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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시 45세 파룬궁 수련생 허리팡,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산둥 보도) 칭다오(青島)시 지모(即墨)구 파룬궁 수련생 허리팡(何立芳)은 2019년 5월 5일 파출소에서 말한 것에 따라 신분증 절차를 밟으러 베이안(北安)파출소로 갔다가 납치 감금당했다. 허리팡은 단식으로 항의했다. 6월 25일 지모구 푸둥(普東)구치소에서 들려 나와 이른바 ‘재판’을 받았는데, 7월 2일 혹은 3일 박해로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45세였다.

何立芳
허리팡
(何立芳)

2019년 7월 1일, 가족은 갑자기 푸둥구치소의 전화를 받았다. 말로는 허리팡을 칭다오시 청양(城陽)구 제3병원[향진(鄉鎮) 병원에 속함]으로 보냈다고 했다. 가족은 당시부터 의문을 제기했다. 지모구에 몇 개의 큰 병원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작은 병원으로 가서 치료받는가? 가족은 병원에 도착한 후, 허리팡의 몸 위에 호스를 가득 꽂은 것을 보았다. 몸 위에는 일종의 무슨 주사를 맞는지는 모르지만, 한 번 주사할 때마다 허리팡은 온몸을 떨었는데, 마치 전기 충격을 당한 듯이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경찰은 줄곧 가족이 앞쪽으로 오는 것을 허락지 않으며, 가족을 한 작은 방안으로 밀어가서 몇 명의 경찰이 지켰다. 이튿날 아침, 칭다오 푸둥구치소의 경찰이 철수하자, 전부 지모구 베이안 파출소의 경찰로 바꿨다. 그들은 오자마자 강제로 가족을 병원에서 쫓아냈다. 7월 3일 오전 10시쯤, 가족은 허리팡이 이미 사망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가족은 허리팡의 시신 요구를 제기했다가 그들에게 거부당했는데, 말로는 시신은 그들이 처리한다고 했다.

허리팡은 칭다오시 지모시 베이안 가도 창즈위안(長直院) 지역사회 주민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견지해 ‘진선인(眞善忍)’을 믿은 19년 동안에 지모구 610이 현지 파출소를 조종해 진행한 여러 차례 교란, 불법 체포, 불법 감금, 고문에 의한 강제 자백을 당했지만, 구사일생으로 겨우 살아났다. 허리팡의 큰 누나 허수룽(何淑榮)는 두 차례나 불법 노동교화처분을 당했는데, 그중 한 번은 산둥(山東) 여자감옥에 의해 꼬박 8박 8일 동안 불법적으로 매달기 고문을 당했다. 그 후 2014년 4월 26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50세였다.

2001년의 7월 20일 이른 아침, 허리팡은 셋집에서 기타 몇 명의 파룬궁 수련생과 함께 지모구 차오하이(朝海)파출소의 사복 경찰에 의해 납치당했다. 그 후 또 지모 개발구 파출소로 옮겨졌다. 며칠 사이에 허리팡은 쇠 의자 위에 채워져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무더운 여름날에 경찰은 마음먹고 허리팡에게 솜으로 만든 투구를 씌웠다. 20세가 막 넘은 두 명의 어린 경찰은 허리팡을 괴롭히기 위해 수시로 경찰봉으로 머리 위의 투구를 두드렸다. 아울러 신경질적으로 한결같이 강제로 허리팡에게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에 대해 욕설을 퍼붓게 했다. 허리팡이 욕하지 않자, 두 명의 경찰은 곧 그의 두 다리를 들어 올리고 분필로 리훙쯔 선생님의 이름을 신발 밑에 쓰고는 그에게 밟게 했다. 허리팡이 따르지 않자 그들 두 사람은 곧 몸을 쭈그려 앉아 허리팡의 두 발을 누르면서 땅을 밟도록 그를 핍박했다. 허리팡은 지모 구치소로 옮겨 보내졌는데, 경찰이 교사한 17명의 수감 인원에게 뭇매를 맞아 거의 혼절해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의사는 응급처치 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허리팡은 가족에게 인도되어 집에 돌아온 후, 의식이 조금 명석할 때 파룬궁 수련을 견지해 몸은 이로 인해 신속하게 건강한 상태로 바뀌었다. 중공(중국공산당) 불법 인원은 허리팡의 몸이 다소 호전된 것을 발견하여, 사람을 배치해 24시간 동안 감시하고 교란을 진행했다. 허리팡은 핍박에 못 이겨 유랑 생활했고, 호구는 불법적으로 취소당해 신분증이 없었다.

중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호구가 없으면 어떠한 사회 활동도 진행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를 모두 알고 있다. 허리팡은 여러 차례 친척에게 위탁해 절차를 밟아 신분을 회복하려 했다. 파출소에선 처리해주지 않고 허리팡을 유인해 붙잡기 위해 베이안파출소 소장은 허리팡 본인이 오도록 계속 요구했다.

2019년 5월 5일, 허리팡은 소장의 의견에 따라 신분증을 처리하러 파출소로 갔으나 그를 기다린 것은 신분증을 처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납치 감금이었다. 게다가 5월 23일 모함 사건을 법원에 건넸다. 소식에 따르면, 지모 610은 곧 가장 빠른 속도로 빨리 재판을 내려 허리팡을 감옥에 보냈다. 그들 내부 인원의 말에 따르면, 증거 없음은 알았으나 그를 감옥에 넣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허리팡은 칭다오시 지모구 푸둥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줄곧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으나 강제적으로 음식물 주입을 당해 대소변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게 됐고 생명이 위급했다. 6월 5일 오전, 변호사는 허리팡을 면회하러 지모구 푸둥구치소로 갔는데, 구치소에선 꼬박 오전 내내 변호사에게 각종 이유로 발뺌하고 난처하게 굴면서 또 만나지 못하게 했다. 오후 가족이 또 변호사를 동반해 구치소로 가서야 면회를 허락했다. 4명이 들것으로 허리팡을 들고 나왔으나 그는 꼼짝하지 않았다. 변호사가 그와 말을 해도 어떠한 반응이 없었는데 생명이 걱정됐다.

6월 25일, 지모구 법원에선 생명을 경시하고 허리팡이 대소변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고, 생명이 위급한 상황인데도 푸둥구치소에서 임시 배치한 심문실 안에서 허리팡에 대해 이른바 ‘재판’을 진행했다. 허리팡은 몇 명의 법정 경찰에 의해 감방 안에서 들려 나왔다. 4, 5명의 법정 경찰은 그를 의자 위에 눌러 앉혀 놓았고, 옆의 한 법정 경찰이 끊임없이 그의 콧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를 닦아주었다.

재판 과정 중, 허리팡의 정신 상태는 멍청해 어떠한 반응이 없었다. 허리팡의 노 모친은 아들이 박해당해 말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법정에서, 병원으로 가 아들의 병 치료를 해주겠다고 제기했으나 상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검찰관 리샤(李霞)가 나열한 이른바 ‘죄명’은 2001년 허리팡이 외출해 ‘진선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나의 사부님과 대법이 결백함을 돌려 달라’ 등 현수막을 건 다소의 일부 개인 물품, 이른바 증인의 증언, 2015년 허리팡 전 가족이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한 고소 편지, 2001년 경찰이 교사한 수감 죄수들에게 허리팡이 뭇매를 맞아 생명이 위급해진 상황, 거주지 감시당한 후 핍박에 못 이겨 집을 떠나간 것 등 허리팡을 모함한 근거로 삼았다.

변호사는 검찰관의 이유 없는 고발에 대해 이치에 맞고 근거 있는 무죄 변호를 진행했다. 게다가 2001년 설전에 이른바 증인 증언의 진실성을 질의했다. 변호사는 신앙은 사상 범주 내의 문제로, 사회에 대해 위협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법정에서 무죄로 허리팡을 석방하도록 요구했다.

재판 과정 중, 판사 가오페이(高斐)는 줄곧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건네는 글, 쪽지를 받고 귓속말을 들었으며, 또 언행이 비정상적이었다.

공안 경찰, 검찰관, 판사는 본래 정의와 공도(公道)를 수호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이번 박해 중, 그들은 법률을 무시하고 610이 배후에서 교사한 상황에서 양심을 어기고 법률을 짓밟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어겨 가엾고 수치스러운 역할을 연기했다. 만약 아직도 정신을 차려 돌아서지 않는다면, 정의가 회귀하고 응보가 올 때, 당신들을 기다리는 것은 가엾고 수치스러운 말로이다. 게다가 인간의 응보는 단지 세인을 각성시키기 위한 것이고 지옥의 응보 그것이야말로 악업을 갚는 과정이며, 또 대대손손에 화가 미치게 될 것이다.

허리팡이 박해당한 상세한 상황에 관해 밍후이왕 보도 ‘산둥 지모시 허리팡 일가, 장쩌민을 고소’, ‘칭다오시 허리팡이 유인 납치 감금돼, 생명이 걱정돼’, ‘박해로 생명이 위급해진 산둥 칭다오 허리팡, 불법 재판 당해(사진)’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9년 7월 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4/3895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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