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보도) 지린(吉林) 더후이(德惠)시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샤오융펀(肖永芬)은 불법적인 7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지린성 여자감옥[창춘 란자(蘭家)여자감옥]에서 고문 박해당하다가 사망 후 감옥 측에 의해 2월 1일 급히 화장됐다.
가족은 1월 31일(정월 초이레) 오후 4시경 감옥 측으로부터 “샤오융펀이 단체로 세수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응급처치받는 중”이라는 전화 연락을 받았고, 10여 분 후 다시 “응급처치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라는 연락을 받았다.
가족이 급히 감옥에 도착했을 때 감옥교도관은 상당히 긴장해 있었다. 가족이 샤오융펀의 시신을 확인할 때는 이미 용모를 단장한 뒤였다. 시신의 얼굴 부위가 붉게 부어있었는데, 감옥 측은 세수하다가 넘어졌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경험 없는 가족은 당시 공식적인 사체검안 등 사망 사건과 관련한 전반적인 절차와 과정에 대해 문의하지 않았다. 사망 시간, 장소, 목격자와 관련자, 사건과 관련한 인적사항 등 많은 문제점에 관해 확인하지 않았다. 특히 사망 사건 당시의 현장 감시카메라에 대해서도 챙기지 못했다. 시신은 사망한 이튿날인 2월 1일 급히 화장했다.
샤오융펀의 사망은 의문투성이다. 감옥 측의 말은 모두 변명에 불과하여 자신들의 잘못과 책임을 은폐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첫째, 샤오융펀이 세면장에서 갑자기 쓰러져 응급처치했다고 했는데 사고 현장인 세면장은 감시카메라가 없기 때문에 진실을 알 수가 없다. 둘째, 가족에게 응급처치 중이라는 전화 연락을 했다가 10분 후 응급처치했으나 사망했다고 전화로 연락한 것은 책임 회피를 위한 은폐의 술책이다. 그러므로 사망 사건에 대한 어떤 혐의도 인정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셋째, 가족이 급히 감옥에 도착했을 때는 가족의 허가도 없이 이미 시신을 자기들 의도대로 변형시켜놓은 상태였으므로 사망과 관련한 어떤 증거도 발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즉 사망의 진실한 참상을 완벽하게 은폐시켜 놓았다.
샤오융펀은 1956년 12월 29일생으로 지린성 더후이시 우타이(五台)향 루자(盧家)촌 쓰서[四社, 마자워펑(馬家窩棚)둔]에 거주했다. 그녀는 2017년 9월 24일 우타이향[진(鎮)]의 한 주택단지 거주지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악경(사악한 경찰)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당했다.
납치 당일 8시경 남편 쑨구이창이 업무차 외출 중이었는데 우타이향 중심초등학교 인근까지 걸어갔을 때 더후이시 국가보안대대와 우타이향 파출소 경찰들에 의해 납치돼, 갖고 있던 집 열쇠를 강탈당했다. 악경들은 급히 차를 몰아 은밀히 쑨구이창의 집에 도착해 남편에게서 강탈한 열쇠로 방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집에 있던 샤오융펀을 여럿이 덤벼들어 납치한 후 집안을 수색해서 다수의 금품까지 강탈해갔다. 당일 오후 4시경 남편 쑨구이창은 5일간의 구류처분으로 더후이시 유치장에 감금됐다. 아내 샤오융펀은 창춘 제2구치소로 압송돼 신체검사 불합격으로 수감 거부됐다. 다음 날 오후 7시경 풀려나 거주지 감시를 당했다. 그러나 쑨구이창은 그 후 더후이시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되었다.
2018년 2월 28일 오전 10시경 우타이 파출소 지도원 류후이(劉輝)는 샤오융펀을 파출소로 연행했다. 말은 “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하므로 다시 신체검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2시경 2명의 젊은 경찰이 신분증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한 후 그중 한 사람이 샤오융펀의 손을 잡아당겨 강제로 지장을 찍게 했다. 당일 1시경 더후이로 이동 중에 공안국의 지시라며 “더후이보다 신뢰성 있는 창춘시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창춘시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오후 5시경 창춘 제4구치소로 이송됐다. 담당 의사가 병원 검사기록을 본 후 다시 샤오융펀의 혈압을 검사했을 때 역시 215였고, 오른쪽 복사뼈가 심하게 상한 것을 발견하고 수감 거부했다. 경찰은 결국 오후 10시 샤오융펀을 다시 풀어줬다.
5월 11일 오전 9시 더후이시 법원은 쑨구이창, 샤오융펀에 대한 불법적인 재판을 개정했다. 검찰관 텅지쿤(騰繼坤), 재판장 왕룽푸(王榮富) 등이 재판을 진행했다. 2명 파룬궁 수련생은 이른바 기소 이유로 적시된 거짓 죄명을 전부 부정했다. 샤오융펀은 대법 책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경전이며, 진상 자료는 사람들에게 큰 난을 피하고 평안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가악투(假·惡·鬥)를 버리고 진선인(眞·善·忍)을 기억하면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재판장은 “당신이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를 막론하고 증거가 확인되면 당신을 유죄로 한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재판’은 1시간 반이 소요됐다. 불법적인 재판이 진행될 때 가족은 쑨구이창의 치아 몇 개가 부러졌으며, 청력이 나빠졌고, 몸이 극도로 수척함을 보았다. 그녀가 납치당하고 감금당하기 전에는 몸이 온전하고 대단히 건강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샤오융펀은 심신이 극도로 좋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서 거주지 감시를 당하게 되었다.
7월 28일 지린성 공안청 경찰과 우타이향 경찰이 합세하여 우타이향 싼서(三社) 샤오융펀 딸의 집에 들이닥쳐 딸의 집을 봐주던 샤오융펀을 납치했다. 창춘 모 병원으로 이른바 이송 치료받게 한다면서 감금 박해하다가 610(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공산당의 불법조직기관)에 의해 현지 더후이시 구치소에 감금됐다.
샤오융펀은 7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상소를 제기했으나 원심이 확정되었다. 샤오융펀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기에 한때 지린 여자감옥에서 수감 거부한 적이 있지만, 더후이 법원이 강제 집행해 샤오융펀은 불법적으로 지린 여자감옥에 감금됐다.
불법적인 감금 기간에 그녀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당연히 병원치료 감구에 수감됨이 마땅하다. 가족은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여 여러 차례 현금, 옷, 일용품 등을 차입해주고 면회도 했다. 가족이 설 후에 면회 갔을 때는 건강에 별 이상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채 1개월도 되지 않은 1월 31일 오후 4시 갑자기 감옥 측으로부터 샤오융펀이 세면장에서 쓰러져 응급처치 중이라는 연락이 왔고, 10여 분 후에는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샤오융펀은 감구에서 응급처치받은 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이미 사망했다는 것인데 전후 시간은 30분에 불과하다.
지린성 여자감옥에서는 다년간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고문 박해가 상당히 잔혹했다. 많은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강제세뇌, 소식봉쇄, 면회 거부는 물론이고, 바오자(包夾, 수감 죄수 증에서 선발한 감시자)에 의한 고문 구타, 정신적 학대, 장시간 체벌, 수면박탈, 혹독한 고문 24시간 지속, 장시간 작은 걸상에 앉히기. 화장실 사용금지, 욕설, 인격 모욕, 끈으로 묶기, 전기고문, 일명 사인 침대 고문, 독방에 감금 등등의 고문으로 불구가 되고 학살당했다. 교도관은 형기를 단축해주겠다는 조건으로 사악한 죄수를 시켜 감금된 파룬궁 수련생에게 온갖 고문 구타를 가하게 한다. 그것들의 고문 학대 수단은 잔인하고 흉악했으며, 음험하고 악랄해서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파룬궁 수련생을 강제로 전향시키려고 할 때 그곳 여자교도관들은 팔을 걷어붙이며 매우 잔인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샤오융펀이 그곳에서 박해를 반대했는지, 반대하지 않았는지, 강제로 전향했는지, 어떤 구타와 고문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떤 독극물을 강제로 먹게 했거나 주사했는지, 핍박에 못 이겨 정신이상이 된 후 죽임당했는지에 대해서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희망하건대 양심이 있는 모든 사람, 샤오융펀의 진실한 사망원인을 목격했거나 알고 있는 사람은 지린성 여자감옥에서 발생한 학살상황을 폭로하여 진상이 하루빨리 백일하에 드러나게 하기 바란다!
(박해에 가담한 관련 기관과 책임자의 신상 정보는 원문 참조 바람)
원문발표: 2020년 4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3/4033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