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치치하얼시(齊齊哈爾市) 파룬궁수련생 왕위둥(王宇東)은 2심에서 치치하얼시 중급인민법원에 의해 3년의 억울한 형을 선고받았다. 2018년 3월 1일 타이라이(泰來) 감옥에 불법 감금되었다.
왕위둥(남, 46세)는 우수한 요리사이자 국가 2급 중국 장기 심판으로,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 표창을 받은 적이 있으며, 이웃에게서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이라고 칭찬받았다.
왕위둥은 2001년 파룬따파에 대한 믿음을 지킨다는 이유로 죄 없이 5년 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상부에서는 너무 가볍게 판결했다고 했다. 그 때문에 10년 형을 선고되었다. 29세에 시작한억울한 옥살이를 끝내고 2011년 10월 집으로 돌아온 그는 40세가 되었다.
왕위둥 부부, 친구 집에서 잠복 감시하는 경찰에게 납치되다
왕위둥과 아내 주슈민(朱秀敏)은 줄곧 외지에서 일했다. 일이 없을 때 집으로 돌아와 며칠 동안 80세에 가까운 부모님을 문안하러 갔다. 그 기간 2017년 3월 21일 친구 집을 방문하러 갔을 때 이 수련생이 경찰에게 납치될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그들 두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가서 아직 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복도에서 이유 없이 치근거리는 경찰에게 납치되었다. 이 경찰들은 경찰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었다.
아래층을 보니 많은 차가 있었는데, 모두 경찰차가 아니었으며 많은 사람은 모두 경찰복을 입지 않았으나 납치에 참여한 사복 경찰이었다.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 뭘 하려는지 설명하는 사람이 없었다. 알지 못하는 한 남성은 왕위둥의 아내를 보더니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당신 두 사람은 의외의 수확이오. 당신 두 사람은 돌아온 지 이틀밖에 안 되었지요? 본래 당신 두 사람은 없었는데, 정말 당신 두 사람은 의외의 수확이오”라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컸고 흥분된 상태였다. 그 후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이 불법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법정 심문할 때, 법원 주변에서 이 일에 관심이 있는 파룬궁수련생의 사진을 찍었다. 왕위둥과 그의 아내 사진은 바로 그때 찍었다.
고문 학대, 고문과 유도심문에 의한 강제 자백
왕위둥과 아내는 치치하얼시 공안국, 룽사(龍沙) 분국의 국가보안 장(姜) 씨 등에 의해 안순로(安順路) 파출소로 납치되었으며, 고문과 유도심문으로 강제 자백하게 되었다.
경찰은 왕위둥의 호주머니에서 USB를 찾아냈다. 그 후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자의 층집에서 사용했다. 경찰은 그에게 투구를 씌워 괴롭혔고 머리에 비닐 주머니를 씌웠다. 게다가 담뱃불을 붙인 후 연기를 비닐 주머니에 넣어 호흡이 곤란하게 했다. 경찰은 수갑을 위로 끌어올려 그의 늑골에 힘껏 비비는 행위를 서너 차례나 반복했다. 경찰은 또 신발로 그의 왼쪽 얼굴을 후려쳤다. 그의 얼굴은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중공 고문 설명도: 비닐 주머니로 공기가 통하지 않게 하기
고문 재연: 신발 바닥으로 얼굴 때리기
경찰은 그가 늘 변호사와 접촉하는지를 물었는데, 왕위둥이 장쩌민을 고소한 일을 그럴싸하게 꾸며 말했다. 왕위둥은 쓴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왕위둥에게 USB와 기타 일부 물건이 자신의 것임을 인정하라고 강요했으나, 왕위둥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왕위둥이 인정하지 않으면 그의 아내를 때리러 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 주슈민도 그곳으로 끌려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그들은 나갔다가 한동안 지나서 돌아와서는 여전히 자백을 강요했다. 그래도 왕위둥이 자백하지 않자, 바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의 아내를 끌어와 그의 앞에서 아내를 때리겠다고 위협했다. 왕위둥은 어쩔 수 없이 자백했다. 이튿날 3, 4시에 안순로 파출소로 끌려 돌아왔다. 저녁 8, 9시가 되어 왕위둥은 파출소에 감금하는 것은 24시간 초과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등을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파룬궁에 대해서는 무슨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 후 왕위둥은 구치소로 이송되었으며, 사건은 우룽(五龍) 파출소로 넘어갔다.
고문과 위세 하에 왕위둥은 4월 1일부터 단식으로 박해를 저지했다. 4월 6일부터 음식물 강제주입을 당했다.
고문 재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변호사에게 위탁해 악인을 고소하다
왕위둥은 납치와 구금, 고문 학대를 당했다. 변호사는 4월 7일 왕위둥을 면회했다.
왕위둥은 불법 감금되어 60시간 동안 고문과 유도심문으로 자백을 강요받았다.
그는 변호사에게 위탁해 치치하얼시국 국가보안, 수사관, 룽사 분국의 국가보안대대 장(姜) 대대장 등이 불법 구금하고, 직권을 남용하여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한 범죄에 대해 치치하얼시 검찰원에 고소했다. 그리고 피고소인의 형사책임을 추궁하라고 요구했다.
변호사가 법정에서 변호하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
2017년 12월 14일 오전 9시 30분, 치치하얼시 룽사 법원은 왕위둥에 대한 불법 법정 심문을 진행했다. 방청석에는 그의 가족, 방청하라고 불려온 지역 사회 요원, 대학생,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의 직원이 있었다.
경찰이 왕위둥을 납치한 이유는, 그가 2015년에 양고(兩高)에 장쩌민을 고소한 것을 보복하기 위함인데, 이것으로 그에게 불법 형이 선고되도록 하려 했다.
법정 심문 중 변호사는 이치에 맞고 근거 있는 변호를 했으며, 왕위둥을 무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주심 판사 왕야밍(王亞明)은 “국내에서 장쩌민을 고소해 석방한 사례를 가져다가 참조하세요”라고 말했다.
변호사: 나의 당사자는 우수한 요리사이자 국가 2급 중국 장기 심판으로,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 표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 이렇게 좋은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변호사는 당사자에게 장쩌민을 고소한 것이 사실인지를 물었다.
왕위둥은(손을 심장에 붙이고) 사실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중국 헌법(제41조)에서는 사람마다 고소할 권리가 있다고 했으며, 시진핑(習近平) 새 정부에서는 ‘사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안하고,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수리한다’고 했다. 만약 판결을 뒤집으려면 장쩌민 본인이 고소해야지, 어떠한 조직과 개인도 간섭할 권리가 없다.
변호사가 당사자에게 2015년 장쩌민을 고소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에서 이 일을 문의한 적이 있는지를 묻자 당사자는 없다고 대답했다. 변호사는 이어서 “그럼 무엇 때문에 그를 제재하는 것을 2017년까지 미루었습니까? 이것이 바로 위법입니다!”라고 말했다.
전에 법원에서는 구치소에서 불법으로 비밀 개정을 진행하려 하다가 왕위둥에게 거부당했다. 왕위둥은 법원에서 공개 심리를 진행하도록 요구했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개정을 거부하겠다고 했다.
그 기간 왕야밍 판사는 왕위둥의 가족에게 “당신의 모친을 오게 하지 말고, 파룬궁을 참여시키지 마세요. 그들의 세력이 너무 큽니다. 해외에서 이것 때문에 전화를 걸어오는데, 내게는 너무 큰 압력입니다”라고 했다.
그 후 왕위둥이 3년의 불법형을 선고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왕위둥은 치치하얼시 중급인민법원에 상소했다.
불혹의 나이에 득녀했으나, 아기는 부모와 함께 고난을 겪게 되다
바로 왕위둥에 대해 불법 법정 심문을 진행하기 6일 전인 2017년 12월 8일,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에서 강하고도 진귀한 어린 생명이 출생했다. 바로 왕위둥과 주슈민의 딸이었다. 그녀는 다른 아이와 비교해 무슨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출생하기 전부터 다른 아이가 겪지 않은 고난을 겪었다. 그녀의 생명이 막 잉태되었는데도, 모친 주슈민은 구치소에서 5개월 동안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으며, 던지고 구타하기, 정신적인 압력 등을 경험했다. 그녀의 출생은 생명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왕위둥, 주슈민의 아이
왕위둥은 2001년에 죄 없이 10년의 형을 선고받았으며, 출소할 때는 불혹의 나이였고 줄곧 아이가 없었다. 늦게 온 이 진귀한 어린 생명이 잉태되었음에도 그는 기뻐할 기회가 없었다. 아내가 몸을 푼 한 달 동안에도 남편의 책임을 다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아이가 어떠한지 한 번 본 적도 없다. 그리고 구치소에서 박해받은 부친은 어떠한가? 원래 100kg이 넘던 몸무게가 50kg밖에 되지 않고 몸이 극히 허약해졌다. 출입할 때 휠체어에 앉아야 할 정도로 건강이 걱정되는 상태이다.
한 생명을 잉태하자마자 구치소로 들어갔고, 두 노인은 만년에 의지할 사람을 잃어 고독하고 도움받을 데가 없다. 아내는 임신한 채 매일 생사의 경계에서 몸부림쳤고 경제적인 수입이 없었으며, 어떠한 도움도 없었다. 자신 혼자 각 부서로 가서 모함당한 남편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구출을 호소했다. 장기간의 영양실조와 심각한 빈혈, 부종 증상으로 전신이 아팠다. 다른 집의 아내는 임신하면 많은 관심과 보호를 받으며, 다른 집 아기는 출생하기 전부터 전 가족의 보배가 되나, 왕위둥과 아내 그리고 그들의 아기는 추운 겨울날의 나뭇잎과 같이 몸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살을 에는듯한 찬바람을 만나 모진 고생을 했다. 그들은 부득이 생사 이별의 가정 비극을 연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는 사람들이 탄식해 마지않게 했다.
단지 진선인(眞善忍)의 믿음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일가족은 이와 같은 박해를 받았다. 이 일체 고난의 제조자는 경찰인가? 아니면 경찰에게 지시한 공안국과 정법위인가? 아니면 최종의 사악한 당인가? 사실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모두 한 가지 이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막후에 있는 사람은 그를 찾아가는 가족이 없을 것이고, 그를 어찌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왕왕 한 점을 잊고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에서 보고 있고 온 하늘에는 눈이 있는 것으로, 신의 눈은 번개와 같다(神目如電). 신은 이 일체를 기재하고 있고, 선악에는 자연히 인과응보가 따른다.
박해 관련 기관과 요원에 관한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8년 3월 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3/1/3623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