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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다안시 한훙샤가 박해로 사망한 상세한 상황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성보도) 지린성(吉林省) 다안시(大安市) 파룬궁수련생 한훙샤(韓宏霞, 韓紅霞)는 2017년 3월 10일, 경찰에 의해 박해로 사망했다. 당시 겨우 58세였다. 진·선·인(眞·善·忍)을 따르던 선량한 사람이 이렇게 학살되었다. 경찰에게 납치되어 박해로 사망하기까지 5개월도 되지 않았다.

2017년 3월 8일, 가족은 한훙샤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급작스러운 통지를 받았다. 그녀는 3월 8일, 창춘시(長春市) 감옥병원으로 보내졌다. 의사는 폐가 감염되고 물이 고이는 증상이 나타나 폐가 쇠약해졌다는 진단을 내렸다(음식물 주입이 원인이라고 추측함). 사경을 헤매던 그녀는 3월 10일 저녁, 억울하게 사망했다. 가족은 사망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시신을 바로 화장하지 않았으며, 잔혹한 박해로 사망에 이르게 한 관련책임자를 고소하여 정의를 신장하고 공정한 평가를 받으려고 변호사를 선임했다.

미국 국무원이 발표한 2017년 ‘국제종교자유보고서’는 파룬궁수련생 한훙샤 등에 대한 박해 사례를 주목했다.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발동하고 유지한 이번 집단학살 박해는 19년 동안 1억 명이 넘는 파룬궁수련생과 그들의 가족에게 극심한 고난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죄 없는 좋은 사람에 대한 이번 박해로 인해 중국의 법률 체제가 점점 나빠지게 되었으며, 중국사회의 도덕도 점점 타락하게 되었다. 모든 중국인은 이번 박해의 피해자이다.

한훙샤는 지린성 지린시 공공버스회사에서 퇴직한 사람이다. 2008년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후, 류머티즘성 관절염과 경추 질환, 심장병, 부인병 등이 사라져 몸이 아주 건강해졌다. 그녀는 대법의 요구에 따르려고 노력했고, 모순에 마주치면 자신의 부족함을 안으로 찾았으며, 진정하게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었다. 그녀의 남동생과 여동생은 그녀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배운 후 성격이 온화해졌다고 했다. 그녀는 늘 자신의 심신 변화와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으며,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2016년 10월 18일 오후, 전(前) 다안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장[현(現) 안광진(安廣鎮) 파출소장] 쑤이옌룽(隋彥龍)과 국가보안대 머우쯔징(牟子敬)은 안광진 파출소장 쑹유원[宋有文, 전(前) 안광진 파출소장], 리바오장(李寶江, 안광 파출소 지도원) 등 경찰 7, 8명은 파룬궁수련생 왕이자(王毅家)의 집에 뛰어들어 마침 그의 집에 있던 한훙샤를 납치했다. 그녀가 납치에 저항하자 쑤이옌룽은 대중들 앞에서 큰소리로 “당신 같은 사람은 생체장기 적출을 당해야 한다.” 고 흉악하게 말했다. 곧이어 그녀의 집을 불법적으로 수색했다.

한훙샤가 그녀에 대한 박해에 협조하지 않자 쑤이옌룽 등은 그녀를 바이청시(白城市) 구치소 202호로 보내 불법적으로 감금했다. 쑤이옌룽과 현직 국가보안대대장 왕레이(王雷), 머우쯔징, 더우하이양(竇海洋), 리아이민(李愛民) 등은 모함 자료를 작성하여 다안시 검찰원과 법원에 보내 판결 절차를 밟아 그녀를 박해했다. 다안시 법원 판사 쑨서우항(孫守航)은 그녀의 가족에게 통지하지도 않고 2017년 2월, 가족이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밀리에 불법적으로 재판하여 그녀에게 형을 선고하려 했다.

酷刑演示:打毒针(注射不明药物)
고문 시연
: 독침을 찌르다(독극물을 주사하다)

한훙샤는 불법적으로 감금된 후기에 바이청시 구치소에서 독극물을 주사당한 적이 있는데, 손 안쪽과 팔이 어혈이 생겨 자주색이 되었다. 관련 업무 부서인 다안시 국가보안대대는 그녀가 박해로 생명이 위급해진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전(前) 국가보안대대장 쑤이옌룽과 현직 대대장 왕레이 등은 여전히 그녀를 석방해주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사망했다.

2017년 3월 초, 바이청시 구치소에서는 한훙샤에게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주입해 그녀는 생명이 위급해지게 되었다. 바이청시 구치소[소장은 왕펑밍(王鳳鳴), 부소장은 웨이핑(魏萍, 여)]는 그녀를 납치하고 박해한 다안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대에 통지했으며, 그녀의 생명이 위급해진 사실을 감출 수 없게 되자 3월 8일, 갑자기 그녀의 가족에게 통지하여, 그녀를 긴급히 창춘감옥병원으로 보내 응급 처치했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폐가 감염되고 물이 고이는 증상이 매우 심각했으며, 깊은 혼미 상태에 빠졌다. 결국, 2017년 3월 10일 저녁, 억울하게 사망했다.

2017년 3월 13일, 다안시 법원은 ‘형사재정서(刑事裁定書)’를 발표하여, 다안시 검찰원이 대검형검형소자(大檢刑檢刑訴字, 2017) 제1호 기소서로 본 법원에 한훙샤에 대한 공소를 제기했다고 했다. 2017년 3월 10일, 심리 과정 중에 있던 피고인 한훙샤는 사망했다. 법원의 결정은 다음과 같다. 본 사건에 대한 심리를 중단한다.

한훙샤는 집안에서 맏이였다. 남동생과 여동생은 그녀가 성격이 좋지 않아 화를 잘 내며 인내력이 매우 부족함을 알고 있었다.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지도로 그녀는 대법의 요구에 따르려고 노력했으며, 모순에 마주치면 자신의 부족함을 안으로 찾아 진정하게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었다. 남동생과 여동생은 그녀가 파룬따파를 배운 후 성격이 온화하게 변했다고 했다. 그녀는 늘 자신의 심신 변화와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으며,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미국 국무원이 발표한 2017년 ‘국제종교자유보고서’에서 중국은 재차 ‘특별관심국’에 속했다. 보고서는 파룬궁, 기독교 등 신앙단체가 박해받는 상황을 주목했다. 그리고 양위융과 한훙샤에 대한 고문 박해 사례를 주목했다.

한훙샤가 박해로 사망한 것은 중공 사당이 19년 동안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여 파룬궁수련생 본인과 가정에 고난을 조성한 한 사례일 뿐이다. 많은 파룬궁수련생은 여전히 중공 사당의 박해를 받고 있다.

다안시 파룬궁수련생이 최근 몇년간 박해받은 사례

2012년 1월, 다안시 파룬궁수련생 지후이(紀輝) 등 5명은 농촌으로 가서 파룬궁 진상 전단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다안시 전(前) 국가보안대대장 쑤이옌룽과 천야민(陳亞民), 검찰원의 천야푸(陳亞富), 판사 쑨서우항 등이 다안시 전(前)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와 610의 사악한 우두머리 왕더신(王德新), 류융보(劉永波)의 지휘로 진행한 재판에서 4년에서 4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지후이신(紀輝新)의 차는 불법 압수되고 돌려받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그의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친척의 부양을 받아 고등학교와 대학교 공부를 해야 했다. 그의 아내는 이로 인해 쌓이고 쌓인 우울증이 병이 되어 수술을 받았으며, 핍박에 못 이겨 그와 이혼했다. 그는 지린시 감옥에서 불법적으로 감금된 동안 심신 학대로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었으며, 수련의 포기를 강요받았다. 그는 타협하지 않았기에 4년의 불법 형을 하루도 감형 받지 못했다.

2014년 10월 16일, 두수즈(杜淑芝) 노 부인은 다안시 공안국장 장환첸(張懷乾)과 다안시 국가보안대대 쑤이옌룽, 리쯔무(李子木), 무쯔징(穆子淨), 후이양(惠陽), 기타 파출소 경찰 등에게 집에서 납치되었으며, 불법 가택수색으로 대법 책과 많은 물품을 강탈당했다. 공안국에서 그녀는 박해로 혈압이 높아져 시(市) 3병원으로 보내졌다. 다안시 국가보안대대 부대장인 악독한 경찰 리쯔무는 강제로 의사에게 혈압을 낮추는 주사를 놓으라고 하는 등 그녀가 죽든지 살든지 개의치 않았으며, 다안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했다. 그녀의 아이(수련하지 않았음)는 경찰 쑤이옌룽과 검찰원의 친샤오화(秦曉華), 법원의 쑨서우항 등 관련 악도에게 수십만 위안(구체적인 액수는 조사 중임)을 갈취당했다. 악도들은 그녀 집의 돈을 가져가고도 3년의 억울한 형을 선고했다.

바이청시 파룬궁수련생 류멍(劉猛)과 다안시 파룬궁수련생 리웨이(李巍)는 2017년 1월~2월, 다안 북쪽 역에서 기차에 오를 때, 신분증 정보에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받은 기록이 있어 다안 북쪽 역 철도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가방 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은 불법적으로 구류되고 현지 경찰에게 넘겨져 불법 심문과 감금 박해를 받았다. 류멍은 증거가 부족했기에, 바이청시 타오베이구(洮北區) 법원의 재판에서 판결이 선고되지 않고 서류가 반송되었다. 바이청시 싱푸(幸福) 파출소는 두 차례나 류멍을 모함했다. 류멍은 불법 형을 선고받았으나, 형기는 상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리웨이의 집에는 만 2세도 안 된 아이가 있었고, 아내는 직업이 없었기에 그가 일하여 돈을 벌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불법적으로 감금된 후, 어쩔 수 없이 친척의 도움으로 아이를 부양해야 했다. 다안시 국가보안대대와 진화(錦華) 파출소에서 온 경찰은 리웨이의 부친이 자기 집 베란다 밖에 단단하게 붙인 ‘권선징악’이라는 네 글자를 솔로 문질러버렸다. 리웨이는 불법적인 재판을 받을 때 줄곧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있었다. 그날 법원에는 특수 경찰과 일반 경찰, 교통경찰, 사복 경찰 그리고 경찰차와 각종 승용차 등 30여 대의 차량이 있었는데, 정말 큰 적과 맞닥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리웨이는 7년의 형과 2천 위안(한화 34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2017년 4월, 치밍(齊明)은 다안시(大安市) 1중학교 가족 아파트에서 전단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다안시 국가보안대대 왕레이과 더우하이양(竇海洋) 등에게 납치되었다. 같은 해 8월, 다안시 법원 쑨서우항 등에 의해 4년 6개월의 형과 2만 위안(한화 342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2017년 9월~10월, 바이청시 경제개발구 공안분국 국가보안대대 궈자성(郭家勝)과 가오더신(高德新)은 다안시 왕레이, 류위밍, 바오하이양, 모쯔징(牟子敬) 등 경찰과 결탁해 천커(陳科), 왕쉐메이(王雪梅), 마펑이(馬鳳儀), 겅지추(耿繼秋), 왕훙옌(王鴻彥), 장펑링(張鳳玲), 천위메이(陳玉梅) 등 여러 명의 다안시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으로납치했다. 그중 4명은 타향에서 불법 감금되어 심리(審理) 박해를 당했다. 왕쉐메이와 마펑이는 5개월 정도 불법 감금된 후에 타오난시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되었다. 장펑링과 왕훙옌 모녀는 바이청시 구치소에서 여전히 불법 감금되어 있다. 장펑링은 70세 고령이라 구치소에서 끌려 나가 진찰받았는데, 조금 호전되기만 하면 또 구치소에 갇혀 계속 박해받았다. 왕훙옌은 신체검사에 불합격되었음에도 불법적으로 감금되었다. 두 사람은 현재까지 7개월 넘게 감금되어 있다. 이미 타오난시(洮南市) 법원에서 불법적인 재판을 받았는데, 타오난시 검찰원의 리스천(李士臣)과 법원 판사 쑨리위(孫利慾)는 두 사람에게 불법적인 중형 선고 박해를 가했다.

2017년 8월 4일, 다안시 안광진 파룬궁수련생 왕이(王毅, 한훙샤는 그의 집에서 납치되었음)는 박해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향년 58세였다. 한훙샤가 그의 집에서 납치된 후, 그도 다안시 국가보안대대 안광진 공안분국의 끊임없는 교란을 받았으며, 1년의 불법 형을 선고받았다(감옥 밖에서 형기를 집행했음). 그는 다안시 전 국가보안대대장 천야민(陳亞民)과 친척이었으나, 천야민은 그를 박해할 때 조금도 어질게 대하지 않았다. 어느 날 왕이는 꿈속에서 천야민이 관에 들어가는 꿈을 꿨는데, 관 뚜껑이 즉시 닫히고 못이 박혔다. 그는 생전에 천야민에게 좋은 말로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말라고 여러 번 간곡하게 권했으나, 천야민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했다. 천야민은 임직 기간에 직접 여러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여 사망하게 했다.

2017년 9월 18일, 다안시 파룬궁수련생 뤼르자오(呂日昭)는 박해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세였다. 그는 1999년 7.20 이후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교란 받았다. 2003년에 다안시 공안국 정보과장 천야민 등 경찰에게 납치되었다. 다안시 구치소에 불법으로 감금되어 사악의 지시를 받은 죄수들에게 고문을 받았다. 죄수 10여 명이 그를 둘러싸고 팔을 단단히 잡아당기고는 팔위에 앉아 내리눌렀기에 오른쪽 어깨가 탈구되어 심하게 아팠다. 그를 24시간 동안 괴롭혀 축 늘려진 어깨를 치료해 주지도 않았다. 다안 구치소에서 6개월 넘게 불법 감금된후 지린성 주타이시(九台市) 인마허(飲馬河) 노동교양소로 이송되어 3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그 기간에 잠을 자지 못하고 대법을 공격하는 영상을 강제로 보는 등 강제 전향 세뇌반에서 세뇌를 많이 당했다. 2005년 말에 출소하여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정신이 흐리멍덩해져 있었다.

천위메이, 겅지추, 저우웨이량 등 다안시 파룬궁수련생은 지금까지 유랑생활을 하고 있으며,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다.

다안시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받은 사례는 모든 파룬궁수련생이 받은 박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1999년 이래 중공 사당은 얼마나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집과 가족을 잃게 했으며, 얼마나 많은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요원이 도덕과 양심을 버리고, 손에 촌철도 지니지 않고 법을 잘 지키는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단 말인가? 박해받은 파룬궁수련생 중에는 70~80세의 노인도 있다. 그러나 박해에 참여한 많은 사람은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이 인간성을 잃고 중공 사당을 따라 지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공검법 요원이 파룬궁 진상을 알고서 다시는 박해에 참여하지 말고 수련생을 선하게 대하기 바란다.

박해에 참여한 책임자에 관한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8년 6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6/6/3684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