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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 귀가한 리밍, 부모님은 아들 그리며 생명 위급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허난 보도) 허난(河南)대학 본과를 졸업한 리밍(李明) 씨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굳게 믿은 이유로, 20여 세 때 중공(중국공산당)에 의해 15년의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이 좋은 사람으로 되려 해 감옥살이한 이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온종일 늘 걱정했다. 어머니는 이미 몸져누운 지 여러 해 됐고, 부친은 지나치게 피로한 것으로 인해 똑바로 서서 걸을 수가 없어 기어 다니는 수밖에 없었고, 몇 걸음만 기면 가쁜 숨을 몰아쉬었는데, 사람들은 그 생활 상황을 걱정한다.

리밍 씨는 올해 막 40세가 넘었고, 동북 사람이며 1995년에 허난 이공대학에 입학했다. 공부한 기간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선량하고 정직하며 품행과 학업이 다 훌륭한 좋은 학생이었다. 1999년에 리밍 씨가 졸업할 때는 바로 장쩌민(江澤民) 사악 깡패 집단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할 때쯤에, 그는 막 배치받은 직업을 포기하고 학교 소재지에 남아 박해를 반대하고 대법을 실증했다.

2004년 12월 말, 리밍 씨는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현지 경찰에게 납치돼 현지 구치소에 불법으로 감금됐다. 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그날, 그는 갑자기 품속에서 스스로 만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현수막을 꺼내 머리 위에 높이 들어 현장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이 장거는 유력하게 사악을 위협하고 그들에게 이치가 닿지 않은 감을 느끼게 했다. 사악은 부끄럽고 화가 난 나머지 뒤이어 리밍 씨에 대해 15년 형의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해 허난성 신미(新密) 감옥에 가두었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재연
: 혹독한 구타

중국공산당의 감옥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대함은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신미 감옥은 소굴인데, 그곳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수단도 폭로된 적이 있다. 예컨대 수면을 박탈해 매일 24시간 동안 세워 두기 고문, 쭈그려 앉히기 고문, 혹독한 구타 등 고문 시달림을 당했다. 바로 이러한 환경에서 리밍 씨는 여전히 믿음을 굳게 믿어 이른바 ‘3서’를 쓰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15년 동안 전향하지 않음을 견지했다.

한번은, 리밍 씨는 꼬박 7일 동안이나 연속 설사하고 토해, 전체적으로 몹시 여위게 됐다. 그는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졌으며, 호흡이 미약해 곧 순식간에 위험해졌다. 곧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 저는 이곳에서 죽으면 안 됩니다. 저는 끝까지 수련하겠습니다!”라고 빌었다. 이 천지를 진동하는 일념에 따라, 순간적으로 곧 좋아졌다.

중국 속담에서 하루가 일 년 같다는 속담이 있다. 리밍 씨가 감옥에서 직접 경험한 체험을 ‘하루가 일 년 같다’로 표현하면 딱 맞다. 그는 매일 공포 분위기 중에서 비인간적인 생활을 보냈다. 또 고생을 참고 견디며 그를 정성껏 키운 부모님을 밤낮 그리면서, 하루빨리 그들에게 돌아가 효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리밍 씨는 마침내 2019년 정월까지 견뎌내 꼬박 15년 동안의 억울한 옥살이 생애를 끝냈다. 감옥 문 앞에 오랫동안 서서 다가와 그를 마중하러 온 수련생들을 바라보는 순간 희비가 동시에 교차했으나 그를 만난 수련생은 오히려 자신의 눈을 감히 믿지 못했다. 다만 눈앞의 리밍 씨는 얼굴색이 거무칙칙하고 피골이 맞닿을 정도로 여윈 것이 보일 뿐이었다. 과거의 빼곡하던 검은 머리칼은 거의 빠지고 몇 개 남지 않은 머리칼도 여전히 전부 백발이었다. 예전에 씩씩하던 청년은 장기간 세상의 쓴맛을 본 노인으로 변했다.

며칠 후, 리밍 씨는 수련생과 고별하고 오랫동안 헤어진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고된 여정의 피로도 돌보지 않은 채, 기다릴 여유가 없이 15년 동안 만난 적 없는 부모님과 한자리에 모여 앉으러 집으로 다그쳐 갔으나 그가 집 문에 들어서서 본 눈앞의 정경은 오히려 처참함과 쓸쓸함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마비돼 몸져누우셨는데, 눈이 움푹 들어갔고 양측 귀밑머리는 서리같이 희고, 아들이 돌아온 것을 본 그녀는 격동돼 손을 내밀었는데, 그 거친 손위에는 지렁이 같은 혈관이 한 갈래씩 가득 뻗어 있어,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고, 아버지도 이미 고통과 원한으로 백발이 서리고 중병에 걸려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게 되어, 힘들게 기어 다니면서 집안일을 처리하고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다. 그는 몇 걸음 길 때마다 지쳐서 숨을 몰아쉬며, 잠깐 휴식해서야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리밍 씨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창때 15년 동안 감옥살이했는데, 돌이켜보니 오히려 마치 딴 세상 같았다.

부모님은 예전에 몸이 건강해 나는 듯이 걸었다. 그때 리밍 씨는 그들의 자랑거리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아들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배우기를 즐겼으며, 영리하고 효도했으며 또 순조롭게 대학 시험에 합격했다. 재능과 덕을 함께 갖추고, 재능이 출중한 아들이 단지 ’진선인(眞善忍)‘을 믿어 더욱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했다는 이유로, 15년 동안의 무거운 징역형을 선고받을 줄은 그들은 생각지 못했다. 아들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사회를 위해 가장 많은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10여 년 동안의 시간을, 핍박에 못 이겨 철창 안에서 보냈다! 그들은 어떻게 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멀쩡하던 가정이 핍박으로 이 모습이 되었는지, 이 사회에 그래, 좋은 사람이 많을수록 좋지 않은가? 15년 동안, 두 노인은 피곤하게 분주히 뛰어다니며 신고하려 해도 신고할 곳이 없었다. 그들은 잘 먹지도 못하고, 잠잘 수 없었는데, 시각마다 모두 시달림 속에서 보냈다. 수입이 없는 곤궁함, 두 노인의 몸 상황이 갈수록 나빠진 상황에 그 이상의 참상이 빚어졌다.

오늘날 리밍 씨는 단지 부모님 곁에 있으려 하고 있다.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 찼던 가정은 이미 15년 동안 산산조각이 났다. 팔순이 넘는 부모님은 비바람 속에서 중병에 걸렸는데, 또 자신과 얼마나 함께 지내실 수 있을지 모른다.

원문발표: 2019년 3월 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3/7/3835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