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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둥이 후베이 사양 판자 타이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한 상황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종합보도) 후베이(湖北) 치허(漕河)진 파룬궁 수련생 정한둥(鄭捍東)은 불법적인 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결국 2007년 8월 8일에 사양(沙洋) 판자 타이(范家台)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44세였다. 그가 사망한 세 번째 날, 정한둥의 고향 치허진에는 약 5분 동안 눈이 내렸다. 국민은 무더운 여름날에 눈이 내리면 꼭 억울한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정한둥의 사망 진단은 뇌출혈 사망이었다. 2007년 3월 말, 감옥 정위(政委), 감옥 원장, 감구 교도관은 정한둥에게 이른바 ‘고혈압’ 때문에 감옥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도록 했는데,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소식에 따르면, 2007년 8월에 병세가 위험하다는 상황을 알려 감옥 측은 가족에게 면회하라는 통지를 내렸다. 정한둥은 8월 6일에 하루 동안 혼수상태에 처해 눈을 뜰 수 없었다. 8월 7일에 눈을 뜰 수 있었고, 형 등을 알아볼 수 있었으며 가족과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 씨 가족이 8월 8일에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감옥에서 온 전화를 받았는데, 정 씨가 이미 사망했다고 말할 줄은 누가 짐작했겠는가? 가족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갔다. 장의사에서 정한둥의 얼굴 부위가 조금 부어올랐고,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는데, 사체 검안을 하지 않은 채 경찰은 총망히 시신을 화장했다.

당시 같이 감옥에 있던 우한시 파룬궁 수련생 쉬젠쥔(徐建君)이 증언했는데, 정한둥은 마지막에 감옥의 박해로 사망했다. 쉬젠쥔은 다음과 같이 구술했다.

나는 2003년에 친돤커우 감대(琴斷口)에 도착한 후 정한둥과 알게 되었다. 당시 정한둥은 이미 감옥에 들어와 있었다. 정한둥은 치춘(蘄春)현 사람으로, 그는 구치소에서 단식한 이유로 몸이 허약하고 혈압이 높았다. 감대에 있을 때, 그가 머리가 어지럽다고 말하기만 하면 혈압이 200이 넘었다. 1개월 후, 정한둥은 대대로 왔다.

그가 4감 구역에 있을 때, 나는 그와 한 번 접촉한 적이 있다. 2006년 하반기의 어느 하루 오후, 정한둥이 일을 끝낸 후, 그가 파룬궁 사부님의 새로운 경문을 감구역의 철 울타리 안으로 나에게 전해줄 때, 4감 구역의 감독 초소에 의해 발견됐다. 4, 5명이 나를 찾아왔는데, 바오자(감옥에서 지명 파견해 관리를 협조하는 죄수임)는 그들을 가로막으며 “우리 이쪽 사람을 당신들은 관여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 후 이 사건은 감옥을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은 모두 영창을 보내졌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 후에는 흐지부지 끝냈다.

파룬궁 수련생 스레이(石磊), 정한둥 등은 박해를 반대해 죄수 우두머리를 상대하지 않고 죄수복을 입지 않았으며, 문에 들어서도 ‘보고합니다.’를 말하지 않았고 감옥의 명찰을 달지 않았다. 치춘(蘄春)현 파룬궁 수련생 한산허(韓善河)는 일을 끝냈을 때 붉은 페인트로 벽 위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썼다. 감옥에서는 두려워서 사진을 찍은 후 그를 영창에 가뒀다.

2007년 3월, 나는 정한둥 등 40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과 함께 비밀리에 판자 타이(范家台) 감옥으로 옮겨져, 4감구에 나누어진 이분감구에 배정받아 한 방안에 머물렀다. 감방 안에는 모두 다섯 명의 수련생이 있었고 한 사람당 두 명의 바오자가 있었는데, 어떤 수련생이 가부좌하면 바오자는 그를 구타했다. 평일에 파룬궁 수련생이 앉아 움직이지 않기만 하면 그들은 나무 걸상을 두드리고 침대를 두드렸다.

한 달도 되지 않아 감옥에서는 모든 사람의 혈압을 조사했는데, 정한둥은 혈압이 높아 감옥 병원으로 보내졌다. 당시 우리의 혈압은 모두 높았는데, 매우 이상한 것은 벽을 사이 둔 그쪽 편은 전부 저혈압이었다. 그러나 나는 불편한 감이 없었다.

그날 저녁, 정한둥은 감옥 병원(사양감옥 관리국 총 병원)으로 보내졌다. 나는 그날 저녁에 경찰이 그를 불러 떠날 때, 그가 또 ‘가는지 아니면 가지 않는지’를 말하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는 형식으로 나갔기 때문에, 어떤 이는 이런 형식을 거쳐 나가지 않았는지를 생각했다. 그 후 그가 떠날 때, 우리 침실의 전등이 터졌다. 당시 ‘펑’ 소리가 났는데, 나는 이번에 간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나는 당시 우리는 함께 왔다며 대표를 파견해 가서 정한둥을 보러 가겠다고 제기했다가 감옥 측에 의해 거부당했다. 그 후 줄곧 그의 소식을 문의해 알아보았으나 알아내지 못했다. 날씨가 더울 때, 감구 게시판에 무엇을 붙였는데, 말로는 정한둥의 병세가 가중되었고 또 부신(콩팥 위샘) 등의 질병이 있다고 했는데, 마치 그의 사망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8월 8일에 그는 박해로 사망했다. 당시 교도관은 또, 정한둥이 사망한 지 아직 2, 3일도 되지 않았는데 밍후이왕에서 이미 알게 되어 그들은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나는 정한둥이 무엇 때문에 박해로 사망했는지를 알고 싶어 줄곧 이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내가 10감구에 갇혔을 때, 정한둥을 감시한 바오자 두 사람이 바로 주방에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상황을 물었다. 원래는 물어도 줄곧 말하지 않았는데, 나오기 이틀 전에 그들 중 한 사람이 이 일을 나에게 말했다.

사고가 발생하기 며칠 전, 정한둥의 ‘병보석’ 절차는 이미 내려왔다. 그러나 감옥 측은 줄곧 사람을 석방할 의사가 없었다. 첫날 낮 오후에, 그는 또 바오자와 중국 장기를 두었다. 저녁에 밥을 좀 먹었는데, 그 후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 잠을 자러 갔다. 저녁 8시가 넘어서 코를 골며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바오자는 곧 의사를 불러와 ‘응급 처치’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그에게 약물을 주사했다.

교도관은 그에게 수뇨관을 꽂겠다며 두 바오자를 시켜 꽂게 했다. 그 후 정한둥은 전신 부종 증상이 나타났는데 아랫배가 둥그렇게 팽팽해지고 몸에서조차 빛이 났다. 그가 위험해졌을 때, 교도관이 검사해서야 수뇨관을 거꾸로 꽂았음을 발견했다. 바오자는 “나도 끼워보지 않았는데, 그들이 나에게 꽂으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감옥 측은 그에게 무슨 부신에 이상이 있다고 말했는데, 사실 그가 바로 수뇨관을 거꾸로 꽂았다.

그 후 바꿔 꽂았을 때 흘러나온 것은 모두 핏물이었고, 사람은 이미 임종에 가까웠다. 그 후 교도소장이 그를 보러 갔는데, 위선적으로 “정한둥씨, 깨어나세요. 당신이 깨어나면 내가 즉시 당신을 석방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정한둥은 이미 호흡이 없었다.

바오자가 돌아온 후, 감옥 측은 그들에게 “당신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그들을 비교적 좋은 주방 감구에 배치해 일부 비교적 가벼운 일을 시켜 그들에 대해 일정한 배려를 해주었는데, 목적은 바로 그들의 입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원문발표: 2019년 6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6/15/3885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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