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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 당한 하얼빈 왕장,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하얼빈(哈爾濱) 파룬궁수련생 왕장(王江)은 2006년 6월, 10년의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고 다칭(大慶) 감옥에서 극심한 구타와 학대를 당했다. 구타로 팔이 부러졌고, 심각한 골결핵과 공동성(空洞性) 폐결핵 증상, 간경화, 복수 증상 등이 나타났다. 2015년, 왕장은 가족의 노력으로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은 후 몸이 회복되자마자 또 수감되었다. 2016년에 출소했으나, 경찰이 소란을 피우고 이웃집에서 왕장의 행방을 감시하는 가운데 외부와 격리된 상황에서 더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2018년 5월 18일, 57세로 사망했다.

王江
왕장

1961년 10월 3일생인 왕장(男)은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시 핑팡(平房)구 하다(哈達)촌 시다이자툰[西岱家屯, 전 아청(阿城)구 서리(舍利)향]의 농민이었다. 파룬궁을 수련하여 몸이 건강해졌으며 모두가 인정하는 솔직하고 너그러운 좋은 사람이었다. 왕장은 부유하지는 못했으나, 대법 수련 후 가정생활이 즐겁고 화기애애하며 충실해졌다.

20년 동안, 왕장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중공(중국공산당) 사당(邪黨)의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하잔(哈站) 파출소와 핑팡구 파출소, 아청구 구치소, 완자(萬家) 노동교양소, 창린쯔(長林子) 노동교양소, 다칭 감옥에서 수년간 고문을 받았다.

1999년 11월, 왕장은 법에 따라 청원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하잔 파출소의 경찰에게 불법 납치되어 나흘 동안 감금되었다. 경찰은 왕장에게 먹고 마시는 것을 주지 않았고 심하게 구타했다. 왕장은 구타로 눈이 충혈된 후 핑팡구 남(南) 파출소로 이송되었으며, 경찰은 그제야 가족에게 통지했다. 그 후 핑팡분국으로 이송되어 3개월 동안 불법 감금되었으며, 가족이 많은 노력을 들여 집으로 데려왔다.

2001년 설날, 왕장은 진상을 모르는 세인의 모함으로 핑팡구 파출소의 경찰에게 불법 납치되었다. 불법 노동교양 2년을 처분받고 벌금 1만여 위안(약 166만 원)을 갈취당했다. 하얼빈시 완자 노동교양소로 이송되어 경찰에게 심하게 구타당했으며, 독극물 주입으로 온몸이 검어졌다. 노동교양소의 열악한 환경으로 온몸에 옴이 올라 고름이 흘러도 가족과의 면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임에도 완자 노동교양소는 왕장을 석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얼빈시 창린쯔 노동교양소로 이송하여 계속 박해받게 했다.

酷刑演示:打毒针
고문 재연
: 독침 주사

2002년 3월, 왕장은 창린쯔 노동교양소에서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교도관 왕잔치(王佔起)가 지휘하는 악한 경찰과 노동교양 요원은 왕장에게 밀기, 비틀어 떼어 내기, 치켜들기, 구타 등의 고문을 가했다. 몇 시간 동안 고문을 받은 왕장은 걷지 못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왕장을 1대대에서 5대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옮겨오고 옮겨갔다. 어디로 옮겨가도 왕장은 그곳에서 구타당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파룬궁수련생이 믿음을 포기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재연
: 잔혹한 구타

왕장의 불법 노동교양 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노동교양소에서는 왕장이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구실로 여전히 석방하지 않았다. 결국, 불법적인 1개월간의 추가 감금 후에야 풀려났다.

납치 후 구치소의 박해로 병 증상이 나타나다

2006년 1월 7일, 음력 섣달 초여드렛날, 왕장을 비롯한 아청구 파룬궁수련생 7명은 아청 융위안(永源)진 융허(永和)촌에서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촌 치보주임 쉐바오신(薛寶信)의 모함으로 융위안진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되어 아청 제2구치소에 불법 감금되었다.

그날, 융위안 파출소 경찰은 왕장을 압송하고, 하다촌 중공 촌지부서기 아내의 협력으로 왕장의 집안에 들이닥쳐 불법 가택수색을 했다. 경찰은 왕장의 아내가 경찰을 저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강제로 가택을 수색하여 대법 책과 CD, 현수막 등을 강탈한 후 왕장을 구치소에 감금했다. 경찰은 그 후 며칠 동안 왕장을 여러 차례 심문했으나, 결과가 없었다. 1월 12일, 불법 체포영장이 발급된 왕장은 아청구 제1구치소에 이송되어 감금되었다.

며칠 후 구치소에서 가족에게 편지가 왔다. 왕장이 병으로 아청 중의원에 입원했으니 4천 위안(약 66만5천원)을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왕장의 아내는 1천 위안(약 16만6천원)을 빌려 급히 중의원으로 갔다. 병상에 누워있는 왕장은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온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말도 할 수 없었으나, 발에는 여전히 족쇄를 차고 있었다. 왕장은 아내에게 허리띠를 풀어 달라는 의사를 표했다. 아내는 왕장이 침대에 소변을 본 것을 발견했다. 왕장은 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아내는 곧 경찰에게 “당신들의 괴롭힘으로 사람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족쇄를 채우고 있네요. 빨리 푸세요”라고 했다. 아내는 새로 사 온 속옷을 입히고 악한 경찰에게 천 위안을 주었다. 그 후 그들은 왕장을 구치소로 돌려보냈다.

억울하게 10년 형을 선고받고 다칭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하다

2006년 4월 18일 오전, 아청구 법원은 왕장 등 파룬궁수련생 몇 명을 재판했으며, 그해 6월에는 파룬궁수련생 7명을 불법 재판했다. 왕장은 억울하게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파룬궁수련생 7명은 상소를 제기했으나, 중급인민법원은 이유 없이 기각했다.

2007년 3월, 왕장의 가족은 우여곡절 끝에 여러 방면으로 문의해서 마침내 왕장이 후란(呼蘭) 감옥에 불법 감금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왕장은 집중 훈련이 끝난 후 다칭(大慶) 감옥으로 이송되었는데 가족이 여러 차례 수백 킬로미터 되는 곳으로 가서 면회하려 했으나, 경찰은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2007년 3월 15일에야 왕장을 만났다.

왕장은 다칭 감옥에서 죄수에게 여러 차례 가혹하게 구타당해 늑골 아래 부위가 크게 부어올랐다. 가슴 부위에는 고름이 나왔고 허리 부위와 손목이 곪았으며, 심각한 골결핵과 공동성 폐결핵 증상이 나타나 고통으로 잠을 잘 수 없었으며, 여위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2012년 5월 7일 오후 2시경, 다칭 감옥 2감구 대대장 추이스쥔(崔世軍)은 술에 거나하게 취해 갑자기 2감구 4중대 공장구역으로 와서는 수감자를 집합 시켜 인원수를 보고하게 했다. 왕장과 파룬궁수련생 리하이(李海), 장쿠이우(張魁武), 다이치훙(戴啟鴻)은 인원수를 보고하지 않았다. 악독한 경찰 추이스쥔은 그들의 뺨을 대여섯 대 때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그들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다고 했다. 추이스쥔은 다른 죄수에게 파룬궁수련생을 때리라고 했다. 그러나 죄수들은 모두 손을 대지 않았다. 추이스쥔은 술이 깨자 무안해하며 손을 멈추었다.

2014년 5월 16일, 파룬궁수련생 왕장과 리리궈(李立國)는 악한 경찰의 요구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방에 갇혔다. 독방은 감옥 안에 설치한 방 중의 방으로,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봄과 가을에는 음랭했다. 이곳에서는 침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홑옷만 입고 나무 침상에 누워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옥수숫가루로 만든 떡을 먹고 썩은 채솟국을 먹었다.

演示:关小号
재연
: 독방에 가두기

왕장은 다칭 감옥 2감구역에 불법 감금되었다. 왕장은 열악한 환경으로 건강이 더욱더 나빠졌다. 장기간의 박해로 장시간 혈변이 나왔으며 병 증상이 매우 심각했다. 생명 위험이 수시로 나타날 수 있는 상태였다. 감옥 측은 왕장이 사망하면 책임져야 할까 봐 부득이 왕장을 다칭 제4병원으로 보내 수술 진료를 받게 했다. 전에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가족이 면회하러 왔다가 왕장의 가슴을 비롯한 몸 여러 곳에 상처가 난 것을 보았다. 심각한 간 경화와 복수 증상이 나타났는데도 경찰은 그가 가족에게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은 몹시 분개하면서 왕장은 괴롭힘으로 병이 든 것이라고 했다.

2014년 11월 28일, 다칭 감옥에서는 왕장이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도록 긴급히 조치해 주었다. 2015년, 왕장의 건강이 나빠진 상태에서 가족은 왕장이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받는 절차를 밟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왕장은 집으로 돌아온 후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2015년 5월 27일, 왕장의 집 앞에 갑자기의 경찰차 한 대가 나타나더니 다칭 감옥에서 온 경찰 몇 명이 들이닥쳤다. 왕장의 보석 기간이 만료되었다고 하며 6개월에 한 번 신체검사를 한다는 이유로 왕장을 강제로 끌고 갔으며, 하얼빈 공안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게 했다. 검사 후, 건강이 정상으로 회복되었기에 더는 보석할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은 그를 다칭 감옥 내의 병원감구에 불법 감금하여 계속 징역을 살게 했다.

그때 왕장은 건강을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다칭 감옥과 다칭 사법국 등에서는 단호하게 왕장을 수감했으며, 왕장의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계속 목숨을 하찮게 여겼다. 가족은 왕장에게 생명 위험이 나타날까 봐 걱정했다. 마침내 왕장과 가족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2016년 1월 6일까지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10년의 억울한 옥살이 기간이 만료되어서야 왕장은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왕장은 집으로 돌아온 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가족은 왕장이 다시 박해받을까 봐 왕장이 수련생과 만나지 못하게 했다. 이웃도 함께 왕장의 행방을 감시하면서 왕장이 문을 나서면 왕장의 아내에게 알려주었다.

하얼빈 핑팡구 관할구역 파출소에서는 늘 그에게 소란을 피웠다. 어떤 때에는 왕장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걸면 왕장의 아내는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떤 때는 경찰이 집으로 와서 이것저것을 물으며, 왕장이 다른 사람과 연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은 문을 두드리고는 열어주지 않으면 문을 부수었으며, 그래도 열지 않으면 뛰어넘어 들어왔다. 그 후 왕장의 아내는 그들이 들어올 때 대비가 안 될까 봐 왕장에게 평소에 대문을 채우고 방문도 채우라고 했다. 가족도 두려움 때문에 왕장이 외부 사람과 연락하지 못하게 했다. 왕장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장기간 공포 속에서 생활해 심신이 심각하게 피폐해졌다.

왕장의 줄곧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장기간 공포 속에서 정신적으로 엄청난 박해를 받았기에 가족이 여러 방면에서 치료해주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2018년 5월 18일, 고통 속에서 57세로 사망했다.

왕장이 박해받는 동안 왕장의 아내는 정신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데다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했기에 몸이 병들어 힘든 일을 할 수 없었다. 가정 경제의 책임은 아들 한 사람에게 떨어져 모자는 가난하게 나날을 보내야 했다.

왕장의 사망은 중공 다칭 감옥에 의해 잔혹하게 학살당한 것이며, 중공 사당(邪黨)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함으로써 피의 값을 빚진 것이다. 법률이 건전해지는 날, 왕장을 박해하는 데 참여한 살인자는 꼭 체포되어 가차 없이 엄격하게 처벌받을 것이다.

원문발표: 2019년 12월 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9/3968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