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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샤, 랴오닝 여자감옥에 3년 등 총 12년간 억울한 옥살이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 보도) 랴오닝(遼寧)성 톄링(鐵嶺)시 파룬궁(法輪功)수련생 장수샤(張淑霞. 女, 55)는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에 불법적으로 납치되어 2017년 5월 19일 3년 형을 선고 받아 상소했지만, 원심이 확정되어 2017년 9월 26일 랴오닝 여자감옥 4감구 1소대 감방에 감금되었다. 6차례의 감금으로 총 누계는 11년 9개월간 감금되어 박해를 받은 것이다.

장수샤는 톄링시 칭허(清河)구에 거주하며 파룬궁 수련으로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 가정, 직장, 이웃으로부터 칭송이 자자한데 특히 시어머니가 그녀를 좋아했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그녀는 대법수련을 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불법적인 가택수색, 납치, 구류저분을 당했으며, 5년의 징역형과 3차례에 걸친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총 8년 275일간 감금당해 약 9년간 불법적인 감금 속에서 모진 고문학대를 당한 것이다. 남편은 결국 연좌제 박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혼했으며, 그녀가 감금된 후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모친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는 2016년 12월 14일 마을 사람에게 ‘명혜달력’을 선사했다는 이유로 악인에게 모함당해 또 중국공산당에 납치되어 톄링시 칭허구 법원재판에서 억울한 3년형을 선고 받고 2017년 9월 26일 랴오닝 여자감옥 4감구 1소대 감방에 투옥되었다.

랴오닝 여자감옥의 박해

1. 기만적인 세뇌, 학대와 구타

랴오닝 여자감옥 4감구 1소대는 새로 수감된 사람(파룬궁수련자)에 대해 곧바로 “연공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며 소위 전향을 강요한다. 낮에는 강제노역을 시키고, 밤이면 어둡고 컴컴한 작은 방에 감금하여 소위 ‘학습’이라는 세뇌박해를 가했는데, 2명의 바오자(包夾-수감된 죄수 중에서 선발된 감시자)가 줄곧 감시한다. 그들 감시자는 장수샤에게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자게 했다.

한 바오자 왕메이(王美)는 장수샤에게 “나는 죄가 있어요. 나도 살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5서를 쓰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당신에게 꿇어앉아 머리가 깨어져 피가 흐를 때까지 절을 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장수샤는 당시 흐리멍덩해진 마음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한번 베껴 썼다. 그러나 마음은 고통스러웠다.

그 후 장수샤가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몇 명의 바오자가 그녀를 에워싸고 욕설과 집단구타를 했다. 장슈화(姜秀華)는 그녀의 얼굴을 구타하며 쭈그려 앉기 체벌을 가했고, 그다음 기마자세에서 쭈그려 앉기 체벌을 가했다. 장원잉(張文英)은 그녀의 머리채를 끌어당겨 머리를 쇠틀에 힘껏 부딪혔고 또 전신을 꼬집었다. 그 후 장수샤가 옥정과에서 조사받을 때 바오자의 무차별 구타 사실을 말하고 돌아오자, ‘전향’을 책임진 교도관 장루루(張璐鷺)는 그녀의 전향서 작성과 번복에 대해 노기에 찬 목소리로 공박했다. 장수샤는 그녀에게 “강제전향은 위법적입”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사진]중국공산당의 고문 설명도: 구타와 머리 부딪기

장수샤가 대장 바이쉬(白旭)에게 구타당한 일을 신고하자, 바이쉬는 장수샤에게 “당신을 때렸다고 하는데, 누가 보았는가? 다시 한번 말하면 당신이 맞았을 때 왜 즉시 말하지 않았나? 지금은 감시카메라에서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장수샤는 선량한 수련생의 말에 대해 교도관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답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장수샤는 자신을 감시하는 바오자를 바꿔줄 것을 요구하자, 그녀는 “두 사람을 모두 바꿔도 원래의 사람만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의 뜻은 만약 감시자를 바꾸게 된다면 더욱 잔악한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 뿐 선량한 사람으로는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책임교도관은 장수샤에 대해 더욱 강압적인 수단을 행사했다. 낮에도 작업실 창고에서 세뇌를 강요했는데 1명의 바오자가 꼭 붙어서 감시하며 앉거나 쭈그려 앉기의 체벌을 가하다가 노역이 끝난 밤 9시가 돼야 그만두었다.

어느 날 오전 5시경 장수샤가 세면을 하기 위해 급수실에 갔을 때 그곳에 대기 중이던 장원잉이 곧바로 그녀를 구타하기 시작했는데 복도, 감방 등 어디서든지 만나기만 하면 구타했다. 어떤 때는 옷걸이를 구타 용구로 쓰다가 부러뜨리기까지 했다.

15일에 한 번씩 더운물로 목욕을 하게 되지만 장수샤에게는 그런 목욕을 허락하지 않았고, 밤에 화장실을 가겠다고 해도 장원잉은 들어주지 않고 욕설만 퍼부었다(감옥 화장실은 3명이 함께 행동해야 함).

2, 모욕하고 욕하고 때리다

2017년 1월 14일 장수샤가 설사병에 걸렸는데 바오자 장원잉은 꾀병이라며 “하루에 몇 차례 갔나?” 하고 물어서, “세 차례”라고 말하자, 바오자는 “너는 지금 세숫대야에 누어라. 니가 그곳에 용변을 볼 수 있는지 보자” “대장은 당신이 식사를 하고 배설하는 것도 이곳에서 처리하도록 하라고 했다”고 했다.

장수샤는 굴욕을 참으며 자신의 세숫대야에 용변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누가 장수샤에게 대야를 주면 바오자는 그 대야를 화장실에 놓고 사용했다. 의도적인 인격모독이었다. 그러나 장수샤는 그 바오자가 어떤 짓을 하든지 원망하지 않고 어린애처럼 여겼다. 그러자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바오자가 장수샤를 좋게 대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배려하게 되었고,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대화를 하게 되었다.

바오자 왕메이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장수샤를 늘 욕하며 사부님을 향해 욕을 하라고 핍박했다. 왕메이는 어느 날 빨래 건조실에서 자신의 신발을 벗어들고 장수샤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고, 한 번은 일요일에 장수샤가 혼자 감방에서 쉬고 있을 때 이불을 덮지 못하게 했고, 패딩도 입지 못하게 했다.

장수샤가 작업실에서 두 손을 자연스럽게 다리 위에 놓자, 왕메이는 장수샤가 연공을 한다고 말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장수샤를 모욕하고 괴롭혔다. 그렇게 야비한 수단은 욕설이나 구타보다 몇 배나 더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장수샤가 ‘사상회보(소원수리서)’를 써서 박해를 폭로해 그녀를 저지시켰다.

3, 심신 상해

장수샤는 매일 엄청난 고통으로 건강 상태가 갈수록 좋지 않았다. 심장이 괴로워 심전도검사를 받은 결과 심장병이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혈압은 200에서 120인 고혈압으로 나왔는데 어떤 때 혈압은 수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교도관이 장수샤에게 약을 먹으라고 강요했지만 장수샤는 먹지 않고 약을 몰래 폐기했다.

2018년 12월 6일 아침 장수샤의 오른쪽 얼굴이 갑자기 단번에 귀뿌리까지 비뚤어져서 식사하거나 양치하기도 어려웠으며, 왼쪽 눈은 24시간 내내 감을 수가 없었다. 머리 감을 때는 왼쪽 손으로 수건을 들고 눈을 가리고 감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비눗물이 눈에 들어가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CT 검사를 받은 결과 고혈압이 원인이라며 일종의 뇌혈전 신경마비 증상이라고 했다.

교도관과 바오자는 장수샤에게 약을 먹으라고 핍박했지만 장수샤는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고, 결과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서면 서약을 했다. 그 후 고난 중에서 마음을 닦고 자신을 찾아 바로잡고, 대법을 외우고 연공해서 장수샤의 비뚤어진 입은 차츰 좋아졌는데 아직은 왼쪽 눈이 완전하지 않다.

장기간의 불공평한 대우가 장수샤를 고통스럽게 했다. 장수샤는 장 과장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했으므로 바오자 왕메이를 다른 곳으로 배치하고 대신 손동춘(孫同春)을 오게 했다. 순동춘은 조선족인데 한족보다 욕을 더 잘하는 여자였다. 이치 같은 건 따지지도 않았고 장수샤가 잘하든 잘못하든 가리지 않고 욕부터 했다. 어떤 때는 장수샤가 일하면서 덥고 지쳐서 온몸이 땀에 젖어도 그녀에게 욕을 먹어야 했다.

4. 노동교양을 거부해 조리돌림을 당하다

장수샤가 집으로 돌아가려면 아직도 4개월은 더 있어야 할 때 강제노역을 거부하고 박해를 반대했다. 감구장 탕옌(湯豔)은 장수샤를 사무실로 호출해 놓고 바닥에 쭈그려 앉으라고 핍박했지만 장수샤는 듣지 않았다.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당신들 공, 검, 법(공안, 검찰, 법원), 구치소, 감옥에서 모두 법을 집행하는 기관인데 모두 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탕옌은 “나를 신고하라. 나는 탕옌이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장수샤가 듣지 않자, 탕옌은 곧 장수샤를 앞쪽에 앉혀 놓고 뺑뺑이 돌림을 했다.

5. 강제세뇌

밤이면 무더운 2층 창고 안에서 소위 ‘학습’이라는 세뇌박해를 가하기 시작했는데, 그날부터 식당 밥을 못 먹게 해서 어쩔 수 없이 장수샤는 10여 명과 함께 도시락을 사서 먹어야 했다. 교도관은 텔레비전 시청도 금했고, 생활용품 구입도 차단시킨 채 좌판에 앉는 체벌, 감옥 규칙 쓰기, 벌서기, 쭈그려 앉기 등의 체벌을 당해야 했다.

동북의 8월은 무더운 여름이다. 첫날 장수샤는 이른바 세뇌 ‘학습’에 응하지 않고 감옥으로 돌아왔고, 그다음 날은 주말이라 휴식을 한다. 장수샤는 2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자신의 침대에 앉아 두 발을 2층 침대 사다리에 걸쳤다. 그러자 몇 명의 바오자가 강제로 장수샤를 위층 창고에 가두고 벌을 세웠다. 셋째 날 장수샤에게 세면을 못 하게 했고, 더운물 목욕도 못 하게 했다. 그렇지만 장수샤는 스스로 엄격하게 수련했으며, 그 후 교도관은 장수샤에 대해 어떤 것도 간여하지 않았다.

교도관과 바오자들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좋은 사람으로 되려고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여전히 양심을 버리고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데에 가담해 천리를 배반하고 있다. 2019년 12월 장수샤는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다.

장수샤가 다년간 박해를 당한 상세한 상황은 ‘9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한, 랴오닝 장수샤가 또 3년의 불법 징역형 선고받아’, ‘약 9년의 억울한 옥살이로 고문학대당한 랴오닝 톄링 장수샤가 장쩌민(江澤民)을 고소’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0년 1월 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8/3987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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