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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 화이양현 리쥔치 일가족 세 식구가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허난 보도) 허난(河南) 저우커우(周口)시 화이양(淮陽)현 전툰(振屯) 리차이위안(李菜園)촌에 리팅린(李廷林) 부부가 아들 리쥔치(李軍旗)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부부는 원래부터 허약체질이라 늘 잔병치레를 했고 아들 리쥔치는 간질병환자여서 세 가족 모두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 가족은 농사를 지어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형편인데, 가족이 모두 늘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으므로 형편은 더욱더 어려웠고, 병원치료 효과도 없었다.

1996년 리팅린 가족은 모두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게 되었다. 수련을 시작한 세 가족은 모두 빠르게 건강이 회복되었는데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이다. 과거 고통 속에서 수심에 그늘졌던 얼굴이 즐겁게 웃는 얼굴로 변했다. 리 씨 집은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을 위한 연공장으로 되었고, 리팅린은 무료로 연공을 가르치는 보도원이 되었다. 대법 수련을 시작한 마을 사람들은 앓고 있던 병이 모두 나았고,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에 맞는 좋은 사람으로 되어갔다. 대법 수련은 속세에 한 줄기 맑은 물처럼 신기한 미담을 남겨주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 미담들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광적으로 파룬궁(法輪功)을 탄압하기 시작하여 정세가 급변하자, 리팅린 가족은 마을에서 제1의 박해대상이 되어 경찰에게 연이어 가택수색, 납치, 감금, 강탈·갈취당하면서 거듭 온갖 박해를 당해 리팅린 부부가 연이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고, 아들 리쥔치도 5차례 납치·감금당했으며, 2회에 걸쳐 불법적인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여러 차례 고문 학대를 당하다가 2018년 감옥에서 풀려난 지 4개월 후에 억울하게 사망했는데, 당시 나이 겨우 46세였다.

1. 3회 납치, 2회 감옥에 감금당한 리팅린이 박해로 사망

2005년 2월 8일 오후 10시경 류전툰(劉振屯)파출소 팡완춘(方萬春)은 4명의 경찰을 대동하고 잠겨 있는 리 씨 집 대문을 부수고 침입해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했으나, 진상 시디 2개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수색한 ‘증거’가 너무 부족하다고 여겨 3차례나 반복해서 수색했어도 성과가 없자 74세인 리팅린과 아들 리쥔치 등을 납치해 화이양 구치소에 35일간 감금한 후 온갖 수단으로 고문 박해를 가했다.

2008년 음력 4월 1일 오후 9시 경찰무리들은 다시 리 씨 집을 불법적으로 수색한 후 리 씨 부자를 또 납치, 파출소로 연행해 각방에 감금한 후 무자비한 폭력으로 증거조작을 위한 조사를 했다. 한 악경(사악한 경찰)은 74세 리팅린의 뺨을 10여 차례 사정없이 때렸다. 구타당한 노인은 얼굴이 불에 덴 것처럼 뜨겁게 부어올랐으며 머리가 어지러워 몸을 가누지 못할 때 옆방에서 고문당하는 아들의 비명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악경은 밤늦도록 구타하다가 자신이 지치자 부자를 침대에 수갑으로 채워놓고 다음 날 오후 늦게까지 장장 14시간 동안 방치했다가 리팅린만 풀어주고 아들 리쥔치는 현성 유치장에 감금했다.

리팅린을 밤늦도록 구타한 악경은 다음 날 구타했던 손이 상해 병원치료를 받았는데 악독한 짓을 해 업보 받은 줄도 몰랐다. 그러나 정작 그 악경에게 구타당한 노인은 의외로 멀쩡했고 오히려 기력이 쌩쌩했다. 그런데도 그 악경은 의기양양하게 “어제 내가 파룬궁을 붙잡아 그 늙은이의 얼굴을 구타할 때 손에 심한 진동이 일어서 매우 아팠는데, 그 노인의 얼굴이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이 된다.”고 말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화이양 경찰이 대대적인 파룬궁 수련생 납치 작전을 전개할 때 현성 핑신차오(平信橋)에서 리팅린은 첫 번째 납치대상이 됐다. 납치당한 78세 노인은 구치소에 감금된 후 교도관과 같은 감방 죄수에게 온갖 구타와 고문을 당해 건강이 위중한 상태에 처했다. 셋째 딸 리위즈가 소식을 듣고 국가보안대대에 석방을 요구하며 진상을 알려 선행을 권했지만, 그들은 외면하고 회피하며 듣지 않다가 며칠 후에는 리위즈 마저 납치해 불법적으로 징역 4년 형을 선고한 후 신샹(新鄉) 여자감옥에 감금했다.

리팅린은 날이 갈수록 점점 건강이 악화되어 생명이 위중해지자 책임을 의식한 국가보안의 석방조치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리팅린은 딸 리위즈가 4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금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슬픔에 빠졌다. 그러나 수시로 악경들이 집을 찾아와 괴롭히는 바람에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치료해도 효과가 없었으며, 결국 2009년 음력 3월 26일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79세다.

2. 혹독한 구타로 몸이 마비된 모친은 여러 해 누워 있다가 억울하게 사망

2005년 2월 8일 오후 11시경 류전툰 파출소 팡완춘이 4명의 경찰을 대동하고 리 씨 집을 수색했다. 수색 당시 몸이 불편한 리쥔치의 모친이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경찰은 그녀에게 즉시 침대에서 내려오라고 겁박하며 옷을 입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혹독한 날씨에 73세 노인은 단지 반바지 속옷 차림으로 추위와 공포심으로 온몸을 떨며 침대 옆에 서 있어야 했다.

악경은 그렇게 리 씨 집을 3차례나 수색하면서 리팅린, 리쥔치 부자를 화이양구치소에 35일간 불법적으로 감금해 놓고 온갖 구타와 고문을 가하면서 증거조작을 위한 조사를 했다. 그 기간 두 부자의 심신 고통도 심했지만, 집에서 홀로 남은 노부인도 노심초사하며 감금되어 고초를 겪는 가족을 생각하며 매일 눈물로 지샜다.

2008년 음력 4월 1일 오후 9시 국가보안대대장 청웨이펑(程維鋒), 류전툰향 파출소 부소장 황웨이(黃偉) 등이 4명의 경찰을 대동하고 리쥔치의 집에 들이닥쳐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진행했는데, 리쥔치가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을 침대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경찰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리쥔치를 납치했다.

리쥔치가 방에서 납치되는 모습을 본 모친이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내 아들을 붙잡아갑니까? 내 아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하고 묻자, 장(張) 씨 성을 가진 젊은 악경이 단번에 노인을 잡아 바닥에 쓰러트린 후 구둣발로 노인을 여러 차례 걷어차고 또 10여 차례 짓밟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부인의 얼굴을 잡아끌어 10차례 뺨을 때렸다. 그리고 또 “말하지 말라. 말하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흉악한 모습으로 위협했다.

노부인은 착한 아들이 이유 없이 납치되어 감옥으로 가게 되는 것을 보고 애간장을 태우며 악경을 따라 집 밖까지 걸어가며 납치의 부당함을 말했다. 그러자 그 악경은 또 다시 뺨을 때리는 등 혹독한 구타를 가해 땅바닥에 쓰러트렸고, 다시 일어나 말하면 또 구둣발로 걷어차 쓰러트렸다.

그렇지만 노부인은 구타의 고통을 참고 일어서서 몸부림치며 아들을 보호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자 독이 오른 그 장 씨 악경은 세 번째로 노부인의 얼굴과 몸통을 무차별 폭행했다. 땅바닥에 쓰러진 노부인의 얼굴과 전신이 모두 부어오르고 자색으로 변했으며, 호흡곤란증세를 보였다.

혹독하게 구타당한 노부인은 그 후로부터 혼자서는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몸이 마비되어 1년 내내 몸져누워있어야 했고,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었다. 그런 중에 셋째 딸마저 4년 형의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고, 경찰이 수시로 집에 찾아와 괴롭혀서 노부인의 우울증과 공포심이 극에 달해 병세가 나날이 나빠지다가 결국 2013년 1월 2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3, 리쥔치, 5차례 납치의 박해와 불법적인 징역형을 선고받아

2005년 2월 8일 화이양 류전툰 파출소 팡완춘은 4명의 경찰을 대동하고 리쥔치의 집을 수색한 후 리쥔치를 납치해 화이양 구치소에 35일간 구금한 후 온갖 고문 박해를 가했다.

2006년 음력 3월 초 류전툰 파출소 부소장 황웨이는 4명의 경찰을 대동하고 리 씨 집에 들이닥쳐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자, 리쥔치를 납치해 구치소에 30여 일간 감금해 놓고 온갖 고문 박해를 가하다가 현금 1천 위안을 갈취한 후 풀어줬다.

2008년 음력 4월 1일 오후 9시 국가보안대대장 청웨이펑, 류전툰향 파출소 부소장 황웨이는 4명의 경찰을 대동하고 리쥔치의 집에 들이닥쳐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진행한 후 리쥔치와 리팅린 부자를 납치해 파출소로 끌고 가, 부자를 각방에 감금한 후 리쥔치에게 혹독한 고문을 가해 고통의 비명이 끊임없이 들렸다. 밤이 깊어져 고문과 구타를 하던 경찰이 지치자, 부자를 모두 수감으로 침대에 채워놓았는데, 다음날 오후까지 장장 14시간 동안이었다. 그 후 리팅린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아들 리쥔치는 현성 유치장으로 이송되었다. 수감 당시 구타와 고문으로 몸이 많이 상한 것을 보고 구치소 측에서 신병 인수를 거부하자, 경찰들은 리쥔치를 차에 싣고 교외로 나가 길옆에 던져버리고 가버렸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
중공 고문 설명도
구타

2014년 5월 리쥔치는 사람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화이양 국가보안대대 경찰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되어 악경 더우밍커(竇明科)에게 혹독한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악경들은 고문실 구석 바닥에 엎어놓고 발로 몸을 밟고, 한쪽 손으로 팔을 비틀어 다른 한쪽 손으로 라이터 불로 천천히 태우는 고문을 가했는데 그렇게 다섯 군데를 태워 평생 남게 되는 흉터가 생겼다. 리쥔치가 고통스러워하자, 사악한 더우밍커는 “그럼 복종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복종하지 않겠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당신이 사람을 태우는 짓은 위법이다. 나는 법을 위반하지 않았지만, 만약 법을 위반했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을 태워서는 안 된다. 내가 당신에게 한마디 권하겠다. 이렇게 하면 당신에 좋지 않다. 다음에 인과응보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더우밍커는 개의치 않고 “나는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내가 무슨 인과응보를 받는지 지켜봐라” 하고 말했다.

다섯 번째 납치당했다. 2014년 6월 24일 화이양현 국가보안 경찰 청웨이펑, 리창펑(李昌峰), 더우밍커, 왕젠(王劍), 청웨이중(程偉中) 등은 청관(城關)진 샤오멍러우(小孟樓)촌의 한 파룬궁 수련생의 집에 들이닥쳐 현장에 있던 리쥔치 파룬궁 수련생 등 11명을 납치해 공안국으로 압송했는데, 리쥔치는 고문 박해당한 후 구치소로 이송돼 감금되었다.

구치소장 리시즈(李西志)는 리쥔치에 이른바 강제 ‘전향’을 위한 고문 박해의 강도를 높였다. 3일간 매일 감방을 바꿨는데 수감자에게 감방을 바꾸는 것은 생사의 갈림길과 같은 것이다. 기존의 감방 죄수가 신참을 괴롭히는 방법은 가지가지였는데 감방마다 괴롭히는 정도는 혹독했다. 그러므로 구치소 안에서는 리쥔치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늘 들렸다. 리쥔치는 간질병 환자였기에 그의 심신은 더욱더 빠르게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악경은 증거를 조작해 죄명을 만들어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후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고, 법원에 기소하여 재판에 회부됐다. 불법적인 재판이 개정되어 검사가 이른바 기소이유를 열거한 후 리쥔치가 법정진술을 통해 “공안부에서 발표한 14종류의 사교조직 중에 파룬궁은 없다. 국가출판부에서 이미 파룬궁 서적 출판금지령을 취소했다. 헌법은 국민은 신앙자유, 언론자유를 규정한다. 그러므로 내가 대법을 믿는 것은 무죄이므로, 나는 어떤 법도 위반하지 않았으므로 무조건 즉시 석방해야 한다. 당신들의 이런 행동은 장래에 좋지 않은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대법제자를 박해한 사람들이 인과응보를 받은 일은 참으로 많다. 공안국장 런창샤(任長霞)……”라고 말했다. 재판장 마쥔(馬俊)은 리쥔치의 발언을 힘껏 제지했다. 결국 리쥔치는 억울하게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정저우(鄭州) 신미(新密)감옥에 감금되어 고문 박해 당했다.

4. 리쥔치는 감옥의 고문 박해로 사망하다

정저우 감옥은 허난(河南)성 신미(新密)시 산 아래 쑹산(嵩山)대로에 있는데 중국공산당이 허난성의 남성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기 위해 운영하는 사악한 소굴이다. 이곳에 감금당한 파룬궁 수련생 대다수가 9감 구역에 감금되어 있다. 리쥔치도 9감 구역에 감금되어 여러 차례 소름 끼치는 혹독한 고문학대를 받던 곳이다.

演示:关小号
재연
: 독방감금

감구역장 자오훙타오(趙洪濤)는 리쥔치를 ‘전향’시키겠다는 목적으로 먼저 유화책으로 회유하다가 듣지 않으면 강경책으로 바꾸어 괴롭히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혹독한 고문 박해를 가하면서 15일간 독방에 감금했다. 리쥔치가 독방에 감금된 후에도 듣지 않자 전기봉으로 고문을 시작했고, 형사범 죄수를 시켜 집중적으로 괴롭히게 했다. 수법은 수갑 채우기, 족쇄 채워 내리치기 등의 구타와 고문을 가했다. 그 외 일종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고문형구를 사용하는데 마치 망태기 같은 것이다. 그걸 몸에 씌우면 머리만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형구에 물을 넣어 고문을 가하는 것으로 그 괴로움은 죽기보다 더 괴로워서 고통의 정도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2017년 3월 25일 8~10시까지 살인범 사쿤(沙坤)과 차오위(曹魚)는 리쥔치를 에워싸고 무작정 집단구타를 가했는데, 2시간 넘게 구타당하는 처절한 비명은 전체 건물에 모두 들렸다. 당시 목격자에 의하면 리쥔치가 바닥에 푹 주저앉았고 양미간의 2cm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걸 보았다고 했다. 다른 수감 죄수들이 교도관 차오위에게 “구타하지 마세요. 인명사고가 생길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차오위는 “뭐가 두렵나? 감옥에서 파룬궁 한 사람을 구타해 죽이는 것은 개미 한 마리를 죽이는 것보다 더 간단하다. 아무리 혹독하게 구타해서 죽었다고 해도 뭐 대단할 것이 없다!”고 큰소리쳤다.

2017년 3월 31일 오전 8시 35분 리쥔치는 대대장 상훙장(尚紅章)의 지휘로 교도관 몇 명에게 5분간 한꺼번에 여러 개 전기봉으로 고문당했다. 고문이 끝난 후 형사범 왕신룽(王新龍)이 “파룬궁이 아무리 강직하다고 해도 별것 아니다. 우리 교도소 대장은 파룬궁을 다스리는 뛰어난 재간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 고문이 있고 난 뒤 리쥔치는 간질병이 도졌다.

酷刑演示:多根电棍电击
고문 재연
: 여러 개의 전기봉으로 전기 충격을 가하다

살인범 사쿤은 리쥔치와 같은 감방에 수감 중이었는데, 그는 1분감 구역의 졸개로 왕훙좡(王紅莊)과 함께 있었다. 1분감 구역 수감자 팀장은 장젠펑(張建峰)이고, 방범담당은 리궈성(李國勝)이다. 7월 14일 오전 9시, 이들 4명의 죄수가 리쥔치를 집단 구타하기 시작했고, 구타당해 리쥔치는 전신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7월 16일 오후 9시 사쿤, 자오웨이제(趙偉傑), 장젠펑, 사쿤, 왕훙좡, 캉하이양(康海洋), 리궈성, 징샤오빙(景孝兵), 리웨이싱(李為星) 등 10여 명 형사범 수감자들은 시트로 리쥔치를 덮어씌운 후 집단구타를 했다. 1분감구역 팀장 장젠펑은 그들 죄수에게 “전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구타할 수 있으며, 구타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내가 책임진다.”고 말했다. 형사범들은 마음대로 손으로 구타하고 발로 찼다. 리쥔치는 집단구타로 전신이 시퍼렇게 멍들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들은 그래도 큰 소리로 “좋다”고 외쳤다. 9감 구역의 악독한 교도 부대장, 규율검사위원회 서기 뉴샤오쉐(牛小學), 책임교도관 류둥보(劉東波) 등은 사람을 구타하는 죄수들을 단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몸에 상처투성인 리쥔치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웠다.

2017년 6월 25일 리쥔치는 3년의 억울한 징역 형기가 만기 돼 집으로 돌아왔다. 10월 어느 날 류전툰(劉振屯) 파출소 몇 명의 경찰이 불법적으로 리쥔치의 집에 들이닥쳐 또 가택수색을 했다. 리쥔치는 “당신들은 성 씨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법도 위반하지 않았는데, 왜 집을 수색하는가?” 하고 묻자, 그중 한 사람이 “나는 류 씨다”고 말했다. 리쥔치가 “당신들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왜 법을 위반하는가? 나는 당신들을 신고하러 가겠다.”고 말한 후 기회를 틈타 차를 타고 그곳을 벗어났다. 경찰은 가택수색으로 일부 물품을 강탈해 갔다.

10월 21일 리쥔치는 류전툰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되어 공안국에서 고문을 당하다가 구치소에 수감된 후 또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정저우 신미 감옥에 수감되어 박해당했다.

2018년 10월 26일 리쥔치는 만기출소로 감옥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리쥔치가 출소 전 감옥에서 무슨 악랄한 수단을 당했는지는 몰라도, 집에 돌아온 후 정신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지 4개월 만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겨우 46세다.

후기

리팅린의 일가족은 보통의 순박한 농민으로, 대대로 화이양에서 살아왔다. 리팅린 노부부는 부지런하고 성실했고, 아들 리쥔치는 소박하고 선량하며 부지런했다. 리 씨 집은 앞뒤로 집 두 채가 있었으며 두 개의 정원도 있었다. 그 정원에서는 자비롭고 은은한 파룬궁 연공 음악이 한 때 3년간 울려 퍼졌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대법을 수련하는 마을의 남녀노소가 이곳에서 연공했고, 서로 수련체득을 나누어 행복과 아름다운 기억을 남겼다.

오늘날 리팅린의 일가족 세 식구는 이미 억울하게 사망해서 그들이 살았던 빈집만 쓸쓸히 남아 있다. 정원의 나뭇가지는 바람에 흔들려 ‘솔솔’ 거리며 속삭이는 것이 마치 행인에게 집주인의 아름답고 슬픈 사연을 말해주는 듯하다.

원문발표: 2019년 11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30/3964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