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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푸완의 경험이 후난성 여자감옥의 내막을 재차 폭로

글/전우(振宇)

[밍후이왕] 2018년9월28일,밍후이왕(明慧网) 간행물에서는 진푸완(金福晚)이 후난(湖南)성 여자감옥에서 속박 옷,매달기 학대를 당한 비참한 경력을 폭로했다.그중 폭로해낸 것은 끔찍한 여자감옥의 내막이다.

中共酷刑演示图:约束衣
중국공산당 고문 재연도
속박 옷[約束衣]

진푸완은 올해41세이며 후난 화이화(懷化)파룬궁(法輪功)수련생이다. 2015년8월21일,진푸완과 친구는 장자제(張家界)에서 현지 민중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는데,악인에게 신고를 당해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그 후 억울한3년 형을 선고받았고, 2016년7월11일에 창사시 위화구(雨花區)샹장로(香樟路) 528호에 위치한 후난성 여자감옥으로 보내져 불법 감금됐다.

후난성 여자감옥에서 진푸완은4차례나‘속박 옷’(형기를 당하는 자의 신체를 묶어 심각한 신체적 고통을 주며 쉽게 불구로 만드는 고문)을 입는 시달림을 당했다.그리고3차례나 창문 위 난간에 매달려 발끝만 땅 위에 닿게 하는 고문을 당했는데,이로 인해 오른쪽 손 여러 손가락이 불구가 됐다.그녀는 잔혹한 박해에 대해 단식으로 항의했다가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전기 충격을 당해 콧구멍이 마찰로 부상을 입었는데 여태껏 상처가 남아있다.진푸완에게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거나 세수도 허락하지 않았다.거의 출소시기에 가까워졌을 때 진푸완은 매우 수척해졌고 겨우40여 세인 사람이 머리칼이 이미 절반이나 희어졌다.

酷刑演示:吊挂
고문 재연
매달기 고문

문장 속에서는 여자 감옥에서 다른 파룬궁수련생도 박해를 매우 심하게 당했다고 말했다.감옥 경찰의 지시를 받은‘자쿵(夾控,수감자로 이뤄진 감시원)’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욕하지 않으면 때렸는데 태도가 몹시 악랄했다.자허현(嘉禾縣)파룬궁수련생 리쥐메이(李菊梅)는 한번은 자쿵에게 구타당해 전신이 시퍼렇게 됐다.화이화시 파룬궁수련생 탕카이쥐(唐開菊)는 한 번은 구타당해 발에 부상을 입어 병원에 업혀갔다.그리고 한 차례는 탕카이쥐를 핍박해 이른바‘4서(四書:수련 포기 각서)’를 쓰도록 하기 위해 감옥 경찰은 죄수에게 지시해 탕카이쥐에 대해 혹독한 구타를 하게 했고 게다가 탕카이쥐의 옷을 전부 벗겼다.후베이(湖北) 퉁청현(通城縣)파룬궁수련생 후관샤(胡關霞)는 꼬박3일 동안‘속박 옷’입기 고문을 당했는데,저녁에 잠을 잘 때마저 벗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그 기간,죄수 쑹펑샹(宋風翔)은 또 손으로 후관샤를 꼬집으며 그녀의 수면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 이것은 후난성 여자감옥의 악행이 절대 처음 폭로된 것이 아니다. 2000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잇따라 박해를 당한 많은 파룬궁수련생과 정의로운 민중이 투서해 밍후이왕에,후난성 여자감옥 감옥 경찰이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위반하고,인권을 짓밟은 악행을 폭로했다.밍후이왕에서, ‘후난성 여자감옥’혹은‘창사(長沙)여자감옥’하고 칸은 띄우고‘박해(迫害)’라는 단어를 보태 검색을 진행하면,모두500여 편의 문장과 소식이 있는데,피해자의 피눈물 어린 이러한 박해들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다.이것은 모두 장래 악행을 저지른 자를 추적하는 가장 유력한 증거다.이하는 고작 몇 개의 전형적인 박해 사례만 기록했을 뿐이다.

자추이잉(賈翠英)은 지서우(吉首)시 파룬궁수련생으로,불법적인5년형을 선고받아, 2001년 하반기에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감옥 경찰의 지지 하에‘자쿵’범의 자추이잉에 대한 박해는 믿는 데가 있어 두려움 없이 늘 그녀에 대해 욕설을 퍼붓고 학대했다.장시간 비인간적인 학대는 원래 건강하던 자추이잉에게 심각하게 수척해지고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게 했다.병원에 의해 심각한 척추염에 걸렸다는 진단이 내려졌는데, 2004년6월에‘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았다.같은 해10월20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는데,향년60세였다.

허비강(賀碧剛)은 러우디(婁底)시 파룬궁수련생인데, 2001년에7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아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믿음을 견지한 이유로 허비강은 수많은 고문 학대를 당했다.여러 사람에게 혹독한 구타,매달기 고문,거꾸로 채우기,전기봉에 의한 전기충격,독극물을 주사하기, 7~8명이 그녀를 땅에 억누르고 석회물 주입하기 등 고문을 당했다.동시에 강제로 그녀의 손을 잡고 파룬궁을 비난한 모함 자료 위에 지장을 찍게 하기도 했다.폭력적인 모욕을 진행한 상황에서 허비강은 박해를 당해 정신이상이 됐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었다. 2008년3월 3일에 출소해 여태껏 허비강은 여전히 정신 이상이 되어 스스로 생활하기가 불가능한 상태로 어쩔 수 없이 칠순인 부모님의 보살핌에 의거하고 있다.

창더(常德)시 파룬궁수련생 인훙(尹紅),왕샤오췬(王曉群)은 각각8년 형, 7년6개월 형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고, 2006년6월에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여자감옥 6감구1대에서 이른바‘4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훙은 세워두기 고문,수갑 채우기 고문을3개월 동안 당했다.그중 두 차례는 연속 꼬박6일 동안 수갑을 채웠는데,이로 인해 인훙의 두 손은 거의 불구가 될 뻔했고 중증 이명 증상이 나타났다.출소해 지금까지 청각을 잃은 귀는 여전히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왕샤오췬은 예전에 매일20시간 동안 세워두기 고문을 당했는데 어떤 때는 하루에22시간 넘게 서있었다.겨우 침대에 오른1시간 넘는 동안에도 또 불러 깨워 세워두는 고문을 진행해 발,다리의 피부는 부어올라 투명했는데,마치 수시로 터질 것 같았다.어떤 때에는 서 있다가 아주 멀리까지 푹 쓰러져 나갔다.그 후 또 온종일 쭈그려 앉히기 고문을 가한다고 고쳤는데,밥을 먹을 때마저 서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둔부가 만약 땅에 닿으면 죄수는 곧 뜨거운 보온병을 들고 와 그녀의 몸 위에 끼얹었다.

가짜 경제 효율은 여자감옥 관계자 전원의‘정치적 업적’이 됐다. 2005년12월, 후난성 여자감옥은 이른바‘부급 현대화 문명감옥’으로 평가받았다.허위적인 영예를 얻은 동시에 이 감옥 및 그 책임자는 또 매체에서 자신을 미화하고 포장함을 잊지 않았다.하지만 후난성 여자감옥의 선명한 면사포 하에 덮어씌워진 것이 이 같은 양심과 최저선이 없는 파룬궁수련생에게 가한 폭력과 죄악임을 누가 알겠는가?

‘선악에는 응보가 있음’은 천리다.민간에는,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 사람은 속일 수 있으나 하늘은 속일 수 없다는 옛말이 있다.후난성 여자감옥에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악행은 제 딴엔 높다란 담장과 철조망의 격리,정보와 언론 봉쇄(여자감옥은 여태껏 여전히 불법적으로 여러 명 파룬궁수련생의 면회권을 박탈해 가족의 정상적인 면회를 불허함)가 있으므로,매체가 감히 감독하고 참견하지 못하고,국민이 감히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때문에 악행을 진행함에 특별히 거리낌 없었고 마음대로 했다.뜻밖에‘머리 석자 위에 신령이 있고’하느님이 죄행을 전부 기록하고 있음을 전혀 몰랐다.단지 하느님이 자비하셔서 사람에게 회개하고 잘못을 고치는 기회를 주어 업보를 받는 시일이 아직 닥쳐오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이야기를 시작하면,후난성 여자감옥은 인과응보를 받은 것이 적지 않다.당시 감옥장 자오싱윈(趙星雲)은2001년부터 여자감옥에서8년간 근무했는데,후난성 감옥 계통 내에서 가장‘능력’있는 간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져,큰 권력을 손에 잡고 한때 떵떵거렸다.하지만 인간의 계산은 하늘의 이치보다 못했다.마침 자오싱윈이 혼자서 득의양양해하고 경쟁을 통해 감옥관리국 부국장 직무를 초빙 받으려 할 때인2009년5월,후난성 감옥관리국 전 국장 류완칭(劉萬淸)이 파룬궁 박해의 업보로‘솽구이(雙規,사법 기관이나 기율검사위원회가 비리 혐의 간부를 조사하는 것)’를 당해 자오싱윈의‘승진의 꿈’은 이로써 그쳤다.같은 해7월, 자오싱윈은 연루를 받아 후난성 기율검사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10만 위안(약 1,635만원)의 뇌물을 주고3만 위안(약 490만원)을 수뢰한 이유로 자오싱윈은 결국 면직당하고 처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몇 해 동안 여자감옥 감옥 경찰 중에는 이혼하고,질병을 앓고,투자 실패를 당한 그런 사람이 많다.수련생을 박해하면 복을 잃는 큰일로서 이와 같이 부덕한 일을 하면 자신의 인생에 좋은 점이 있을 수 있겠는가?운수가 순리로울 수 있겠는가?순리롭지 못함에 마주쳤을 때,왜 생각해 보지 않는가?이 일이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닥치고 다른 사람에게는 닥치지 않았는가?자신이 무슨 마음이 켕기는 일을 하지는 않았는가?

측천무후 시대의 많은 포학한 관리는 당시 상급의 위세를 믿고 무고한 좋은 사람을 박해할 때 얼마나 안하무인격이고 포학했는가?수단은 또 얼마나 수법이 새롭고 더욱 격화됐는가?그러나 말로는 무엇인가? ‘자기 덫에 걸리다’는 고사는 틀림없이 다들 모두 귀에 익은 말이라고 생각한다.역사의 교훈은 사람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후난성 여자감옥 안의 현대판 포학한 관리들은 어느 날 중국공산당이 해체해 모든 죄악이 모두 백주 대낮에 폭로될 때 어떠한 결말에 직면하겠는가?!

원문발표: 2018년 10월 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0/7/3754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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