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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동안 퇴직금 박탈당한 허베이성 장취안싱,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성 보도) 허베이성 장자커우(張家口)시 줘리(涿鹿)현 초등학교 퇴직 교장 장취안싱(張全興, 80여 세)은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견지해, 2002년 공안국 정보과의 악독한 경찰에게구타당해 치아가 부러졌다. 게다가 불법 구류 박해를 당했고, 그 후 또 먹고 사는 데 필요한 17년 동안의 퇴직금을줘리현 교육국에 의해공제·박탈당했는데, 총 50~60만 위안(약 8천만~1억 원)이다.

장취안싱 일가족은 파룬궁을 수련해 여러 차례 중국공산당에 납치, 감금과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그의 딸 장칭화(張靑花)는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아 박해로 정신이 흐리멍덩하다. 장취안싱의 아들과 아내도 중국공산당이 박해하는 공포 분위기에서 차례로 사망해 장취안싱은 고독하게 혼자 남아 생활했으며 먹을 것이 없어 다른 사람의 구제로 생활했다. 줄곧 2019년 5월, 억울하게 사망할 때까지 여전히 한 푼의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파룬궁이 그의 일가족을 구하다

장취안싱은 전 장자바오(張家堡)진 문화교육 본교 교장으로,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는 갖가지 병이 몸에 달라붙었는데, 경추와 요추 변형, 두통, 요통, 다리가 아픈 증상, 배가 커진 증상이다. 이외에 심장, 간, 신장, 위장마저 문제가 생겨 옷을 입고 침대에 눕는 것마저 스스로 할 수 없었다. 의사는 그에게 “당신에게 돈이 얼마나 많다고 해도 치료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그의 매달 월급은 약 비용을 내기에도 부족했다.

자신이 갖가지 병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가족도 재난이 많고 병이 많았다. 그의 노 모친은 연세가 팔순에 가까워 몸이 허약하고 잔병이 많았고, 그의 아들 장리화(張力華)는 소아마비 후유증에 걸려 다리에 근육과 감각이 없는 등 증상이 나타났고, 키가 더 작아졌으며 또 기억력도 매우 나빴다. 아내는 장기간 과로와 압력으로 정신적으로 붕괴의 위기에 처해 갑자기 몸져누웠고 울고불고하며 연속 잠자지 못했다. 그의 집은 질병의 시달림으로 수시로 붕괴할 것 같았다.

바로 이 위급한 시각에 그들 전 가족은 기쁘게 소중한 대법 책 ‘전법륜(轉法輪)’을 얻고 또 5장 공법을 연마했다. 이로 인해 그들의 운명은 기적적으로 전환됐다. 그와 아내 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온몸이병 없이 가벼웠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들 아들의 기억력이 대폭 향상된 것이다. 동시에 왼쪽 다리, 왼쪽 발에 감각이 생겼고 또 플라스틱으로 만든 물 한 통도 들 수 있어서 일부 일을 할 수 있었다.

수련은 그들을 더욱더 선량하고 너그럽고 성실하게 했다. 여름철에 보리가 익자 촌 위원회에서는 수확할 장소를 해결하지 못해, 곧 장취안싱의 집을 찾아가 그들의 작은 땅을 이용하려 했다. 조건은 공동 수입의 일부를 주는 것이라 그들은 허락했다. 그러나 지금 십수 년이 지났으나 그들의 땅은 오히려 줄곧 무상으로 점유 당하고 있다.

그때 마을 사람은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여름 방학에 장리화에게 아이의 영어 지도를 해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중국식’ 영어 수업의 영향 받는 것을 피하고자, 장리화는 연구에 몰두해 재빠르게 영어 듣기와 말하기 능력을 향상하는 한 세트 학습 방법을 개발해 가르쳤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장리화는 비용을 받은 적이 없다. 어떤 학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와서 감사의 뜻을 표하며, 아이가 초등학교에서부터 꼴찌였는데 단번에 성적이 올라 중학교에서 상위권에 속했다고 말했다. 또 두 명의 학부모는 가스버너를 사서 한사코 그들 집에 설치해 주겠다고 했다.

중국공산당이 일가족을 해치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후, 이른바 ‘연합근무팀’이 마을에 들어왔는데 촌 위원회, 서기의 협력으로 매일 강제로 마을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세뇌를 진행했고, 대법 서적을 제출하도록 강요했으며, 또 구두로 연공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표시하게 했다. 그 후 모든 수련생의 신분증을 강탈했고, 또 강제로 수련생에게 사진을 찍게 했으며, 사람마다 30위안을 갈취했는데 말로는 이후에 찾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장취안싱의 집은 중점 감시당했다. 촌 위원회에서는 4~5명을 파견해 야밤까지 감시했고, 또 집 앞뒤, 좌우에 사람을 파견해 비밀리에 감시하게 했다. 진(鎭) 파출소와 왕싱빈(王刑斌) 등 4~5명 사복 경찰은 빈번히 집에 들어가서 수사를 진행해 가족에 대해 공갈 협박했다. 아들은 또 몇 차례나 납치됐다. 교육국의 왕다리(王大麗)는 장자바오진의 문화사무실(文辦), 우바오(五堡)진의 문화사무실 인원, 샤오바오 학교와 얼바오(二堡)학교의 교사 등을 파견해 여러 차례 집에 들어가 감시했다.

‘610’의 자오쉬안(趙宣), 리즈밍(李志明)도 몇 차례 함부로 집에 들어와 소란을 피웠다. 한번은 장취안싱이 그들에게 월급을 요구하며 무엇 때문에 월급 지급을 중지했는지 문의하자 그들은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으면 주겠소”라고 말했다. 장취안싱이 이렇게 하면 맞지 않는다고 하자, 그들은 “이것은 국가(중국공산당)의 규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장취안싱이 “이렇게 하면 국가(중국공산당)가 잘못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파룬궁은 국가와 국민에게 백 가지 좋은 점만 있고 한 가지도 해로운 점이 없습니다. 파룬궁은 잘못이 없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려 함에는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2002년 4월 8일 오후, 장취안싱은 우바오진 파출소 소장 지원스(冀文石)와 두 명의 사복 경찰에게 집안에서 납치됐고, 파출소에서 몸수색할 때 90위안의 현금을 강탈당했다. 그 후 현 국가보안대대장 둥페이(董飛)가 거느린 사복 경찰이 장취안싱을 반원형 의자에 수갑을 채워 혹독하게 구타했다. 그들은 주먹과 발을 전부 썼는데, 뺨을 때리고 구두를 신은 채 발가락을 밟고, 가시가 달린 고무 몽둥이로 전신을 전부 후려쳤다. 장취안싱의 앞니가 구타로 부러졌는데, 이후에 온 입의 치아가 한 대 한 대씩 몽땅 떨어졌다. 그날 오후 7시 넘어 현 구치소에 감금, 60일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현 공안국 사무실 둥페이는 또 그의 아내에게 2700위안의 현금을 갈취했고, 다른 한 사무실의 진(鎭) 부서기 두유(杜友)는 700위안을 갈취했다.

2002년 4월 9일, 우바오진 파출소의 왕싱빈 및 6~7명 사복 경찰이 불법적으로 장취안싱의 집에 들이닥쳐, 불법적으로 TV, 재봉틀, 녹음기 두 대와 선풍기 한 대를 강탈했는데, 문을 나서서 강커우(巷口)까지 걸어가, 에워싸고 구경하는 사람에게 누가 그 물건을 살 것인지를 물었다.

2002년 4월 24일 밤중, 장취안싱의 아내 가오위전(高玉珍), 아들 장리화는 우바오진 부서기 두유, 선전위원회의 장춘성(張春生)에게 납치됐다. 같은 차에 납치당한 사람은 또 마을 파룬궁수련생 류지팡(劉吉芳)과 천위즈(陳玉芝)가 있었는데, 네 사람은 치바오(七堡)촌의 초등학교 내의 이른바 ‘전향반’으로 납치돼 강제 세뇌당했다. 이곳에는 동시에 얼바오(二堡), 류바오(六堡) 등 여러 개 마을 파룬궁수련생을 감금하고 있다. 장취안싱의 아들 장리화, 하지가 불구로 된 한 사람은 강제로 신과 양말이 벗겨진 채 부서진 돌 위에서 빨리 걷게 했는데, 본래 빨리 걸을 수 없는 사람이 핍박에 못 이겨 빨리 달렸다. 그들은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빗자루와 몽둥이로 구타했는데, 줄곧 몽둥이가 구타로 부러질 때까지 구타했다. 이곳에서 장리화는 45일 동안 불법 감금당했고, 가오위전은 30일 동안 불법 감금당했으며, 두 사람은 850위안을 불법적으로 갈취당했다.

2003년 10월, 현 610, 교육국, 장자바오 문화사무실 및 샤오바오촌의 협력하에 장취안싱의 집에 들어가, 무슨 이른바 ‘4서(수련 포기각서 따위)’를 쓰도록 강요했으나 장취안싱은 거절했다, 당시 왕다리(王大麗) 교육국 부국장은 가족에게 3천 위안의 벌금을 선포하고, 즉시 2003년 10월부터 월급 지급을 중지했다.

월급을 불법 압류한 이유로 장취안싱 일가족은 식량이 끊겨 밥을 짓지 못했다. 핍박에 못 이겨 장취안싱과 아내 두 노인은 품팔이해 입에 풀칠했다. 아내는 예전에 여러 차례 교육국으로 가서 책임자에게 진상을 알려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사람이므로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책임자는 늘 거짓말과 속임수로 책임을 회피했다.

2006년 초, 우바오진 간부 악인 왕젠빈(王建斌)은 몇 사람을 거느리고 악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라’는 악독한 정책을 집행해, 연속 몇 차례나 장취안싱의 집으로 가서 소란을 피웠다. 노부부는 심신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상처를 입었다.

아들, 아내는 억울하게 사망하고 딸은 박해로 다치고 불구가 되다

중국공산당의 공포적인 박해로 장취안싱의 아들 장리화는 억울하게 사망했다. 이렇게 아들을 잃은 아내 가오위전은 또 아들을 그리워하다가 결국 2015년 1월 5일 비통하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장취안싱의 딸 장칭화는 얌전하고 선량했다. 이번 소멸성 박해 중 상처를 입고 불구가 됐는데 상황은 매우 처참했다. 1999년 7월 20일 세뇌당하고, 대법 서적, 사진 자료를 바친 외, 또 바오다이(保岱)진 및 왕좡(王莊)촌 위원회의 감시 및 소란을 당했고 신분증 등을 강탈당했다.

2006년 1월 초 어느 날, 장칭화는 베이징시 핑구(平谷)구 둥가오촌(東高村)진 난장다이(南張岱)촌에서 일했는데, 허베이성 가오양(高陽) 노동교양소에 갇힌 수련생의 가족에게 전화해 “당신의 어머니가 돌아오셨나요? 저는 얼화(二華, 칭화)입니다”라는 한 마디를 말했다. 결과 이 통화가 감청당했고 핑구 공안 형사경찰 6명이 불법적으로 장칭화가 일하는 집을 수색해 두 부의 진상 자료와 책을 강탈했고, 장칭화를 납치한 동시에 가족과 주인을 끌어갔다. 장칭화는 핑구 공안국으로 납치된 후 경찰에게 구타당하고 욕을 먹었으며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1개월 후 장칭화는 구치소에서 베이징시 다싱(大興) 노동교양인원 배정처로 옮겨져 2년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배정처에서 장칭화는 시달림을 당해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인사불성이 됐으며, 사지가 무기력하고 전신이 마비되고 허튼소리를 하는 증상이 나타났으나 바오자(수감자로 이뤄진 감시자)는 감시하고 때리고 욕했으며 밥을 먹이고 물을 먹였다. 가족이 배정처로 면회하러 갔으나 허락지 않았다. 또 “장칭화는 집에 있었을 때 정신병이 있었나요? 증명서를 떼 오세요”라고 말했다.

6개월 후, 장칭화는 또 비밀리에 네이멍구(內蒙古) 후허하오터(呼和浩特)시의 한 노동교양소로 압송돼 불법적으로 강제로 노예 노동했다. 매일 젓가락을 포장하는 임무를 완수하는데 완수하지 못하면 특근해야 했고, 잠자지 못하더라도 완수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악독하게 징벌했다. 장칭화는 건강이 나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고 사방에서 치료받았으나 여전히 수시로 증세가 도졌다.

2015년 8월 22일, 장취안싱은 최고인민검찰원에 고소장을 우편으로 부쳐 파룬궁을 박해한 원흉 장쩌민을 고소했다.

2018년 7월 2일, 줘리(涿鹿)현 우바오진 샤오바오(小堡)촌 공안 인원 가오융장(高永江)은 파출소 경찰 2명을 거느리고 장취안싱의 집에 들이닥쳐 소란을 피웠다.

원문발표: 2019년 8월 3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31/3921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