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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로 실명한 사례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종합보도) 1999년 7월부터 장쩌민의 ‘맞아 죽으면 자살로 간주하라’라는 광적인 박해 지령 하에 중국공산당 악도 들은 각종 잔인한 수단으로 선량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했고, 사람을 때려죽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더구나 사람을 구타해 불구로 만들거나 눈이 멀게 하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본문에서는 일부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로 실명한 사례로, 인성이 전혀 없는 잔혹한 박해와 중국공산당의 잔인하고 포악한 살인 본질을 폭로한다.

목록:

1. 혹독한 구타로 눈이 멀다

2. 안구가 구타로 튀어나오다

3. 고문으로 눈이 멀다

4. 이물질로 눈이 멀다

5. 약물로 눈이 멀다

6. 억울한 옥살이로 눈이 멀다

7. 생체로 장기를 적출하다

1. 혹독한 구타로 눈이 멀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 중, 많은 파룬궁 수련생은 처참한 구타를 당해 머리나 등 부위 등이 상처를 입고, 시각, 청각 등 신경 기능이 손상되어 두통, 어지럼증, 실명하고 청력을 잃게 됐으며 심지어 기억 상실 등 증상이 나타났다. 어떤 이는 극심한 외력에 의해 눈을 직접 구타당해 출혈하거나 심지어 실명했다.

1) 혹독한 구타로 두 눈이 실명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다

우쥔양(吳俊陽, 남)은 랴오닝성 번시(本溪)시의 파룬궁 수련생으로, 2004년 9월 18일 밤중에 납치돼 번시 구치소에서 고문 학대와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11월 16일 저녁 5시, 인사불성이 된 우쥔양은 악독한 경찰에게 시 중심병원으로 이송됐고 가족들을 기다리는 동안 우쥔양을 복도에 두고 경찰은 기회를 틈타 도망쳤다.

吴俊阳
우쥔양
(吳俊陽

우쥔양은 두 눈이 멍들고 미약한 목소리로 가족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알려주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때 그의 왼쪽 반신은 움직일 수 없었고, 왼손 엄지손가락은 손바닥에 닿은 채 떼지 못했다. 왼쪽 어깨는 굳어지고 왼쪽 가슴이 부어올랐으며, 왼쪽 아랫다리는 붓고 문드러져 주먹만 한 고름집이 생겼고, 두 발은 붉게 붓고 두 눈이 실명했다. 그리고 또 두 늑골이 청자색을 띠고 두 다리 내측이 자색으로 멍들었으며 꼬리뼈 부위는 시커멓고 소변 부위가 검은 자색을 띠었으며, 또 설태가 희고 혀가 문드러져 혼미상태에 처해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혼미상태에서 괴롭게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는 정신을 차린 후 56일 동안 당한 학대를 하소연했는데 한 마디 한 마디 말할 때마다 많이 힘들어했다.

11월 27일 이른 아침 1시, 집으로 돌아온 지 겨우 열흘 만에 우쥔양은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30세였다. 임종 시, 가슴이 찢어질 듯한 세 마디 비명을 냈는데, 보이지는 않지만 감을 수도 없는 두 눈,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는 그가 눈가에 두 방울의 눈물을 흘리며 죽어도 눈을 감지 못했다.

2) 혹독한 구타로 두 눈을 실명해 억울하게 사망하다, 신고자도 업보를 당해 눈이 멀다

디수전(翟淑珍)은 랴오닝성 톄링(鐵嶺)시 창투(昌圖)현 파룬궁 수련생이다. 2003년 저녁에 충성(叢生)촌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었다가 촌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감시하도록 고용한 가오궈이(高國義) 등에게 신고를 당했다. 진자(金家)진 파출소 지도원 펑바이린(馮柏林), 부소장 허우원거(侯文革) 등 경찰은 경찰차를 몰고 추격해 따라와 쇠몽둥이, 나무 몽둥이로 디수전을 혹독하게 구타해 기절시켰다. 경찰은 사람이 구타로 죽었다고 여겨 황급히 차를 몰고 현장에서 도망쳤다. 디수전은 왼쪽 늑골이 구타로 4대나 부러졌는데, 수술을 받았는데 흉강에서 반 대야나 되는 핏물을 빼냈다.

中共酷刑示意图:毒打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 혹독한 구타 

같은 해 5월 20일, 진자(金家)진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또 중상을 입고 완쾌되지 않은 디수전을 불법 구류시키고, 마싼자(馬三家) 노동교화소로 보냈다가 수감을 거부당했다. 혹독한 구타를 당한 후, 디수전은 장기간 육체노동에 종사할 수 없었고, 늘 두통, 머리가 혼미한 증상이 나타났다. 어떤 때는 혼미해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며 인사불성이 됐다. 2005년, 병세가 급격히 가중돼 머리가 극렬히 아프고 두 눈이 실명되어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결국, 2006년 2월 19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2004년 봄, 신고자 가오궈이는 업보를 입어 의외의 사고로 중상을 입었으며 한쪽 눈이 실명됐다.

3) 혹독한 구타로 기억을 잃고 귀가 멀었으며 왼쪽 눈이 실명된 우수 의상디자이너

파룬궁 수련생 왕하이옌(王海燕)은 광저우시의 우수한 의상디자이너다. 2002년 6월 13일 오후에 농린샤(農林下)로 파출소 경찰과 ‘610’(중국공산당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 사복 경찰 5~6명에게 납치돼, 혹독한 구타를 당해 중상을 입고 혼미상태에 처했다. 응급처치를 받고 깨어난 후, 심신은 극심한 상해를 입어 일시적인 기억 상실, 안구벽 조직과 시신경 손상을 입었으며, 허리 부위 여러 곳은 멍이 들었고 왼쪽 고막이 손상을 입어 한쪽 귀가 청력을 잃었다. 그리고 전신이 시퍼렇게 되고 핏자국이 얼룩덜룩했으며, 여러 곳이 타박상을 입었다. 의사들은 즉시 입원하도록 건의했으나, 경찰은 오히려 그녀를 둥산(東山) 구치소로 납치해 근 4개월 동안 불법으로 감금했다. 때맞춰 치료를 받지 못한 이유로 그녀는 상태가 악화하여 매일 두통, 안구 통증이 나타났고, 전신은 늘 통증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왼쪽 눈이 실명되어 얼굴이 망가졌고 왼쪽 눈의 시력이 급격히 내려갔다.

   
예전
2002년 때의 왕하이옌(王海燕), 지금의 왕하이옌 

4) 오른쪽 눈이 경찰봉에 구타당해 피가 흐른 후 진물을 흘리다가 결국 완전히 실명되다

장바오밍(江保明, 姜寶明, 남)은 지린성 쑹위안(松原)시 창산(長山)진 파룬궁 수련생이다. 2001년 원단에 아내, 딸과 함께 톈안먼으로 가서 대법을 실증했다가 경찰에게 불법 납치를 당했다. 장바오밍의 왼쪽 눈은 경찰의 경찰봉에 구타를 당해 끊임없이 피가 흘렀다. 3~4일 후에야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그런 다음 줄곧 1개월 동안 진물을 흘렸는데 결국 완전히 실명됐다.

5) 중국공산당 하수인의 난폭함 “고작 (구타로) 눈이 멀었을 뿐이 아닌가? 아직(구타로) 죽지도 않았는데!”

쑨창리(孫長立, 孫長利, 孫長麗, 여)는 랴오닝성 푸순(撫順)시 신바오(新賓)현 파룬궁 수련생으로, 우자바오 교화소에서 ‘전향’(즉 파룬궁 수련생에게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함) 고문을 당했다. 2001년 12월 하순 어느 날 저녁, 우웨이(吳偉, 대대장)는 20여 명의 부하를 시켜 그녀에 대해 혹독한 구타와 학대를 진행했다. 저녁 7시부터 밤중까지 괴롭혔는데 쑨창리는 4~5번이나 기절했다. 악인은 곧 인중을 눌러 정신을 차리게 하고는 계속해서 구타했다. 쑨창리의 얼굴은 구타를 당해 변형됐고 두 눈은 구타로 멀었다. 사악한 이들 하수인은 여전히 고소하게 여기며 “고작 (구타로) 눈이 멀었을 뿐이 아닌가? 아직(구타로) 죽지도 않았는데!”라고 말했다. 우웨이와 부하들은 또 쑨창리에게 눈이 구타를 당해 멀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고 나가서도 말하지 말라고 협박했다. 그리고 스스로 넘어져 눈이 멀었다고 말하게 했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괴롭혀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6)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해 구타로 왼쪽 눈이 먼 장위화가 억울하게 사망

张玉华
장위화
(張玉華

장위화(張玉華)는 예전에 네 차례 불법 감금당한 적이 있다. 2003년 음력 7월 17일, 쓰촨성 쑤이닝(遂寧) 국가보안대대 경찰이 그녀의 집 담장을 뛰어넘고 방안에 들이닥쳐 불법 가택 수색을 했고, 흉악한 구타를 당해 장위화는 눈앞이 온통 깜깜했다. 그 후 24시간 동안 고문에 의한 강제 자백을 당하고 수용소로 납치돼 구타로 왼쪽 눈이 실명했고, 무릎관절 결핵, 전신 부종 증상이 나타났다. 장위화는 여러 차례 이 때문에 고소했지만, 결과가 없었다. 2009년 8월 13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는데 향년 63세였다.

7)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해 눈이 멀게 된 치시민, 억울한 옥살이 고문당한 후 현재 무고한 징역형 받아

치시민(齊錫民)은 랴오닝 안산(鞍山)시 파룬궁 수련생으로 불법 노동교화처분을 당했고, 2007년에는 또 억울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고문 학대를 받아 한쪽 눈이 실명했다. 2017년 5월 25일, 치시민은 또 4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아 현재 감옥에 갇혀 있다.

8) 두 눈이 구타당해 시신경이 위축되다

랴오닝 잉커우(營口)시 파룬궁 수련생 천리옌(陳麗豔)은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마싼자(馬三家) 노동교화소, 랴오닝성 여자감옥에서 총 9년이 넘게 불법으로 감금을 당했다. 그 기간에 상상하기 어려운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헤아릴 수 없이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당했고, 혹독한 구타를 수없이 당해 귀에 이명 증상이 나타났으며, 두 눈은 시신경이 위축돼 거의 실명됐다. (뇌상으로 시신경이 손상당함). 그리고 여러 차례 독방에 갇히기, 강제 노역, 체벌 등 학대를 당했는데 심한 상처를 입어 어쩔 수 없이 수년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감옥 측에서는 여전히 석방해주지 않고 있다.

中共酷刑示意图:背铐、电击、棒打、踩踢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 뒷짐결박, 전기충격, 몽둥이 구타, 밟고 차기 

천리옌은 ‘중증근무력증’ 등에 걸렸는데 치료할 방법이 없고 최대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하지만 전신 근육이 위축되고 마비된 그녀가 집으로 와서 5일 만에 스스로 기적적으로 1층에서 7층까지 오를 수 있었고, 전신이 위축됐던 근육은 하룻밤 사이에 다 자라났으며 체중이 하룻밤 사이에 10여 kg 늘었다. 이러한 엄청난 변화는 천리옌 및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모두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신기함과 위력을 느끼게 했다.

9) 구타로 눈이 멀게 된 더욱 많은 사례

장신쯔(張新子)는 후베이성 시수이(浠水)현 파룬궁 수련생으로, 수년간 운전 경력이 있고 시력이 아주 좋았다. 2010년 8월에 납치돼 시수이 구치소에서 악인에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받아 눈이 거의 실명됐다. 게다가 전신이 마비되고 지각이 없는 증세를 남겼다. 그 후 1년 형의 불법 노동교화처분을 받았는데, 기한이 차지 않았음에도 또 7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구순 고령인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그리워하며 울다가 두 눈이 멀었다. 결국, 2017년 정월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장위춘(張玉春)은 쓰촨성 쯔중(資中) 난무사(楠木寺) 여자노동교화소에서 마약범에 의해 손으로 혹독한 구타를 당해 눈이 멀게 됐다.

차이창전(蔡長珍)은 후베이성 우한시 어터우완(額頭灣) 세뇌반에서 경찰에게 머리 부위, 관자놀이 등을 잔인하게 구타당해 두 눈이 붉게 부어오르고 충혈이 됐으며 또 염증이 생기고 실명했다.

쭤푸성(左福生, 남)은 푸젠성 푸칭(福淸) 감옥에서 ‘전향’하지 않은 이유로 구타당해 중상을 입었고, 왼쪽 눈은 구타로 실명했다. 중상을 입은 후에 또 6시간 동안 쇠고랑에 채워져 매달렸다.

천만핑(陳曼平)은 베이징 시청(西城)구 경찰에 의해 주먹으로 눈을 잔인하게 구타당한 이유로 실명됐다.

산둥성 관(冠)현의 판슈친(範秀芹)은 악독한 경찰에 의해 8시간 동안 고문을 당해, 구타로 두 눈이 멀게 됐다.

산시성 진청(晉城)시 왕위란(王玉蘭) 노인은 베이징으로 가 대법을 수호하다가 베이징 경찰에 의해 혹독한 구타를 당해 두 눈이 출혈하고 실명했으며,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다.

2. 안구가 구타로 튀어나오다

눈에 대한 혹독한 고문 중에 안구가 구타해 튀어나오는 것은 가장 처참하고 보기만 해도 몸서리치는 장면이다. 중국공산당의 잔인함은 이렇게 일부분을 통해 전체를 짐작할 수 있다.

1) 눈을 구타해 멀게 한 후 살인 멸구, 리수화는 학살당하고 남편은 박해로 불구가 됐으며 어머니는 박해로 사망

李淑花
리수화
(李淑花

리수화(李淑花)는 지린성 위수(榆樹)시 파룬궁 수련생으로 차분하고 현숙하며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께 효도한 이웃들이 공인하는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2003년 9월 24일에 현지 경찰에게 납치됐고 경찰들은 그녀를 핍박해 대법 진상 자료의 출처를 말하게 하려고 그녀에 대해 고문을 사용했다.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우고 큰 바늘로 손끝, 팔, 등, 앞가슴을 찔렀는데, 그녀는 아픔으로 큰 비명을 질렀다. 한 악독한 경찰은 그녀가 여전히 입을 열지 않는 것을 보고 미친 듯이 그녀의 눈을 강타하고, 눈동자를 후려갈겨 그녀의 안구가 튀어나왔다. 리수화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가족과 사회에 설명할 방법이 없자 ‘상부’에서는 연구, 결정을 거쳐 살인범을 교사해 그녀를 죽여 입을 막으려고 결정했다.

酷刑演示:塑料袋套头
고문 재연
: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우기 

살인범은 리수화에게 검은색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워 질식시켜 죽였다. 당시 리수화의 나이는 32세였고 사망 후 어린 두 아이를 남겼다. 그녀의 남편이자 수련생 양잔주(楊佔久)는 당시 감금 중이었는데, 그 후 불법 징역형 7년을 선고받아 쓰핑스링(四平石嶺) 감옥에서 박해로 불구가 됐다. 그녀의 어머니 추이잔윈(崔佔雲)은 그 후 세뇌반에 의해 ‘전향’ 박해를 당해 사망했다.

2) 노인은 안구가 구타로 튀어나오자 스스로 밀어 넣었으나 결국 혹독한 구타로 사망했고 박해자는 업보를 당하다

刘玉凤
 
류위펑(劉玉鳳

류위펑(劉玉鳳, 남)은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시 파룬궁 수련생이다. 1999년 12월에 베이징으로 들어가 파룬궁과 사부님을 위해 공정한 평가를 요구했는데, 톈안먼 광장에서 베이징 주재 원덩(文登)구 사무실 책임자인 리잉린(李英林)에 의해 몸수색을 당하고 강탈, 구타를 당했다. 리잉린은 주먹으로 노인의 안구를 구타해 4~5㎝나 튀어나오게 했다. 류위펑은 손으로 안구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대법의 초범적인 힘으로 류위펑의 눈은 매우 빨리 건강을 회복했음). 2000년 7월 18일, 류위펑은 후이룽산(回龍山)에서 단체 연공을 한 이유로 불법 구류를 당했다. 여섯 번째 날(7월 23일)에 곧 혹독한 구타로 사망했다. 향년 64세였다.

류위펑이 혹독한 구타를 당해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고향 차오뎬쯔(草廟子) 일대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했다. 후이룽산에서 적극적으로 박해 사건에 참여한 원덩시의 왕자오광(王照光)은 2006년 5월 5일에 변소 안에서 변소 뚜껑을 밀쳐 부수었는데, 뜻밖에 뚜껑에 짓눌려 압사를 당했다. 당시 원덩 공안국장 쉬하이펑(徐海峰)은 퇴직한 지 얼마 안 된 2010년 4월에 교통사고를 당해 폭사했다. 죽은 모습은 매우 처참했는데 머리가 차 유리에 거의 잘릴 뻔했다.

3) 총격으로 불구가 되고, 다시 채여서 안구가 튀어나오다.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후 무고한 14년 형을 선고받다

姜洪禄
장훙루
(姜洪祿

장훙루(姜洪祿, 姜洪錄, 남)는 헤이룽장성 미산(密山)시 파룬궁 수련생이다. 2002년 2월 12일(음력 정월 초하루)에 거리에서 진상을 알리다 경찰 멍칭치(孟慶啟)가 쏜 총에 맞아 왼쪽 무릎 아래 부위의 V 형태 뼈가 부러졌다. 악독한 경찰 멍칭치, 두융산(杜永山)은 그의 앞으로 뛰어가서 그의 머리를 세계 걷어찼다. 곧 그의 두 안구가 튀어나오고 머리, 얼굴이 심각하게 변형됐다. 머리는 구타로 6㎝ 길이로 상처가 났다(다섯 바늘을 기웠음).

장훙루는 걷어 채여 기절해 많은 피를 흘렸다. 경찰은 그를 병원으로 끌고 가서 의사에게 그의 두 눈을 제대로 맞춰 넣게 했다. 그리고 침대 깔개와 이불로 그의 모습을 가리고 구치소로 끌어갔는데 치료해 주지도 않고 가족에게 면회도 시키지 않았다. 두 악독한 경찰은 매번 불법 심문을 진행하고 고문으로 학대했다. 가죽 파이프로 후려치고 코에 겨자기름 등을 주입했다. 9개월 후, 장훙루의 몸은 또 떨렸으나 억지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다. 미산(密山) 법원에서는 그 후 장훙루에 대해 무고한 14년 형을 선고했다. (주: 대법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 하에 수련을 거쳐 장훙루의 몸은 건강을 회복했다.)

4) 열여덟 차례나 납치를 당하고 여러 차례 구사일생, 혹독한 구타로 눈이 흘러나와

녜춘링(聶春玲)은 허베이성 랑팡(廊坊)시 파룬궁 수련생으로, 열여덟 차례 불법으로 납치를 당했고 여러 차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2000년 정월, 녜춘링은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납치와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한 여경이 고무 몽둥이를 휘두르며 그녀의 머리를 필사적으로 구타했다. 당시 머리에는 네 개의 주먹만 한 혹이 부어올랐다. 갑자기 한 차례 몽둥이질로 왼쪽 눈이 구타당했는데 눈동자가 흘러나온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손으로 가리고 위로 밀며 “나는 대법제자입니다!”라고 외쳤다. 단번에 안구를 밀어 넣을 수 있었다. 온몸과 손이 전부 피투성이였다. 경찰은 깜짝 놀라 고무 몽둥이를 땅에 던지고 그녀를 감방에 가뒀다. 그녀는 나흘 동안 단식을 해 결국 무죄 석방됐다. 그 후 법공부와 연공을 거쳐 눈이 정상을 회복해 재차 파룬따파의 신기함과 초범성을 드러냈다.

5) 안구가 떨어질 것 같은 극심한 통증 느껴, 장춘위 왼쪽 눈이 심한 타격으로 실명

장춘위(張春鬱, 張春宇)는 헤이룽장성 하얼빈(哈爾濱)시 아청(阿城)구 파룬궁 수련생으로, 여러 차례 납치당했고, 두 차례 불법 노동교화처분을 받았다. 특히 완자(萬家) 노동교화소의 여러 가지 고문 박해는 그녀에게 심신에 극심한 손상을 입혔는데, 혹독한 구타, 8박 7일 동안의 쇠의자 고문, 네모난 벽돌에 쭈그려 앉기 등이었다. 한번은 악독한 남자 경찰 자오위칭(趙餘慶)이 팔을 빙빙 휘두르며 그녀 뺨을 구타했는데, 바로 그녀의 왼쪽 눈 위를 구타했다. 장춘위는 갑자기 눈앞이 번쩍거리며 안구가 떨어져 나올 듯 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눈은 또 시퍼렇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부어올랐는데 그 후 완전히 실명됐다.

'左眼被打失明的法轮功学员张春郁'
왼쪽 눈이 구타로 실명한 파룬궁 수련생 장춘위(張春鬱

6) 혹독한 구타로 생명이 위독, 왼쪽 눈이 쇠몽둥이에 맞아 치료할 수 없게 된 푸훙젠

푸훙젠(付洪建, 付洪健, 남)은 당시 46세였고 지린성 퉁화시 파룬궁 수련생이다. 2008년 4월 23일에 퇀제(團結) 파출소에 의해 외지에서 납치돼 구타로 중상을 입어 걸을 수 없게 되어 창류(長流)구치소로 들려 들어갔다. 창류 구치소에서 한나절 갇혔다가 곧 퇀제 파출소에 의해 퉁화시 중심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의 왼쪽 눈은 쇠몽둥이에 맞아 치료할 수 없게 됐고, 몸의 상처는 쇠꼬챙이에 맞고, 전기봉에 의해 전기충격을 받고, 주먹에 폭력적인 구타로 조성된 것으로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9일 동안 입원한 후 병원에서는 치료를 거부했다. 경찰은 가족에게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가족은 푸훙젠의 왼쪽 눈에 붕대를 감고 얼굴색이 몹시 보기 좋지 않으며 들것 위에 나부라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가족은 병원마저 치료할 방법이 없게 된 것을 보고 집으로 데려가면 생명이 위험할까 봐 두려워 감히 데려가지 못했다. 푸훙젠은 그 후 행방불명이 됐다.

7) 세뇌반 소굴에서 구타로 두 눈이 멀고 한쪽 안구가 구타로 떨어지다

펑인펑(彭銀鳳, 여)은 광둥성 광저우시 신강(新港)개발구 파룬궁 수련생이다. 2014년 3월 8일, 당시 이미 60여 세인 펑 씨는 세인에게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황푸(黃浦)구 세뇌반에서 박해를 당했다. 불법 구금 기간, 악인에게 구타당해 걸을 수 없게 되고 두 눈이 구타로 멀었다. 그중 한쪽 안구는 구타로 떨어져 나왔다.

8) 쇠몽둥이로 구타당해 안구가 튀어나오다

이 외에 밍후이왕 보도로는 허베이성 탕산(唐山)시 바리좡(八裏莊) 세뇌반에서는 악독한 경찰이 쇠몽둥이로 두 명의 남성 파룬궁 수련생을 구타해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죽었다 살아났다. 그리고 눈동자가 구타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기절했는데 냉수를 끼얹어 깨어나게 하고는 다시 괴롭혔다. 상세한 상황은 조사해야 한다.

3. 고문으로 눈이 멀다

중국공산당의 고문은 눈에 대한 손상에서 반영된다. 구타로 눈이 멀게 하고, 심지에 눈동자가 구타로 튀어나온 것을 외에 또 많은 기타 형식의 전혀 인성이 없는 손상이 있는데, 총괄적으로 말해서 사람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폭력을 가한다. 예를 들면 전기충격으로 눈이 멀게 하기, 찔러서 눈이 멀게 하기, 후려쳐 눈이 멀게 하기, 강한 빛을 쪼여 눈이 멀게 하기, 손바닥으로 때려 눈이 멀게 하기(사납게 뺨을 때려 눈이 멀게 하기), 연기를 피워 눈을 멀게 하기, 이물질로 눈을 멀게 하기[겨자기름, 고춧물, 펑유징(風油精: 물파스와 비슷한 약품), 뜨거운 물, 과일즙 등]이다. 그리고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으로 눈이 멀게 하고 심지어 사망케 하는 등이다. 본문에서 예를 든 것은 일부 사례일 뿐이다. 더욱 많은 처참한 박해는 아직도 진일보 폭로해야 할 것이다.

1) 전기충격으로 눈이 멀다

‘나는 처참한 비명을 질렀고, 머리는 전기충격을 당해 갈라지는 것 같았다’

다이잉(戴英)은 사오관(韶關) 감옥(현 광둥성 여자감옥임)에서 파룬궁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로 고문 학대를 당했다. 어느 날 저녁 약 10시에 린(林) 간사와 중범죄자 세 명은 그녀를 지하실로 납치해 땅 위에 짓눌러 두었다. 그리고 린 간사가 전기봉을 들고 그녀에게 사납게 전기충격을 가했는데 30~40분이 걸렸다.

中共酷刑示意图:多根电棍电击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 여러 개의 전기봉으로 전기충격 가하기 

천네이(陳內)는 산시(山西)성 다퉁(大同)시 파룬궁 수련생이다. 2001년, 다퉁시 뤄전잉(落陣營) 노동교화소에서 ‘3서(수련 포기각서 따위)’ 쓰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악독한 경찰에게 혹독한 구타, 전기충격을 당해 눈이 거의 실명됐다. 10년이 지났으나 시력은 여전히 나빠 흐릿한 그림자만 볼 수 있을 뿐이다.

2) 찔러서 눈이 멀게 하다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눈이 찔려 멀게 된 중학교 교사가 고문당해 온몸에 상처투성이가 되고 정신이상이 되다.

被迫害后的吴世海
박해당한 후의 우스하이
(吳世海

우스하이(吳世海, 吳四海, 남)는 대학을 졸업했고, 쓰촨성 량산(涼山)주 사오줴(昭覺)현 민족중학교 교사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더양(德陽) 감옥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했는데, 혹독한 구타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고 말을 할 수 없었으며 걷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들려서 땅 위에 박히는 고문, 굶주리기 고문을 가했고, 형구를 쓰고 독방에 가둬 추위에 떨게 했다. 세워 두기 고문을 가해 수면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눈을 감기만 하면 대나무 판으로 머리를 구타했다. 어떤 때는 구타로 온 머리가 피투성이가 됐다. 그리고 또 수시로 손으로 눈을 찔렀는데 결국 눈은 찔려서 거의 실명했다. 그리고 경찰은 또 열 발톱을 고무 손잡이 집게로 억지로 뽑아버렸다. 두 귀는 변형됐고(구타로 충혈되고 피가 막혀 두 귀가 경화되어 어두운 붉은 색 종양이 나타났음), 앞니는 구타로 두 대나 떨어졌고, 머리 위는 얼룩덜룩한 상처가 생겨났고, 입과 아래턱 여러 곳에는 찢어진 상처가 나 병원에서 20여 바늘이나 꿰맸다. 그는 결국 불구가 돼 10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우스하이는 박해당해 정신이상이 되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2009년에 집으로 돌아와 몇 열흘 동안 정신없이 잠을 자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선량한 부친은 이것을 보고 마구 눈물을 흘렸다.

3) 후려쳐 눈이 멀게 하다

경찰이 후려쳐 눈이 멀고, 남편도 고문당해 억울하게 사망하다

산둥성 핑두(平度)시 창러(長樂)진 중수화(鐘淑花)와 남편 중전푸(鐘振福)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 것 때문에 여러 차례 박해를 당했다. 남편은 고문 학대를 당해 사망했다. 2004년 3월, 중수화는 세뇌반으로 납치돼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경찰 두(杜) 모씨는 내 머리칼을 잡고 뒤로 잡아당기고, 수건 하나를 꼬아 밧줄 모양으로 만들어 사납게 내 두 눈을 후려쳤다. 나는 두 눈이 구타로 마치 먼 느낌이 들고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한바탕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했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당시 나는 눈을 맞아 기절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쪽 눈이 이미 실명됐다. (그 후 법공부와 연공을 거쳐 이미 시각을 회복했음).”

허베이성 바오딩(保定)시 파룬궁 수련생 추이환잉(崔煥英)은 당시 30여 세었다. 2001년, 음력 11월 20일에 바오딩시 왕두(望都)현 세뇌반으로 납치돼 음식물 주입, 구타, ‘사인상(死人床, 고문 도구)’에 묶이기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또 악인 왕후이민(王會敏)은 톱날로 눈을 후려쳤다. 추이환잉은 왼쪽 눈을 다쳐서 멀었고, 두 어깨는 불구가 되어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4) 강한 빛에 쪼여 눈이 멀다

스포트라이트로 눈을 강하게 쪼여 물건을 봄에 흐릿하고 간헐적인 실명 증상이 잦게 나타나다.

郭小军
궈샤오쥔
(郭小軍

상하이 교통대학 전자정보대학의 청년 교사 궈샤오쥔(郭小軍, 40여 세)은 2010년 1월 7일에 상하이 바오산(寶山) 국가보안 경찰에게 납치돼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악인은 스포트라이트로 눈을 비추어 물건을 봄에 흐릿하고 간헐적인 실명 증상이 잦게 나타났는데 ‘망막 동맥 경련’ 진단이 내려졌다. 이것은 일종의 눈이 강한 자극을 받아 조성된 갑작스러운 증상으로, 심근경색, 심각한 협심증과 같은 위험한 등급에 속하며, 만약 때맞춰 치료하지 않으면 영구적인 실명이 될 수 있다. 같은 해 7월 6일, 궈샤오쥔은 4년의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고 상하이 티란차오(提籃橋) 감옥에 갇혔다. 가족은 줄곧 감옥 및 그 관련 부서에 치료와 석방을 요구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이유는 궈샤오쥔이 ‘전향’을 거부하고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롄허(于連和, 남)는 헤이룽장성 팡정(方正)현 파룬궁 수련생이다. 쑤이화(綏化) 노동교화소에서 감옥 경찰이 ‘자외선’ 등으로 눈을 비췄는데 비춘 후 시력이 흐릿한 증상이 나타나 물체를 똑똑히 볼 수 없었다.

5) 손바닥으로 때려 눈이 멀게 하다(손바닥으로 뺨을 사납게 때려 눈이 멀게 되다)

있는 돈을 다 털어 이재민을 구원한 우수한 청년, 참혹한 박해당해 두 눈이 실명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시 왕즈강(王志剛)은 대학을 졸업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고 도덕이 승화됐다. 1998년에 남방 대홍수 때 어머니와 함께 1만5천 위안을 기부했는데, 당시 타이위안시 개인 기부에서 최고액으로 ‘타이위안 석간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다. 그런데 박해 중에 오히려 5차례나 납치 감금을 당했다. 노동교화소에서 압정을 손바닥에 박기, 혹독한 구타, 전기충격, 강제 중노동 학대를 당해 심각한 폐결핵 증상이 나타났다. 2008년에 불법 징역형 3년을 선고받아, 진중(晉中) 감옥에서 참혹한 고문 학대를 당했다. 특히 장기간 손바닥으로 뺨을 사납게 때려 눈 부위에는 심한 상처가 누적됐다.

2010년 1월 1일, 눈은 구타로 중상을 입었는데 두 눈에 심각한 ‘유리체 적혈(玻璃體積血)’ 진단이 내려졌다. 왼쪽 눈은 시력이 남아 있지 않았고, 오른쪽 눈은 물건을 봄에 매우 흐릿해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억울한 옥살이가 만기가 돼 집으로 돌아온 후, 그의 눈은 여러 차례 극렬한 아픔을 거쳤다. 특히 2015년 8월 25일, 밤부터 이튿날 오후 6시가 넘도록 틈이 없는 극통으로 그는 땅 위에서 나뒹굴었고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온몸에 땀이 났다. 눈물과 땀이 뒤엉켰는데 그의 일생에서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고통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성적이 우수했다. 오늘날 박해를 당해 불구가 되어 인생과 사업은 전부 망가져 연로하신 어머니와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6) (담배) 연기에 쏘여 눈이 멀다

충칭시 융촨(永川) 감옥에서 12중대 감옥 경찰은 파룬궁 수련생 라이윈창(賴雲昌, 라이융(윈)창(賴永[雲]昌)에 대해 테이프로 입, 눈, 귀를 봉하고 담배를 그의 콧구멍에 꽂아 그를 연기로 죽었다 살아나게 했으며 눈이 실명되게 했다.

中共黑狱酷刑演示:烟熏
중국공산당 불법 감옥 고문 재연
: 담배 쏘이기 

7)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으로 눈이 멀다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으로 실명되고, 질질 끌어 치료 시기를 놓쳐 시신경이 위축되다.

2005년 3월 27일 정오, 파룬궁 수련생 왕즈거(王志革)는 팡헤이룽(方黑龍) 장정(江正)현 제1 구치소로 납치돼,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해 질식했다. 게다가 안압이 높고 눈에 통증을 느꼈다. 며칠 후인 4월 13일 한밤중에 갑자기 왼쪽 눈의 통증이 심해진 감을 느꼈는데 깨어나 눈을 떠보니 왼쪽 눈의 시력이 사라진 감을 느꼈다. 대략 10초도 되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약간의 빛조차 느끼지 못했다.

酷刑示意图:摧残性灌食
고문 설명도
: 가학적인 음식물 주입 

또 대략 3차례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한 후, 왼쪽 눈은 철저히 실명했다. 왼쪽 눈이 실명함에 따라 그의 오른쪽 손가락, 특히 중지,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은 모두 아주 마비되어 통증이 생겨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은 악독한 경찰이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진행하는 중에 실시한 폭행이 그의 목 부위 혹은 머리 부위의 모세 혈관을 파열시켰고, 혈액이 천천히 두개골 강에 스며들어 왼쪽 눈의 시신경과 오른쪽 손가락을 주관하는 신경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왕즈거는 3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아 후란(呼蘭)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출소한 후 그는 병원으로 검사하러 갔는데 왼쪽 시신경이 이미 위축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만약 때맞춰 치료했다면 시각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3년이 넘게 지나면서 치료의 희망도 사라졌다

8) 클립을 콧구멍에 걸어 그녀는 찔려 눈물이 줄줄 흘렀고, 다년간 눈으로 물건을 똑똑히 보지 못하

마수펀(馬淑芬)은 헤이룽장성 무단장(牡丹江)시 양밍(陽明)구 파룬궁 수련생이며, 여러 차례 납치당하고 4차례 불법 노동교화처분을 받았다. 2018년 11월 28일에 납치된 후 공안국 고문실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악독한 경찰 펑량(彭亮)은 클립 하나를 가져왔고, 악독한 경찰 펑푸밍(彭福明)은 한쪽 끝을 집게로 잡아당겨 곧게 펴고 다른 한쪽 끝에는 끈을 맸다. 그리고 마씨를 쇠의자 위에 눌러 놓고 펑량으로 하여금 머리를 잡게 하고 클립의 뾰족한 끝으로 콧구멍을 걸었다. 펑푸밍은 의자 위에 서서 위로 잡아당겼는데, 클립이 그녀를 찔러 눈물이 줄줄 흘렀다. 코안이 찔려서 다친 상처 표면은 그 후 시간이 오래되어서야 나아졌다. 눈으로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물건을 똑똑히 보지 못했다.

4. 이물질로 눈이 멀다

1) 온 얼굴에 겨자기름을 발라 눈이 실명되다

2009년 10월 전, 랴오닝성 푸순(撫順)시 파룬궁 수련생 황페이둥(黃培東)은 납치당해, 왕화(望花)구 공안 분국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악독한 경찰이 겨자기름을 얼굴에 바르는 박해를 당했는데, 박해로 거의 실명됐다. 황페이둥은 “나를 호랑이 의자에 묶어 놓은 다음, 내 얼굴 위(눈, 코, 입안)에 겨자기름을 주입했습니다. 그리고 지저분한 수건으로 막고 힘껏 비비고 눌렀는데, 수단이 극히 악독해 사람을 죽지도 못하게 하고 또 극한을 초과해 감당하게 했습니다. 저는 극도로 고통스러워 외쳤으나 소리치지 못하고 몸부림쳤으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심각한 상처를 조성했습니다.”라고 말했다.

酷刑演示:老虎凳
고문 재연
: 호랑이 의자 

“제 눈은 희미해져 점점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끊임없이 저를 꼬박 1박 2일 동안 괴롭혔습니다! 정말 사는 게 죽기만도 못했습니다. 제가 만약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누가 말하는 것을 들어도 저는 모두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황페이둥은 이미 박해로 두 눈이 실명됐다. 그 후 4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아내는 동시에 납치를 당해 무고한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박해로 유방암 말기 증상이 나타났다. 수술을 받은 후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전 가족은 아주 많은 빚을 져서 거의 살길이 없다.

2) 대량의 고춧물을 뿌려 눈은 가슴을 찌르는 듯 아프고, 왼쪽 눈 시력이 심각하게 저하되다

许文龙毕业于中央美术学院的学位证书
쉬원룽이 중앙미술대학을 졸업한 학위 증명서
 

쉬원룽(許文龍, 1986년 10월 12일 출생)은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을 졸업했으며, 품행과 학문이 다 훌륭하고 재능이 넘쳐났는데, 2011년에 6년 6개월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아 타이라이(泰來)감옥 11감 구에서 독방에 갇혀 강제로 ‘호랑이 의자’에 앉았다. 감옥 경찰은 또 그에게 고춧물을 뿜어 온 머리와 눈에 전부 고춧물이었다. 하루에 약 20차례를 뿜었는데 사흘 동안 뿜어 그의 왼쪽 눈 시력이 심하게 나빠졌다. 그는 눈이 매워 가슴을 찌르는 듯이 아파 끊임없이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얼굴과 코가 부어오르고 왼쪽 눈 아래 부위마저 자색을 띠었다. 그리고 ‘호랑이 의자’에 앉았던 이유로 볼기 부위에 물집이 생겨났다. 그 후 감옥 경찰은 또 9일 동안 그에게 지환(地環: 땅에 쇠고랑을 채우는 고문)을 채웠다.

3) 펑유징을 눈에 발라 눈물이 마치 폭포처럼 흘러내렸고 이로 인해 물건이 똑똑히 보이지 않다

전 장시(江西)성 대외무역국 재무과 회계사 천샤오쥐안(陳小娟)은 ‘진선인(眞善忍)’ 믿음을 견지한 이유로, 11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 박해와 정신병원 박해를 당했다. 2016년 초, ‘진선인(眞善忍)’ 믿음을 포기함을 거부한 이유로, 장시성 여자감옥에서 ‘속박 끈’ 박해를 당했다. 그녀를 감시한 죄수는 그녀의 뺨을 때리고 끊임없이 펑유징을 그녀의 눈에 발랐는데, 그녀의 왼쪽 눈은 강렬한 자극을 받아 눈물이 마치 폭포처럼 줄줄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이로부터 물건이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4) 뜨거운 찻물을 눈에 부어 넣어 거의 실명되다

2005년 11월, 허베이성의 전 콴청(寬城)현 인민은행 고급 기술자 왕중(王忠)은 가오양(高陽) 노동교화소에서 한단(邯鄲)시 노동교화소로 옮겨져 가중된 박해를 당했다. 어느 한 번은 경찰 가오진리(高金利)가 세뇌 ‘전향’을 진행했는데, 왕중은 그가 제멋대로 어떻게 말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곤드레만드레 취하도록 술을 마신 가오진리는 구두를 벗어 왕중의 머리를 때리고, 발로 그를 걷어차 땅에 넘어뜨렸다. 그리고 그가 마시던 뜨거운 찻물을 왕중의 눈에 부어 넣어 거의 실명시켰다.

5) 겨자기름을 바르고 또 비닐 주머니를 씌워 안구가 늘 빠지게 되다

헤이룽장성 하이린(海林)시 파룬궁 수련생 쑨창순(孫常順)은 2002년 11월 19일에 납치당하고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악인은 겨자기름을 눈, 입, 코, 귀에 주입했다. 그런 다음 머리 위에 다시 비닐 주머니를 씌워 공기가 통하지 않게 해 쑨창순의 안구가 늘 빠지는 심각한 결과를 조성했다. 2003년, 쑨창순은 6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아, 하이린시 구치소에서 무단장 감옥으로 납치돼 계속 박해를 당했다.

中共酷刑示意图:人为窒息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 인위적인 질식 

6) 19년 동안 원옥의 갖은 고문, 젖은 수건으로 안구 후려치기, 손가락으로 안구를 튕기기, 눈에 과일즙 넣어 타는 듯한 통증을 일으키다

邵承洛
사오청뤄
(邵承洛

60여 세인 산둥성 칭다오(靑島) 중의사 사오청뤄(邵承洛)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10년간 옥살이 당해 온갖 고문을 당했는데 박해를 당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2013년, 사오청뤄는 감옥을 벗어난 후, 2017년 5월 2일에 아내 가오원수(高文淑)와 함께 또 납치돼 각각 9년과 4년의 불법적인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왕춘(王村) 노동교화소에서 바오자(包夾) 죄수는 사오청뤄의 몸 위에 타고 앉아 눈꺼풀을 비집고 힘껏 눈 안에 바람을 불어넣고, 또 머리칼 뽑기, 안구 찌르기, 세워 두기 고문, 작은 의자에 앉히기, 가차 없이 마구 때리기 등 고문을 진행했다. 사오청뤄는 눈이 아프고 붉게 부어올라 보이지도 않았고, 너무 앉아 볼기 부위마저 피범벅이 됐다. 그리고 산둥 남자감옥에서 젖은 수건으로 안구 후려치기 고문을 당했는데, 또 젖은 수건을 그의 눈 위에 묶지 않으면 손가락으로 안구를 튕겼다. 인간쓰레기 졸개 주칭장(朱慶江)은 귤, 대추 등으로 과즙을 짜내 그의 눈 안에 넣었다. 눈은 과즙의 자극을 받아 타는 듯이 아파 견디기 어려웠다.

사오청뤄가 박해당한 상세한 상황은 밍후이왕 문장 ‘10년 억울한 옥살이로 온갖 고문당한, 좋은 의사와 아내가 거듭 억울한 징역형 선고받아’ ‘10년의 억울한 옥살이 당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칭다오 노중의사가 장쩌민을 고소하다’ 및 ‘칭다오 좋은 의사가 억울한 옥살이 당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5. 약물 박해로 눈이 멀다

고문, 모욕은 볼 수 있는 폭력이다. 그러나 독극물 투입, 독극물 주사는 오히려 은폐되어 볼 수 없는 흉악하고 잔인한 폭력이다. 파룬궁 수련생은 심신이 건강하고 신령을 공경하며 부처님을 믿고 도덕이 고상하다. 폭력과 속임수로 이 선량한 수련생의 숭고한 믿음을 바꿀 수 없을 때, 중국공산당은 바로 직접 약물로 악독하게 건강한 사람의 심신에 손상을 입혔고, 심지어 독살해 사망케 했는데 수단이 음험하고 악랄하다. 파룬궁 수련생이 약물 박해, 정신병원의 손상을 입는 처참함은 보편적이다. 단지 중국공산당 이런 인성이 사라진 사악한 조직만이 해낼 수 있을 뿐이.

1) 정신병원에서 독약을 사용, 입 귀 코에서 피가 흐르고 두 눈이 실명되다

창융푸(常永福, 남)는 헤이룽장성 무란(木蘭)현 파룬궁 수련생이다. 2004년 7월, 악명이 극히 높은 창린쯔(長林子) 노동교화소에서 악독한 경찰과 죄수에게 여러 차례 혹독한 구타를 당해 정신이 흐리멍덩해졌다. 노동교화소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를 무란(木蘭)현 ‘610’으로 돌려보냈다. 무란현 ‘610’에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를 차례로 비밀리에 무란현 둥싱(東興)진 정신병원과 하얼빈시 장베이(江北) 푸닝(普寧) 병원으로 보내 약물 박해를 진행했다.


창융푸가 생전에 찍은 사진 


창융푸가 세상을 뜰 때 코가 크게 붓고
, 입안에는 핏덩어리가 있었으며 두 귀, 각막에서 출혈하다

2006년 10월, 정신병원에서는 창융푸의 누나에게 창 씨를 비밀리에 데려가라는 통지를 내렸다. 창융푸는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고 얼굴, 코가 커다랗게 부어 출혈했으며 시력이 쇠약해졌다. 이후에는 밤낮 잠을 이루지 못했고 마구 외치고 소리를 질렀으며 두 눈이 실명했다. 정신이 깨어날 때는 정신병원에서 사용한 것이 무슨 약인지는 모르지만, 전신이 괴롭고 코, 머리와 눈마저 심하게 아프다고 했다. 2007년 1월 18일 아침 5시가 넘어서 창융푸는 신음과 호흡을 멈추었다. 사망에 이르렀는데 코안에 여전히 핏덩어리가 가득 누적되고 입안에도 핏덩어리가 있었으며, 두 귀와 각막에서 피가 흘렀다. 당시 나이는 겨우 44세였다.

2) 극심한 고문, 죽음으로 모는 독극물 주사

헤이룽장성의 한 파룬궁 수련생은 예전에 불법 노동교화 처분을 받은 적이 있는데, 구치소와 창린쯔(長林子) 노동교화소에서 극심한 구타와 고문 학대를 당했다. 구타로 각혈하고 늑골, 앞가슴뼈가 21곳이나 부러졌다. 한 대의 늑골은 세 토막으로 부러졌고 두개골이 10여 곳이나 골절돼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힘껏 눈알을 튕겨 눈이 손상을 입고 시력이 저하됐으며, 늘 눈물을 흘리고 안구가 빠지는 감각이 있었다. 그리고 또 손가락뼈가 골절되고 살이 비틀려 문드러졌으며, 마찰로 상처를 입은 온몸은 고름, 피가 흘렀다. 머리, 몸은 대량으로 바늘에 찔렸다……. 어떤 때는 고통으로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냈는데 이로 인해 또 혹독한 구타를 초래했다.

2003년 3월 10일, 그는 완자(萬家) 노동교화소 병원 전염과로 보내져 독극물 주사를 맞았다. 첫 번째 주사를 다 맞은 뒤 전신이 괴로웠고, 두 번째 주사를 다 맞은 후 물건이 똑똑히 보이지 않았는데 반년 후에 비로소 물건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배꼽 이하가 마비되고 발이 끊임없이 아팠다. 세 번째, 네 번째 주사를 다 맞을 때는 그는 스스로 주사기를 뽑아버리고 약을 던졌다. 1대대의 창(強) 감옥 경찰은 ‘그가 원만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가 죽었습니다.’라고 유언비어를 날조했다. 아마도 세 번째, 네 번째 주사를 뽑아버리지 않았다면 그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3) 혹독한 구타 고문에다 약물 학대를 당한 류윈차오가 심신의 고통스럽고 억울하게 사망하다

刘运朝
류윈차오
(劉運朝

후베이성 우한(武漢)시 파룬궁 수련생 류윈차오(劉運朝)는 판자타이(範家台) 감옥에서 잔혹한 박해를 당했는데, 죽도록 혹독하게 구타당하고 고문 학대를 당했다. 예전에 ‘상부’에서 파견해 온 8명의 경찰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2010년 9월 7일, 가족에게 마중 나와 돌아갈 때 이미 의식이 흐려지고,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으며 하지가 마비됐다. 등은 전기충격으로 상처를 입었고 볼기 부위 뼈마저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눈이 뒤집히고, 각혈하며, 검은 피를 배설해 생명이 매우 위독했다. 2012년 7월 7일 저녁 7시, 마비되고 혼미해진 지 2년이 되는 류윈차오는 억울함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사망하기 전에 두 눈은 거의 실명되고 말을 할 수 없었으며 의식이 똑똑하지 않고 다리, 손, 등은 전부 검은 자색을 띠고 포진이 가득 생겨났다. 판자타이에서 돌아온 파룬궁 수련생이 증언한 데 의하면, 감옥에서의 폭력적인 고문과 약물 박해로 조성된 것이라고 했다.

4) ‘전향’을 거부해 심신에 손상을 입은 여성 엘리트가 실명 마비, 출소해 보름도 되지 않아 억울하게 사망

주웨이잉(朱維英, 60여 세)은 전 안후이(安徽) 허페이(合肥)시 메이산(梅山)음식점 부사장이자 여성 엘리트다.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거듭 박해를 당했다. 2011년에 안후이 쑤저우(宿州) 제3 여자감옥에서 전기봉으로 전기충격 가하기, 독극물 주입하기, 약물 박해를 당했다. 2015년 10월, 박해로 두 눈이 실명되고 목등뼈가 밟혀 마비돼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안후이 여자감옥에서는 치료해 주지도 않고 또 석방해주지도 않았다. 2017년 6월 말, 주웨이잉은 억울한 옥살이가 만기가 돼 출소했는데 사경을 헤맸고 눈빛이 멍청했으며 늘 울고 외쳤다. 어떤 때는 정신이 희미했으나 오히려 여전히 감시를 당했다. 7월 중순, 출소해 보름도 되지 않아 주웨이잉은 억울하게 사망했다.

5) 여장부가 정신병원 학대를 당해 두 눈이 실명하고 표정이 멍하다

뤼옌페이(呂燕飛, 50여 세)는 전 쓰촨성 쑤이닝(遂寧) 촨산(船山)구 여성연합회 주임이자 향 인민대표대회의 대표로, 예전에 전국 10대 여장부로 평가받은 적이 있다.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노동교화, 감옥 박해를 당해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했다. 2006년 3월 2일, 난무쓰(楠木寺) 노동교화소에서 민캉(民康) 정신병원과 베이구(北固) 정신병원으로 납치돼 음모적인 박해를 당했다. 베이구 병원의 리쉬둥(李旭東)은 뤼옌페이에게 독약을 주사해 그는 혀가 사흘 동안 뻣뻣했다. 민캉 병원의 녜훙(聶洪)은 그를 끈으로 묶어 링거를 주사하고 음식물을 주입했다. 게다가 대량의 독약을 주사해 그의 두 눈은 실명되고, 온밤 잠을 자지 못하고, 침이 늘 흐르고, 전신에 기운이 없고, 기억력이 감퇴하고, 표정이 멍하고, 머리칼이 빠지고, 목이 경화되고, 두 다리가 부어올랐다. 그리고 심신에 극심한 손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해 각박한 조건으로 보석 받아 집으로 돌아온 후,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다.

6) 우수교사가 믿음을 견지해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가 약물 학대를 당해 실명하고 마비되다

张玉兰
장위란
(張玉蘭

장위란(張玉蘭)은 톈진(天津)시 난카이(南開)구 63중학교 우수교사로 ‘진선인(眞·善·忍)’ 믿음을 견지해 좋은 사람이 되려 한 이유로, 8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친남동생은 누나가 박해를 당한 것을 감당하지 못해 목을 매 자살했다. 톈진 여자감옥에서 장위란은 고문 시달림, 비인간적인 학대, 약물 손상, 강제로 약을 사용하고 주사 맞기, 마시는 물컵이나 밥그릇, 만터우 등에 독약 투입하기 등 학대를 당해 몸은 하루하루 나빠져 마음이 매우 괴로웠다. 다리는 곧은 몽둥이처럼 말을 듣지 않았고 눈은 점점 보이지 않았으며, 잠을 이룰 수 없고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는데, 더 살아가기 매우 어려운 감을 느꼈다. 몸은 점점 지탱하지 못했는데, 그 후에 이르러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고 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박해로 두 눈이 실명하고 두 다리가 불구로 되어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가족에게 알려주어 가족이 감옥 측을 찾은 후에야 이런 유형의 학대를 중단했다. 검사를 거쳐 시신경 위축 말기 증상이라는 진단이 내려져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7) 13년 동안의 억울한 옥살이 박해를 당한, 젊고 영준한 청년이 오늘날 불구가 되고 두 눈이 실명됐으며 허리가 굽어 비틀거리다

张宏伟
장훙웨이
(張宏偉

장훙웨이(張宏偉, 張洪偉)는 지린성 퉁화(通化)시 파룬궁 수련생이다, 13년 동안의 억울한 옥살이 박해를 경험해 늘리기 고문(抻刑), 죽은 사람 침대(死人床) 위에 올리기 고문, 담배 쏘이기 고문, 뜨거운 물로 데우기, 손으로 눈알을 튕기기, 눈썹, 머리칼 잡아당기기, 바늘로 찌르기, 심한 구타 등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강제로 4~5병의 링거를 맞고 캡슐을 먹었는데, 이로 인해 눈이 점점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맨 마지막에 철저히 실명됐다. 두 눈은 커다랗게 떴으나 오히려 꼼짝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실명됐기 때문이다. 결국, 청력과 기타 소통에 따랐다. 그리고 곧게 서서 걸을 수 없었고 허리가 매우 심각하게 굽어 벽을 짚으며 작은 걸음으로 걸어야 했다.

8) 후난 창사 신카이푸 노동교화소에서 독약 투입

독극물을 주입 받아 두 다리가 마비되고 거의 실명한 량젠친이 억울하게 사망하다.

량젠친(梁劍琴, 남)은 후난성 레이양(耒陽)시 샤오수이(小水) 중학교 교사다, 파룬궁을 수련한 이유로 다섯 차례 납치, 감금을 당해 심신에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특히 창사(長沙) 신카이푸(新開鋪) 노동교화소에서 독극물을 주입 당해 시력이 급격히 내려가 거의 실명됐고, 두 다리가 마비되고 간, 신장 등 내장이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다. 독약은 몇 년 동안 잠복해 있다가 2009년 음력 10월에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됐고, 12월 20일에 각혈하기 시작해 12월 27일에 혈변을 보았다. 섣달 그믐날에 인민병원으로 보내 검사를 받았는데 간암에 걸렸음을 발견했다. 그날 저녁 헝양(衡陽) 난화(南華) 부속 1 병원에서 구급차로 태우고 가 응급처치를 받았다. 2010년 2월 16일(정월 초사흗날)에 량젠친은 갑자기 병으로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46세였다.

酷刑演示:打毒针(绘画)
고문 재연
: 독극물 주사 

약물 중독으로 거의 실명해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는데, 수련을 견지해 몸이 80% 건강을 회복하다.

우인쿠이(吳銀魁, 60여 세)는 후난성 핑장(平江)현 위핑(餘坪)향에서 거주했는데, 파룬궁 믿음을 견지한 이유로 10여 차례 납치 감금을 당해 박해를 받아 불구가 됐다. 게다가 금전 갈취, 집을 헐고 양식을 강탈하기 학대를 당했다. 그의 남동생 우진쿠이(吳金魁)는 파룬궁을 수련한 이유로 독극물 주사를 당해 사망했다. 남동생 우인쿠이는 형을 대신해 불공평함에 주장하다가 구타를 당해 중상을 입은 후 사망했다.

2001년 6월, 창사(長沙) 신카이푸 노동교화소에서 우인쿠이 등 몇십 명 파룬궁 수련생은 속임수를 당해 ‘추가 요리(加菜)’(감옥 경찰이 말하기를 수련생이 돈을 기부해 특별히 그들을 위해 추가한 요리라고 했음)를 먹은 후, 모두 시력이 쇠약해지고 손발이 마비돼 결국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2002년 3월, 우인쿠이는 노동교화소에서 나와 거의 실명에 이르렀고, 전신이 마비되고 지각을 잃어 불구가 됐다. 이와 같은 신체로 집에 돌아온 후 또 두 차례 납치를 당했다. 어떠한 약물치료를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우인쿠이는 파룬궁 연마를 견지해 몸은 80% 건강을 회복했다. 스스로 생활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 가벼운 농사일도 견지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신기한 위력이다.

9) 약물로 눈이 멀게 된 더욱 많은 관련 사례

후구이팡(胡桂芳)은 쓰촨성 젠양(簡陽) 양마허(養馬河) 여자감옥에서 감옥 경찰이 사용한 독극물에 의해 두 눈이 실명해 억울하게 사망했다.

후난 핑장현 쩌우원위(鄒穩玉)는 주저우(株洲) 바이마룽(白馬壟) 노동교화소에서 강제로 독극물을 주사 당해 두 눈이 실명하고, 청력이 감퇴했으며, 두 하지가 마비됐다. 2015년 11월, 거듭 납치됐는데, 그가 이미 반 장애인으로 된 상황에 여전히 무고한 3년형을 선고받았다.

후난성 창사현 랑리(榔梨)진의 역대 인민대표대회 대표 옌훙(言虹)은 후난성 여자감옥에서 고문 학대를 심하게 당했다. 수없이 뙤약볕에 쪼여 기절했고, 독극물을 투입 당해 두 눈이 이로부터 흐릿했는데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쓰촨 랴오닝시 양롄푸(楊運富)는 몐양(綿陽) 신화(新華) 노동교화소에서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했는데, 독극물을 주입 당해 체중이 40여kg로 줄어들고, 두 눈이 실명해 억울하게 사망했다.

6. 억울한 옥살이 박해로 눈이 멀다

중국공산당은 법률을 어린애 장난처럼 여기고, 국민의 생명을 초개처럼 여긴다. 모든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는 이른바 징역 판결을 포함해 모두 중국공산당이 법률을 따지지 않고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등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저지른 위법 탄압이다. 파룬궁 수련생이 노동교화소, 감옥에 들어감은 법률에 대한 유린이고 역시 진일보로 박해를 시행하기 위한 것이다. 때문에 파룬궁 수련생이 억울한 옥살이 중에서 당한 것은 더욱더 잔혹한 박해다. 그리고 박해를 당해 상처를 입고 질병에 걸린 후, 또 전혀 인도주의적인 치료가 없었는데 결국 사망하거나 불구가 됐다.

1) 박해로 두 눈이 실명하고 다시 무거운 징역형 선고받은 왕지궈가 집과 가족을 잃다

2001년, 무단장(牡丹江) 사범대학 직원이자 파룬궁 수련생 왕지궈(汪繼國)는 무단장 쓰다오(四道) 노동교화소의 박해로 혈뇨하고 두 눈이 거의 실명에 이르렀다. 2002년, 아이민(愛民)구 법원에서는 여전히 무고한 7년 형을 선고했다. 이로 하여 왕지궈는 무단장 젠쯔산(尖子山) 감옥에서 계속 잔혹한 박해를 당하게 됐다. 2003년 9월에 학대로 사망했는데 당시 나이 겨우 40세였다. 그의 아내도 역시 파룬궁 수련생인데 같은 시기에 3년간 불법 노동교화처분을 받아 집안의 7살 어린이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원래 아름답고 원만하며 행복하던 가정은 집과 가족을 다 잃었다.

2) 두 눈이 실명돼 스스로 생활할 수 없고, 출소해 3개월 만에 억울하게 사망하다

천링메이(陳淩梅)는 허베이성 줘저우(涿州)시 파룬궁 수련생으로, 여러 차례 장시간 동안 고문 학대를 당했는데 강인한 의지로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매달고 구타하기 고문을 견뎌냈다. 2004년부터 스자좡(石家莊)시 여자감옥에서 3년 동안 옥살이를 당하고, 형기 만료로 출소한 후 이미 두 눈이 실명해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출소해 겨우 3개월이 넘은 2017년 12월 7일, 천링메이는 감옥의 박해를 견뎌내지 못하고 억울하게 사망했는데 향년 67세였다.

3) 11년 억울한 옥살이 당해 극도의 손상 입고 두 눈이 거의 실명해 출소해 반년 만에 억울하게 사망

李津鹏
리진펑
(李津鵬

리진펑(李津鵬), 대학 학력의 베이징시 하이뎬(海澱)구 파룬궁 수련생이다. 세상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수차례 심각한 박해를 당했고, 두 차례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총 11년이다. 원래 파룬궁을 수련해 건강하던 몸이 극도로 손상을 입어 간 경화 증상, 두 눈의 망막이 빠져 거의 실명에 이르고, 전신 부종 등 심각한 증세가 나타났다. 출소해 반년 만에 건강 상황이 악화해 결국 2013년 8월 15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47세였다.

4) 비참하게 고문에 의한 강제 자백과 과부하 노역을 당한 웨후이민, 두 눈이 실명하고 귀에 고름이 흘렀으며 억울하게 사망

웨후이민(岳會民, 남)은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 파룬궁 수련생이다. 2000년 12월에 납치돼 고문에 의한 강제 자백을 당해 옷은 구타로 조각났고, 엄동설한에 맨발로 눈밭을 걸어야 했다. 치치하얼시 제2 구치소에서 매일 혹독한 구타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처참한 비명이 들렸다. 젠화구 형사경찰대 악독한 경찰에게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당한 이유로, 웨후이민은 푸위(富裕) 노동교양소로 보내졌을 때 두 손목은 살갗이 터져 뼈가 밖에 드러나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몸은 극도로 허약했다. 노동교양소에서의 과부하의 노동은 그에게 심신에 극심한 손상을 입게 해 늘 쇼크하고 온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또 2개월 동안의 기한을 초과한 감금을 당하고, 2년 넘는 학대를 경험해 사경에 이르러서야 들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눈은 거의 실명에 이르렀고, 귀에서는 고름이 흐르고 온몸이 붓는 증상이 나타났으며 여전히 거듭 소란을 당했다. 2005년 3월 18일, 웨후이민은 심신이 극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억울하게 사망했다.

5) 박해를 당해 두 눈이 실명하고 세상을 떠나다

선징어(沈景娥)는 1998년에 유방암에서 림프암으로 전이되어 이미 두 차례 수술을 받았던 이유로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가장 오래 산다고 해도 3개월이므로 치료할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명이 곧 끝나갈 때 그해 봄에 그녀는 다행히 파룬궁을 수련했는데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몸은 또 하루하루 호전됐다. 이로부터 건강한 사람의 행렬에 들어섰다. 박해 중 그녀는 거듭 납치 감금을 당했으나 의연히 믿음을 견지했다. 하얼빈(哈爾濱) 여자감옥에서 그녀는 혹독한 구타, ‘큰 괘에 올리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독방 감금, 뒷짐결박으로 채우기, 수면 박탈, 추위에 떨게 하기 등 고문을 당했다. 3년 6개월의 온갖 학대, 기나긴 나날을 견디어 내고 2005년 5월, 그녀는 밤낮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박해는 이미 그녀에게 두 눈이 실명되고, 심장이 쇠약해지고, 몸이 극도로 허약해지게 했다. 결국, 2006년 11월 5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는데 당시 나이는 겨우 45세였다.

헤이룽장성 자무쓰(佳木斯)시 왕수쥔(王淑君)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요독증 말기에 걸렸는데, 파룬궁을 연마해 3일 만에 전신 부종이 사라지고 요독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2001년, 왕수쥔은 자무쓰 노동교화소에 의해 박해를 당해 두 신장이 위축되고, 두 눈이 실명했으며, 요독증이 도졌다. 결국, 2002년 6월 29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나이 겨우 48세였다.

6) 두 눈이 실명해 억울하게 사망, 박해자가 업보를 당하다

추이룽(崔榮)은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 푸라얼지(富拉爾基)구 파룬궁 수련생이다. 2004년 11월, 푸라얼지구의 가도, 공원 등에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진상 현수막이 여러 폭이 나타났다. 차례로 17명 파룬궁 수련생이 이로 인해 푸라얼지구 국가보안대대 리루이신(李瑞新) 등에게 납치돼 연속 며칠 동안 ‘큰 괘에 올리기’ 등 학대를 당했다. 그 기간에 가오싱롄(高性蓮)이 박해로 사망했고, 추이룽은 두 눈이 실명했으며 무고한 5년형을 선고받았다. 2006년, 두 눈이 실명한 추이룽은 출소해 집으로 돌아갔으나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결국, 2011년 12월 1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는데 향년 68세였다.

“上大挂”酷刑
큰 괘에 올리기(上大掛)’ 고문 

추이룽을 납치 박해하고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가하고, 옷을 깡그리 벗겨 추위에 떨게 하기 등 고문에 참여한, 수단이 악랄한 푸라얼지구 국가보안대대장 리루이신의 악행은 가족에게 화가 미치게 했다. 18세인 그의 아들이 장폐색증으로 사망했다.

7) 몇 달 동안 단식을 진행해 무고한 징역형 선고받고 망막이 떨어져 실명에 직면, 박해에 참여한 자가 업보를 당하다

뉴위후이(牛玉輝)는 2016년 10월 13일에 수란(舒蘭)시 국가보안대대와 난청(南城) 파출소에 납치돼, 지린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박해로 이미 한쪽 눈 망막이 떨어져 앞을 보지 못해 급히 수술 치료를 받아야 했다. 뉴위후이는 단식으로 항의했는데 그 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아 지린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현지 파룬궁 수련생을 잔혹하게 박해한 수란시 국가보안대대장 둥치밍(董其明, 60세쯤)는 2014년에 임직했는데, 2017년 그의 악행으로 아내에게 화가 미쳐 아내는 유방암 말기가 되어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었다.

8) 고문 학대 및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은 수리 엔지니어의 두 눈이 실명, 수리국 국장이 박해에 참여해 업보를 당하다

장룬(張潤, 남)은 전 간쑤성 톈수이(天水)시 장자촨(張家川)현 수리국 수리 엔지니어다. 2004년 3월 29일 밤 중, 장룬 등 14명 파룬궁 수련생은 불법 수사, 납치, 고문 학대를 당했다. 장룬은 3년 6개월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08년 8월, 장룬은 형기가 만료돼 집으로 돌아왔을 때 두 눈이 실명되어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가족이 그와 함께 직장을 찾아갔는데, 장자촨현 현임 수리국 국장인 미이쭝(米義宗)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게다가 직원회의를 소집해 어떠한 사람도 장룬을 수리국 대문에 들어서게 하면 안 된다며 이를 어기면 처벌한다고 했다. 미이중은 대법을 욕하고 대법 사부님을 욕하며 “내가 파룬궁을 욕하면 나를 어찌할 건지를 두고 보겠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몇 달 후 그는 공금을 유용한 범죄로 직장 노동자에게 고발당해 감옥에 갇혔다. 구치소에서 미이중의 귀 옆에 작은 부스럼이 생겼다. 손으로 긁어 염증이 생겼는데 독소가 대뇌에 들어가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사망했다. 당시 나이 44세쯤이다.

9) 8년 억울한 옥살이로 두 눈이 실명, 사회 엘리트가 거듭 무고한 징역형을 선고받다

李晓波
리샤오보
(李曉波

쓰촨성 청두(成都) 파룬궁 수련생 리샤오보(李曉波)는 예전에 런서우(仁壽)현 부서기, 푸장(蒲江)현 현장을 맡은 적이 있다. 그 후 정부 직원 일을 그만두고 사업에 종사해 부동산 회사 사장을 맡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는데, 올곧고 공정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2005년에 8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더양 감옥에서 고문, 강제노동을 당해 왼쪽 시력이 급격히 내려갔다. 출소한 후 왼쪽 눈이 완전히 실명했다는 확정 진단을 받았다. 2014년 4월, 리샤오보는 룽취안이(龍泉驛) 법원에 의해 8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지금 러산(樂山)시 자저우(嘉州) 감옥에서 불법 감금돼 있다.

10) 허베이 여자감옥의 악행

전 허베이성 징싱(井陘)현 정치협상위원회 바이위즈(白玉枝)는 박해를 당해 두 눈의 실명, 각혈, 신장 쇠약 증상이 나타났고, 몇 번이나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 나타났다. 결국, 완전히 마비돼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고 심신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줘저우시 파룬궁수련생 왕리샤가 박해로 두 눈이 실명됐다.

바오딩(保定)시 파룬궁 수련생 장룽제(張榮傑)는 박해를 당해 왼쪽 눈이 실명했고 오른쪽 눈 시력은 0.1쯤 됐다.

11) 선양 둥링 감옥의 박해

랴오닝 다롄(大連) 파룬궁 수련생 페이전보(裴振波)는 5년 6개월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4년에 선양(瀋陽) 둥링(東陵) 감옥으로 납치됐는데 ‘전향’과 강제 노예노동, 윤번으로 진행된 구타를 당하고, 대소변 주입, 수면 박탈, 뙤약볕 쪼이기, 추위에 떨게 하기, 작은 의자에 앉히기 등 고문을 당했다. 박해를 당해 오른쪽 눈이 실명했고 또 심각한 고혈압, 심장병 증상이 나타났다.

랴오닝 하이청(海城) 파룬궁 수련생 한바오라이(韓寶來)는 2014년 7월 16일에 납치됐고, 선양 둥링 감옥 7감 구에서 심한 박해를 당했다. 장기간 수면 박탈, 때리고 욕하기 고문을 당해 심각한 심장병 증세, 두통, 눈이 아픈 증상, 고혈압 증상이 나타났다. 당시 감옥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이후 한쪽 눈이 실명됐고 늘 심각한 심장병 증상, 두통, 눈이 아픈 증상이 나타났다.

12) 억울한 옥살이를 당해 눈이 멀게 된 더욱 많은 관련 사례

청지잉(程繼英)은 선양 다베이 감옥에서 박해를 당해 두 눈이 실명해 몸져누웠는데 결국 억울하게 사망했다.

쑨허우롄(孫厚蓮)은 산둥성 쯔보(淄博)시 왕춘(王村) 여자노동교화소에서 박해를 당해 두 눈이 실명해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5개월이 넘은 후 억울하게 사망했다.

스인창(石寅昌, 남)은 랴오닝성 웨이닝잉(威寧營) 노동교화원의 박해로 심신이 극히 허약해지고 두 눈이 거의 실명됐는데 얼마 되지 않아 억울하게 사망했다.

다이쥔(戴軍, 남)은 헤이룽장 무단장(牡丹江) 감옥에서 박해를 당해 거의 실명에 이르렀고 몸이 허약했다. 집으로 돌아와 2년이 지난 후 억울하게 사망했다.

자오자팡(趙家芳)은 충칭 여자감옥에서 장기간 과부하 노역 박해를 당해 물건을 봄에 흐릿해 세 차례나 졸도했는데, 결국 억울하게 사망했다.

루후이친(路惠琴)은 간쑤성 여자감옥에서 구타당해 한쪽 눈이 멀었고 구타당해 한쪽 귀가 먹었다.

양궈루이(楊國瑞)은 창춘 헤이쭈이쯔 여자노동교화소에서 박해를 당해 두 눈이 거의 실명에 이르고 몸이 몹시 여위었으며, 의식이 흐릿하고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는데 결국 억울하게 사망했다.

한중(韓忠, 남)은 안후이(安徽)성 난후(南湖) 노동교화소에서 악독한 경찰에게 구타당해 오른쪽 눈에서 피를 흘리고 실명했다. 그 후 불법 징역형 6년을 선고받아 퉁링(銅陵) 감옥에서 잔인한 박해를 당했다. 2017년에 거듭 납치, 감금을 당했다.

7. 생체 장기 적출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해 폭리를 도모한 인성을 소멸하고 참혹하기 그지없는, 이 지구상 유례없는 이러한 악행은 또 단지 이 지구에서 가장 큰 사교 조직인 중국공산당만이 해낼 수 있다. 중국공산당이 잔인함, 사악함은 일반인의 상상을 훨씬 초월했다.

1) 30세 장옌차오의 내장, 피부, 안구가 생체 적출되다

张延超
장옌차오
(張延超

장옌차오(張延超)는 1972년생, 헤이룽장 우창(五常)시 라린(拉林)진 시황치(西黃旗)촌 농민으로 순박하고 선량했다. 2002년 3월 28일 오전에 훙치(紅旗)향 파출소 경찰 자지웨이(賈繼偉) 등에게 납치됐고 1시간 넘게 구타와 전기충격을 당했다. 오후에 우창시 감옥으로 납치돼 시국(市局)의 천수썬(陳樹森) 등에게 손상을 입고 시달림을 당했다. 3월 31일,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왼쪽 다리가 구타로 부러진 장옌차오는 우창시 ‘610’ 푸옌춘(付彥春) 등에 의해 죄수 호송차에 올려져 하얼빈시 ‘610’과 공안 7처에서 사사로이 설치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40여 종류의 형구를 갖춘 비밀 소굴로 압송당했다. 이튿날 장옌차오는 바로 악도들의 고문 학대로 억울하게 사망했다.

2009년 5월 6일, 파룬궁 수련생은 도쿄 외국인 기자 클럽서 ‘박해를 멈추고 내 가족을 돌려달라’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장옌차오의 남동생 장옌후이(張延輝)는 비교적 상세하게 형 장옌차오가 샹팡(香坊)구 야쯔취안(鴨子圈) 해부실에서 장기가 적출됐는데, 그 과정에 참여한 한 경찰이 이 같은 사실을 시인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30세인 장옌차오의 내장, 그리고 피부, 안구가 강제로 적출됐다. 이는 회의 참가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장옌후이의 소개에 따르면, 가족은 27일에 소식을 받았는데, 라린(拉林) 공안 분국에서 갑자기 가족에게 즉시 가서 시신을 식별하고 화장하라는 통지를 내렸고, 오빠가 단식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하얼빈시 황산(黃山) 쭈이쯔(嘴子) 장의사에서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은 눈앞의 참상을 보고 놀라 아연실색했다. 장옌차오의 드러낸 몸은 구타로 변형됐고 한쪽 다리는 이미 부러졌으며 머리, 얼굴 대부분과 몸의 많은 곳마저 피부가 없었고 아래턱은 구타로 부서졌으며, 아래 치아는 한 대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아래턱에서부터 한 갈래의 긴 벤 자리가 쭉 하체에까지 이르렀다. 벤 자리는 마대 끈으로 기웠고, 시신의 내장은 적출당해 복부 부위가 내려앉았다. 머리뼈는 열렸고, 안구가 한쪽이 없어져 안구 부위가 크게 꺼져 있었다.

장옌차오가 핍박에 못 이겨 사망한 상황은 밍후이왕 ‘헤이룽장성 우창시 라린진 대법 수련생 장옌차오가 학살당한 전후(사진)’ ‘헤이룽장성 우창시 대법 수련생 장옌차오가 박해로 사망한 전후’ 및 ‘헤이룽장 우창시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당한 현장 기록(1)’ 등 관련 보도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2) 박해를 당해 두 눈이 차례로 실명해 억울하게 사망, 목 부위에 베인 상처, 복부에 베인 상처가 나다

李正灵
리정링
(李正靈

리정링(李正靈, 리정린)은 쓰촨성 루저우(瀘州)시 구린(古藺)현 파룬궁 수련생이다. 2004년 12월 27일에 구린 구치소로 납치돼 박해로 두 눈은 앞을 똑똑히 보지 못했고 왼쪽 눈은 실명했다. 2005년 8월에 강제로 무고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더양(德陽) 감옥에서 박해로 두 눈이 실명해 행동이 어려워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데리고 돌아가 보살펴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감옥 측은 ‘전향’하지 않았기에 석방하지 못한다고 했다. 리정링은 맨 마지막에 소변을 배설하지 못하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으며, 전신의 장기기 쇠약해져 거의 쇼크 상태에 처했다. 감옥 측은 여전히 가족이 데려감을 허락하지 않았다. 2008년 6월 24일, 리정링은 박해로 사망했고 당시 나이가 겨우 43세였다.

가족이 솽류(雙流) 경찰병원으로 급히 갔는데, 단지 리정링이 전신을 침대보에 꽉 싸여 얼굴 부위가 부어오른 것(썩어 문드러졌음)을 보았을 뿐이다. 감옥 측에서는 가족이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시신을 뒤집어 봄을 허락하지 않으며 단지 한 번 보고 화장을 허락했을 뿐이다. 그의 아내가 맨 마지막에 한 번 보고 다시 화장하는 것마저 안 된다고 했다. 가족에게 사망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응급처치를 보낸 상황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사망 보고 및 그들의 연계 상황 등등을 알려주지 않았다. 가족이 강력하게 요구하자 그제야 시신을 보여줬는데, 둔부에 욕창이 생기고 목 부위에 자그마하게 베인 자리가 있었으며, 복부에 베인 자리가 하나 있었고 얼굴 부위 피부색이 정상이 아님을 발견했다.

리정링이 박해를 당한 상세한 상황은 밍후이왕 ‘쓰촨 리정링이 4년 전 중국공산당 박해로 사망한 상세한 상황’ ‘사당에게 박해당해 사망한 대법제자 리정링의 간단한 소개(사진)’ 및 ‘대법제자 리정링이 쓰촨 더양(德陽)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 등 보도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3) 겨자기름을 눈에 부어 넣어 눈이 멀고, 처참한 박해를 당한 왕민리가 단오절에 사망, 강제로 장기가 적출된 것으로 의심돼

王敏丽
왕민리
(王敏麗

2007년 6월 19일, 단오절에 왕민리는 병원으로 보내지는 도중에 호흡을 멈췄다. 당시 나이 겨우 43세였다. 왕민리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처참한 박해를 당했다. 2001년 2월 18일에 지린시 구치소에서 혹독한 구타를 당해 고막이 파열돼 청력을 잃었다. 그 후 창춘(長春)시 헤이쭈이쯔(黑嘴子) 여자노동교화소에서 비인간적인 학대와 시달림을 당해 생명이 위독했다. 2002년 12월 24일에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대법 현수막을 펼쳤는데, 경찰차가 몸 뒤에서 누르고 지나가 기절했다. 2003년 5월 13일에는 납치를 피하고자 핍박에 못 이겨 6층에서 뛰어내려 중상을 입었다. 가슴뼈가 부러지고 세 곳을 삐었으며, 왼쪽 어깨가 부러지고 기관이 파열되었다. 악독한 경찰에게 병원에서 납치된 후 왕민리는 상처를 입은 몸을 끌고 마수에서 벗어났다.

2007년 3월 15일, 왕민리는 다시 납치돼 군견(警犬) 기지에서 혹독한 구타와 고문 학대를 당했다. 한쪽 다리는 악독한 경찰에게 나무 몽둥이로 맞아 부러졌다. 입이 테이프에 봉해진 후, 코는 겨자기름을 주입을 당해 몇 차례나 기절했다. 악독한 경찰은 또 겨자기름 한 병을 그녀의 눈에 부어 넣었고 이로 인해 이 눈을 실명시켰다. 부상 정도가 너무 심각한 이유로 왕민리는 지린시 구치소에서 이미 기본적으로 스스로 생활하는 능력을 상실했고, 근근이 3개월 만에 박해로 사망했다. 사망 하루 전, 또 악독한 경찰 두싱쩌(都興澤)에 의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왕민리의 가족은 왕민리가 강제로 장기를 적출됐다고 의심했다.

왕민리가 박해당한 상세한 상황은 밍후이왕 문장 ‘왕민리가 박해로 사망한 지 약 10년, 가족이 원흉 장쩌민 고발’ ‘왕민리가 지린시 구치소에서 박해로 사망한 더욱 많은 상황’ 및 ‘지린시 공안이 강제로 왕민의 시신을 화장하고 가족이 조사함을 허락하지 않다’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맺음말

밍후이왕에서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로 눈이 멀게 된 사례는 아직도 매우 많다. 본문에서는 단지 밍후이왕에서의 일부 박해사례를 예로 들었을 뿐이다. 실질적으로 박해한 처참한 정도는 이것에 그치지 않고 훨씬 심각하다. 중국공산당의 역사는 바로 한 부의 잔혹한 투쟁사로, 바로 사람의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한 부의 살인 역사이며, 어떠한 악행이든 중국공산당은 해내지 못하는 것이 없다. 이처럼 맨주먹에 정직하고 선량한 법을 준수하는 한 무리 국민에 대한 이른바 ‘투쟁’ 중에서, 파룬궁 수련생이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것에 대해 극단적으로 적대시해 공갈 협박하고 집단 학살의 잔혹한 박해를 진행했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이 특징을 더욱더 남김없이 다 드러냈는데, 역시 그 사악한 본성이 세상사람 앞에서 최후의 한 차례로 남김없이 다 드러난 것이다.

자고로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다고 했다. 보응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시간이 되기만 하면 곧 보응이 온다. 온갖 나쁜 짓을 다 한 중국공산당은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이며, 공산당의 속아 박해에 참여해 큰 죄를 저지른 사람도 가련하고 무서운 말로에 직면할 것이다.

원문발표: 2019년 1월 2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총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5/3808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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