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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성의 아이가 “엄마 아빠를 보고 싶어요”라고 외친 후 사망

중공에 살해당한 100개 가정 (18)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종합보도) 2008년 3월 11일, 개학 이튿날에 급식비를 아끼기 위해 구이저우(貴州) 판수이(盤水)시 판(盤)현 보궈(柏果)진의 12살 쉬딩궈(徐定國)는 학교 입구로 달려가 2위안(약 340원)어치 음식물을 사서 먹었고 그날 저녁에 토하며 열이 올랐다. 이튿날 전신에 붉은 반점이 생겼는데, “엄마 아빠를 보고 싶어요!”라며 외친 후 처참하게 사망했다. 쉬딩궈는 사망 전 부모를 만나보지 못했다.

비보를 들은 교사와 학생, 이웃들은 비통해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네 형제자매도 눈물범벅이 됐다. 쉬딩궈의 어머니 천위메이(陳玉梅)는 2007년 2월에 불법 납치를 당했다가, 그 후 구이저우 중바(中八) 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아버지 쉬치화(徐啟華)는 2007년 9월에 구이양(貴陽) 국가보안 첩자에게 납치됐고, 그 후 바이화산(百花山)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그리고 법원에 의해 비밀리에 구이양시 사법 경찰병원에서 이른바 ‘재판’을 받아 불법적인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쉬딩궈의 큰아버지 광다오(廣道)는 2001년에 베이징에 들어가 청원했다가 베이징 공안에 의해 혹독한 구타를 당해 사망했다. 세 아이를 남겼는데 쉬치화가 부양했다.


 쉬싱(徐杏), 쉬딩궈(徐定國), 쉬딩푸(徐定府)(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쉬위안위안(徐圓圓), 쉬포롄(徐佛蓮)(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쉬광다오(徐廣道)의 고아: 쉬딩푸, 쉬싱, 쉬포롄
쉬치화(徐啟華)의 아이: 쉬딩궈, 쉬위안위안

쉬딩궈를 매장하기 전에 구이저우 여자노동교양소에서는 그의 어머니 천위메이가 집으로 돌아와 아들을 한 번 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구이양 국가보안 첩자와 시 공안 악독한 경찰 및 윈옌(雲岩)구 검찰원, 바이화산 구치소 등도 그의 아버지 쉬치화가 집으로 돌아와 아들의 시신을 한 번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쉬딩궈는 어릴 때부터 끊임없는 공갈 협박, 공포, 고난 중에서 몸부림쳤다. 두 오누이와 세 명의 종남매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갔다. 2000년 정월, 쉬딩궈는 아버지, 어머니 등 9명을 따라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큰아버지 쉬광다오는 베이징 공안에 의해 혹독한 구타를 당해 사망했고, 큰어머니는 악독한 공산당의 연좌 정책의 핍박에 못 이겨 5살인 아들, 세 살과 한 살인 두 딸을 버려두고 집을 떠났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불법 감금당하고, 이어서 아버지, 어머니가 납치됐으며, 또 고모부도 납치돼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수시로 갑자기 찾아온 끝도 없는 소란, 감시, 가택 수색을 당했고 우롱당했다.

1. 큰아버지 쉬광다오가 베이징 둥청구 구치소에서 구타로 사망

구이저우의 많은 지방은 원래 곤궁했다. 많은 중공(중국공산당) 악당의 박해로 씻은 듯이 가난해진 파룬궁수련생은 법에 따라 청원했다. 그들은 잇달아 베이징으로 가서 자신이 대법을 수련한 후 심신에 이로움을 얻은 상황을 정부에 반영했다. 여러 차례 도보로 구이저우에서 베이징으로 가서 청원했는데, 얼마나 많은 신발을 닳게 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발이 상처를 입었는지 헤아릴 수 없다. 배고프면 길옆에서 사람이 버린 음식물을 주었고 지치면 높고 큰 산에서 잠을 잤다. 하지만 그들이 직면한 것은 감금 박해였다.

2000년 초, 쉬광다오, 쉬치화 및 그의 친척, 친구 11명(그리고 겨우 5~6세인 두 아이가 있었음)은 베이징으로 가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설명했는데, 쉬광다오는 베이징의 악독한 경찰에 박해를 받아 사망했고, 그 나머지 인원은 몸에 돈 한 푼 없이 베이징에서 도보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쉬강다오(徐廣道)가 생전에 찍은 사진

사정을 아는 사람의 폭로에 따르면, 쉬광다오는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며 청원한 이유로, 둥청구 구치소 2동 4소에 감금됐다. 그 후 단식, 청원, 연공을 한 이유로, 여러 차례 혹독한 구타를 당했고 전기 침 고문을 당했다. 한 차례 혹독한 구타를 당한 후 들려 돌아와 몸을 뒤척일 수 없고 화장실로 갈 수 없었다. 2001년 2월 어느 날 각혈을 하기 시작해 결국 저녁에 사망했다. 둥청 구치소에서는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같은 감방 죄수를 옮기고 회의를 열어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정했다. 이후 어떤 사람이 의심하다가 한 감옥 직원이 실언해서야 실상을 들었는데, 쉬광다오가 구타로 사망했고 범인은 둥청 구치소 정위, 궈(郭) 부소장 및 다른 한 감옥 경찰 3명임을 알았다.

쉬광다오의 아버지는 베이징으로 가서 아들 쉬광다오를 찾았는데, 베이징의 악독한 경찰에게 독극물에 중독돼 집으로 돌아온 후 기억상실증, 의식이 몽롱한 증상이 나타났다. 지금도 문을 나서면 돌아오는 길을 몰랐고 누군가 돌봐줘야 한다.

공산당의 연좌 박해에 못 이겨 쉬광다오의 아내는 다섯 살인 아들, 각각 세 살과 한 살인 두 딸을 버리고 집을 떠났다. 쉬광다오의 어린 세 고아는 쉬광다오의 남동생 쉬치화 일가가 보살피고 부양했다.

이로부터 쉬치화는 세 가정의 중임을 어깨에 짊어졌다. 자신의 두 아이와 형이 남긴 세 아이를 부양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연로하신 부모님도 보살펴야 했다.

2. 어머니 천위메이가 납치돼 노동교양 처분을 받고, 아버지 쉬치화가 핍박에 못 이겨 유랑하다

이처럼 극심한 고통과 압력을 감당하고 있는 가정에 대해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가만두지 않았다. 2007년 1월, 중공 악도가 판현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납치 박해 중에서 쉬딩궈의 아버지 쉬치화는 박해로 유랑생활을 하고, 어머니 천위메이는 납치돼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집안의 5명 어린아이들은 조부모와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2006년 말에서 2007년 초, 류판수이(六盤水)시 부시장 예원방(葉文幫)은 판현 보궈진으로 가서 시찰했는데, 진 내의 도처에 모두 진상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보궈진 둥성(東升)촌 촌장 예유보(葉尤柏)를 찾아가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할 계획을 꾸몄다.

2017년 정월 10일, 구이양 국가보안 공안, 구이저우성 ‘610’의 일부 악인은 갑자기 판현 투청(土城, 즉 보궈진)과 류판수이시, 판현 공안, 국가보안, ‘610’과 서로 결탁해 보궈 호텔에 주둔하며 현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감시, 미행을 진행했다. 정월 22일 저녁 11시 후, 판현 투청, 쑹허(松河), 싼자오수(三腳樹), 웨량톈(月亮田) 등지에서 악독한 경찰은 모의한 대로 잠복 감시, 미행, 전화 감시 등 수단을 이용해 차례로 파룬궁수련생 30여 명을 불법 납치했다.(그중 또 16세인 아이와 수련하지 않은 가족 한 명이 있었음). 납치에 참여한 사람은 성, 시 ‘610’ 인원을 제외한 외, 판현 공안국 부국장 황허쑹, 판현 공안국 1과(정보과, 국가보안대대) 과장 뤄진쉬(駱金序), 보궈진 파출소 소장 장훙(張洪) 등이다. 천위메이는 정월 29일에 납치됐고, 쉬치화는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다. 쉬치화의 매부 탄강완(譚廣萬)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으나 그도 납치됐다.

가족이 계속 석방을 요구하자 일부 수련생은 풀려났다. 나머지 인원은 불법적으로 판현[현재 청관(城關)진] 공안국 세뇌반으로 보내져 불법 감금 박해를 당했다. 그 후 판현 구치소, 훙궈(紅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는데, 그들은 천위메이, 탄광완, 샤오위안후이(肖雲會), 천중슈(陳忠秀), 푸언푸(蒲恩福), 먀오창즈(繆強志), 천밍싸이(陳明賽), 왕윈룽(王雲龍), 부언푸(卜恩福), 허팡(何芳), 후차이윈(胡彩雲), 탕샤오윈(唐小雲), 먀오(苗) 형, 왕슈메이(王秀梅), 장스펀(張世芬)이다.

쉬징궈의 어머니 천위메이는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고 구치소에서 구이저우 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됐다. 쉬치화의 매부 탄광완은 원래 대법 수련생이 아닌데, 단지 사악을 협력하지 않은 이유로 구이저우 중바 노동교양소 4대대로 보내졌다. 파룬궁수련생 왕슈메이는 1년 9개월의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이것은 그녀가 두 번째로 노동교양 박해를 받은 것이다.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은 사람은 또 허팡(何方, 3년)이고, 샤오윈후이의 서류 중에는 2년 불법 노동교양 처분으로 쓰여 있었는데 실질적으로 2년 6개월을 집행했다. 푸언푸, 왕윈룽은 5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천밍싸이는 4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장스펀, 랴오창즈는 3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구이저우 농촌에서는 ‘위성안테나[鍋蓋]’를 설치해야만 텔레비전을 수신할 수 있었다. 판현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쉬씨 집으로 가서 선을 뽑아버려 노인,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했다. 경찰은 또 그의 주택 앞에 두 대의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고, 동시에 판현 투청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쉬치화 집 인근의 주민 아오청궁(敖成恭), 양룽샹(楊龍祥), 리쉐청 등을 고용해 그의 집을 감시했다.

3. 아이가 죽기 전에 울면서 “엄마 아빠를 보고 싶어요”라고 외치다

쉬 씨의 큰아들은 박해로 사망했고, 둘째 아들은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으며, 둘째 며느리는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조손 일곱 식구의 생활은 근근이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옥수수를 심어 쌀을 바꾸고 또 약간의 야채를 심어 유지했다. 그리고 또 다섯 명 손자의 공부도 뒷바라지해야 했다.

본래 가난하던 가정은 또 현지 정부 기관의 이유 없는 착취를 당했다. 쉬 씨 집에서 논벼를 심는 밭은 현지 정부에서 강제로 징용해 기차역을 건설했고, 원래 정한 보잘것없는 보상비용 2만 3000여 위안(약 400만 원)은 판현 보궈진 둥성촌 정부에게 불법적으로 빼앗겼다. 두 집의 장손은 이미 주민 인구로 바뀌어 국가의 ‘최저 생활 보장’을 누려야 함이 마땅했다. 그러나 가장이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압수당했다.

쉬 씨의 다섯 아이는 늘 어른을 등지고 몰래 울었다. 특히 친구가 부모의 손을 잡고 기쁘게 깡충깡충 뛸 때면 더욱 그랬다. 누가 “너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지 않니?”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꿈속에서도 보고 싶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라고 외쳤다. 동시에 이렇게 고생스러운 환경은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괴로움과 고생을 참고 견디며, 부지런하고 소박한 성격이 되게 했다. 그리고 또 특별히 철들어 노인을 존경하고 어린아이들을 사랑했다.

쉬딩궈는 학교에서 다른 친구가 밥을 사 먹을 돈이 없는 것을 보면 전혀 주저하지 않고 할머니가 준 2위안을 동창에게 주고 자신은 굶었다. 어떤 때는 고모가 약간의 돈을 주어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친구를 도와줬다. 방과 후, 빠른 걸음으로 급급히 집으로 달려가 다그쳐 숙제를 완수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하러 밭으로 나갔다 돌아오지 않으면 먼저 밥을 지어 놓았다. 그런 다음, 광주리를 등에 지고 채소밭으로 가서 배추를 캐서 돌아와 배춧국을 끓여 놓고 어른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밥을 먹었다.

이렇게 착한 아이가 2008년 3월 11일 개학 이튿날에 새 학교의 밥값이 비싸자[한 끼에 3위안(약 520원)] 돈을 아끼기 위해 원래의 학교 입구로 뛰어가 2위안짜리 음식을 사 먹었다. 그런데 먹은 후, 그날 저녁부터 구토하고 열이 났다. 이튿날에 또 억지로 지탱해 공부하러 갔으나 이미 버티지 못했고 전신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아이는 병원으로 이송 중에 “엄마 아빠를 보고 싶어요!”라고 처참하게 외친 후 사망했다. 사망 시 전신은 검은색을 띠었다.

아이들은 눈물범벅이 됐고 전 가족은 비통함에 빠졌다. 학교 교사와 학생, 이웃들이 집으로 찾아와 위로했다. 쉬 씨 가족은 불법 감금당해 있는 쉬딩궈의 부모에게 아들의 시신을 한 번 보여주려 했으나 악독한 경찰은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소식마저 쉬치화 부부에게 알리지 않았다.

4. 아버지 쉬치화가 납치돼 4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다

쉬딩궈의 어머니가 납치당한 후, 아버지 쉬치화는 박해로 유랑생활을 했다. 2007년 9월 하순, 구이양 국가보안은 쉬치화가 타인에게 위성안테나를 설치해줬다고 의심해 납치했다. 국가보안은 공을 가로채기 위해 쉬치화와 동시에 납치된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 리둥훙(李東洪), 자리안(賈立安)에 대해 고문 학대, 광적인 박해를 진행했다.

쉬치화는 구이양 윈옌구 바이화산(百花山)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2008년 3월, 아들은 음식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구이양 국가보안 첩자와 공안 악독한 경찰 및 윈옌구 검찰원, 바이화산 구치소 등 관련 인원은 쉬치화가 집으로 돌아가 아들의 시신을 한 번 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중공 사당 인원은 불법적으로 쉬치화, 리둥훙, 자리안에 대해 불법 모함을 진행했다. 이른바 재판 시간은 한때 3월 28일에서 4월 1일로 고쳤다가, 그 후 4월 10일로 다시 고쳤다.

쉬치화의 어머니 허메이셴(何美仙)은 고통을 참고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남편 및 그녀의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손자들을 두고, 막 12살 손자를 잃은 고통을 품고 성도 구이양으로 급히 갔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610’ 사무실 및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의 직원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해, 그들이 되도록 빨리 쉬치화를 석방해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를 바랐다. 전 가족의 생계는 그녀가 애써 일해서 꾸려나갔다.

2008년 4월 10일 아침 10시 반부터 12시 반쯤, 구이양시 윈옌구 사당 법원에서는 파룬궁수련생 리둥훙, 자리안, 쉬치화에 대해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파룬궁수련생 자리안은 이미 단식한 지 6개월이 됐고 구이양시 사법 경찰 병원에 불법 감금됐는데, 몸은 박해로 극히 허약했다. 그는 단호하게 불법 재판을 저지했다. 구이양시 윈옌구 법원에서는 파룬궁수련생 리둥훙, 쉬치화는 비밀리에 구이양시 사법 경찰병원으로 옮겨 불법 재판을 진행했고 가족의 방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쉬치화는 4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자리안은 7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리둥훙은 5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08년 4월 28일, 쉬치화, 리둥훙의 가족은 구이양시 중급인민법원으로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중급인민법원은 책임을 회피하며 이 일은 주로 구 법원에서 주관한다고 말하며 달아났다.

파룬궁수련생 쉬치화, 리둥훙, 자리안은 두윈(都勻) 감옥[구이저우성 첸난(黔南) 포의족 묘족자치주 소재지 두윈 시내에 위치했음]으로 납치됐다. 두윈 감옥은 외부적으로 ‘두윈 젠장(劍江) 시멘트공장’이라고 불렀는데, 감옥장 허우리더(侯立德), 감옥 정위 자오구이핑(趙貴平), 전 교육과장 왕화촨(王華川), 악독한 경찰 중산(鐘山) 등의 지시하에, 감옥의 악독한 경찰과 그의 지시를 받은 죄수들은 줄곧 파룬궁수련생을 흉악하게 박해했다. 악인은 뜻밖에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고문 학대의 수단을 ‘메뉴’로 편성해, 마음을 닦아 선을 행하는 이들 좋은 사람들을 학대했다. 예를 들면, ‘겹과자(夾心餅乾)’인데, 두 팔꿈치로 피해자의 등 부위를 사납게 치고, 무릎으로 가슴을 받아치며 팔꿈치와 무릎을 동시에 사용했다. ‘호두 두드리기’ 고문은, 손을 반주먹으로 잡고 피해자 머리 부위 여러 곳을 두드리는 것이며, ‘부추 뽑기’ 고문은 손으로 귀밑머리 부위를 한 움큼 잡고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이다.

5. 할머니 허메이셴도 납치, 소란을 당하다

쉬딩궈의 할머니 허메이셴은 천산만수를 건너 성도 구이양으로 급히 가서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며 아들 쉬치화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공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인원은 쉬치화를 풀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음험하고 악독하게 미행, 잠복 감시, 납치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2008년 5월 8일, 구이양 얼차오(二橋) 채소시장 인근에서 잠시 거주하던 허메이셴은 시 공안국과 터우차오(頭橋)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에 의해 납치와 강탈을 당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거주한 시수이(習水) 파룬궁수련생 쑤쉐리(蘇雪莉)는 직업을 찾으러 성도로 왔다가 그녀도 공안에게 광적인 구타를 당한 후 납치됐다. 8일과 9일에 허메이셴을 문안하러 간 파룬궁수련생, 쑹방푸(宋幫福), 리둥훙(李東紅)의 남동생 리훙위(李洪宇), 류이안(劉義安) 등을 포함한, 적어도 8명도 모두 잠복 감시를 당하다 납치됐다.

에워싸고 구경하던 주민들에 의하면, 키 작은 이 파룬궁수련생(쑹방푸)는 현장에서 곧 이미 구타로 얼굴마저 변형되고 몸 여러 부위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쑹방푸는 기꺼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마음이 착한, 모두가 공인하는 좋은 총각이다. 5월 초에 쓰촨(四川) 대지진 전에 쑹방푸는 구이저우성 판현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말을 듣고, 허메이셴 노인 일가가 이 몇 해 동안 중공 악당에게 이미 박해를 당해 집과 가족을 잃었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노인을 문안하기 위해, 5월 8일 저녁 무렵에 막 사들인 한 더미의 새 MP4를 끌고 얼차오를 지나다가 차에서 내렸는데, 잠복 감시하던 악독한 경찰 지린(季麟), 선위린(申玉林) 등에게 납치돼 뭇매를 맞았다.

쑹방푸는 터우차오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과 구이양시 공안1처의 7~8명 악독한 경찰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한 후 끌려갔다. 그리고 그의 혁대를 뽑아내 그의 두 손을 등 뒤로 묶었다. 손 위에 혁대 외 또 끈으로 묶고 수갑을 채웠다. 수갑은 살 속까지 깊이 파여 피가 흘러나왔다. 키가 크고 몸집이 좋은 악독한 경찰 지린은 쑹방푸에게 결박을 지우고 뜻밖에 두 발로 그의 등을 밟고 쭈그려 앉았다. 그 후 쑹방푸의 바지는 그들에게 구타로 다리 위까지 떨어져 내려왔다. 공안은 한편으로는 그를 끌고 가면서 한편으로는 그를 혹독하게 구타했다. 쑹 씨는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치며, 박해에 참여한 경찰에게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선하게 권고했다. 악독한 경찰은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를 경찰차 위에 던져 올린 후 또 경찰차에서 혹독하게 구타했다.

당시 구경하던 주민은 백 명이 넘었다. 어떤 사람은 경찰을 가리키며 “사람을 구타해 이 모습으로 되게 하고도 가만두지 않았어요. 이렇게 작은 키에 손마저 그들에게 묶인 채 경찰차에 끌려 올려 풀어주지도 않고 여전히 구타했어요”라고 말했다. 악독한 경찰은 쑹방푸에게서 강탈한 자동차 열쇠를 들고 공개적으로 거리에서 “그(쑹방푸)의 차를 찾아서 끌어가시오”라고 고함쳤다. 에워싸고 구경하던 주민들은 연속 머리를 흔들며 “강도네요. 사람을 강탈해요!”라고 말했다. 쑹방푸는 공안 및 시 ‘610’ 악도에 의해 주야로 고문 박해를 당해 볼품없이 됐다. 그 후 시 란니거우(爛泥溝) 구치소에서 구이양 타이츠차오(太慈橋) 공안병원으로 옮겨져 수감됐다. 약 6월 중순에 쑹방푸는 2년의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쑹방푸의 전 가족은 중공에게 몇십 년간 매번 사람을 괴롭히는 운동을 경험했는데, 헤아릴 수 없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난을 겪었다. 쑹방푸의 어머니는 80여 세여서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했고, 그의 형은 한쪽 손이 불구라 부양할 능력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쑹방푸가 납치돼 전 가족에게 큰 충격을 줬다.

2015년 10월 29일 오후, 판현 보궈 파출소의 장훙(張紅) 등 3명은 허메이셴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날 보궈 파출소 사람은 전화를 걸어 랴오샹즈를 보궈 파출소로 속여 데려갔다. 이전에 28일 오후, 장훙, 장닝(蔣寧) 등 7명은 허수팡의 집에 들이닥친 바 있다. 이들은 각각 3명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누가 당신들에게 장쩌민을 고소하게 시켰는지, 무엇 때문에 장쩌민을 고소하려 하는지, 누가 당신을 도와 써주고 인쇄하고 부쳐줬는지 질문했고, 또 피를 뽑고 지장을 찍도록 강요했다. 게다가 강제로 파룬궁 수련을 포기한다는 지장을 찍게 한 후 떠났다.

2015년 5월 이래, 중국 파룬궁수련생은 장쩌민을 고소하는 붐을 일으켰다. 각지 파룬궁수련생과 가족은 잇달아 원흉 장쩌민 고소장을 우편으로 중국 최고인민검찰원에 부쳐, 최고인민검찰원 측에서 최고인민법원에 장쩌민을 기소해 이 반(反)인류 악의 우두머리를 처벌하도록 요구했다. 파룬궁수련생이 장쩌민을 고소함은 피해자로서 공정함을 받아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역시 사회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며 모든 중국인의 좋은 사람이 되는 권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장쩌민이 ‘진선인(眞善忍)’을 행위준칙으로 하는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함은, 실질적으로 모든 중국인에 대한 박해로, 중화민족으로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심연으로 밀어갔다. 모든 사람이 다 알다시피 오늘날 중국사회의 가짜 약, 가짜 술, 저질 식용유, 독성 첨가제, 독성 식품, 환경오염,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긴장과 사회의 각종 갈등이 격화되는 이 일체 문제의 근원은 바로 인심이다. 장쩌민은 사리에서 고의로 ‘진선인(眞善忍)’을 준칙으로 하는 파룬궁수련생을 모함했는데, 바로 인류의 도덕을 파괴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그가 탄압하고 소멸한 것은 전반 중국 사회의 도덕과 양심이다.

2015년 5월 말부터 2015년 12월 31일까지, 밍후이왕에서는 이미 20만 명이 넘는 파룬궁수련생 및 가족이 중국 최고인민검찰원과 법원에 직접 넘겨준 실명으로 쓴 소송장 사본을 받았다. 고소장은 중국의 모든 33개 성급 행정구, 333개의 지급(地級) 행정구[지급시, 지역, 자치주, 멍(盟), 전국 합해서 334개 지급 행정구임], 1948개의 현급 행정구[현, 자치현, 기(旗), 자치기(自治旗), 현급시, 시 관할 구역, 삼림 지구, 특별 지구]를 포괄한다.

파룬궁수련생과 가족은 단지 장쩌민, 이 구제 불능의 원흉을 고소했을 뿐이다. 그러나 장쩌민을 바싹 뒤따라 파룬궁을 파괴하는 각급 ‘610’,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인원에 대해서는 파룬궁수련생은 그들도 역시 장쩌민의 속임과 위협을 당했고 역시 피해자라고 인정했다. 파룬궁수련생은 원한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인내심 있게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이 죄를 뉘우쳐 범죄와 잘못을 메우며, 자신의 미래에 약간의 복을 남기도록 해 하늘에 의해 도태되지 않기를 바랐다. 파룬궁수련생의 마음속에는 원한이 없고 오직 선량함만이 있다.

원문발표: 202053
문장분류: 대륙소식더욱 많은 박해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3/4042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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