 내가 깨어나 보니 병실(병이 있는 죄수를 감금하는 감방)에 있었다. 죄수 환자 담당은 “모두 당신이 죽었다고 알고 있는데, 당신은 오히려 살아났네요. 정말 신기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사망선에서 한 바퀴 돌고 되살아났다. 그러나 많은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이런 박해로 사망했다.

그 후 또 나를 악독한 경찰이 관할하는 수감구로 옮겨 계속 잔혹한 박해를 했다. 동북의 심하게 추운 겨울 날씨에 시멘트 바닥 위에 8개월 동안 앉혀 놓고 아무것도 깔지 못하게 했다. 차가워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손발에 경련이 일어났다. 끼니마다 단지 만터우 반 개만 주어 배고파서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고, 허리마저 곧게 펼 수 없었다. 하얼빈의 한겨울은 음랭하고 몹시 추웠는데, 매일 시멘트 바닥 위에 밤 12시까지 앉아있었다. 한 대야의 냉수로 북쪽 문이 열린 1층에서 목욕을 했다. 북풍이 살을 에듯 몰아쳐 추위에 떨어 근골이 아프고, 뼈와 살마저 경련을 일으켰다. 그들이 이렇게 광적으로 박해한 목적은 바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하도록 핍박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하루, 경찰 정제는 수법을 바꿔가며 나를 박해했다. 나를 그녀가 부르면 사무실에 들어갈 때 반드시 ‘보고합니다’라고 외쳐야 한다고 했다. 양화는 나에게 대법 사부님과 대법을 욕하라고 핍박했고, 정제는 나 자신을 욕하라고 핍박했다. 단지 내가 ‘보고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 번째로 또 1개월 동안 독방에 갇혔다. 이번의 박해 역시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자오잉링의 수감구는 더욱 잔인무도했다. 병원 원장은 마땅히 죽음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고 부상자를 돌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있는 방법을 다 생각해 사람을 해쳤으며 비인간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학대했다. 어느 날 겨울 아침 5시에 이불과 매트리스를 가져갔다. 온종일 작은 걸상에 앉아 오전 5시에서 자정 12시까지 앉아있게 했다. 밤 12시 후, 꽁꽁 언 이불을 가져다주며 잠을 자라고 했다. 흐린 날일수록 더욱 추위에 떨게 했고, 눈이 내릴수록 더욱 추위에 떨게 했는데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꽁꽁 언 이불은 마치 얼음처럼 추위가 사람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는데, 마치 한겨울 추위에 얼음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살을 에이듯이 차가웠다.

감옥 경찰은 중공과 장쩌민(江澤民)의 박해 명령하에 각종 박해 독계(毒計)를 생각했다. 어느 하루, 자오잉링(趙英玲)은 나를 그의 사무실로 불러 나에게 경찰을 시켜 나에게 500W 큰 전기난로를 사주어 따듯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러니 자기에게 은혜를 알고 보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 전기난로로 나를 박해했다. 아침 5시에 작은 나무 걸상에 앉아서 밤 12시까지 있었는데, 다리, 발, 허리가 마비되어 지각을 잃었고 너무 졸리고 지쳤다. 밤 12시에 눈으로 얼어붙은 이불을 덮고 잠을 잤는데, 추워서 온몸을 웅크렸다. 낮에는 옷이 다 벗겨져 전신은 추위에 덜덜 떨었다. 얼굴과 가슴은 바오자(包夾, 수감 감시자)에게 눌려진 상태로 전기난로로 쪼였다. 쪼여져 줄곧 찍찍 소리가 울렸고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전기로 굽지 않으면 곧 구타했다.

한번은 하얼빈 죄수 왕신화(王辛華)가 나를 때려눕혔는데 긴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막 깨어났을 때 머리가 여전히 윙윙거렸고, 전기난로에 쪼인 가슴에는 큰 혹이 생겨났다. 눈은 전기에 심하게 쪼여 ​​잘 보이지 않았다. 사악한 경찰 자오잉링 (趙英玲)은 또한 죄수를 조종해 큰 막대기로 구타했고, 그렇게 하면 사악한 죄수들에게 40점의 높은 점수를 주어 장려함으로써 그들이 언제든지 다시 구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酷刑演示:吊铐
고문 재연: 매달기 고문

나는 여러 차례 독방에 감금당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대부분을 독방에서 보냈는데 정확한 시간을 기억할 수 없다. 이 기간 동안, 핍박에 못 이겨 단식했는데 그들이 백주(白酒)를 주입해서 계속 피를 토했다. 그리고 큰 괘에 올리기 고문, 일 년 내내 등 뒤로 수갑 채우기, 지환, 족쇄 채우기 등의 고문을 당했다. 게다가 가장 악독한 것은 그들은 장시간 동안 우리에게 옥수숫가루 물을 먹였다. 바로 생 옥수숫가루를 물통 안에 넣고 뜨거운 물을 탄 것인데, 뜨겁지도 않았고 숭늉보다 걸쭉하지 않았다. 교도관의 말에 의하면, 의학 서적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 음식을 60일 동안 먹으면 사람은 버리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는 72일 동안 먹었다. 60여 일이 지난 후, 사람이 위험해지면 곧 독방에서 데려나갔다. 72일이 되어 나는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는데 몇 차례 대량으로 혈변한 이유로 독방에서 풀려났다. 당시 우리의 소화 기관과 기능이 전부 위축됐고, 혈변에다 강제 음식물 주입으로 위도 좋지 않아 가끔 피를 토했다.

酷刑演示:地环
고문 재연: 지환

독방에서는 겨울에 솜옷을 입지 않았고, 독방의 온열기를 들어내고 추위에 떨게 했으며 굶기고 구타했다. 한 번은, 10여 명 이상의 큰 남자들이 나를 등 뒤로 지환에 채워 놓았다. 그리고 에워싸고 얼굴 위, 머리 위를 걷어찼다. 그들은 모두 큰 가죽 신발을 신었는데, 나를 걷어차서 까무러치게 한 후 그들은 떠났다. 그들은 웨이둥쉰(魏東尋), 린펑(林楓)이며, 그 나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양리빈과 샤오린은 기절할 때까지 나의 입을 때렸다.

장쩌민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라’, ‘때려죽여도 상관없고 맞아 죽으면 자살로 간주하라’는 사악한 박해 비밀 명령에 따라, 헤이룽장 여자감옥의 악독한 경찰은 폭력 수감소 범죄자들에게 한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키면 장려금을 준다고 함으로써 내가 불법 감금당한 그 12년 동안 그들은 매일 멈추지 않고 나에게 폭력적인 전향, 잔혹한 박해를 가했다.

 

원문발표: 2020년 6월 2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26/4080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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