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천링메이(陳凌梅, 여, 67)는 허베이성(河北省) 줘저우시(涿州市) 파룬궁(法輪功) 수련인으로 파룬궁에 대해 공정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1999년부터 여러 차례 중국공산당(중공)에 납치·구금되어 매달리어 구타당하고, 각종 잔혹한 고문박해를 당하면서도 굳은 의지로 버텨냈다. 그녀는 2014년 스자좡시(石家莊市) 여자감옥에 3년간 감금되었다가 풀려났지만, 감옥에서 당한 고문으로 두 눈은 실명되고 건강이 악화되어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다가 결국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출소 3개월 만인 2017년 12월 7일 억울하게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천링메이는 선량한 농촌 사람으로 검소한 생활을 했던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절약해 모은 돈을 전부 사람들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알리는 진상활동에 썼다.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를 알려 밝은 미래가 있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주로 재래시장에서 진상을 알렸는데, 집에 돌아갈 때는 과일과 야채 등을 구입할 때 상하거나 벌레 먹은 가격이 저렴한 것들을 사갔다. 그렇게 자신의 생활은 절약하면서도 진상 알리는 데 쓰는 돈은 아끼지 않았다. 농촌에서는 거금이라고 할 수 있는 5천 위안(한화 약 84만원) 또는 1만 위안(약 170만원)을 선뜻 진상활동에 썼다. 오직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천링메이는 1997년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대법을 수련한 후 심신이 모두 좋아졌다. 그러자 남편 차오자오후이(曹召會)도 대법을 수련하게 되어 부부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1999년 7월 장쩌민 공산당깡패집단이 국가의 전 기관을 동원해 선량한 파룬궁수련인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천링메이는 진선인(真善忍)을 확고하게 믿으며 아름다운 대법을 공정하게 대하라고 말함에 따라 수차례 중공에 납치, 감금, 투옥, 노동교양처분 등의 모진 고문박해를 당했다
1999년 7월 20일 천링메이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의 청원을 위해 베이징에 갔다가, 현지 공안에 납치돼 마터우진(碼頭鎮)으로 압송되어 마터우 중학교에 감금되었다. 그는 밤이 되자 강제로 운동장달리기 체벌을 당했는데, 기진맥진해서 달릴 수 없게 되자 버드나무 가지로 전신을 구타당하고, 나무판자로 둔부를 매질당해 전신이 모두 멍이 들었고 얼굴은 부어 완전히 일그러져 변형됐다.
1999년 11월 19일 천링메이는 다시 톈안먼(天安門)에서 청원하다가 역시 중공에 납치되어 공안국에 끌려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후 극히 악명 높은 줘저우시 난마(南馬) 세뇌반에 불법적으로 감금되었다. 매일 다른 파룬궁 수련생과 함께 무슨 ‘보증서’에 서명하라는 강요를 받았고, 대법을 비방하는 사악한 신문읽기를 강요당했고, 거부하면 독방에 감금돼 구타와 전기충격의 모진 고문을 당했다. 특히 전기충격고문은 악랄했는데, 처음 머리정수리에서 시작해서 신체 민감한 부위로 옮겨 가며 충격을 가했고, 사정없이 뺨을 구타하기도 했다. 손으로 때리다가 손이 아프면 발로 차고 곤봉으로 전신을 구타했다. 더욱 잔인한 것은 한 자 길이의 나무판자로 얼굴을 구타하는 행위다. 그런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나면 잠들지 못하도록 괴롭혔다. 당시 상황을 천링메이는 이렇게 말했다. “한 경찰이 민감한 신체부위에 전기봉 충격을 가할 때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자 다시 겨드랑이에 충격기를 끼어 넣고 오랜 시간 그대로 전기고문을 가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손으로 솜바지를 쥐어 잡았는데, 마치 불로 피부를 태우는 것 같았다.”
2000년 10월 1일 천링메이는 또 베이징에 가서 청원했고, 현지 경찰에 납치되어 첸먼(前門)파출소로 끌려가서, 줘저우 이허좡향(義合莊鄉) 사법소 장사오빈(張少彬), 정법(정치법률)서기 런빙후이(任炳輝) 등 3명에게 인계되어 이허좡향 정부로 압송된 후, 두 발이 땅에 닿지 않게 공중에 매달려 수 명의 악인(惡人)들로부터 모진 구타를 당했다. 어떤 자는 나무판자로 구타했고, 런빙후이는 책으로 얼굴을 구타했으며, 바늘이 박힌 형구로 등을 후려쳐서 무수한 상처가 나면 런빙후이는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천링메이는 구타를 당하면서도 이를 악 물고 참았는데, 실신하면 냉수를 끼얹었고, 10월의 추운 날씨에 단지 상의만 입혀 수갑을 채워 더러운 연못에 하룻밤 동안 앉혔다.
2002년 천링메이는 진상 현수막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마터우진 정부 악인의 신고로 줘저우시 공안국으로 납치되어 불법적으로 1년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바오딩(保定) 노동교양소에 감금되었다가, 2003년 줘저우시 쑹린뎬진(松林店鎮) 난마 세뇌반으로 옮겨져 감금됐고, 3개월 후 바오딩의 ‘법제교육기지[샤오바이러우(小白樓)세뇌반]로 이송됐다. 그곳에서 하룻밤 동안 세워둬 잠 안 재우기를 가했고, 플라스틱 몽둥이로 사정없는 구타를 했다. 천링메이는 1개월 후 풀려났다.
2006년, 남편 차오사오후이 등 많은 파룬궁수련인은 연이어 집에서 납치되어 줘저우시 유치장에 감금됐는데, 줘저우시 국가보안대대 양위강(楊玉剛) 등 악인들에 의해 잠 안 재우기와 전기충격고문과 구타 등 온갖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2014년 8월, 천링메이와 남편 차오사오후이 부부는 함께 구안현(固安縣)에서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신고를 당해, 구안현 법원의 불법적인 판결로 각각 징역3년형을 선고 받아, 상소를 제기했지만, 랑팡시(廊坊市) 중급인민법원에서는 원심판결을 유지했다. 천링메이는 조사 받고 재판 받는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해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스자좡시 여자감옥 제17감구역에 감금됐다. 2016년 1월 27일 가족이 면회 갔을 때는 이미 박해로 시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라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으며, 제대로 걷지도 못해 부축을 받는 상태였다. 그녀는 혹독한 고문으로 결국 ‘전향서’에 서명했는데, 가족을 만났을 때 서명한 것을 원통해 했다.
그녀는 시력도 없고 몸이 극도로 쇠약한 상태 중에서도 걸핏하면 교도관에게 따귀를 맞는 등 체벌을 당했는데, 체벌을 당할 때는 혼자 서지도 못해 벽을 집고 체벌을 받아야만 했다.
천링메이는 2017년 8월 22일 만기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완전히 두 눈은 실명상태였고,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결국 3개월 후에 67세의 나이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18년 1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7/3597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