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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저우시 파룬궁 수련생 왕구이룽, 3년의 불법 징역형 선고받아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허난 보도) 2018년 2월 5일,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 파룬궁 수련생 왕구이룽(王桂榮)은 진상을 알리다가 진수이(金水)구 징바(經八)로 파출소 경찰에 의해 납치당했고, 제3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13일, 정저우시 진수이구 법원에 의해 3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지금도 억울한 옥살이 중이다.

파룬궁 수련생 왕구이룽은 1951년 3월에 출생했고 올해 69세이며, 경제사로 일하다 퇴직해서 허난성 정저우시 진수이구에 거주한다. 왕구이룽은 수련 20년 동안에 불법 가택 수색, 구류를 당했고, 2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아 신상(新鄉) 여자 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지금은 또 3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당하고 지금도 불법 감금 중이다. 그녀 남편도 1년 6개월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박해로 반신불수가 되어 징역 기간을 앞당겨 집으로 돌아왔다.

파룬따파를 수련해 심신에 이로움을 얻다

1999년 초, 왕구이룽은 다른 사람의 소개로 병을 없애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왕구이룽은 경추증, 관절염, 치질, 부인병, 어깨관절 주위염, 갑상선 기능 항진증, 이명, 뇌 울림, 머리가 어지러운 증상, 두근거림, 우울증, 초조하고 불안한 증상이 나타났다. 왕구이룽의 남편은 난치병과 노인병을 치료하는 전문의였으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아내를 치료해보았으나 왕구이룽의 병을 고칠 수 없었다. 그는 어찌할 수 없어 ‘자신이 병을 고치지 못한단 말인가?’라고 한탄했다.

왕구이룽이 파룬궁을 수련해 1개월이 넘어 전신의 질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파룬궁이 일반적인 기공이 아님을 발견했다. 병이 나아졌을 뿐만 아니라, 또 사람에게 마음을 닦아 선을 행하도록 하는 좋은 공법이며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는데 이것은 가정과 사회에 이로웠다. 왕구이룽은 대법의 요구에 따라 차츰 자신의 좋지 않은 것을 수련해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고 명리를 따지지 않았으며, 일에 마주치면 자신의 잘못을 찾아 직장, 가정에서 모든 일이 뜻대로 됐다! 그리고 심정이 유쾌해 진정하게 병이 없이 온몸이 가벼운 행복을 감수했다.

이전에 납치와 불법 가택 수색을 당하다

2007년 8월 5일 저녁 무렵, 왕구이룽과 남편은 성 박물관 서쪽 편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국가보안 사복경찰, 보조 경찰인 타오(陶) 모(정저우시 징류로 베이듀안로시(北端路西)의 신문사 가족원에 거주함)등 두 사람에게 걸렸다. 그들은 부부를 속여 정저우시 원화(文化)로 파출소로 데려가 소장을 만났다. 당시 경찰복을 입은 한 사람이 왕구이룽과 남편을 보더니 소장에게 “이달 우리의 장려금은 문제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왕구이룽은 그들이 자신에게 불법 구류처분을 내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바로 그날 저녁에 그들은 어떠한 절차도 없이 왕구이룽의 남편을 핍박해 집으로 데려가 가택 수색을 했다. 왕구이룽의 남편이 “당신들은 어떤 절차도 없이 무슨 근거로 내 집을 수색합니까?”라고 말하자, 그는 “내가 무슨 신분인지를 알고 있습니까? 나는 허난성 610 사무실 특파원입니다. 당신들 같은 이런 사람들의 집을 많이 수색했는데, 또 절차가 필요합니까?”라고 말했다.

이번 불법 가택 수색에서 그들은 진상 자료, 컴퓨터, 잉크젯 프린터, 삼성 레이저 프린터, 스캐너 등 합쳐서 약 만여 위안을 강탈했다. 경찰은 또 왕구이룽의 금팔찌 하나(36g), 금목걸이(12g) 하나, 금가락지 2개(합해서 11g)를 훔쳐 갔는데, 합해서 무게가 59g이다. 현재 금 시세에 따라 계산하면 1g당 315위안(약 54,000원)인데 인민폐로 환산하면 합해서 18,585위안(약 320만 원)이다.

원화로 파출소에서 왕구이룽과 남편은 불법으로 하룻밤 구류처분을 받았다. 이튿날, 경찰은 왕구이룽을 속이며 “당신들 두 사람을 한 곳으로 보내 사흘 동안 ‘학습’시켜 ‘교육을 받게’한 후 당신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왕구이룽과 남편을 속여 정저우시 제1구치소로 보내 불법으로 체포했다. 그 후 정저우시 진수이구 법원에서는 왕구이룽과 남편이 체포된 날짜는 2007년 8월 23일인데 불법 판결서에 17일이나 늦게 되어있었다.

구치소에서 학대당하다

구치소에서 왕구이룽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경찰은 그녀의 허리띠를 빼내고 모든 단추와 지퍼를 떼어 버렸다. 옷에 있는 장신구는 전부 떼어냈다. 그 후 40여 명 사람이 20여 제곱미터의 방안에 모여 있었다. 저녁에 잠을 잘 때는 좁아서 머리가 발을 마주하고 몸을 측면으로 해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변기 주변에도 모두 사람이 자고 있어서 화장실 갔다 와서 다시 누우려면 사람 사이에 천천히 몸을 끼워 넣어야 했다. 그래도 다 잘 수 없어서 2시간씩 교대로 잠을 자는데 당직을 섰으며 당직은 두 사람이면 충분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규정이 있었는데 낮에는 대변을 볼 수 없게 되어 참는 수밖에 없었다. 감방에서 작업하는데 생산량이 적으면 경찰은 곧 밥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밥을 변기에 쏟아 넣더라도 밥을 먹지 못하게 했다. 더운 여름에도 마실 물이 없었다. 한겨울은 냉수욕하는데, 목욕할 때 남자 경찰이 초소를 순찰하며 함부로 보았다. 왕구이룽은 심신에 극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낮에 만약 한 사람이 경찰 눈에 거슬리면 저녁에 옷으로 머리를 덮어씌워 끌고 가서 몇 명의 젊은 사람을 시켜 무차별 폭력을 가했는데, 감방으로 들려오면 반나절이나 일어나지 못했고 또 감히 말도 하지 못했다. 수감당한 사람들은 이 악행을 ‘개를 산책시키다’라는 특별한 이름을 지었다. 다행히 그녀들은 왕구이룽을 이렇게 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왕구이룽이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을 알고 이는 죄가 아님을 알았으며, 둘째 왕구이룽의 연세가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왕구이룽과 기타 죄수들은 매일 평균적으로 15시간 동안 일을 했는데, 일회용 라이터를 조립했다. 물건이 작다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립하는 과정에 다섯 가지 공정이 있었다. 왕구이룽이 한 것은 첫 번째 공정이며 기수를 조립했다. 기계 머리는 보리 알 크기로 비행기 모양이다. 기수를 덮개에 맞추어 핀셋으로 힘껏 아래에 밀어 넣는데, 1시간 동안 400개 이상을 밀어 넣어야 했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자신이 돈을 내어 사야 했는데, 손은 닳아서 패여 들어갔다. 하루 동안 15시간 동안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 보니 볼기 부위도 짓물러서 피부 궤양이 생겨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경찰 장후이(張慧)는 왕구이룽의 아들에게 매달 그녀에게 천 백 위안을 보내라 했는데, 그걸로 간식을 먹을 수 있고 또 일을 적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왕구이룽이 일을 조금도 적게 하지 않았다. 간식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는데, 어떤 때는 있었고 어떤 때는 없었다. 그리고 가족이 보낸 새 옷은 경찰이 압수해 다시 낮은 가격으로 문어귀의 매점에서 팔았다.

신샹 여자 감옥에서 박해를 당하다

2008년 2월 20일, 왕구이룽은 신샹 여자 감옥으로 보내져 계속 박해를 당했다. 감옥에 도착해 머리카락을 자르고 죄수복을 입혔다. 바오자(包夾, 수감 감시자) 두 명이 지켰다. 사오(邪悟)한 자가 온종일 대법을 모독한 시디를 보도록 핍박했고, 강제로 무슨 4서(四書)를 쓰게 했는데, 쓰지 않으면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누구와도 접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일체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했는데 정말 사는 게 죽기만도 못했다.

왕구이룽과 남편의 유일한 아들은 베이징에서 근무했다. 왕구이룽과 남편이 박해를 당한 후, 아들은 하늘이 무너진 듯했다. 출근할 수도 없이 그는 관련자들을 만났으며, 돈을 빌려 변호사를 청하고 며칠 사이에 구치소에 돈을 보내고 물건을 보냈는데 전후 10여만 위안을 썼다. 이 일은 왕구이룽의 아들을 극한에 치닫게 했으며 그는 견뎌내지 못해 몇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다.

왕구이룽의 연로하신 시어머니와 그녀의 언니, 오빠들(왕구이룽의 부모님은 이미 사망했음)도 모두 극심한 정신적인 탄압을 감당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까 봐 속였는데 왕구이룽의 시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고 일주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방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왕구이룽의 언니, 오빠는 온종일 눈물로 보냈다. 그들은 매달 반신불수가 된 왕구이룽의 남편(구치소에서 박해로 반신불수가 되자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았음), 아들과 신샹감옥으로 왕구이룽을 보러 갔다. 중공이 왕구이룽을 박해하여 그녀 가족의 심신에 조성한 상해는 말할 수 없이 크다.

원문발표: 2020년 4월 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2/4032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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