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후베이 보도) 웨이룽(魏龍)은 올해 40세이다. 8년 전 2010년 11월 9일, 베이징에서 납치당해 징역 6년형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베이징시 톈허 교도소와 후베이성 사양(沙洋) 판자타이 교도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판자타이 교도소는 독방에 가두기, 폭력적인 구타, 장시간 세워두기 고문, 대처하기, 욕설 퍼붓기, 바늘로 손톱을 찌르기, 판 쇠고랑이(板鐐) 채우기 등 갖은 수단으로 세뇌하며 전향을 시도했다. 2016년 11월 8일, 웨이룽은 집으로 돌아왔다.
웨이룽은 박해 당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나는 후베이성 우한시 사람이다. 2010년 11월 7일,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만들어 11월 8일 이른 아침, 베이징 하이뎬구 육교에 걸었다. 2010년 11월 9일 아침, 베이징 집에 있는데 파출소와 국가보안대대가 나를 납치해 하이뎬구 구치소에 감금했다.
하이뎬구 구치소는 극히 열악해 움직일 공간도 아주 협소하고 더러웠다. 매일 만두 5개와 국물 세 그릇을 주었고 3평 남짓한 곳에서 범죄자와 함께 1년 동안 감금한 후, 하이뎬구 법원에서 불법으로 판결했다.
법정에서 나는 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검사에게 이치와 도리에 근거해 변론했다. 검사는 나의 질문에 답변을 못했지만, 판사는 확실한 법적증거가 없음에도 징역 6년형을 선고했다. 나는 6개월 동안 감금당한 후 상소했으나, 베이징 중급인민법원은 개정하지도 않고 원심대로 판결했다.
그 후 내가 구치소에서 법 집행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며, 나를 베이징시 톈허 교도소에 감금했다. 7개월 후인 2013년 1월, 호적 소재지인 후베이의 사양 판자타이 교도소로 보냈다.
나는 2년 이상 베이징 교도소에 있는 동안은 공산당의 요구와 규범을 지키지 않았어도 심각한 신체 상해는 입지 않았다. 그러나 판자타이 교도소로 보내진 후, 사악한 박해의 암흑과 광기를 체험하게 되었다.
후베이성 사양 판자타이 교도소는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소굴인데, ‘전향기지’라고 불린다. 후베이에서 판결한 파룬궁수련생을 이곳으로 보내 강제로 전향시킨다. 파룬궁수련생 한 명이 전향할 때마다 감옥은 610 사무실(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임)에서 장려금 10여 만 위안(한화 약 1,670만원)을 받는다. 또한 교도소에서는 파룬궁수련생 전향에 참여한 교도관들에게 2~5만 위안(약 334~836만원)의 장려금을 준다.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두목과 보조 죄수는 대폭 감형해 조기 석방으로 우대한다. 성 610사무실은 전향율로 교도소와 교도관을 협박해 파룬궁수련생을 잔인무도하게 박해하게 했다.
판자타이 교도소에 불법 감금당한 4년 동안, 나는 줄곧 교도관이 죄수에게 요구하는 규범에 협조하지 않았다. 줄곧 죄를 인정하지 않아 교도관은 각종 구실을 찾아 각종 방식으로 나에게 육체적, 정신적인 학대를 했다. 잔인한 구타, 장시간 세워 두기, 화장실 못 가게 하기, 수면 박탈, 욕설 퍼붓기, 바늘로 손톱 찌르기 등 온갖 잔인한 수단을 동원했다.
5호 교도소에 있는 동안, 교도관은 장기간 범죄자를 보내 일상적인 행동을 감시하며, 타인과 파룬궁수련생 사이의 교류를 차단했다.
2015년 3월, 내가 교도소 안에서 강제 노동을 거부하고, 출석에 불참하고, 인원을 보고하지 않고, 반성문을 쓰지 않고, 교도관의 요구를 듣지 않자 5호 교도소에 새로 부임한 교도소장 ‘쭈젠(祖劍)’은 특별 관리로 나를 45일간 박해했다. 독방에 가두고 판 쇠고랑이 형벌로 손발을 나무판자 위에 사흘 동안 묶어 두었다. 효과가 없자 나를 5호 교도소로 돌려보내 계속 감시했다.
2015년 12월, ‘쭈젠’은 내가 죄수복을 입지 않자 11개월 동안 특별 관리로 나를 독방에 감금했다. 그는 내가 2016년 11월 8일에 석방돼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를 줄곧 박해했다.
특별관리 박해를 받는 동안, 교도관은 한 달 사이에 4차례나 ‘판 쇠고랑이’ 고문을 했는데 가장 길게는 5일이다. 나는 여러 차례 단식으로 항의했다. 죄수복을 거부한 이유로 2015년 가장 추운 12월에 홑옷만 입은 채 추운 감방에서 보내 손과 발, 얼굴마저 동상을 입었다.
2016년 8월, 새로 부임한 교도소장 ‘허카이(何凱)’는 내가 죄수복도 입지 않고, 특별 관리팀 규범에 협조하지 않는 것을 보고 최후통첩을 했다. 그래도 듣지 않자 방범초소 죄수를 위협해 나를 폭행하게 하고 수갑을 채워 알루미늄 문틀에 기절할 때까지 매달았다.
내가 기절하자 ‘호랑이 의자’에 앉혀 온몸을 묶어 꼬박 6일 동안 꼼짝하지 못하게 했는데,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6일 동안 항의 단식을 했다.
허카이는 6일 동안 형구를 채워 두 차례나 나를 작업실로 끌고 가 ‘자아비판. 투쟁의식 시위’로 인격모독을 했다. 나는 불법 감금 당한지 5년이 지나고, 독방에 가둬진 지 8개월이 되어 고문과 학대로 몸이 극도로 허약해져 위험한 상태에 처했다.
형벌을 당할 때 판자타이 교도소 교도관과 과장 샤오톈보(肖天波, 대법을 박해하는 4명)는 사람을 지시해 내 앞에서 대법과 사부님을 모욕하는 문자를 써서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6일 후, 교도관은 내가 굴복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계속하면 인명사고가 생길까 두려워 형구에서 풀어주었다. 그 후 독방에 보내 3개월 동안 단독 감금했다. 내가 교도소를 떠나기 전에는 몸을 회복하게 해 박해한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2016년 11월 8일, 나는 독방에서 교도소로 끌려나온 후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원문발표: 2018년 7월 1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7/13/3709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