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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시 파룬궁 수련생 왕더천, 후란 감옥에서 박해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2019년 11월 17일 하얼빈(哈爾濱)시 아청(阿城)구 신화(新華)진 파룬궁 수련생 왕더천(王德臣.62)은 불법으로 3년 6개 형을 선고받고 후란(呼蘭) 감옥에 감금된 후 고문 박해로 사망했다. 감옥 측이 가족의 접근을 차단한 후 시신을 신속히 화장함에 따라 사망원인을 은폐시키려는 것으로 지극히 의심되는 사건이다.

'法轮功学员王德臣'
파룬궁 수련생 왕더천
(王德臣)의 모습

2016년 5월 6일 오후 1시 왕더천은 하얼빈에서 물건을 배달하는 도중에 불법적으로 경찰에 납치된 후 가택수색을 당했다. 남편이 불법으로 납치되어 잔혹한 박해를 당하는 일련의 사건을 목격한 아내는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되었다. 현재 아내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데다가 허리가 90도로 굽어 있어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상태다.

왕더천은 6개월간 감금당한 후 재판에 넘겨져 2016년 11월 4일 아청(阿城)법원에서 불법으로 재판을 받았다. 가족은 선임한 변호사를 통해 형량을 낮추기 위한 수단으로 왕더천에게 타협을 기대했으나 왕더천의 의지는 완강했다. 판사 왕웨이천(王偉臣)이 “반성하느냐?”고 네 차례나 물었지만 응하지 않았다. 왕더천은 2016년 12일 28일 징역 10년과 2만 위안 벌금의 중형을 선고받고 후란 감옥에 감금되었다.

왕더천의 아들은 항공편을 이용해야 왕래가 가능한 남방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왕더천의 여동생이 옥바라지해야 할 처지가 되자, 왕더천은 다른 사람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에 “면회 올 필요 없다”고 동생에게 말했다. 그러므로 가족의 면회가 없는 왕더천에게 사악한 중국공산당이 맘 놓고 고문 박해를 가할 수 있는 빌미를 준 것으로 여겨진다.

왕더천 가족은 2019년 10월 중순 감옥 측으로부터 “왕더천이 감옥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만나보려고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교도관이 가족의 환자접근을 차단함에 따라 매번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왕더천은 허리통증을 호소할 뿐만 아니라 하체를 움직이지 못했다. 가족은 전문적인 치료를 위해 모든 행정절차를 마친 후 병보석을 신청했지만, 감옥 측은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병보석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병원 측은 보증금 5천 위안과 검사비용 7천4백 위안(한화 약 124만 원)을 청구하면서, “검사결과 폐암이다.”고 말했지만, 약물투여 등의 치료를 하지 않았다.

아들이 감옥 측에 “왜 환자에게 투약하는 등의 치료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암치료약이 없으므로 소염진통제만 투여한다.”고 했다. 가족이 환자 옆에 휴지가 없다고 말하자, 교도관이 휴지구매비 200위안을 내라고 했고, 왕더천의 누나가 “지난번 내가 병원에 왔을 때 휴지대금으로 150위안을 냈는데 벌써 다 썼느냐?”고 하자, 그가 “휴지를 먹는가 봐요!”했다.

2019년 11월 17일 가족은 감옥 측으로부터 왕더천이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고 비통해했다. 병원으로 이송했다는 연락을 받은 지 1개월 만에 갑자기 사망한 사실과 그간의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감옥 측의 태도로 볼 때 사망에 이르게 한 고문 구타다 등 치명적인 외부요인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망 사건이다.

교도관은 가족이 수의를 갈아입히겠다는 것까지 반대하며 시신을 직접 만지거나 접촉하지 못하게 하며 곧바로 장의사 쪽으로 밀고 갔다. 가족이 “당신들은 집에 형제자매도 없느냐!”고 강력하게 항의하자, 그제야 수의를 받아 의사에게 갈아입히게 할 뿐 가족의 시신접근을 철저히 차단하며 화장을 서둘렀는데, 건장한 체구의 교도관 2명이 시신을 지키며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장례풍습에 따라 가족이 영혼을 인도하는 종이 태운 재를 시신 가슴에 봉안할 때는 시신경비 책임을 맡은 두 명의 교도관이 극도로 긴장한 태도를 보였다.

병원의 사망진단서는 정상적인 병사로 되어있었다. 왕더천의 아들은 부친의 사망을 의문사로 인정했기 때문에 서명을 완강히 거부하자, 일 처리를 생각한 고모가 대신 서명했다.

다음 날인 11월 18일까지 감옥 측은 가족을 포함한 누구도 왕더천 시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으며, 11월 19일 화장한 후 아들 왕더천에게 화장확인 서명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자, 강요 때문에 한 친척이 대신 서명했다.

화장할 때도 절차적 장례의식은 물론 친지들의 문상도 못 하게 막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급히 화장을 끝냈다. 그들은 고문살해의 증거를 소각시킨 후 황급히 떠났다. 왕더천은 후란 감옥의 고문 박해로 사망했지만, 가족은 은폐와 위협 앞에서 손도 쓰지 못하고 억울한 심정과 의혹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을 뿐이다.

1. 왕더천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 만약 폐암으로 사망했다면 왜, 폐암과 관련한 CT, 엑스레이 사진을 가족에게 보여주지 않고 검진결과만 주었는가? 그런 휴지 같은 조작된 서류가 무슨 설득력이 있는가? 입원 기간 병원이 처치하고 치료한 내용은 무엇인가? 폐암 발견 후 1개월 만에 사망했다는데 그 전의 시간은 없었단 말인가?

2. 폐암으로 사망했다면 왜 허리에 통증이 있었고 하체를 쓰지 못하는가?

3. 왜 가족에게 환자의 시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는가? 상식적인 판단으로 볼 때 혹독한 고문과 구타로 몸에 심한 상처와 함께 하체가 마비된 것이 아닌가? 그 외 왕더천의 신장을 적출해 팔아먹고 신장적출 부위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분비물을 씻어내고 감추기 위해 그렇게 많은 휴지를 사용한 것은 아닌가?

4. 의심되는 그런 정황이 아니라면 왜 사람의 접근을 막았을까? 또 행정적 병보석 절차도 끝난 상황에서 감옥 측은 사람이 죽는 그 순간까지 보석신청을 받아주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일이이지만 가족은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살인 만행을 자각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감옥 측이 강행한 대로 환자에게 접근하지도 못했고, 시신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시신과 살인의 증거를 소각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그러나 죄지은 자는 결코 법을 완전히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살인에 가담했던 사람 중에 아직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죄상을 밝힐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왕더천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이 밝혀질 것이다!

왕더천은 파룬따파 수련으로 여러 차례 박해당하다

왕더천(男, 1957년 12월 25일생)은 기술전문대학 출신으로 하얼빈시 아청구 신리가도 진정부 목축장에서 근무했는데, 성실하고 착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결혼 후 부부가 함께 진에서 동물 사료·약재상을 경영하여 사업이 잘되는 편이었으나 왕더천은 알 수 없는 두통이 심해 두통이 올 때는 주먹으로 머리를 가격당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좋다는 약과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 치료를 받았지만 낫지 않아 고통 속에서 생활하던 중, 운 좋게 1998년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책에서 말씀하신 대로 ‘진선인(眞·善·忍)’의 법리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해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으로 되어 30~40리 인근의 사람들은 왕더천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는 완만하고 아름다운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함으로써 연공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고질병인 두통이 사라졌다. 그는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신기한 효험을 직접 겪고 나서 본격적으로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 및 그것의 괴수 장쩌민(江澤民)이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이 모두 건강해진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참혹한 탄압을 시작한 후 20년이 넘도록 박해탄압을 그치지 않았다. 왕더천은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 등 중국공산당에 여러 차례 납치, 세뇌, 감금, 노동교양처분, 벌금, 법원판결, 각종 괴롭힘 등등의 박해를 당했다.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후부터 진정부(鎮政府)와 담당 파출소 관련자들이 늘 그의 집을 찾아와서 소란과 위협을 가하며 “연공하지 않는다.”라는 서명을 하라고 했고, 다음 날은 또 무슨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하며 괴롭혀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2001년 2월 17일 신화(新華)진 정부와 파출소가 합세하여 왕더천을 불법으로 납치해 아청야거우(阿城亞溝) 세뇌반에 감금한 후 믿음을 포기하라며 소위 ‘전향’을 강요하는 박해를 가했다.

2004년 8월 15일 저녁 왕더천은 아청지역 23명 파룬궁 수련생과 함께 샤오링(小嶺)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23명과 함께 납치되어 감금됐다. 당시 왕더천은 아청 610과 공안국 경찰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하며 자백을 강요받았고, 아청구 제2 구치소에서 10일 넘게 감금되었다가 불법적인 2년 노동 교양처분을 받고 창린쯔(長林子) 노동교양소에 감금됐다.

왕더천은 거주지 하얼빈에서 2016년 5월 6일 배달 근무를 하던 중에 또 납치되어 3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후란 감옥에 감금되어 고문으로 학살당했으며, 그의 아내는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되었다. 단란했던 한 가족이 사악한 중국공산당에 의해 참혹하게 파괴된 것이다.

왕더천은 중국공산당에 의해 불법적으로 투옥된 후 감옥에서 고문 박해를 당해 학살된 것이다. 희망하건대 정의로운 인사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왕더천의 사망 진상에 관심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국제사법당국과 인권기관에서도 관심을 두고 후란 감옥을 끝까지 조사하여 왕더천이 학살당한 진상을 천하에 발표하기를 기대하며, 동시에 고문 박해학살에 가담한 자를 가려내 법에 따라 처리하여 학살당한 왕더천과 그의 가족에게 공정함을 돌려주고, 인간사회에 정의를 실현해주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9년 12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3/3965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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