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네 차례 납치·감금, 세 차례 불법 노동 교양처분, 한 차례 8년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중국 공산당(중공)에게 잔혹한 박해를 당해 경제적 정신적 신체적인 상해를 당한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리슈친(李秀芹.女.58)은 고문 박해를 당해 피폐한 몸으로 출소해 집으로 돌아온 지 2개월 만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가족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감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공의 경제적 핍박으로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헤이룽장(黑龍江)성 탕위안(湯原)현 파룬궁 수련생 리슈친은 1960년 7월 16일생으로 헤이룽장성 탕위안현 탕위안진 둥펑(東風)가 8위(委) 1조 53호에서 출생해 그곳에서 계속 생활했고, 헤이룽장성 탕위안현 양조장 작업실 주임으로 근무했다. 1996년 10월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이로움을 얻었다.
1. 파룬궁을 수련해 심신에 이로움을 얻고 생활이 행복하다
리슈친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선천성심장병, 협심증 등 심각한 질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결혼 전에는 늘 정신이 맑지 않은 상태였고, 심할 때는 쇼크 상태에 빠져 실신했다가 깨어나기도 했으며, 정신이 돌아온 후에도 무슨 일을 겪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는데 특히 심한 심장의 통증을 느꼈다. 가족은 좋다는 약과 보양식을 해주며 심장병이 도질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 그녀의 건강상태가 그렇다 보니 점차 성품이 변하고 화를 잘 내는 성격으로 변했다. 결혼 후 생활환경이 바뀌게 되자 그녀는 더욱 성을 잘 내게 되어 심장협심증이 심해져 격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자신의 머리칼을 한 줌씩 잡고 흔들고, 입고 있던 옷을 찢기도 했다. 그런 증상이 나타날 때 가슴의 통증을 이기지 못해 광적으로 긁는 바람에 앞가슴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럴 때는 남편이 그녀의 두 손을 잡아 난동을 부리지 못하도록 안위해주며 진정될 때까지 기다는 수밖에 없었다. 진정된 후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한탄하며 “나는 왜 이렇게 괴로울까요?”하고 울부짖었다. 남편이 “당신은 금방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 몰라?”하고 물으면, 그녀는 “몰라요!” 했다. 매번 발작이 일어날 때는 그런 상태였고, 어떤 때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말하거나 웃거나 노래를 하므로 가족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편은 매번 그녀에게 참고 양보해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으면 남편에게 심한 말로 욕을 하며 싸움을 벌이는데 누가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는다. 남편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밖에 나가 기분전환이라도 하려고 해도 그녀는 남편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혼자 있을 때 발작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럼 남편은 그녀를 위해 나가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이 없을 때 그녀가 발작하면 크게 다칠지 모른다는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고통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1996년 리슈친의 남편은 대법을 얻어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혜택을 받았고, 얼마 되지 않아 리슈친도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남편은 “1996년 아내가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하고부터 아내에게 차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수련하면서 아내가 화를 낼 때가 있었는데 그럼 아내는 ‘당신, 보세요. 내가 또 화를 냈어요. 나는 고쳐야 해요.’ 했다. 그러나 아내는 점차 화내는 횟수가 적어졌고 각종 질병도 사라진 후 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치 딴 사람으로 변했고 대법을 배운 후 다시는 예전처럼 하지 않았다.
남편은, 아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면서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 극심했던 협심증이 완쾌되었고 성격도 좋아졌다. 그녀의 변화로 인해 가정환경도 좋게 변했다. 아이와 함께 화목한 가정이 되었다고 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우리에게 행복한 가정을 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으로 혜택을 받았으므로 아내는 그건 대법의 아름다움을 모든 선량한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를 원했다. 밍후이왕 2010년 7월 30일 보도된 문장 ‘나의 아내의 자유를 되돌리다’를 참조할 수 있다.
1997년 리슈친의 어머니는 병이 위중해져 전신에 부종이 나타나서 약을 먹고 주사를 맞는 치료를 받았어도 낫지 않았다.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초조한 나머지 부체가 있는 2명의 도사를 찾아가서 문의하자, 도사가 이제 수명이 다해서 치료방법이 없으니 후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때 파룬궁을 수련하는 리슈친의 남편이 장모에게 “기왕 의약으로는 병을 치료할 수 없으니, 파룬궁을 연마하면 좋아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노인은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고, 2개월 후 기적처럼 병이 사라졌다. 부종이 완전히 사라지고, 고질병이던 기관지염과 폐기종 등 많은 지병이 약 한 알 복용하지 않았는데 전부 완쾌되었다. 해마다 명절 때면 찾아오던 자식들이 노인의 건강 때문에 많은 걱정을 하면서 명절다운 명절을 갖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온 가족이 모두 즐거운 명절을 보낸다. 노인은 심신이 가벼워 자식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기도 한다. 가족은 노인의 건강이 신기하게 좋아진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어 연이어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2. 세 차례 납치, 불법 노동교양 처분받다
2001년 12월 30일 리슈친은 한 수련생과 함께 탕위안현 다미허(大米河) 둥위안(東原) 방직공장 맞은편에서 세인에게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악의적인 신고를 당해 탕위안현 공안국 국가보안대 경찰에게 납치되었다. 그녀들은 경찰 차량에 의해 공안국으로 끌려가서 조사받은 후 탕위안현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리슈친은 구치소에 감금되어 박해를 받게 되어 심장발작증상이 다시 도졌는데, 구치소 부소장 뤼원거(呂文革)는 그녀의 병세를 아랑곳하지 않고 몇 번이고 연속해서 발로 걷어차면서 말끝마다 저질스러운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파룬궁 수련생이 그 부소장에게 “그녀의 몸이 그 지경인데 당신은 아직도 계속 구타를 하는가 ……”라며 비난했다.
결국, 리슈친은 1년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다른 한 수련생과 함께 자무쓰(佳木斯)시 시거무(西格木) 노동교양소로 이송되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수감을 거부당했고, 건강상태가 다소 호전되자 경찰은 다시 노동교양소에 수용시켰다. 자무쓰시 시거무 노동교양소는 대단히 사악한 곳으로 알려졌으며 밍후이왕에서도 그 사악함을 보도한 바 있다.
2003년 1월 4일 오후 4시경 리슈친은 탕위안현 양식창고 인근 도자기공장 맞은편에 있는 쿵(孔) 씨 집에 세를 들어 사는 파룬궁 수련생 마춘화(馬春華)의 집에 놀러 갔다가 쿵 아주머니, 리원이(李文義), 량야천(梁亞臣)과 함께 경찰에 납치당했다. 당시 3대의 경찰차가 갑자기 집 앞에 정차한 후 10여 명의 경찰이 내려와 집을 포위한 후 탕위안현 공안국 부국장 왕민구이(王敏貴) 지휘하에 전격적으로 자행한 납치로, 방 안에 있던 리슈친, 마춘화(馬春華), 리원이 등을 납치되었고, 많은 금품도 강탈당했다. 그들은 영장도 없이 불법적으로 납치와 강탈을 자행했는데, 다음 날 리원이의 형 리원타오(李文濤)도 납치당했다.
리슈친, 마춘화, 리원이, 리원타오 등 4명은 탕위안현 구치소에 감금된 후 혹독한 고문 박해를 당했으며, 20여 일 후, 리슈친, 리원타오는 각각 3년의 노동 교양처분으로 자무쓰시 시거무 노동교양소에 감금되었고, 마춘화는 10년, 리원이 4년의 징역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2006년 5월 27일 리슈친은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가다가 주택단지 입구에서 지프를 타고 온 탕위안현 공안국 국가보안대장 저우톄강(周鐵剛), 펑훙웨이(馮宏偉) 등 6명 경찰에게 납치되어 들고 있던 가방을 강탈당한 후 다시 집으로 끌려가서 불법적인 가택수색으로 대법 서적과 사부님 법상, 진상 카드와 진상 자료를 강탈당했다. 그들은 영장도 없이 불법적으로 수색하고 납치한 것이다.
리슈친은 탕위안현 공안국으로 끌려가 심문받은 후 탕위안현 구치소로 압송되어 감금된 후 온갖 고문 박해를 당하다가 며칠 후 두 차례나 쇼크를 일으켜 실신했다. 구치소 부소장 류젠(劉劍)은 리슈친이 꾀병을 부린다며 욕설을 퍼부으며 치료해주지 않았다. 류젠 부소장은 저질적인 말과 욕설로 끊임없이 모욕했다. 리슈친의 남편은 아내의 몸 상태가 심각하다는 소식을 듣고 담당 부국장 왕민구이를 찾아가 리슈친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리슈친의 남편은 “리슈친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심각한 심장병을 앓았으며, 발작하게 되면 매우 위험했다.”고 말하자, 왕민구이는 “당신은 안심해도 돼요. 우리가 잘 보살피고 있으니 당신은 다시 찾아올 필요가 없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가 가족에게 통지할 것이다.”고 말했다. 공안국은 리슈친이 두 차례 쇼크 상태에 빠져 위험했던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리슈친은 이미 고문 박해로 피골이 상접해 잘 걷지도 못했다. 공안국은 여전히 가족을 속이고 리슈친을 자무쓰시 시거무 노동교양소로 이감했는데, 노동교양소 측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리슈친의 수감을 거듭 거부했다. 그래도 탕위안현 공안국은 리슈친의 수감을 고집했다.
노동교양소에서 완강하게 수감을 거부함에 따라 탕위안현 공안국은 어쩔 수 없었고, 생명이 위중한 상태라 책임을 감당하게 될 것이 두려워 석방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 리슈친을 데려가기 위해 구치소에 갔을 때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어서 업어서 데려왔다. 48일간 감금되었을 뿐인데 완전히 딴 사람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자매는 서로 끌어안고 통곡했다. 상세한 내용은 밍후이왕 2006년 7월 27일의 문장 ‘탕위안현 리슈친이 48일 동안 납치 박해를 당해 극도로 허약해져(사진)’를 참조하면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다.
3. 8년의 억울한 옥살이 당하고 억울하게 사망하다
2010년 7월 1일 자무쓰시 탕위안현 리슈친, 리쥔잉(李俊英), 리수윈(李淑雲), 리옌룽(李豔榮), 리샤오메이(李孝梅), 쑹단(宋丹), 장슈잉(張秀英), 장훙(姜紅), 페이즈푸(裴志福) 등 파룬궁 수련생 9명은 탕위안현 지샹(吉祥)향 서우왕(首望)촌에서 션윈 시디와 기타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촌민이 탕위안현 공안국 110 지휘센터에 신고해서, 탕위안현 공안국 지시로 시샹향 파출소장 궈강(郭剛)과 전싱(振興)향 파출소장 마창춘(馬長春) 등이 합세해 9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탄 미니버스를 가로막고 탑승자 9명 전원을 납치하여 지샹향 파출소로 압송했다.
지샹향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던 리옌룽, 장훙은 경찰에게 진상을 말하다가 악독한 위카이융(於開勇)과 궈강에게 야만적인 구타를 당했다. 곧이어 탕위안현 공안국 부정위 저우진저(周金哲)가 9명의 수련생과 허강(鶴崗)시 신화(新華)농장 파룬궁 수련생 쑹후이란(宋慧蘭) 등 10명의 수련생을 탕위안현 구치소로 이송 감금했다. 구치소에서 악독한 경찰은 파룬궁 수련생에게 죄수복을 입혀 강제노역하도록 강요했고,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주입을 시켰다. 탕위안현 공안국 란슈쥔(蘭秀軍,규율검사위원회서기)은 직접 구치소로 가서, “파룬궁 수련자를 혹독하게 다루라.”고 지시했다. 쑹후이란은 고문 박해를 당해 생명이 위중해지자 가족에게 인계되었고, 페이즈푸는 고문 박해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자 병보석형식으로 풀려났다.
리슈친은 단식으로 항의해 불법적인 감금박해를 당했다. 야만적인 강제 음식물주입을 당했고, 매일 혹독한 고문 박해를 당해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어 침상에 누워 먹고 마시고 배설할 때 모두 타인의 수발을 받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침상에서 내려올 수 없었으므로 건강상태가 극히 위험했으며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변했다. 8월 23일경 생명이 위급해져서 두 차례나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가족이 공안국에 석방을 요구하자, 저우진저는 오후에 둥청(東城) 파출소에 가서 알아보자고 했다. 남편은 둥청파출소 2층 소회의실에서 저우진저에게, “헌법과 형법에서도 파룬궁 수련생의 수련과 홍보는 모두 헌법과 형법에 저촉되지 않는데 당신들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저우는 “나는 바로 그 하수인이기 때문에 단지 상부에서 잡으라면 잡을 뿐이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수련생 가족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놀랐다.
2010년 7월 말 리슈친 등 9명 파룬궁 수련생은 모두 탕위안현 검찰원에 의해 불법적인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2010년 12월 2일 오전 탕위안현 법원에서 탕위안현 구치소에 감금당한 지 5개월이 넘는 리슈친, 리쥔잉, 리수윈, 리옌룽, 리샤오메이, 쑹단, 장슈잉, 장훙과 병보석으로 풀려난 페이즈푸 등 파룬궁수련생 9명에 대한 불법적인 재판이 개정되었다. 탕위안현의 무장경찰 몇십 명을 출동시켜 삼엄한 경비를 펼쳐 먼 거리서부터 사람의 접근을 차단했다. 마치 강한 적과 대치하는 것 같았다. 가족도 모두 엄격한 몸수색을 당하고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재판을 위해 탕위안현 법원, 검찰원,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610’, 교통경찰 등 전 기관이 동원되었다.
불법적인 재판이 개정되어 리슈친은 검은색 머리 씌우개가 씌워져 들것에 실려 입장했다. 리슈친의 변호사는 ‘중공의 헌법과 형법에 따르면, 파룬궁의 수련과 홍법은 모두 합법적이다. 무슨 근거로 그녀를 정죄합니까? “하자, 판사와 검찰관은 모두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잠시 후 재판장 루린(盧林)은 변호사에게 “당신이 (그런 식의) 변론을 계속 진행하면 법정에서 퇴장시키겠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법정에 나온 가족들은 모두 “이게 어디 개정이냐. 이게 깡패 아니냐”고 반문했다. 북경에서 온 두 명의 정의로운 변호사가 법정에서 리슈친과 리옌룽의 무죄 변호를 했다.
파룬궁 수련생 9명 전원에게 불법적인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리슈친(李秀芹), 쑹단, 장훙(姜紅) 등은 8년, 리옌룽, 리샤오메 등은 7년 6개월, 리쥔잉, 리수윈, 장슈잉 등은 7년형을 각각 선고받았으며, 페이즈푸는 3년형에 4년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페이즈푸를 제외한 8명의 여성 파룬궁 수련생들은 모두 박해를 중단할 것과 자신은 무죄라는 법정진술을 했다. 그녀들은 선고가 끝난 후 판결서 서명을 거부했고, 즉시 상소를 제기했다.
2011년 3월 누명을 쓴 8명의 여성 파룬궁 수련생은 하얼빈(哈爾濱)시에 있는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이송되어 감금되었다. 상세한 내용은 밍후이왕 2011년 1월 7일의 문장 ‘헤이룽장의 9명 파룬궁 수련생이 무고하게 중형을 선고받아’, ‘밍후이왕 2018년 12월 5일’의 보도 ‘헤이룽장성 파룬궁 수련생 쑹단 박해당한 경력’을 참조 바람.
리슈친은 감옥에 감금된 후 장기간 고문을 당했다. 그녀는 작은 나무 걸상( 30×30cm)에 앉는 체벌을 오전 5시에서 길게는 새벽 2시까지 받았는데 매일 저녁 취침시간만 되면 체벌을 받았다. 체벌을 받으면서 조금이라도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설과 구타를 가했는데 사정없이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리슈친은 볼기 부위가 짓물러 피범벅이 되었고, 나중에는 옷이 상처에 붙어 바지를 벗을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교도관은 “당신이 보아라. 그렇게 앉아서 당신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당신이 굴복한다면 그렇게 앉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롱했다. 그랬어도 리슈친은 “아무리 그래도 나에게 파룬궁 연공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엄숙하게 말했다. 그 후, 리슈친은 혈변을 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반 대야 정도 하혈을 했다. 같은 감방 죄수들이 모두 깜짝 놀라 급히 교도관에게 보고했다. 리슈친은 장기간의 고문으로 심각한 상해를 입은 것이다. 남편은 면회 갔을 때마다 리슈친이 통곡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밍후이왕 2013년 4월 25일 보도에서, 하얼빈 여자감옥에서 당시 이른바 ‘전향하지 않은’ 파룬궁 수련생을 11감 구로 이동시켜 박해를 가했다고 했다. 리슈친과 리옌룽은 오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작은 나무 걸상에 앉히기’ 고문을 당했는데, 리슈친은 고문을 받으면서 심장병이 도졌다. 감옥 측은 그녀에게 심근경색의 진단이 내려진 상태를 개의치 않고 매일 ‘작은 나무 걸상에 앉히는’ 고문 행위를 중단하지 않았다.
리슈친은 장기간 고문을 당하면서 심근경색은 물론 당뇨병, 간농양 등의 증상도 나타났다. 2015년 7월 40도의 고열이 내리지 않고 지속하면서 점차 건강상태가 악화하였다. 감옥 측은 그제야 책임 감당이 두려워 감옥 밖의 병원으로 보내 수술을 받게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가족에게 통지하여 입원 절차와 병원비를 입금하라고 했다. 가족이 “법을 어기지 않고 죄를 짓지 않은 사람에게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해 감옥에 가둘 때 당신들은 신체검사로 건강한 사람만 가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내는 그렇게 건강한 상태로 감옥에 들어갔는데, 당신들의 박해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감옥에서는 책임지지 않느냐?”고 따졌다. 감 구역 대장은 동문서답하면서 “최소한의 작은 절개수술을 할 것이라며 가족의 서명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리슈친이 퇴원한 후 다시 감옥으로 복귀한 후 면회를 가서야 한 자가 넘는 큰 수술 자국을 알게 되었다. 감옥으로 돌아와서도 완전히 봉합하지 않은 채 몇 달간 관을 꽂고 있었다. 리슈친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고 영양공급도 부실해서 수술을 받은 후부터 2018년 출소할 때도 수술 부위에 염증이 있었다.
2018년 6월 30일 리슈친은 억울한 옥살이 만기를 다 채우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출소할 때 원래 75kg이었던 체중이 40kg에 불과했으며 길을 걸을 때는 휘청거렸다. 그러나 귀가한 지 10일도 되지 않아 건강이 악화하여 병원에 입원했는데 마비되어 일어나지 못했다.
8년간 억울한 옥살이의 고문 박해로 리슈친의 정신과 육체는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감옥에서 간농양 수술을 받은 수술 자국의 염증이 심해져서 다시 절개하여 고름을 빼내는 수술을 했다. 받아낸 분비물은 의료용 플라스틱 통에 반 통이나 되었고, 회녹색 분비물에는 봉합 실까지 섞여 나왔다. 의사는 “상태가 좋지 않아 분비물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생긴 염증”이라고 했다.
입원 기간 리슈친은 극도의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내며 편안하게 잠들지 못했다. 가족은 고통을 덜어주려고 매일 저녁 수없이 뒤척여 주고, 가볍게 두드려 안마해 주었다. 먹은 음식은 전부 토하기 일쑤였다. 2개월이 지난 2018년 9월 14일 새벽 3시경부터 병세가 더욱 악화하면서 뇌경색 증상으로 실신했다. 가족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보겠다고 하자, 담당 의사는 “지금의 상태는 모든 장기가 모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다른 병원으로 가면 더 심각한 상태를 맞게 될 것이고, 다른 병원에서 다시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수술대에서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2018년 9월 15일 오전 7시 40분 리슈친은 회복하지 못한 채 억울하게 사망했다.
사망한 수련생을 애도
당신의 생생한 얼굴을 보면참을 수 없는 눈물이 솟아나네또 선량하고 좋은 한 사람이총총히떠나자지상의 바람이 흐느끼고천상의 구름이 오열하네당신의 후회 없는 영혼이솟아오르네하늘 높이
원문발표: 2020년 2월 2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2/25/4016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