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3년의 억울한 옥살이로 학대당한, 푸순시 우리셴 거듭 4년의 억울한 징역형 선고받아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 보도) 푸순(撫順) 왕화(望花)구의 올해 62세인 파룬궁 수련생 우리셴(吳麗賢)은 3년의 억울한 옥살이로 학대를 당한 적이 있는데, 핍박에 못 이겨 반년 남짓 유랑생활을 하고 2019년 7월 26일 밤 집으로 돌아왔다. 이른 아침 8시경 경찰이 문을 부수고 집안에 들이닥쳐 그녀를 납치해 4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했다, 현재 그녀는 랴오닝(遼寧) 여자감옥에 있다.

소식에 따르면, 우리셴은 랴오닝 여자감옥 1감구 10소대에서 강제 ‘전향’박해를 당했는데, 그녀가 ‘전향’을 거부한 이유로, 매일 일이 끝난 후 감방에서 좌반(坐板)에 앉히기 고문을 당하고 있다.

中共体罚示意图:长时间罚坐
중국공산당 체벌 재연도
: 장시간 동안 앉히기 고문 

우리셴은 파룬궁을 수련한 이유로 얼굴 피부가 희고도 살결이 곱고, 주름이 없고 아주 젊어져 보기에는 마치 40여 세와 같았다. 거칠고 급하던 성격도 점점 온화하고 선량해졌다. 그녀는 어디로 가든지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은 좋습니다(真善忍好).’라고 알려주었다.

바로 그녀가 이처럼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켜 종래로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로, 오히려 여러 차례 납치, 감금 박해를 당했다. 감옥에서 잔혹한 학대—머리칼을 잡아당겨 벽에 부딪치기, 독방에 가두기, 겨울에 냉수를 끼얹기, 옷을 벗겨 바람을 맞고 추위에 떨게 하기 등 고문을 당했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撞头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 구타, 머리를 부딪치기 

아래는 그녀가 최근에 납치당한 것과 예전에 소굴에서 박해를 당한 사실이다.

1) 최근 15개월 동안 3차례 납치를 당하다

제1차: 2018년 4월 24일, 푸순(撫順) 왕화(望花)구 젠서(建設)파출소에서는 시 국가보안지대장 펑웨(彭越)와 조수 웨이전싱(魏振興)의 지시하에 어떠한 이유가 없고 또 아무런 법률 절차도 없이, 집에 있는 우리셴을 납치했다. 동시에 차례로 또 이 외의 9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했다.

우리셴은 푸순시 구치소에 37일 동안 감금당한 후, 기타 네 명의 파룬궁 수련생과 함께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제2차: 2018년 9월 29일 오전 11시쯤, 우리셴은 메이구이성(玫瑰城) 광장 인근에서 산책하며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황화구 광밍(光明)파출소의 한 사복 경찰에 의해 납치됐고, 그날 푸순 구치소에 불법으로 감금당했다.

감금 기간에 우리셴은 몸이 불편하고 심장이 쇠약한 증상이 나타났다. 구치소의 경찰은 의료와 간호 인원에게 위험이 있는지를 문의했는데, 의료 간호 인원은 “위험이 있습니다. 아침에 이미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푸순시 조선족 파룬궁 수련생 김순녀(金順女)가 2018년 10월 10일에 박해로 사망했음).”라고 대답했다. 경찰이 업무담당 인원에게 연계하자, 업무담당 인원은 “보석하세요!”라고 말했다.

우리셴은 10월 10일 저녁에 집에 돌아왔다. 법공부, 수련, 몸조리를 거쳐 몸은 완화되었다. 이때 왕화 검찰원, 법원은 여러 차례 우리셴의 집을 찾아왔는데, 결과 우리셴이 아직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 하에 불법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재판 후, 우리셴은 집으로 돌아와 계속 몸조리를 했다. 이 기간에 왕화 공, 검, 법(공안, 검찰, 법원)은 인마를 풀어서 곳곳에서 우리셴을 찾았다. 우리셴은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다.

제3차: 우리셴은 외지에서 유랑한 시간이 길어지자, 마음속으로 또 출근하는 남편이 혼자 집안의 일체를 감당함을 걱정했다. 6개월 후, 2019년 7월 26일 밤에 우리셴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이른 아침 8시가 넘어서 잠복 감시하고 미행하던 경찰에 의해 납치당했다. 오후 1시 40분에, 어떤 사람이 보았는데 우리셴의 두 손을 등 뒤에 묶어 두 명의 남성 경찰에 의해 납치당했다고 했다. 뒤쪽에 여성 경찰이 따랐다. 그리고 푸순시 구치소로 보내졌는데, 우리셴은 한 길에서 줄곧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궁 연마는 잘못이 없습니다.’ 등을 외쳤다.

우리셴은 왕화구 법원에 의해 4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2만 위안(한화 약 335만원)의 벌금을 갈취당하고 랴오닝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했다.

2) 예전에 3년의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고, 상처를 지니고 소굴에서 걸어 나오다

2010년 9월, 우리셴은 푸순 왕화구 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3년의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아, 랴오닝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했다.

여자감옥에서 교도관 란(蘭) 모는 죄수를 이용해 우리셴을 구타했다. 처음에는 우리셴을 1감구로 끌고 가서 그녀가 여전히 파룬궁을 연마할지를 캐물었는데, ‘연마합니다.’라고 대답해 곧 구타를 당했다. 때려눕힌 후 잡아 끌어올려 다시 구타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학대했다. 두 사람은 구타하다 지치면 또 다른 한 죄수를 바꿔 계속 구타했다.

酷刑演示:暴打
고문 재연
: 혹독한 구타 

그때는 바로 11월인 겨울이었는데, 우리셴은 감시 카메라가 없는 큰 방안으로 옮겨졌다. 세 명의 교도관은 우리셴에게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녀의 몸 위에 홑옷만 입고 문이 열린 창문 앞에 서 있게 했다. 게다가 냉수를 머리 위에서 아래로 끼얹었다. 그녀의 옷이 흠뻑 젖으면, 교도관은 웃옷을 벗기고 그녀를 핍박해 윗몸을 벗은 채 바람을 맞고 추위에 떨게 했다.

교도관은 우리셴으로 하여금 빈 널빤지인 침대 위에서 잠을 자게 했다. 게다가 잠을 아주 적게 재웠다. 쇠 침대 위에는 단지 낡은 이불솜이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낡은 이불솜을 한 덩이씩 몸 위에 붙여 놓을 수밖에 없었다. 교도관은 또 그녀에게 밥을 배불리 먹이지 않았고, 화장실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셴은 시달림을 당해 두 발이 매우 많이 부어올라 누르기만 하면 움푹 패 들어갔다. 걸을 때 조금씩 끌며 걸었다. 이렇게 2개월 넘게 박해를 당했다.

강제 노역은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작업실로 내려가서 일했는데, 우리셴이 다른 사람과 말을 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특별히 파룬궁 수련생과 접촉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스쳐봐도 안 되었는데, 구타하지 않으면 욕을 했다. 우리셴은 박해를 반대해 2백여 명의 작업실에서 연공 하다가 독방에 갇혀 박해를 당했다. 독방 안에서 그녀는 여전히 연공을 견지해 두 차례나 수갑에 채워졌다.

한 차례, 그녀가 박해를 당해 극도로 허약해진 상황에서 또 ‘당신은 아직도 연마할 것인지?’를 캐물었는데, 우 씨는 ‘연마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과 그녀는 또 독방에 갇혀 박해를 당했는데, 한 번 갇히면 3개월 동안 갇혔다. 학대를 당해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구토하고, 쭈그려 앉지 못하고, 일어서지 못해 3차례나 병원에 보내졌다. 결국, 2013년 4월 16일, 형기가 끝나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소굴에서 걸어 나왔다.

오늘날 우리셴은 거듭 감옥에서 감금 박해를 당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의 몸을 걱정하지 않을 때가 없고,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때가 없다. 그들의 아픈 마음에는 메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움, 슬픔은 생활과 근무에 수반됐다.

그러나 이것은 평범한 중국의 한 가정일 뿐이다. 무수한 비극, 더욱 잔인한 박해는 여전히 중국 대륙에서 재연되고 있다……하지만 신은 다 알고 있다. 역사상에서 바른 믿음을 박해한 사람은 종래로 성공한 적이 없다.

원문발표: 2019년 11월 2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23/3961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