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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칭시 장파이가 경찰에 의해 당한 11년 동안의 억울한 누명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장파이(姜湃)는 키가 큰 건강한 여성이다. 까무잡잡한 건강한 피부색에 성실하고 순박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성격도 활달하다. 대학 학력에 머리가 총명해 기억력이 뛰어나고 괜찮은 직장도 있었으며 부모님이 애지중지 하는 딸이다. 하지만 11년 전 장파이는 참혹하게 사망했다. 그때 나이는 겨우 34세였다.

姜湃
장파이

2007년 4월 26일, 장파이는 국보(국내안정보위국) 경찰 펑하이보(馮海波) 등에게 납치돼 학대를 받았다. 겨우 2개월 만인 6월 28일 0시에서 1시 사이, 장파이는 다칭(大慶) 유톈(油田) 총병원 중환자실에서 호흡이 멈췄다. 사망할 때 두 발에는 5킬로그램의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병원에서 검사할 때 그녀의 몸이 극도로 허약해진 상태에서 경찰관은 또 그녀를 때리며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장파이가 세상을 떠난 지 열흘 만에 시신이 화장됐고 당시 10여명의 경찰관이 장례식장에서 엄격히 방비하며 사수했다. 억울한 누명은 오늘날까지 11년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장파이의 억울한 사정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끊임없이 목격자와 내막을 아는 사람들이 더욱 많은 사실과 단서를 쏟아내면서 장파이의 사망을 조성한 원인이 갈수록 더 분명해지고 뚜렷해졌다.

1. 속임수로 납치당해 함정에 빠지다

장파이는 헤이룽장성 다칭 석유화학 공업 총공장 화력발전소 직원이었다. 1999년 파룬궁은 장쩌민 집단의 거짓말로 먹칠을 당했고 폭력으로 탄압된 후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며 신앙을 굳게 지키던 그녀는 강제적으로 근무 연한을 돈으로 계산해 지불받고 퇴직 당했으며 여러 차례 불법 체포돼 박해를 당했고 의지할 곳을 잃고 살 곳을 찾아 떠돌아다녔다.

고달픈 나날 속에서 동포들이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을 간파하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알게 하며 사람을 제도하는 불법(佛法)과 인연을 맺도록 장파이는 의무감으로 ‘방화벽을 넘어서 차단된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술을 가르쳤고 사람들에게 인터넷 차단을 뚫고 진상의 창구를 여는 것을 가르쳤다. 자신이 장악한 컴퓨터 전문 기술을 이용해 무상으로 파룬궁 수련인들의 진상 알리기에 지지와 도움을 제공해주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선행은 중국공산당이 두려워하고 용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욱 불행하게도 그녀의 행동은 중국공산당 국안(국가안전기구)과 국보가 극단적인 감시 통제 수단을 피하지 못했다. 파룬궁 수련인의 진상 자료점을 찾아 파괴하기 위해 그들은 한 젊은 여성에게 잔인하고도 극단적인 수단을 썼다.

7년간 실업한 그녀는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을 갈망했고 그녀를 사랑하는 부모님은 나이가 많은 미혼인 딸이 보통의 여성처럼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을까! 그리하여 장파이의 기존 직장 책임자가 그녀가 직장으로 돌아오면 출근하도록 해주겠다며 굳게 맹세하고 약속했을 때 그녀와 부모님은 정말인 줄 알고 매우 기뻐했다.

2007년 4월 26일 오전 9시 무렵, 장파이는 직장 책임자와의 약속에 따라 출근했다. 뜻밖에도 회사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칭시 공안국과 워리툰(臥裏屯) 공안국 분국의 경찰관들이었다. 이렇게 그녀는 다칭 국보, 워리툰 공안분국 경찰관들과 회사 책임자들이 함께 꾸민 함정에 빠졌고 펑하이보 등 다칭 국보 경찰관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2. 장파이의 사망을 초래한 것은 단식이 아니라 고문

장파이를 불법 체포하고 고문하며 감옥 수감에 참여하고 직접 지휘한 것은 다칭시 공안국 국보대 경찰관 펑하이보와 워리툰 공안분국 부국장 장이칭(張義淸)이다. 장파이는 2007년 4월 26일 체포되어 4월 30일 다칭시 구치소 감방 404호실로 보내졌는데 이 4, 5일의 기간 동안 어디에 수감됐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다. 구치소 수감 기간 동안 국보 경찰관 펑하이보 등은 끊임없이 구치소에 와서 불법적으로 장파이를 심문했고 끊임없이 고문하여 자백을 강요했다. 장파이가 세상을 떠나기 2주 전, 또 두 명의 죄수에 의해 부축을 받으며 심문 받으러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장파이는 체포되기 전 매우 건장했고 체중은 70kg였으며 아무런 질병이 없었다. 그러나 구치소 감방에 나타난 장파이는 비정상적으로 야위었고 구토하고 기침하며 각혈이 멈추지 않았으며 자주 의식을 잃었다. 그녀는 같은 감방 수감자들에게 이야기했다. “펑하이보는 책을 저의 흉부에 올려놓은 다음 고무파이프로 책을 사이에 두고 복부를 힘껏 쳤습니다……”

그러한 고통은 참기 힘들었으며 충격으로 내장 손상은 충분히 치명적이었으나 오히려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장파이는 또 전기 충격과 겨자기름 주입 등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펑하이보가 말한 적이 있다. “너희들이 인터넷에서 말했던 것은 모두 정말이다.” 수년전 파룬궁 수련인을 한 명씩 납치할 때마다 펑하이보는 모두 이렇게 위협했다. “너희들은 장파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장파이가 줄곧 브레이크 댄스를 출 때까지(쇠의자에 앉아 전기 고문을 당하는 것을 가리킴) 장파이를 3일 동안 쇠의자에 앉아있게 했지.”

酷刑演示:绑在铁椅子上电击
고문 시연
: 쇠의자에 묶여 전기 고문을 당하다

국보 대대의 다른 한 경찰관이 말했다. “장파이가 우리 여기에서 세 차례의 돌격을 당했다(겨자기름 주입).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며 무엇을 말하라고 하면 그녀는 곧 무엇을 말해야 했다!”

겨자기름 주입은 사람을 극도로 고통스럽게 하고 몸에 상처를 극도로 심하게 하는 고문법이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데 일본인들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항일 애국자들에게 고춧물을 주입했는데 참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겨자기름을 주입당하는 고통과 상처의 정도는 고추를 훨씬 능가한다.

酷刑演示:野蛮灌食
고문 시연
: 야만적인 음식 주입

경찰관에 의해 겨자기름을 주입당한 사람은 신체 표면적으로 아무런 외상이 없고 고문을 받은 흔적이 조금도 보이지 않지만 내상은 극히 심각해 완쾌되기 매우 어렵다. 피해자는 일반적으로 호흡곤란, 질식, 흉통, 흉민, 기침, 음식을 먹지 못하며 식도가 끓는 물에 데워진 것과 같다.

밍후이왕 2015년의 한 편의 보도에 따르면, 다칭시 인민병원 간호사 류잉(劉瑩)도 파룬궁 수련인이었는데 그녀는 2007년 8월, 다칭 국보대대에 의해 겨자기름을 주입당했던 무서운 경험을 이렇게 자술한 적이 있다.

“밤에 남자 3명과 여자 1명이 밖에서 뛰어 들어와 마치 흉악한 귀신처럼 제 머리를 잡고 뒤로 젖힌 다음 겨자기름을 듬뿍 묻힌 대형 마스크로 입과 코를 단단히 틀어막았는데 겨자기름의 자극적인 냄새에 저는 줄곧 기침했고 콧물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경찰관들은 반복해 마스크에 겨자기름을 부었고 반복해 입과 코를 틀어막으며 작용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또 한밤중에 나가서 일본에서 수입한 겨자기름을 사왔고 20밀리리터 굵직한 주사기로 바꿔 겨자기름을 가득 뽑아내어 직접 제 콧구멍에 힘껏 안으로 밀어 주입했습니다. 즉시 제 전체 흉강이 불에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은 참을 수 없었으며 아픔이 가슴을 관통했고 심장과 폐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미친 것처럼 눈을 뜰 수 없었고 사람 전체가 붕괴될 것 같았습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한 그런 고통의 느낌은 인간의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붕괴되지 않도록 고통을 애써 참았고 제 의식은 거의 정상이 아니었으며 혼절했습니다. 경찰관들은 찬물을 몸과 머리 위에 뿌렸고 제가 깨어나면 다시 주입했으며 겨자기름을 다 주입하고 나면 다시 물을 주입했습니다. 이렇게 반복적인 시달림 끝에 저는 여러 차례 의식을 잃었고 여러 번 찬물에 끼얹어져 깨어났으며 깨어난 후 담뱃불로 지졌습니다. 한 경찰관이 한 편으로 주입하면서 한 편으로 말했습니다. ‘너 장파이 알아? 우리가 그녀를 쇠의자에서 전기가 통하게 한 채로 이렇게 주입했지.’”

“경찰관은 제 머리를 잡아당긴 채 한 편으로 손으로 얼굴과 머리 부위를 때리며 한 편으로 욕을 퍼부었습니다. 이렇게 하룻밤 동안 내내 시달려 머리카락은 한 무더기 빠졌고 머리카락은 바닥의 흙탕물과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어 참혹해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제 온 몸은 탈수됐고 옷이 흠뻑 젖어 하룻밤 사이에 사람 전체가 반쪽이 됐습니다. 현장의 죄악을 덮어 감추기 위해 이튿날 출근하기 전 무렵 경찰관들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제 머리를 빗겨주었습니다.”

3. 구치소의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이 장파이의 죽음을 가속화시켰다

장파이는 고문에 시달려 내장이 심하게 손상됐고 식도와 기도에 화상을 입었다. 음식을 먹을 수 없었으므로 구치소에서는 매일 그녀에게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그녀는 걸을 힘이 없어 누군가에 의해 부축을 받아 음식물을 주입하러 다녔다. 경찰관들은 그녀에 대해 자주 악담을 퍼부었고 걸핏하면 ‘넌 살지 못할 거야’ 등등으로 그녀를 저주했다.

당시 다칭 구치소의 음식물 주입 목적은 절대로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감자들을 괴롭히고 제압시키기 위한 다른 종류의 방법이었다. 많은 사람이 단식할 경우 음식물 주입 호스는 일반적으로 몇 사람이 한 개를 공동 사용했으며 사용해 고장이 날 때까지 여러 차례 반복하여 사용했다. 한 파룬궁 수련인의 식도에서 뽑아낸 다음 찬 물로 한 번 헹구면 ‘소독’한 셈이었다. 그 다음 바로 수련인의 콧구멍과 식도 내에 삽입했다. 음식물 주입을 할 때 경찰관과 음식물 주입에 협조하는 죄수의 동작은 매우 거칠고 난폭했으며 태도가 악랄했고 끊임없이 귓가에 욕을 퍼부었다.

음식물 주입 고문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대체로 줄을 삽입해 음식물 주입을 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정도의 토혈 또는 코피 증상이 있으며 고통은 참기 어렵지만 구치소에는 상관하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으며 예전대로 여전히 음식물 주입을 했다. 2005년 다칭의 한 범죄자는 사람과 말다툼을 하다가 억울하게 됐는데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게 되어 마음이 괴로워 밥을 먹지 못하게 됐다.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자 경찰관은 그녀가 ‘정부’에 대항한다고 생각하여 관례에 따라 그녀에게 야만적으로 음식물 주입을 했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 죄수는 바로 용서를 빌며 순순히 ‘작업’에 협조하며 자발적으로 밥을 먹었다. 일이 발생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그는 음식물 주입 경험을 떠올리기만 하면 여전히 매우 두려워했다.

酷刑演示:野蛮灌食(绘画)
고문 시연
: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음식물 주입으로 사망 사건이 수시로 발생하는데 사망지표가 있기 때문에 구치소에서는 이 점에 개의치 않는다. 2002년과 2005년 뤼슈윈(呂秀雲), 왕수친(王淑琴), 양위화(楊玉華) 3명의 파룬궁 수련인이 차례로 음식물 주입으로 사망했으며 구치소에서는 아무도 이를 위해 책임지지 않았다.

내장과 식도, 호흡기가 심각하게 손상된 장파이는 사실 이미 음식물을 먹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으며 말하는 것조차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구치소의 의사와 경찰관들은 장파이가 음식 주입 거부를 관리에 저항하는 ‘단식’이라고 말했는데 그녀에 대한 음식물 주입은 설상가상이나 다름없다.

그녀는 밥을 먹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장의 고통으로 배고픔을 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번은 의식을 잃었을 때 장파이는 갑자기 같은 수감방의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제 어머니가 맛있는 것을 가져다 주셨어요……당신들 보세요, 맛있는 것이 이렇게 많아요. 여러분도 드세요! 얼른 드세요……”

심한 고통과 끊임없는 배고픔, 그리고 잔인무도한 학대 속에서 그녀는 유일하게 환각 상태에서 모성애의 따뜻함을 누렸고 어려운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눴다.

4. 고문의 진상을 덮어 감추고 구급치료하지 않았으며 일부러 치료시기를 놓치다

2007년 5월 22일, 박해를 당해 의식을 잃은 장파이는 다칭 인민병원으로 보내졌다. 말하는 바에 의하면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담낭 결석으로 인한 각혈과 혼수상태라고 했다. 아마도 장파이 가족들이 각혈과 혼수상태가 고문과 학대로 조성된 것임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장파이는 전혀 담결석을 앓지 않았다. 또 어쩌면 이들은 승진을 위해 장파이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에 급급했을 수도 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펑하이보와 장이칭은 장파이에게 퇴원 수속을 시켰고 다시 장파이를 구치소로 납치해 계속 자백을 강요했다.

구치소의 의료 조건은 한계가 있기에 가족들은 장파이가 병원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수속을 요구했다. 장이칭이 답변했다. “병이 없는데 무슨 입원을 해!” “누구나 보석을 받아 치료 받을 수 있지만 장파이만은 안 된다.” 게다가 장파이에 대해 체포 영장을 내려 형을 선고하겠다고 말했다.

반복적인 고문과 자백 강요 및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은 장파이의 건강 상태가 갈수록 나빠지게 만들었다. 같은 감방 사람이 말했다. “2007년 6월 23일(토요일) 아침, 장파이는 거의 임종이 가까워져 경련이 일어났고 의식을 잃어 깨어나지 못했으며 대소변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그녀들은 너무 두려워 구치소 경찰관들에게 구급치료를 간청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이었으므로 구치소에는 의사가 없었고 구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23일과 24일 국보대대와 워리툰 분국, 구치소, 3자 책임자들 중 나서서 장파이를 병원에 데려가 의사에게 보여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연속 이틀간 장파이는 고독하게 사선에서 몸부림쳤고 같은 감방 죄수들도 속수무책으로 이 선량하고 무고한 젊은 여성이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눈뜨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약 25일 또는 26일 무렵에야 장파이는 다칭 유전 총 병원 2부 26병원구역 12호실에 입원할 수 있었다. 목격자 말에 의하면 장파이는 한 명의 남성 경찰관과 한 명의 여성 경찰관에 의해 다칭 유전 총병원으로 옮겨진 것이며 모습은 처참했다고 한다. 병원에 입원한 후 MRI검사를 할 때 위태로운 상태임에 불구하고 경찰관은 그녀를 때리며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다른 환자들의 가족들마저 지켜보기 힘들 정도였으며 분노하며 말했다. “죄수는 사람이 아닌가요!”

26일 날 밤 장파이의 부모가 소식을 듣고 급히 문병을 왔다가 장파이가 감호실 내에서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채로 침대 위에 있었고 두 명의 경찰관이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이미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으며 발에 청자색을 띈 곳이 있었고 부종이 있었으며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어 말을 할 수 없었다. 물을 조금씩 입 속에 넣으면 장파이는 끊임없이 기침을 했다. 의사는 아무런 병도 검사해내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오직 영양제만을 놔주며 생명을 유지시켰다.

6월 27일, 장파이가 완전히 혼절해 깨어나지 못해 응급조치를 취해도 효과가 없게 된 상황에서 일가족은 불에 타는 듯한 초조한 마음으로 눈물을 머금고 시 공안국 국보 대대와 시 인민 검찰원, 룽펑구(龍鳳區) 인민 검찰원에 가서 석방을 요구했으나 ‘법적 절차대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6월 28일 깊은 밤 0시에서 1시 사이 원래 신체가 건강했던 장파이는 다칭 유전 총병원에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밤 광풍이 사납게 몰아쳤고 천둥번개가 쳤다. 천둥소리는 마치 지붕 위에 떨어진 것 같았고 번개는 창문 앞에 걸려 있는 듯 했다. 몇 시간 동안 천 번에 가까운 번개가 쳤고 장파이를 감시 관리하던 경찰관은 놀라서 바들바들 떨었다. 다음날 정오에는 또 호우가 쏟아졌고……현지 방송국에서는 ‘벼락으로 인해 전선이 끊어졌고 수많은 큰 나무들이 뿌리와 함께 뽑혀졌으며 유정은 200여 가구가 생산을 중지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마음이 어질고 선행을 베풀던 여성이 잔혹하게 학살되어 천지가 진노했다!

5. 펑하이보 등은 장파이의 아버지를 속이고 협박해 화장에 서명하게 했고 시신을 훼손해 증거를 없앴다

장파이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녀의 부모와 가족은 슬픔이 극에 달했다. 선량한 모친은 몹시 후회하며 말했다. “그들이 저를 속여 아이를 찾아 출근시키게 한 거예요. 결국 내 자식이 죽었어요,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

펑하이보와 장이칭은 장파이 부모를 속여 장파이가 정부와 대항했는데 법률을 위반하고 중죄를 범했으며 장파이는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단식 자살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보대대 경찰관 리위춘(李育春)은 장파이가 ‘뇌막염’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시 구치소 장(張)씨 소장은 장파이가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말하며 그녀가 자주 채식해 영양결핍으로 심장병 재발을 초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파이의 부모는 슬픔과 자책에 잠겨 마음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이런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모순된 말들은 악인이 범죄의 책임을 남에게 덮어씌울 때 하는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국보 경찰관들이 나쁜 짓을 하는 수법의 사악한 정도는 선량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상상하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므로 펑하이보 등이 사전에 잘 꾸며놓은 몇 십 페이지의 자료를 내놓고 장파이 아버지에게 딸의 시신을 화장하는 것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게 했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선량하고 후덕한 아버지는 이것이 악인이 그의 딸을 학살한 범죄 증거를 덮어 감추고 시신을 훼손해 증거를 없애기 위한 음모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갑자기 육친을 잃은 슬픔과 중국공산당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 그리고 악인의 거짓말에 대한 경솔한 믿음은 그들의 마음의 지혜를 혼란스럽게 했고 그들에게 사랑하는 딸을 위해 공정함을 받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를 놓치게 했다. 그러나 딸이 임종 전 침대 위에서 족쇄와 수갑이 채워진 채로 의식을 잃어 깨어나지 못하던 처참한 장면은 부모의 기억 속에 영원히 각인됐다.

6. 펑하이보는 왜 감히 살인하고 무법천지일 수 있는가?

펑하이보는 현재 50대 초반으로 성격이 사나우며 흉악하다. 약 2006년 다칭 공안국 국보대대 모 대대 부대장을 역임했고 그 이전에는 다칭 구치소 소장을 역임했다.

冯海波
펑하이보
(馮海波)

펑하이보가 장파이를 살해했을 때 40세였으며 20, 30세의 거칠고 무모한 청년이 아니었다. 장파이 부모의 선량함과 경솔한 믿음으로 펑하이보는 요행히 잠시 재난을 모면했다. 그러나 펑하이보에게는 조금의 죄책감이나 후회도 보이지 않았다. 장파이의 죽음을 교훈으로 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오만방자함을 격화시켰다. 그 후 몇 년간 그와 다른 국보 경찰관들은 자주 장파이의 죽음으로 다른 파룬궁 수련인들을 공갈 협박했고 심지어 그는 말했다. “장파이는 내가 때려 죽인거야! 내가 어떻게 됐는가? 나는 여전히 대대장이다!”

게다가 걸핏하면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내가 누구를 체포하고 싶으면 그를 체포할 수 있고 몇 년 형을 선고하고 싶으면 몇 년 형을 선고할 수 있다!”

장쩌민이 ‘때려죽여도 상관없고 맞아 죽으면 자살로 간주하라’는 밀령을 하달한 후 펑하이보는 자신이 파룬궁 수련인들을 죽이고 살리는 것을 결정하는 천상의 보검을 갖게 되어 사람을 때려 죽여도 목숨으로 갚지 않아도 된다고 정말 믿었을 수 있다. 그가 생각지 못한 것은 그가 있는 힘을 다해 진선인(眞善忍)을 신앙하는 그런 여성과 노인들을 체포해 그들의 피와 눈물을 짓밟고 위로 기어오르는 것을 꿈꾸고 있을 때, 몇 년 후 저우융캉(周永康), 보시라이(薄熙來), 리둥성(李東生) 등 장쩌민파인 ‘혈채방(血債幫)’ 무리의 간부들이 잇달아 낙마했는데 그는 고위관리의 꿈이 물거품이 됐을 뿐만 아니라 살인자로서 시시각각 법적 책임을 추궁당할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최근 몇 년간 펑하이보의 악행이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그는 진정하게 깨닫지 못했으며 여전히 강경한 수단으로 파룬궁 수련인들을 대하고 악행의 수단도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고문의 위험이 크면 바로 거짓으로 꾸몄다. 몇 십 부의 자료가 선고를 내리기에 부족하면 뒤에 ‘0’ 하나를 더 추가했다. 증인의 증언 없이 마음대로 꾸며서 서류를 작성했다. 거짓 기록을 잘 만들어 놓은 다음 사건 처리 담당자의 성명을 하부 조직 경찰관의 이름으로 바꾸어 놓고 자신의 책임을 깨끗이 회피했다. 형을 선고해 당사자가 변호사를 부르면 변호사에게 문건을 조사하지 못하게 하며 여러 가지 수단으로 괴롭힐 뿐만 아니라 협박하기도 했다. 또 변호사를 청할수록 형 선고를 더욱 심하게 내리게 만드는 등이 있었다.

상사가 “펑하이보가 일을 매우 잘한다”고 그를 칭찬할 때 그는 득의양양해하며 또 승진의 희망을 보곤 했다. 피해를 입은 파룬궁 가족들이 관련 기관을 찾아가면 사람들은 “펑하이보를 찾아야 한다”고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다. 그는 정말 자신이 대체할 수 없는 권위를 갖고 있다고 느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장쩌민파의 대세가 이미 저물어가고 있고 ‘6.10’이 직위도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이 가득 차 있어 두려워 피할 겨를조차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게 됐을 때 펑하이보는 오히려 하나의 나사못처럼 국보 대대 모 ‘6.10’ 대대장 이 위치에 단단히 박혀있었다.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는 마치 양날의 검처럼 진(眞)을 수련하고 선(善)을 향하는 파룬궁 수련인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힘과 동시에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과 각급 정부 관리들을 속이고 협박해 불법(佛法)에 대한 죄를 짓도록 했으며 그들로 하여금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게 했으며 스스로 알지 못하게 했는데 매우 슬픈 일이다. 중국공산당에게 있어 이른바 ‘법 집행자’는 단지 몽둥이에 불과하다. 그것이 당신이 필요할 때 당신을 하늘 높이 떠받들지만 당신이 필요 없게 됐을 때에는 헌신짝처럼 버린다. 그것이 위급할 때에는 당신은 그것의 희생양이 된다. 어떤 명의로 선량한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해 징벌을 취하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법에 위배되는 범죄행위이며 이런 천리에 위배되는 범죄 행위는 반드시 기소와 엄중한 처벌 및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이 근본적인 시비와 선악 앞에서 자신들의 양심의 한계선을 점검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결말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장파이 죽음의 진상을 다시 새롭게 정리한 것은 펑하이보와 여전히 요행심리로 파룬궁 수련인 박해에 참여하고 있는 그런 공검법 인원들에게 되돌아오지 못할 길에서 폭주하는 것을 즉시 멈추도록 각성시키기 위한 것이다! 진상이 일시적으로 가려질 수 있지만 영원히 덮어 감추어질 수는 없다. 파룬궁에 대한 범죄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과 같다. 특히 펑하이보, 당신 가정이 안녕치 못하고 번거로움이 끊이지 않을 때, 당신이 질병에 시달리지만 오히려 아픈 것을 감출 수밖에 없을 때, 한밤중 꿈속에 원혼이 들어와 두려워도 도움의 손길이 없을 때, 당신은 정말 천벌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는가? 사람이 다스리지 않으면 하늘이 다스리며 선악에는 반드시 응보가 따른다. 인간 세상의 보응은 단지 세인을 각성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지옥의 보응이야말로 악업(惡業)을 갚는 과정이며 자자손손에게도 화를 미치게 될 것이다.

원문발표: 2018년 9월 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9/1/3732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