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음력 정월 초사흘, 이란(依蘭)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궁펑창(宮鳳強)은 심각한 박해를 당한 후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구치소에서는 국가보안대대에 통지한 후,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고 몰래 그를 병원에 보냈다. 일이 폭로될까 두려웠던 이유로 뜻밖에 궁펑창을 유행성 급성 전염병 격리에 사용하는 특수 병실에 감금해, 어떤 사람도 접촉하지 못 하게 했다. 국내외 정의로운 인사가 관심을 두고 구출해 주시도록 간청한다.
궁펑창의 아내 리옌제(李豔傑)는 2019년 12월 7일 저녁 이란현, 치타이허(七台河)시 두 곳 국가보안 경찰에게 괴롭힘당해 사망했고, 궁펑창은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했는데 2019년 12월 27일 헤이룽장 미산(密山) 경찰에게 납치됐다.
궁펑창은 헤이룽장성 이란현 다롄허(達連河)진에 거주하며, 원래는 이란 탄광 제2 채굴구 직원이다. 사람됨이 겸손하고 온화했으며,성실하고 선량했으며, 일도 성실하게 잘했다. 친척과 친구, 수련생이 인정하는 좋은 사람이다. 파룬궁 ‘진선인(眞善忍)’ 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여러 차례 불법 감금 박해당했다.
아내가 박해로 사망
2019년 12월 7일 저녁 8시 넘어 이란현과 치타이허 두 곳 경찰은 치타이허시 종합병원 동쪽의 한 구식 부속 건물에 거주하는 파룬궁수련생 궁펑창, 리옌제 부부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궁펑창, 우리는 당신들이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우리는 방법이 있다”라고 고함쳤다. 거주 건물 아래는 경광등이 번쩍였다. 경찰은 어떻게 궁펑창의 집 문을 열지 상의하고, 먼저 전화를 걸어 사람을 찾아 열쇠로 열었다. 그 후 또 공안을 찾아 공구를 빌려 문을 톱질하겠다고 말했다. 잠시 후, 경찰은 궁펑창의 집 금속 문을 톱질하기 시작했다.
이미 수차례 납치되고 고문 학대를 겪은 궁펑창 부부는 다시는 정신과 육체적인 그런 능욕에 직면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속하게 창문 커튼과 이불 커버, 시트 등을 잡아당겨 그것들을 한데 연결해 베란다에서 아래로 따라 내려갔다. 아내 리옌제가 우선 연결한 시트를 잡고 6층에서 아래로 따라 내려갔고, 남편 궁펑창도 이어서 내려갔다. 그런데 4층쯤 되는 곳에서 시트가 갑자기 끊어져 리옌제는 불행히 사망했다.
궁펑창은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질 듯했다. 아내의 젊은 생명이 이렇게 박해로 사망했으나, 자신은 오히려 국면을 되돌릴 힘이 없었다. 그는 칠흑 같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휘청거리면서 영원히 기억하길 원치 않는 곳을 떠나 망망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룻밤 동안 들볶인 주민들은 모두 의견이 분분했다. “이 경찰이 밤중에 사람을 압박해 죽였어요!” “지금 경찰은 좋은 일을 하지 않아요” “말하지 마세요……그들이 들으면 보복할 거예요.”
12월 9일 오전, 이란현 공안국에서 경찰 두 명을 파견해 80여 세인 리옌제 부모 집으로 가서 두 노인을 공갈 협박하고 궁펑창의 행방을 알아내려 했으나, 이들의 막내딸 리옌제가 사망한 상황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이란현 공안국 경찰은 또 리옌제의 언니와 딸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12월 11일 오전 8시 넘어 치타이허시 파룬궁수련생 진위훙(金玉紅)은 하얼빈시로 가서 헤이룽장 대학에서 공부하는 리옌제의 딸 궁위(宮宇)를 문안하다가, 사복 경찰 4명에 의해 납치됐다. 그날 오후, 치타이허시 공안국에서는 차 두 대를 몰고 진위훙의 집 아래에서 잠복 감시하고 집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불법적인 5년 형 선고, 박해로 피골상접, 기억 잃은 궁펑창
2006년 12월 2일 저녁 10시, 가오렁(高楞) ‘610’의 리젠(李健)과 공안국 정보과 과장 쑨비우(孫必武), 탄옌수(譚延舒), 스즈핑(石志平), 쉬젠중(徐建忠) 등 20여 명은 다롄허(達連河)공안국과 결탁해 잠복 감시해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려 했다. 지역 경찰 자오롄청(趙連成)은 가오렁의 경찰을 거느리고 궁펑창 집으로 가서 불법 납치하고, 가택 수색했다. 궁펑창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뒷짐 결박을 채운 후 강제로 오랫동안 쭈그려 앉혔다. 궁펑창이 조금만 움직이면 경찰은 그를 뒤에서 사납게 차서 땅 위에 엎어지게 했다. 결국 오른쪽 무릎뼈는 부러져 걷기 어려웠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경찰은 궁펑창의 호주머니 속에 있는, 택시를 몰아 번 돈 300여 위안, 궁 씨 아내의 호주머니 속에 있는, 시아버지에게 석탄을 사드리려고 준비한 600위안을 꺼냈다. 또 집에 온, 친척이 치료하려고 몸에 지닌 7300위안의 현금을 강탈했다. 그날 저녁, 궁펑창의 아내는 박해를 피하고자 부득이 집을 떠나는 수밖에 없었고 집안에는 7살 된 딸이 남았다.
동북 이란 다롄허의 12월 저녁 기온은 영하 30도가 넘었으나, 궁펑창은 단지 보온 상의만 입었을 뿐, 솜옷마저 입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고, 폭도 같은 자오롄청과 가오렁 경찰에 의해 무차별 폭력을 당했다. 그는 당시 구타로 정신이 흐릿해졌고, 눈은 구타로 매우 크게 부어 앞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앞가슴, 등, 심장, 폐 등 부위는 심각한 내상을 입어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어려웠다. 경찰은 또 정신이 흐리멍덩한 궁펑창을 강제로 차 안에 밀어 넣어 팡정(方正) 임업국 가오렁 공안국으로 납치해 계속 박해했다. 가오렁 공안국에서 잔인무도한 경찰은 끊임없이 궁펑창 목 부위에 냉수를 끼얹어 몸에 물이 흘러 들어가게 했다. 두 눈은 구타로 뜰 수 없었고, 다리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었으며, 가슴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고 호흡이 어려웠다. 이로 인해 궁펑창은 두 차례 기절했다.
가오렁 공안국에서는 각종 수단을 써서 잔혹하게 학대했다. 동시에 또 궁펑창이 죽을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궁펑창을 이란현 구치소로 돌려보냈다. 현장 사람에 따르면, 궁펑창은 당시 이미 스스로 걸을 수 없어 구치소에 도착해 차에서 들려서 내렸다고 했다. 이란현 구치소에서 궁펑창은 늘 여러 명의 죄수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죄수는 끈으로 궁펑창의 양 손발을 등에서 단단히 한데 묶었고 다시 솜으로 그의 전체 몸을 감쌌다. 죄수는 다시 교대 감시했는데, 궁펑창이 거의 호흡할 수 없게 되자 인명 사고가 날까 두려워 풀어줬다.
궁펑창은 ‘냉수를 머리꼭지에 떨어뜨리기’ 등 각종 고문당해 정신 이상이 됐다. 말을 하지 않았고 밥을 먹지 않았으며,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두 눈은 멍하게 한데만 바라보았다. 게다가 함부로 사람을 구타하고 자기 혀를 씹었으며 그의 부모와 자녀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박해로 이렇게 됐음에도 중공 사당 공검법(공안·검찰·법원)에서는 또 궁펑창에게 불법적으로 5년 형을 선고했다.
2007년 5월 24일, 현 공안국과 제1 구치소 경찰은 4일간 밥을 먹지 않고 정신이 흐리멍덩한 궁펑창을 억지로 차 위에 들어 올려, 헤이룽장성 탕위안(湯原)현 샹란(香蘭)감옥 집중훈련대대에 불법 감금해 박해했다. 6월 4일 또 자무쓰(佳木斯)시 롄장커우(蓮江口)감옥으로 보내 계속 감금 박해했다.
2009년 12월, 박해당해 정신이 흐릿해지고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궁펑창은 몸이 극도로 허약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수척해져 사람을 두렵게 했다. 감옥 측은 인명 사고가 두려워 가족이 3년 동안 끊임없이 요구해 그제야 마지못해 ‘병보석’에 동의했다.
감옥에서 돌아올 때, 궁펑창은 이미 기억을 잃어 가족과 친구를 알아보지 못했고, 말을 할 수 없었으며, 밥을 먹을 수 없었고, 대소변을 처리할 줄 몰랐다. 또 늘 혼미 상태에 처해 전신을 움직일 수 없었으며 혀를 뱉어냈다. 척추뼈가 변형되어 튀어나왔고 또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으며 호흡하기 어려웠다. 가래 속에는 혈흔이 있었고 소변은 우유처럼 하얗게 됐다. 좋은 사람이 박해로 이렇게 되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궁펑창 부부가 당한 박해에 관해 밍후이왕 문장 ‘헤이룽장 이란현, 치타이허시 두 곳의 경찰이 결탁해 리옌제를 못살게 굴어 죽이다’ ‘남편은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고 여러 차례 목숨이 위험해지고, 헤이룽장 리옌제가 장쩌민을 고소하다’, ‘궁펑창이 자무쓰감옥의 박해로 피골이 상접해지고 기억을 잃다’, ‘7세 소녀가 사악한 세상에 비탄에 빠져’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0년 2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2/3/4006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