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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화이러우구 쉬쥔밍, 박해당하여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베이징 보도) 베이징 화이러우(懷柔)구 쑨푸이(孫福義), 쉬쥔밍(徐俊明) 부부는 3월 7일에 고향 주두허(九渡河)로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아 곧 뒤를 따른 화이러우구 경찰, 국가보안, ‘610’(중국공산당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적인 조직) 집단에 의해 집안에서 납치되어 화이러우 구치소로 이송되었다. 쉬쥔밍의 고혈압이 190이고, 저혈압이 140이어서 구치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4월 23일(혹은 22일)에 네 명의 경찰은 불법적으로 담장을 뛰어넘어 방안에 들이닥쳐 65세인 쉬쥔밍에 대해 위협, 공갈 협박을 했다.

2019년 4월 26일, 쉬쥔밍의 뒷집에 사는 숙모는 며칠 동안이나 그녀를 보지 못하여, 문을 아무리 두드려 불러봐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곧 아들을 찾아 담장을 넘어 들어가게 하여 상황을 살펴보았다. 결과 쉬쥔밍은 서쪽 사랑채의 온돌방에 이미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머리는 안쪽을 향해 누워 있었고, 한쪽 다리는 온돌 가장자리에 걸고 있었으며, 시신은 이미 굳어 있었다. 가족들이 수의를 입힐 때 쉬쥔밍 시신에는 입가에 피가 흘러나와 있었다. 추측에 따르면 4명 경찰이 담장을 뛰어넘어 들어가서 쉬쥔밍에 대해 공갈 협박으로 질병을 일으킨 뒤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다.

쉬쥔밍은 1953년 10월 4일에 출생했다. 원래는 베이징 화이러우구 주두허에서 살았고, 그 후 베이징시 화이러우구 판자위안(潘家園) 264호에 살았다. 1997년에 몸에 병이 있었기 때문에 파룬궁을 배웠고, 당시 그녀는 온몸이 병이었다. 두통, 안저통증(眼底疼), 궤양, 편도선염, 견관절 주위염(오십견), 치주염, 경추병, 심부전, 늑골, 내장 통증 등이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그녀의 몸은 건강해지고 정신 상태도 좋아져 성격이 좋아졌다. 남편 쑨푸이(孫福義)는 올해 71세로, 화이러우구 전신국 퇴직 노동자이다. 쑨푸이는 예전에 전립선염, 건초(힘줄을 싸고 있는 막)염이 있었는데, 아내의 변화를 본 후 그도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해 병도 낫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다. 쑨푸이는 집안 사람들에게만 잘 대해준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는 모두 똑같이 친절하게 대했다. 그는 전신국에서 근무했고, 누구 집에 전기 수리가필요하다는한마디면바로갔으며,자신의휴식 시간을사용하여한번하면두세시간을일했다.일을마친후식사를하자고권하려고보면사람을찾을수도없이일찍이가버렸다

마을 사람이 화이러우구로 일을 보러 갔을 때, 어떤 사람이 그가 주두허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곧 “주두허에 쑨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세상에 드뭅니다!”라고 말했다.

‘진선인’을 견지해 좋은 사람이 되자 거듭된 박해

하지만 쉬쥔밍과 남편 쑨푸이는 오히려 파룬궁을 확고하게 믿고 ‘진선인(眞 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려 했다는 이유로, 거듭 중국공산당에게 교란, 거주지 감시, 미행 납치, 구류, 노동교양, 벌금, 강제 세뇌를 당했고, 일찍이 핍박에 못 이겨 난민생활을 했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쉬쥔밍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려 했으나, 도중에 경찰에게 가로막혀 파출소로 납치당하여, 파출소에서 하루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그 후로 불법적으로 경찰, 610 직원, 직장 책임자, 주민위원회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그녀의 정상적인 생활을 괴롭혔다.

쉬쥔밍은 아침에 밖에서 연공한 것 때문에 경찰에게 구치소로 납치되어 28일 동안 불법적으로 감금당했다. 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아 곧 천안문(天安門)금수교(金水橋)에서 파룬궁 현수막을 펼쳤고, 경찰은 수중의 통신공구를 사용하여 어깨를 내리쳤다. 그 후 경찰에게 첸먼(前門) 파출소로 납치되어 불법적으로 감금당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쉬쥔밍이 근무하는 건축회사는 도산(倒閉)했고,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유리섬유공장으로 보내 출근하게 했다. 그리고 여전히 이삼일에한번씩그녀를 찾아와 이른바 ‘보증서’를 쓰게했다. 쉬쥔밍은 협력하지 않았고, 핍박에 못 이겨 1년 동안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 다녔다.

2002년, 쉬쥔밍은 ‘610’에 의해 강제로 세뇌반으로 끌려가 보름 동안 불법적으로 강제 세뇌를 당했다.

‘진선인(眞善忍)’을 견지해 좋은 사람이 되려 한 이유로, 쑨푸이도 불법적으로 구치되어 세뇌반에 가두었다. 2004년 12월에 또 불법적으로 1년 6개월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온갖 고초를 겪었다. 그가 노동교양소에서 출소한 후, ‘610’ 사람은 회사에서 사람을 파견해 그를 감시하도록 했지만, 국장은 “나에게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 이곳에서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2011년 11월, 경찰은 또 집으로 가서 소란을 피웠고, 쉬쥔밍과 남편 쑨푸이는 핍박에 못 이겨 1년 가까이 난민생활을 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친척 집으로 가도 다른 사람에게 연루시킬까 두려워 단지 2~3일밖에 머물 수 없었으며, 때로는 차 안에서 밤을 보냈다.

핍박으로 난민 생활을 하고, 남편은 불법적으로 3년 징역형을 선고받다

2016년 1월 11일, 쉬쥔밍과 남편 쑨푸이는 베이징 순이구 스먼(石門)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쉬쥔밍이 순이구 주민 장슈전(張秀珍) 부부에게 파룬궁 진상 정기 간행물을 나눠주고 파룬궁이 박해당한 진상을 알렸다가 진상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 부부에게 무고를 당했다. 경찰이 장터에 가서 쉬쥔밍을 납치하려 하자 쉬쥔밍은 위험을 벗어났고, 경찰은 그녀의 남편 쑨푸이를 납치했다. 그 후 쑨푸이를 순이 구치소로 납치했다. 쑨푸이의 고향인 주두허(九渡河)에는 현 정부 소재지에 이르는 아들의 집이 불법적으로 조사 몰수를 당해, ‘전법륜(轉法輪)’, 몇 개의 현수막, 프린터 한 대 등 개인 물품을 강탈당했다.

2월 18일, 쑨푸이는 불법적으로 체포 당했다. 4월 16일에 경찰은 불법적으로 그를 모함한 이른바 ‘서류’를 쑨이 검찰원으로 보냈다. 5월 19일에 순이 검찰원에 의해 사실이 불명확하고, 증거 불충분으로 정찰을 보완하도록 순이 분국으로 돌려 보내졌다. 6월 29일에 가족들은 구치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쑨푸이가 불법적으로 감금당한 기간에 고혈압 증상이 나타나 공안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은 보석을 제기했으나 거부당했다. 변호사도 여러 차례 석방을 요구하는 편지를 썼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그 후 순이 경찰 측에서 파룬궁수련생 쑨푸이를 모함한 사건은 두 차례 검찰원에 의해 반송됐다. 변호사는 관련 부서에 ‘불기소(不起訴) 의견서’를 건네 주었다. 278명의 이웃은 쑨푸이를 구출하기 위해 서명을 하고, 붉은 지장을 찍었으며, 그가 좋은 사람임을 증명하고,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여러 통 썼다.

2016년 12월 9일, 순이 법원에서는 재판을 진행하여 화이러우(懷柔)구 파룬궁수련생 쑨푸이에 대해 불법적인 재판을 진행했다. 톈진의 류(劉) 변호사가 쑨푸이를 위해 무죄 변호를 진행했다. 2016년 12월 28일, 순이구 법원 1심에서는 쑨푸이에 대해 3년의 무고한 징역형을 선고했고, 아울러 불법적으로 3천 위안(약 51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쑨푸이는 상소장을 제기했고, 베이징시 제3중급인민법원에까지 상소했다. 상소 후 제3중급인민법원에서는 원심을 유지했다. 그 후 쑨푸이는 톈진의 첸진(前進) 감옥에 감금되어 박해를 당했다.

쉬쥔밍은 이번에 또 핍박에 못 이겨 1년 넘게 난민생활을 했다.

두 부부가 미행 납치를 당하다

2019년 1월 10일, 쑨푸이는 3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2개월도 채 되지 않아 쑨푸이와 쉬쥔밍은 재차 납치를 당했다.

3월 7일 오전, 쑨푸이와 쉬쥔밍은 화이러우현 정부 소재지에서 차를 몰고 주두허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도착해 얼마 되지 않아 쑨푸이 부부의 뒤를 밟던 화이러우구 취안허(泉河) 파출소 경찰, 국가보안 사람들에게 집안에서 제압당했다. 7일 정오,쑨푸이는 경찰에 의해 화이러우 취안허 파출소로 납치당했다. 뒤이어 몇 명의 경찰은 주두허 쑨푸이 고향에서 불법 가택 수색을 진행하여 프린터, 실크 스크린, 파룬궁 서적 2세트와 파룬궁 자료 등 개인 물품을 강탈했다.

오후 5시경, 경찰은 쉬쥔밍을 또 취안허 파출소로 납치해 불법 심문을 진행했다. 쑨푸이, 쉬쥔밍 부부는 박해에 참여한 경찰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기를 희망했다. 경찰은 쉬쥔밍에게 서명하고 보증서를 쓰도록 했다. 쉬쥔밍은 “만약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목숨조차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쉬쥔밍과 쑨푸이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는 몸에 매우 심각한 질병이 있었고, 연공 후 완쾌되었다. 그들은 경찰에게 서명하는 것을 협력하지 않았다.

3월 8일, 쑨푸이, 쉬쥔밍은 불법적으로 화이러우구 구치소로 보내져 감금당했다. 검사 당시 쉬쥔밍은 심장병, 혈압이 높은 증상이라는 진단이 내려져 신체 불합격으로 구치소에서는 수용을 거부했다. 아무도 보증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 하에 한밤중에 경찰에 의해 주두허 고향으로 돌려보내졌다.

3월 9일 오전, 화이러우 취안허 파출소의 2명의 경찰은 또 주두허에 있는 쉬쥔밍 집으로 가서 소란을 피웠고, 그녀에게 믿음을 포기하고 보증서를 쓰도록 강요했다가 쉬쥔밍에게 거부당했다.

2019년 4월 초, 쑨푸이는 화이러우 당국에 의해 불법적으로 1개월 동안 감금당한 후에야 화이러우 구치소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박해로 사망, 남편은 세뇌반으로 납치당하다

2019년 4월 중순, 화이러우구 공안국, 국가보안경찰, ‘610’, 파출소에서는 ‘4월에 화이러우에서 회의를 열다’, ‘정권 70년 안정’을 이유로 거듭 쑨푸이를 화이러우구 ‘610’ 세뇌반(화이러우구 주셴묘(九仙廟))으로 납치하여 강제 세뇌를 진행했다.

2019년 4월 23일 오전(혹은 4월 22일 오전)에 쉬쥔밍은 주두허 고향에서 주두허진 황칸(黃坎)파출소의 4명 경찰이 문을 두드리는 교란을 당했다. 쉬쥔밍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4명의 경찰은 담장을 뛰어넘어 불법적으로 쉬쥔밍의 집안에 들이닥쳐 그녀에게 공갈 협박하며, 쉬쥔밍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그리고 또 그녀에게 자료의 출처를 물었다. 쉬쥔밍은 “몰라요. 지난번 납치를 당해 저는 놀라서 심장병, 고혈압이 도졌는데, 이번에 당신들은 또 이렇게 와서 심각한 환자인 나를 박해하는군요. 나에게는 석방 증명서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네 명의 경찰은 양보 없이 맞서다가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떠나갔다. 경찰이 떠나간 후 쉬쥔밍은 문을 닫은 다음 다시는 열어주지 않았다.

2019년 4월 26일, 쉬쥔밍의 집 뒤뜰에 거주하고 있는 숙모는 며칠 동안이나 조카며느리를 보지 못했고,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자 아들을 불러 담장을 뛰어넘어 들어가게 하여 상황을 보니 쉬쥔밍은 이미 서쪽 사랑채 온돌방에서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4월 26일, 가족들은 소식을 접한 후 서둘러서 왔고, 아들은 ‘610’ 세뇌반으로 찾아가 후사를 처리하도록 쑨푸이를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쑨푸이를 뒤따라 함께 주두허 고향으로 갔고, 쑨푸이가 도망갈까 두려워 구덩이를 파고 매장하는 것마저 조금도 곁을 떠나지 않고 쑨푸이를 따라다녔다.

4월 26일 당일, 쑨푸이와 가족들은 아내 쉬쥔밍의 후사를 완전하게 처리하고, 쉬쥔밍의 유골을 묻어서 평안을 얻게 한 후, 경찰은 또 쑨푸이를 세뇌반으로 데려가 감금하려 했으나, 쑨푸이와 많은 친척, 친구들에게 전력으로 제압을 당했다. 쑨푸이의 아들은 경찰에게 “당신들의 박해 없이 나의 어머니가 죽을 수 있었을까?”라고 물었고, 쑨푸이는 “나의 아내마저 살해당해 죽었는데, 당신들은 또 나를 박해하려 합니까?”라고 말했다. 아들은 휴대폰을 꺼내 신고 전화를 걸어 경찰의 위법범죄 행위를 신고해서야 경찰은 떠나갔다.

악행을 저지른 자는 죄책을 벗어나기 어렵다

쉬쥔밍의 박해 사망에, 베이징시 화이러우구 정부, 화이러우구 공안국, 화이러우구 국가보안대대, 화이러우구 취안허 파출소, 화이러우구 주두허진 정부, 화이러우구 주두허진 황칸 파출소 등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반드시 법률과 천리의 엄벌을 받을 것이다.

중국공산당 악당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20년 동안의 박해는 오늘날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또 하나 단지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됨을 견지한 이유로 비극이 중국대륙에서 발생했다. 한 선량한 사람이 단지 자신의 믿음을 수호한 이유만으로 중국공산당 및 장쩌민(江澤民) 불량집단의 잔혹한 박해를 당해 생명을 잃었고, 또 하나의 행복한 가정이 손상을 입었다.

여전히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는 그들을, 당신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 보기를 희망한다. 이 20년 동안의 박해 속에서, 파룬궁수련생은 무엇을 위해 여전히 견지하고 있으며, 누구를 위해 본래 감당하지 말아야 할 이 박해를 감당하고 있는지를? 진정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면, 당신의 양심이 당신에게 답을 알려줄 것이다.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19년 4월 2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28/3856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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