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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박해 당한 헤이룽장 양펑롄, 2014년에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헤이룽장성 지둥현(雞東縣) 파룬궁수련생 양펑롄(楊鳳蓮)은 2011년 8월 지둥 구치소로 납치된 기간에 독극물 주사를 맞았는데 살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박해를 당해 인사불성이 되고 장기가 쇠약해졌는데 결국 2014년 12월 24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杨凤莲遗照
양펑롄의 생전의 사진

양펑롄은 1955년헤이룽장성 지둥현 지둥진 핑양향(平陽鄉) 신파촌(新發村)에서 태어났다. 이전에는 건강이 아주 나빴다. 림프결핵, 폐기종, 유방암 등 질병을 앓은 적이 있다. 1998부터 파룬궁을 수련한 후 온몸에 병이 없이 가벼웠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 우두머리 장쩌민은 자신의 고집대로만 행동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해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고, 육체를 소멸한다’는 소멸 정책을 실시했다. 같은 해 12월, 양펑롄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평가를 요구했다. 톈안먼 광장에서 경찰에게 납치됐는데, 당시 경찰은 무차별 폭력을 가해 그녀의 머리를 구타해 기절시켰다. 차 위에 오른 후 정신을 차렸는데 그 후 창산(常山) 노동교양소로 이송됐다. 양펑롄이 주소를 말한 후 지둥현 공안국 경찰은 현지로 돌려보냈다. 지둥현 핑양향 부향장과 비서가 집으로 와서 현금 3천 3백 위안을 갈취했다. 그리고 지둥현 공안국에 의해 현금 2천 위안을 갈취당했다.

2011년 8월 사이에 양펑롄은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악인에게 신고를 당해 지둥현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돼 지둥구치소에 갇혔다. 박해를 저지하기 위해 양펑롄은 단식으로 항의했다. 구치소에서는 한 조선족 여 죄수에게 지시를 내려 독극물을 주사했다. 매우 빨리 주사를 맞은 곳은 큰 혹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8~9센티미터의 크기였다. 그 후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中共酷刑示意图:注射药物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 독극물을 주사하다

양펑롄이 박해로 인사불성이 되어 이미 걸을 수 없게 돼서야 가족에게 통지를 보내 면회하게 했는데 단지 장기가 쇠약해졌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녀의 아들이 면회하러 갔을 때 어머니가 땅 위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지시광산 본원으로 갔는데 의사는 이렇게 심각한 환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또 지시 위생학교로 갔는데 대뇌 출혈이라는 진단이 내려져 20일 동안 입원했어도 치료되지 않았다. 그 의사와 간호사들은 또 류펑롄이 우울증이 있어 병원을 옮기라고 했다. 다시 지시시 청쯔허구(城子河區)의 한 정신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에 도착한 후 그의 사지를 침대 위에 묶었다. 남편은 그녀에게는 정신병 병력이 없다고 말했다. 아내가 시달림을 감당하는 것을 보고, 이틀 동안 입원하고는 퇴원했다. 합해서 2만 위안이 넘는 돈을 써도 치료되지 않았다. 돈이 없어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없어 더 이상병원을 가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양펑롄은 밥도 먹을수 없고 걷기도 매우 힘들었다. 몸의 문드러진 곳에서는 줄곧 진물이 흘러 내렸고 기타 부위에서도 혹이 생겨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정신과 육체적인 이중 박해 속에 3년 후인 2014년 12월 24일, 양펑롄은 억울하게 사망했다.

19년 동안 중국공산당은 파룬궁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강제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하기 위해 그로 하여금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한 극히 깡패스럽고 잔인한 많은 학살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독극물 주사로, 이는 칼을 사용하지 않는 사악한 살인 수단이다.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음이 천리다. 박해에 참여한 자는 도망칠 수 없다. 만약 잘못을 고쳐 새롭게 행동하지 않으면 모두 박해 원흉 장쩌민의 순장품이 될 것이다.

원문위치: 2018년 8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8/15/3724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