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큰어머니가 보물을 찾다

글/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돼지해를 맞아 서남부 변경의 작은 현(縣) 소재지인 나의 고향에도 사람들이 무리 지어 움직이는 풍경이 나타났다. 방금 고향으로 돌아온 나도 가족들과 함께 시장에서 식자재와 새해맞이 필수품을 샀는데, 근 1년 동안 보지 못한 사촌 동생과 마주쳤다.

“형, 방금 온 거 맞아요? 우리 엄마가 방금 형 집으로 형을 만나러 갔는데, 말려도 안 듣고, 다행히 형이 정말 오셨네요….”

큰어머니는 곧 80세인데, 큰집에서 우리 집까지 수 km나 되어 제법 멀 텐데도 기다리게 할 수가 없었고, 내가 빨리 움직여야 했다. 나는 큰어머니가 틀림없이 ‘보물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야기는 대략 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촌에서 평생을 힘들게 일한 백부모님 일가가 그해에 돈을 모아 현 소재지에 집을 사서 이사했다. 그전에 나는 이미 아주 여러 해 동안 그들을 보지 못했다. 나는 대학에 가면서 고향을 떠났고, 결국 다른 성(省)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도 퇴직하고 얼마 후 고향을 떠나 일 년 내내 우리 남매 몇 명과 외지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내가 고향에 갈 기회가 거의 없었고, 고향에 사시는 백부모님을 만날 기회는 더욱 적었다. 그래서 내가 다행히 파룬따파를 수련해 대법의 복을 받은 후에 이루지 못한 소망이 생겼으니, 바로 대법의 복음을 백부모님을 포함한 고향의 친척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큰집이 시내로 이사한 후, 나는 마침내 기회를 봐서 그들을 찾아갔다. 당시 백부모님은 모두 이미 70세를 넘긴 노인들이었고, 몸에는 모두 서로 다른 여러 질병이 있었는데, 특히 큰어머니의 가장 큰 고통은 심한 류머티즘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 병의 근원은 젊은 시절에 밀수죄로 수년 동안 감옥에 수감된 데 있었다. 감옥 안의 환경은 사람이 지낼 곳이 못 되어 고된 노역과 노예노동뿐 아니라, 음습하고 불결하며, 겨울에는 대단히 추운 감방에서 시간을 보내니 수많은 사람이 일생의 고질병을 얻었다. 큰어머니는 바로 그렇게 감옥에서 몇 년을 보낸 후, 스스로 움직이고 생활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감옥 측은 가족들에게서 돈을 받아 보석으로 치료받게 한 후에야 사람을 석방했다.

당시 큰어머니의 두 다리는 근육이 전부 위축되었고, 뼈마디는 조금 춥거나 날씨가 바뀌면 주야를 가리지 않고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사람은 나왔지만, 집안일을 돕기는커녕 걷지를 못해 반드시 날마다 누군가가 음식과 일상생활을 보살펴야 했다. 치료와 통증 완화를 위해 끊임없이 돈을 쓰면서 의사와 약을 찾아다녔고, 중의와 양의, 톈진, 난징, 상하이, 베이징으로 온갖 처방을 수소문했지만, 수십 년 동안 차도가 없었다. 단지 집안에서 스스로 기본적인 생활을 하면서 다른 일은 조금도 돕지 못하는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큰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여전히 폐인이었다. 통증의 고통은 수십 년 동안 짐이 되어 가족들에게 절망을 안겨 주었고, 큰어머니는 반평생을 그렇게 시달렸다.

큰아버지와 비교해 큰어머니는 대법과 인연이 있었다. 큰아버지는 좋은 교육을 받아 그 연배에서 보기 드문 대학생이었고, 아주 젊어서는 성(省)에 있는 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니 가족의 자랑이었다. 나중에 국가와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온 중공의 운동이 그치지 않던 시기에 큰아버지는 부농 가정 출신이라는 이유로 공직을 빼앗기고 고향으로 쫓겨나 농민이 되었다. 문화혁명이 끝난 후, 이른바 ‘명예회복’이 되어서야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영화는 사라지고, 인생을 되돌릴 수 없었다. 그런 액운과 불공평한 일을 만났지만, 큰아버지는 늘 자신과 동시대 사람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초래한 배후의 진정한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중공에 대해 고마움을 품고 있었다. 내가 큰아버지에게 중공의 진실한 면모와 신앙을 박해한 중공의 죄악을 말해주어도 아무 말이 없었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큰집에는 항상 중공 우두머리의 사진이 있는 달력 몇 개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큰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중공은 중국에 해악을 끼치고, 흑백을 뒤집어 극심한 화를 입히는 가운데 생명의 영원한 유감을 남겼다!

큰어머니는 달랐다. 비록 지식이 부족하고 많은 글자를 알지 못했지만, 여러 해 동안 못 보았던 조카가 알려준 파룬따파의 진상을 깊게 믿었다. 중공이 십여 년 동안 파룬궁을 상대로 자행한 먹칠과 모함이 큰어머니에게서는 즉시 효력을 잃었다. 큰어머니는 걸상 위에 앉아 모여지지 않는 아픈 두 다리 위에 보온 담요를 덮고, 다리 옆에는 목탄 화로를 놓은 채 나에게서 대법을 믿어 고난이 복으로 바뀐 이야기를 들었다. 큰어머니는 자신이 잊어버릴까 봐 나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메모 노트에 적어달라고 했다.

세월은 금방 흘러가 백부모님을 만난 지 수 년 후가 되었다. 큰어머니의 머리카락은 이미 반백이 되었지만, 정신은 오히려 이전보다 아주 많이 좋아졌다. 큰어머니는 매우 흡족해하며 나에게 몸이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말했다. 앞서 내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한 후부터 생각만 나면 정성껏 외웠는데, 정말 몸이 좋아진 것을 느꼈고, 두 다리도 이전처럼 아프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는 이미 외출할 수 있다며 계속 외울 것이라고 했다! 나는 큰어머니가 좋아진 것이 정말 기뻤다. 대법을 진심으로 믿어 이익을 얻은 것이 아주 분명했다.

그때 나는 또 수련생이 코팅하여 만든 호신부를 큰어머니에게 주었는데, 앞면에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가 쓰여 있었다. 큰어머니는 받더니 손에서 놓을 줄을 몰랐다.

몇 달 후 어느 날, 내가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받고 보니 뜻밖에도 큰어머니였다. 인사하기가 바쁘게 큰어머니는 사투리를 써가며 지난번에 준 호신부를 여러 개 더 줄 수 있느냐고 다급하게 물었다. 큰어머니는 그것이 너무나 좋았다며, 딸과 손녀들에게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큰어머니는 그때부터 가족들 속에서 대법의 복음을 전하는 살아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과거 큰어머니의 신체 상황이 어땠는지는 모든 가족, 친구, 이웃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큰어머니의 행동은 갈수록 자유자재해져아침을 먹고날마다 나가서 물건을 사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고, 휴대폰을 쓰면서부터는 친구들을 만나러 다닌다.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한다. ‘수십 년 동안 병 때문에 거의 나가지도 못하던 저 할머니가 어떻게 갑자기 갈수록 건강하고 쾌활해졌을까? 도대체 어떤 신기한 영약을 먹었을까?’ 큰어머니가 나타나서 하는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대법의 진상과 대법의 신기함이 점점 많은 가족과 군중에게 조용히 전해지기 시작했다. 내막을 알게 된 일부 사람은 자신도 대법이 좋다는 말을 외우고 싶어 했고, 자신이나 친척을 위해 평안을 보전하는 호신부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큰어머니는 열성적으로 연락인을 통해 한 차례, 또 한 차례 나에게 호신부를 부탁했고, 매번 내가 하루빨리 호신부를 가져오기를 기대했다.

때마침 지난 몇 년 동안 고향에도 고속도로와 철도가 개통되었고, 우리 아버지 별세 후에는 어머니도 고향으로 돌아가 생활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고향에 가는 기회도 많아졌고, 매번 나는 최대한 많은 호신부를 가져갔다. 나중에는 또 더욱 정교하고 끈이 달린 투명 메달 호신부도 나와서 몸에 차거나 집과 차에 매달 수도 있어 큰어머니가 더욱 환영했다. 당시 또 자초지종을 아는 친척들이 직접 나에게 호신부를 부탁하기 시작했는데, 그들도 기본상 모두 큰어머니를 통해 대법의 복음과 진상을 들은 사람들이었고,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명백해진 후 삼퇴 성명을 했다. 가장 많을 때는 내가 고향에서 성묘하는 하루 동안에만 친척 23명이 삼퇴를 했다. 그들이 운 좋게도 자신의 생명을 위해 아름다움과 희망을 다졌으니 큰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운 것인가? 오직 한마음으로 좋은 것을 친척과 친구에게 나누어 준, 그 일은 분명히 큰어머니를 기쁘게 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운 좋은 일인가! 파룬따파의 진상과 복음이 모든 사람의 생명과 미래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며, 중국이라는 흑백이 전도된 사회에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운 좋은 인생의 대사인가! 그래서 큰어머니는 공덕이 무량하며, 나이가 들수록 사는 것이 즐겁고 건강하다.

여기까지 말했으니 큰어머니가 섣달 그믐날 왜 나를 찾아왔는지를 여러분은 모두 알아차렸을 것이다. 확실히 그랬다. 내가 급히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큰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 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어머니는 호신부를 가지러 온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내가 가져온 호신부 메달을 들고 나왔다. 큰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받으며 기쁜 웃음을 지었고, 일어나 급히 밖으로 나가며 돌아간다고 말했다. 내가 흘린 것을 주려고 따라 나가 문에 도착하니 큰어머니는 이미 수 m나 멀어져 있었다. 천천히 가시라는 나의 말을 듣더니 큰어머니는 걸어가면서 경쾌하게 몸을 돌려 웃으며 말했다. “빨리 가야지. 집안일이 또 아주 많아….” 큰어머니의 기운 넘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웃었다. 정말 새해를 맞는 아이와 같았다.

원문발표: 2019년 11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정의로운 이야기세인의 정행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9/11/3/3953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