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장쑤보도) 장쑤성(江蘇省) 난징시(南京市)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생 청하이옌(成海燕, 여)은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한 18년이 넘는 박해 중에 10년형 불법 판결을 당하고, 2개월 반 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돼 박해당했으며, 3차 불법 행정구류 처분받았고 5차 가택 수색, 여러 차례 세뇌반에 감금당한 적이 있으며, 또 핍박에 못 이겨 군인 남편과 이혼하는 등 박해당했다. 결국, 2018년 3월 28일 억울하게 사망했는데 향년 63세다.
청하이옌(成海燕)
중공 불법 인원은 그녀에 대한 박해를 줄곧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가장 최후까지도 늦추지 않았다.
청하이옌은 전 중국 약과대학(藥科大學) 부교수(두 개의 학위)였다. 군인 남편의 국방 사업을 지지하기 위해 그녀가 사랑하던 교육 사업을 떠나 장쑤성 물자본사(資總公司) 경공업(輕紡織品) 회사로 직장을 옮겨 사장으로 임명됐다. 그녀는 1998년 초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녀는 B형 간염을 앓았는데, ‘대삼양(大三陽)’ 지수가 플러스 세 개를 넘었다. 게다가 간경화 현상이 나타나, 양의사는 이에 대해 이미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대법을 수련한 후 1개월 만에 전부 완쾌됐다.
몸이 건강해지고 심성도 제고됐다. 그녀는 각 방면에서 ‘진선인(眞善忍)’의 법리에 따라 일을 처리했다, 그녀는 예전에 은행으로 가서 돈을 저축한 적이 있는데, 판매원이 1만 위안을 10만 위안으로 썼다. 집으로 돌아와 발견하고 즉시 이 은행으로 되돌아가서 바로 고쳤는데, 판매원은 아주 많이 감사드렸다. 그리고 어느 한 번은 마트에 가서 물건을 샀는데, 70여 위안의 농축 과일즙을 돈으로 계산하지 않았다. 그녀는 발견한 후 즉시 되돌려 주었는데, 마트 책임자는 재삼 감사드리며 “마트 문을 나간 후 다시 물건을 되돌려 준 일은 여태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 남편은 현역 고위 장교로 군대 건설을 위했는데, 그들이 결혼하고 임신해서부터 아이를 낳고 아이를 양육하기까지 그녀 남편은 또 아주 적게 가정을 돌보았다. 수련하기 전 그녀는 남편을 많이 원망했다. 그녀는, 말만 하고 사람은 보이지 않으며, 일도 하지 않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전화남편을 찾았다고 말이다. 수련한 후 그녀는 타인을 위해 고려해야 함을 깨닫고, 다시는 원망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가정주부가 해야 할 일을 잘 하여 남편에게 걱정을 분담시키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가 수련한 후 이처럼 큰 변화가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하며 “군인의 처가 모두 파룬궁을 연마하면 좋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렇게 좋은 사람을, 2000년 9월 29일 청하이옌이 베이징으로 외출하러 갔는데, 가방 안에서 ‘전법륜(轉法輪)’ 서적을 찾아냈다는 이유로, 그녀를 불법 구류했고, 아울러 난징시 허우짜이먼(後宰門) 파출소에서 불법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불법 가택 수색을 진행한 경찰은 “우리는 이 젊은 군 간부의 집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겠다.”라고 공언했다. 본 결과 그들은 아주 실망했는데. 결코, 그들이 상상한 것처럼 사치스럽고 화려함이 없고 몹시 간소했다. 왜냐하면. 그녀 집은 ‘진선인’으로 그 마음을 선화(善化)하기 때문이다.
2000년 12월 12일, 청하이옌은 파룬궁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난징 ‘610’과 허우짜이먼 파출소에 의해 난징 정신병원으로 납치돼 2개월 반 동안 박해당했다.
당시 난징 군구(軍區) 사당서기 원중런(溫中仁, 이 사람은 이미 2004년 악보 받아 사망) 등이 직접 나서서 그녀의 남편이 청하이옌과 이혼하도록 핍박했다. 당시 장쑤성 ‘610’ 주임 왕룽성(王榮生)은 군구 사당위원회와 협력해 청하이옌 부부를 여러 방면으로 공격했다. 가족을 핍박해 청하이옌을 난징 정신병원에 보냈을 뿐만 아니라, 또 압력을 가해 사전에 다 써놓은 ‘감정 불화로 이혼 요구’한다는 이른바 ‘협의서’에 강제로 서명하게 했다. 남편이 연루되지 않게 하려고, 하이옌은 어쩔 수 없이 “단지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 때문에, 남편의 앞길을 위해 핍박받아 서명합니다.”라고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지경에 이르렀어도 중공 악인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강제로 그녀의 남편에게 반드시 3개월 이내에 서로 전혀 모르는 여인과 결혼하도록 명령했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곧 부대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2001년 9월 19일, 청하이옌은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한다는 이유로 쉬저우시(徐州市) 청년파출소에 의해 불법 체포당했는데, 그녀에 대해 십자형으로 뒷짐결박을 하고 술병 끼워 넣기 고문과 족쇄를 채우는 잔혹한 박해를 열 몇 시간 동안 진행했다. 그녀의 손목과 발가락은 당시 붉게 부어올라 물집이 생겨 피가 흘렀다. 그가 손상을 입은 부위는 이렇게 흔적을 남겼다.
청하이옌은 쉬저우시 윈룽구(雲龍區) 법원에 의해 10년 형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난퉁(南通)감옥에 감금돼 박해당했다. 10평방미터도 되지 않는 음산하고 어두운 다락방 안에서 먹고 마시고 배설하며 잠자는 등 전부를 안에서 치렀다. 그리고 족쇄, 수갑을 채웠으며, 10여 명의 살인범, 마약 복용, 매음녀가 번갈아 가며 감시했으며, 면회를 허락지 않고 통신, 말함을 허락지 않았다. 교도관이 욕설을 퍼붓고, 훈계함을 제외한 외 각급의 ‘610’에서 세뇌박해를 진행했다. 심지어 밥과 반찬 안에도 독극물을 투입했는데, 꼬박 6년 동안 박해당했다. 2009년 4월 21일 가족이 보석을 진행해 출소했다.
청하이옌은 석방된 후 돌아갈 집이 없어서 유랑생활했다. 어쩔 수 없이 핍박에 못 이겨 한 약국에서 일했다. 2013년 5월 하순, 청하이옌은 다시 갑자기 실종됐다. 소식에 따르면 그녀는 집에서 납치당했다고 한다. 난징 장닝구 공안국의 악독한 경찰이 창문을 부수고 들이닥쳐 청하이옌을 납치해갔다. 그 후 국내외 인사가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어 그녀는 석방돼 집으로 돌아갔다. 2014년 3월 5일, 청하이옌은 다시 납치당했다.
청하이옌은 2011년 4월 최고인민검찰원, 최고인민법원과 장쑤성(江蘇省) 고급인민검찰원, 고등법원에 쉬저우시 윈룽구(雲龍區) 법원에서 10년 형 불법 판결을 진행하는 것에 불복한 항소장을 우편으로 부쳤다(결과가 없음). 2014년 4월, 각각 중앙 제12순시팀(장쑤에 주재하는 팀)과 시진핑(習近平)에게 편지를 써서 쉬저우시 윈룽구 법원에서 10년 형 불법 판결을 내린 상황을 반영했으며, 2014년 8월 그녀는 장쑤 고급인민검찰원, 고등 법원에 쉬저우시 윈룽구 법원에서 그녀에 대해 10년 형 불법 판결을 내린 고소장(결과가 없음)을 우편으로 부쳤다.
2015년 5월, 난징(南京) 장닝구(江寧區)의 7, 8명 경찰은 청하이옌의 집 인근에서 2, 3일 동안 잠복 감시를 진행하여, 5월 24일 오후 4시쯤 청하이옌을 납치했고, 불법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불법자들은 청하이옌에게 족쇄를 채워 납치해 갔다.
2015년 6월, 청하이옌은 거듭 최고인민검찰원, 고등법원 등 기구에 장쩌민(江澤民)이 혼인을 파괴하고, 고의로 상해를 가하고, 국민의 신앙과 인신 자유를 박탈한 등 죄를 저질렀음을 고소했다.
이로 인해, 몇 해 동안 청하이옌에 대한 박해는 특히 심각했다. 명절과 휴일, 이른바 민감일이 되기만 하면, 보안 경찰이 잠복 감시, 미행했으며, 전화는 도청당하고 통신은 가로막혔으며 또 건물 앞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또 파출소에 불법 호출당했으며, 610, 가도, 지역 사회에서 불법 세뇌하는 것도 종종 발생했다. 매달 단지 300위안도 되지 않는 최저 생활 보장금이 있었을 뿐이다.
잔혹한 박해와 극심한 정신적인 압력으로, 청하이옌의 몸은 갈수록 나빠졌으나 중공 불법 인원이 그녀에 대한 박해는 맨 마지막까지도 늦추지 않았다.
원문발표: 2018년 4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4/6/3637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