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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 두 발을 잃은 헤이룽장 이춘시 왕신춘이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헤이룽장성 이춘(伊春)시 진산툰(金山屯)구 파룬궁 수련생 왕신춘(王新春)은 26세 때 박해로 두 발을 잃어 불구가 되었다. 이후 또 끊임없이 중국공산당 경찰에게 소란, 납치, 감금 고문 등 박해를 당해 몸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결국, 2019년 4월 23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는데 당시 나이는 겨우 43세였다.


왕신춘
(王新春)의 생전 사진


왕신춘이 박해로 두 발을 잃어 불구가 되다


박해로 불구가 되어도 발정념하는 왕신춘

'王新春遗照'
왕신춘의 생전의 사진

왕신춘은 1976년에 출생했고, 이춘(伊春)시 진산툰(金山屯)구 펑마오(豊茂) 임업장에 거주했다. 1998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후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다. 3개월 만에 그를 괴롭히던 췌장암, 복수 등 각종 질병이 치료하지 않고 완쾌됐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운동을 발동했다. 왕신춘은 따로따로 1999년 7월 22일, 2000년 2월 4일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각각 불법 구류, 불법 노동교화 처분을 당했다. 그 기간에 왕신춘은 고문 학대를 당했고 감옥 경찰 청청칭(程長靑)은 수갑으로 그의 손목을 채워 의자 위에 채워놓고 발로 수갑을 사납게 밟았다. 그 후 또 창문 위에 매달았다. 2001년 9월 24일에 쑤이화(綏化) 노동교화소로 납치돼 계속 박해를 당했다.

2002년 1월 8일, 왕신춘은 진산툰 펑거우(豊溝) 임업장으로 가서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전 공안국장 추이위중(崔玉中)이 경찰을 시켜서 포위했는데, 왕신춘은 조심하지 않아 강에 떨어졌는데 두 발이 흠뻑 젖어 얼었다. 경찰은 왕신춘을 납치한 후 강제로 왕신춘의 발을 얼린 다음 두 발을 뜨거운 물 속에 넣어 지각을 잃게 했다. 그 후 염증이 나기 시작해 문드러졌다. 11개월의 고통스러운 시달림을 거쳐 왕신춘의 두 발은 약간씩 썩어 떨어졌다. 이후부터 그는 걸을 때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앞으로 끌며 가야 했다.

2004년 5월 16일, 왕신춘은 휠체어를 손으로 돌려 30리 밖에 있는 진산툰으로 일 처리를 하러 갔는데, 경찰차에서 4~5명의 경찰이 내려 강제로 몸을 수색했다. 게다가 왕신춘을 공안국으로 납치해 연속 걷어차고 구타했다. 경찰들은 또 손으로 돌리는 휠체어 타이어의 공기를 빼내고 공안국 정보과 창고에 넣었다.

2006년 11월 14일, 왕신춘은 민정국으로 청원하러 가서 자신이 파룬궁을 수련하다 박해를 당해 불구가 되고, 신발을 수리해 생계를 꾸리다가 고문 학대를 당하고, 가정용 전기기구를 수리했는데 물건 반입이 공안국에 의해 제한당했음을 진술했다. 전 가족은 단지 60위안의 생활비밖에 없었는데 업무 인원은 “우리 이곳에서는 직접 당신을 응대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의 임업장을 시켜 위에 보고하게 하세요.” 등 말로 책임을 미뤘다. 왕신춘은 장애인 연합회로 갔는데 공안국 610의 샤오징위(肖靜宇), 펑거우 파출소의 왕서우민(王守民)에 의해 펑마오로 납치돼 돌아왔다.

2008년 12월 8일 저녁 7시 반, 펑거우 파출소의 민창춘(閔長春), 장촨천(張傳臣), 왕서우민(王守民), 궈후이(郭恢), 가오젠(高健), 가오수궈(高樹國)는 어떠한 절차도 없이 불법적으로 왕신춘의 집 문을 부수어 열고 강제로 방안에 들이닥쳐 왕신춘을 연속 걷어차고 잡아당긴 후 경찰차로 구치소 앞마당으로 납치했다. 진산툰구 공안국 형사경찰대 부대장 타오쉬웨이(陶緒偉), 펀더우(奮鬥) 파출소 왕쉐강(王學剛), 형사경찰대의 왕하이룽(王海龍), 쑨리룽(孫立龍), 차오완차이(曹萬才), 왕스천(王士臣), 장리궈(張立國) 무리는 우르르 몰려들어 왕신춘의 머리, 발과 다리, 팔과 몸을 밟았다. 그리고 팔을 등 뒤로 해 수갑으로 채우고 왕신춘에게 또 폭력을 가했다. 타오쉬웨이는 발과 주먹을 함께 사용해 걷어차고 구타했다. 그리고 앞가슴과 등에 눈과 냉수, 맥주를 밀어 넣고 두 발로 이미 불구가 된 발을 힘껏 비볐는데 극히 잔인했다. 그리고 또 불로 왕신춘의 얼굴을 태우고 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공안국 부국장 딩더즈(丁德志)는 연속 꼬박 3일 동안 왕신춘을 괴롭혀 왕신춘의 얼굴이 변형되고, 등이 크게 붓고, 손목이 네 곳이나 다쳤고, 손등이 찐빵처럼 붉게 부어오르는 등 온몸이 몹시 고통스러워 스스로 생활할 수 없게 만들었다.

2011년 10월 26일, 파룬궁 수련생 왕신춘은 이춘에서 전동차 충전기를 사다가 파룬궁 수련생 장수친(張淑琴)과 말을 하던 중 이춘구 훙성(紅升) 파출소의 왕하이보(王海波), 리허린(李和林) 등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됐다. 왕신춘은 이춘구 공안국 형사경찰대 심문실로 납치돼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고 핸드폰을 강탈당했다. 오후 5시가 넘어 악독한 경찰들은 왕 씨 가족을 공갈 협박하여 위협했고, 아울러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왕신춘의 아버지 왕펑치(王鳳岐)는 극도의 충격으로 갑자기 말을 할 수 없었고 걸을 수 없었는데 2011년 12월 22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2013년 9월 9일 오후 5시가 넘어 왕신춘과 파룬궁 수련생 탄펑장(譚鳳江)은 차오양(朝陽) 주택단지 4동의 셋집으로 갔는데, 잠복 감시를 진행한 진산툰 공안 ‘610’ 경찰 친한둥(秦漢東), 다쿤룬(大崑崙) 파출소 경찰 양다웨이(楊大偉), 기사 뤼훙치(呂紅旗)에게 납치돼 고문 학대를 당했다. 진산툰 퇀제(團結) 파출소에서 친한둥은 오히려 전혀 인간성이 없이 부소장 팡셴강(房賢剛), 청쉐이(程學藝)에게 지시를 내려 왕신춘을 쇠 우리에 감금했다. 그리고 수갑을 쇠 우리에 채워 서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게 했다. 10일 점심 후, 순찰경찰대의 류시야오(劉喜要), 형사경찰대의 타오쉬웨이(陶緒偉)는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타오쉬웨이는 또 걷어차고 구타했으며 바늘로 왕신춘의 허리와 복부를 찔렀다. 그리고 왕신춘의 머리를 잡고 쇠 우리 위에 박았다. 류시야오는 왕신춘에 대해 연속 욕하고 걷어찼으며, 또 왕신춘의 호주머니 속의 475위안과 핸드폰을 강탈했다. 뒤이어 왕신춘을 ‘대(大)’자 형으로 쇠 우리 난간에 매달아 왕신춘의 불구로 된 무릎을 지환(地還: 고문도구)에 닿게 해 땅에 닿지 않게 했다. 그리고 그를 구타하고 걷어찼는데 왕신춘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학대했다. 타오쉬웨이는 담배꽁초, 라이터로 왕신춘의 코, 눈, 입 등을 태웠다. 날이 저문 후 경찰은 또 왕신춘을 경찰대대의 우리 안에 가뒀다.

10일 밤중, 타오쉬웨이, 장웨이 등은 강제로 왕신춘을 우리 안에서 끌어내 쇠 의자 위에 매달아 거듭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타오쉬웨이 등은 왕신춘의 손가락, 손목을 갈라놓았다. 그리고 그의 팔을 머리 부위까지 들어 올린 후 거듭 힘껏 뒤로 눌렀는데, 왕신춘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눈을 뜨지 않는 것을 보고 또 주먹으로 그의 머리, 얼굴, 관자놀이 등을 사납게 때렸다.

약 20년간 왕신춘은 이렇게 끊임없이 경찰의 납치, 불법 감금, 고문 학대 등 박해를 당해 심신에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2019년 2월쯤부터 시작해 그의 왼쪽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4월 23일에 갑자기 기절해 깨어나지 못했는데 정오경 억울하게 사망했다.

왕신춘이 당한 박해에 관해 밍후이왕 문장 ‘헤이룽장 이춘시 왕신춘 일가가 당한 잔혹한 박해’ ‘매달기 고문, 불로 지지기, 담배꽁초로 지지기-두 다리가 불구가 된 왕신춘이 고문 학대를 당한 과정’ ‘박해를 당해 두 발을 잃은 왕신춘이 13년 동안 당한 조우를 자술’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9년 4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29/3856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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