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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춘메이는 살해당하고, 아들은 빈소에서 납치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간쑤 보도) 간쑤성(甘肅省) 란저우시(蘭州市) 파룬궁수련생 성춘메이(盛春梅)는 2011년에 납치돼 불법으로 9년 형 선고를 받고, 간쑤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해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었다. 가족은 성 씨가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하려고 거듭 요청했으나 해당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거부당했다. 가족은 직접 감옥 측에 “그럼, 사람이 죽어야만 조건에 충족합니까?”라고 질문했다.

성춘메이는 간쑤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해 심각한 당뇨병, 백내장, 담결석, 화농성 담낭염, 청력 상실 증상, 실명 증상이 나타났다. 성춘메이는 2017년 8월 23일에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10월 12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향년 65세였다.

남편 천더광(陳德光)은 아내인 성 씨가 사망한 후에도 여전히 란저우(蘭州) 감옥에 불법 구금 중이다.

성춘메이의 빈소는 화린산(華林山)에 마련되었고 두 아들딸이 지켰다. 10월 13일 저녁, 훙구구(紅古區) 국가보안대대에서 온 5명이 성 씨의 빈소 앞에서 또 하루 밤을 지키다가 14일 이른 아침에 성 씨의 아들 천젠루(陳劍儒)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는 그를 훙구구 하이스완(海石灣)으로 납치했다. 훙구구 공안 분국 심문실에서 밤 11시쯤까지 구금하다가 란저우시 마약 중독자 재활원으로 납치하고, 10월 27일까지 불법 구금[이전의 궁자완(龔家灣) 세뇌반]하다가 풀어주었다.

천젠루의 직장에서는 본래 천 씨에게 15일부터 18일까지 베이징으로 가서 학습하도록 배치했는데, 10월 15일의 비행기 표였다. 비행장에서는 3일에 한 번씩 비행기 표 정보를 공안 계통에 넘겼는데, 란저우 공안국에서 천젠루의 이름을 발견했다. 이때 란저우시 공안국 26처는 란저우에서 19차 전인대 기간에 반드시 청원하러 가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란저우시 정부의 명령을 받아 천젠루를 조사하도록 했다. 만약 확실하게 청원하러 가는 것이면 꼭 구류시킨다고 했다. 훙구 국가보안대대 대장 왕(王) 씨(새로 파견해온 사람임), 부대장 황쭝쥔(黃宗軍), 그리고 두 경찰과 기사 한 명까지 총 5명이 화린산으로 가서 천젠루를 납치해, 전인대가 끝날 때까지 불법 구금했다가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성춘메이는 1952년 11월 출생했고, 간쑤성 란저우시 훙구구에 거주했다. 1997년 7월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전, 심장병, 고혈압, 담결석, 췌장염 등이 있었다. 수련한 후, 성춘메이는 파룬궁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 심신이 건강해졌다. 남편 천더광은 1946년에 출생했고, 원래는 쓰예(四冶) 시베이(西北) 계열회사 직원이었다(이미 파산).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는 요근 손상, 요추 골 증식, 위하수 등 각종 질병을 앓았다. 게다가 매일 담배 두 갑 반을 피웠고 매일 술을 마셨다. 1997년 8월에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해 얼마 되지 않아 온몸의 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담배, 술을 모두 끊었다. 그 후로 그는 끊임없이 ‘진선인(真善忍)’으로 자신을 요구해 좋은 사람이 되었다. 냉혹했던 천더광은 성격도 변해 이치에 맞게 남을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1. 공정한 말을 하여, 일가족은 여러 차례 박해를 당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 장(江) 씨 무리가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발동했을 때, 천더광은 정부에서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신분증을 가지고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결과 강제로 현지로 압송돼 와서, 란저우시 훙구구 유치장에 13일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다. 소장 루(魯) 씨는 마약 복용 죄수에게 파룬궁수련생을 구타하라고 지시했다. 구타당한 천더광은 늑골이 부러졌다. 손으로 뼈를 만지면 손을 찌르는 느낌이 있을 정도였는데도 치료해 주지 않았다.

2000년 6월, 성춘메이는 처음으로 베이징에 가서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가 란저우로 압송되어 보름간 불법 구류를 당했다. 당시 천더광은 란저우시 청관구(城關區)에서 장사를 했는데, 현지 파출소가 여러 차례 소란을 피웠고, 가족 모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10월 6일, 성춘메이와 천더광, 아들은 거듭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부부는 또 보름간 불법 구류를 당했고, 13세인 아들은 이 보름 동안 혼자 생활했다. 2000년 11월, 천더광은 거듭 베이징에 가서 청원했고, 또 하이스완(海石灣) 유치장에 불법 구류를 당했다.

2001년 2월 9일, 천더광은 집에서 담화할 일이 있다는 경찰 장원거(張文革)의 말에 속아서 갔다가 직접 훙구 구치소로 보내졌고, 그 후에 이른바 ‘사회치안을 어지럽혔다’는 등 죄명을 파출소로부터 뒤집어쓰고 핑안타이(平安台) 노동교양소에서 1년 6개월 동안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함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한 사람은 또 쉬웨이웨(許偉躍), 류루화(劉汝花), 관룽하이(關龍梅), 뤼둥샹(呂東湘) 등 파룬궁수련생이다.

2001년 3월 2일 저녁 8시, 성춘메이와 딸은 외출해 진상 자료를 배포한 후 소식이 끊기고 행방불명이 되었고(그 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됨), 그날 밤 10시 12분, 성 씨의 집 방범용 철문이 열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에 문을 열어 본 14세 아들 천젠루는 파출소 경찰 장원거가 문을 부수고 있는 것을 보고 급히 닫고, 다른 파룬궁수련생에게 전화로 이를 알렸다. 경찰 장원거는 상황을 보고 곧 풀이 죽어 떠났다. 그 후 그의 집 전화는 도청당했다. 사흘 후, 천젠루는 핍박에 못 이겨 집을 떠났다.

천거광은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기간, 마약 복용 죄수, 위법을 저지르고 기강을 어지럽힌 죄수들에게 욕을 먹고 구타를 당했다. 그리고 강제로 강도 높은 노예 노동 등 박해를 당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01년 6월, 노동교양소에서 강제 ‘전향’을 시키려고 중대장 후샹셴(扈相賢), 소대장 왕창타오(王長壽)가 직접 경찰을 이끌고 천더광을 뒷짐결박으로 묶어 매단 것이다. 발끝만 가까스로 땅에 닿게 했는데, 이것도 부족하다며 무더운 여름날에 이불 두 개로 다시 몸을 빈틈없이 덮었다. 천더광은 즉시 온몸을 떨며 비 오듯 땀을 흘렸다. 옷은 전부 푹 젖었고 온몸에는 기운이 없었으며 허리를 곧게 펴지 못했다. 그리고 가슴 부위가 아프고 숨을 쉬기 어려웠다. 그 후 팔을 장시간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경찰은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키는 목적을 달성하려 했는데, 당시 또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이런 형식의 고문 학대 박해를 당했다.

中共酷刑示意图:吊背铐
중공 고문 설명도
: 등 뒤로 채워 매달기 고문

2002년 2월, 노동교양소에서는 대대적으로 일을 벌였는데, 수감자들에게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감금하는 감방을 만들게 했다. 천더광은 “내가 파룬궁(수련생)인데, 내가 어떻게 자신에게 감방을 지어주어 자신을 가둘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감방을 만드는 것을 거부해 경찰 왕쉬싱(王緒興)의 지시를 받은 마약 복용 죄수로부터 아침에 강제로 산마루 위에서 추위에 떨기 고문을 당했다. 당시는 마침 엄동설한이었는데, 북방의 날씨는 매우 추워 물방울이 얼음이 되었다. 세 시간을 넘게 추위에 떨게 한 뒤, 또 혹독하게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미 다 자라난 늑골이 구타당해 또 부러져 뼈가 매우 뾰족하게 튀어나왔고 허리도 움직일 수 없었다. 천더광은 신체검사를 받고 통증을 치료하겠다고 요구했다. 게다가 법에 따라 상부에 고소해 흉수를 징벌하도록 요구했으나 노동교양소는 이를 거부했다.

酷刑演示:暴打
고문 재연
: 혹독한 구타

천더광, 성춘메이와 딸 천성화(陳盛華) 세 사람이 노동교양박해를 당할 때, 나이가 겨우 14세인 아들 천젠루는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는데, 란저우시 대법제자가 마음씨 좋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대법제자는 거듭 납치를 당했다(맨 마지막에는 박해로 사망했음). 동시에 천젠루는 치리허구(七里河區) 공안 분국으로 납치됐다. 치리허구 공안 분국 경찰은 이 아이에게 족쇄를 채웠다. 그 후 학교에 다니도록 배치 받았다(실제로는 거주지 감시였음). 그리고 끼니를 자주 걸러 한 번은 학교에서 쓰러졌고, 숙소에서 심하게 넘어져 입술은 부딪혀 구멍이 났다.

2002년 4월, 성춘메이는 앞당겨 석방되었다. 그러나 2002년 7월 천더광이 석방돼 돌아온 셋째 날, 장원거 등이 천더광, 성춘메이, 천성화를 악명이 극히 높은 란저우시 치리허구 궁자완(龔家灣) 세뇌반으로 또 불법 납치했다. 이때 또 아들 천젠루가 혼자 남겨졌다.

2002년 8월, 모인지 겨우 사흘 밖에 되지 않은 천더광 일가는 다른 한 파룬궁수련생 취수판(曲淑范)을 면회했다가, ‘불법 집회’, ‘말썽을 부렸다’는 등 죄명을 뒤집어쓰고 하이스완 파출소에 납치당했다. 그리고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하고, 정신적으로 극히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천더광은 2003년 3월에 이르러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2. 두 부부가 거듭 납치되고, 란저우 공검법에서 공모해 무고한 사람을 모함하다

2011년 7월 6일, 천더광, 성춘메이 부부는 란저우시 훙구구 화좡진에서 중화 전통문화를 홍양한 션윈 시디를 배포하다 화좡진 파출소 경찰 먀오옌차이(繆彥才)에게 불법 납치를 당했다. 천더광 부부를 경찰차로 끌고 가 태울 때, 천더광은 여전히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러나 먀오옌차이는 듣지 않고 반대로 천더광의 뺨을 한 대 때렸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
중공 고문 설명도
: 구타

경찰차가 파출소에 들어선 후, 장궈웨이(張國維)는 천더광을 한 방안에 가둬넣고 그를 40여 시간 구타했다. 문밖에서도 펑펑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건장한 천더광은 한 번도 되받아치지 않았다. 다 구타한 후, 장궈웨이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뻔뻔하게 “당신은 뒷짐을 잘 졌다.(맷집 좋아 견딜 수 있음)”고 말했다. 천더광이 막 화좡 파출소에 들어가자 소장 레이푸린(雷富林, 하이스완에서 6년간 근무한 적이 있음)은 천더광을 알아보고, 그날 저녁에 곧 죄명을 꾸며내 구류증을 발급했다. 그날 저녁 경찰은 두 부부를 함께 가두고 두 간수를 남겼다, 성춘메이는 남편 천더광의 얼굴이 구타당해 붓고 얼굴색이 검게 된 것을 보았다.

이튿날 7월 7일, 천더광은 직접 훙구구 구치소로 보내졌다. 구치소에서는 단지 형식적으로 심장, 간 기능 등만 검사했을 뿐, 장궈웨이에게 구타당해 부상을 입은 그 다리는 검사하지 않았다. 성춘메이는 이튿날에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도 두 차례 란저우시 제1구치소로 보내졌으나 수감을 거부당했다. 그날 저녁 경찰이 강제로 집으로 끌고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6시 반쯤, 경찰은 ‘이야기를 나누자’는 명목으로 집에서 불러낸 뒤 차로 납치해 거듭 란저우시 제1구치소로 보냈으나 결과가 없었다. 이틀 사이에 연속 6번이나 성춘메이를 제1구치소로 보냈으나 모두 수감하지 않았다. 그 기간에 화좡 파출소 소장 레이푸리가 직접 란저우시 주저우(九州) 구치소로 보냈으나 구치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레이푸린은 단념하지 않고 차례로 3번이나 성춘메이를 란저우시 3소(三所) 대형병원으로 보내 검사를 받게 했다. 한 번 검사가 다 끝나면 구치소로 한 번 보냈는데, 구치소는 매번 수감을 거부했다.

레이푸린 무리는 어쩔 수 없이 그제야 성춘메이를 집으로 데려갔다. 이때는 이미 8일 자정이었는데, 악독한 경찰이 성춘메이를 문밖에서 막고 두 사람이 잡은 다음 성 씨에게서 강제로 수색해낸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떠한 증명서도 제시하지 않고, 단지 구두로 수사증이 있다고 공언하면서 10여 명이 집안에 들이닥쳐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화좡진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은 란저우시 훙구 공안 분국과 훙구구 하이스완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과 결탁해 10여 대의 차를 끌고 와 집을 포위했다. 10~20명은 집안의 재산을 강탈했는데, 종이 한 장도 놓치지 않고, 주방 찬장, 침실 옷장, 베란다의 잡동사니 상자까지 전부 뒤져 수색했다. 그 후 파룬궁과 연관되는 물품은 전부 강탈해갔는데, 텔레비전, 컴퓨터, 프린터, DVD, CD-RW, USB, MP3 등 물품과 많은 진귀한 대법 서적, 법신상 및 진상 자료 등 물품까지 포함한다. 수년간 사용하지 않은 털옷 편직기, 양산 두 개 등과 진상이 씌어 있는 화폐 백 위안도 강탈해갔다. 그리고 천더광과 고향 친척의 사진, 그들 가족의 옛날 사진, 휴대폰과 전화번호 책도 강탈했다. 현장 목격자는 경찰이 민가에 들이닥쳐 차량 몇 대에 강탈한 재산을 싣고 운반해 갔다고 했다. 게다가 경찰은 보증금 5천 위안(약 82만 원)을 갈취해 성춘메이를 보석하는 담보금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떠나가기 전, 천더광이 하이스완 구치소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그 후 남의 눈과 귀를 피하기 위해 이른바 ‘수사증’을 보충해 발급했다. 날짜 항목의 ‘8일’에는 명확하게 고친 흔적이 있는데, ‘9’를 ‘8’로 고친 것이다(바꾸어 말하면, 9일에 뗀 수사증일 수 있는데, 그 후 문제가 있어서 또 수사증의 날짜를 고쳤을 수 있음).

2011년 7월 8일, 악독한 경찰은 형법 300조로 입건해 천더광, 성춘메이에게 박해를 가했다. 불법 가택 수색을 진행할 때, 많은 진상 자료와 서적을 수색해냈다는 이유로, 7월 18일에 또 ‘국가안전을 위해 한 죄’로 입건했으며 이것으로 박해를 가중시켰다. 2011년 8월, 경찰은 ‘국가 정권을 전복하려고 선동한 죄’를 천더광 부부에게 뒤집어씌웠다. 10월 초, 사건을 란저우시 검찰원에 넘겼고 검사 스싱린(施興林)이 주관했다.

이와 동시에 가족은 천더광에게 베이징 변호사를 선임해 주었다. 변호사의 신속한 개입으로 관련된 경찰과 검사들은 일부 갈팡질팡하며 부득이 여러 차례 정찰을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11월 초, 훙구구 공안기관에서는 사건을 시 검찰원에 맡겨 심사하고 기소했다.

11월 23일, 천더광의 딸은 변호사와 만나 위탁서에 서명했다. 11월 24일, 변호사는 천더광 본인을 만나 천더광이 경찰 장궈웨이를 고소한 고소장을 가져왔다. 그는 장궈웨이가 ‘폭력으로 증거를 얻은’ 과정을 고소장에 상세하게 묘사했다.

장궈웨이는 천더광에게 불법 심문을 진행해도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자 몹시 화가 나 천 씨를 1시간 넘게 구타했다. 얼굴을 때리고 목을 주먹으로 구타했으며, 발로 가슴을 걷어차고 두 다리를 비벼 찼다. 장궈웨이는 차다가 지치자, 한 바퀴 돌고는 또 걷어찼다. 그의 두 팔을 잡고 발로 힘껏 걷어찼는데, 천더광은 가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밤에 잠을 잘 때도 아파서 몸을 뒤척일 수 없었다. 장 씨는 천더광을 구치소에 가둬 더 심하게 박해하려고 이튿날 그를 훙구구 병원으로 데려가 신체검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엑스선 투시 검사, 혈액 검사 등만 하고 체표 검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당시 천더광의 두 다리는 붉게 붓고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3개월이 지나서야 가라앉긴 했으나 종기가 되어 때로는 붉었다가 때로는 자색을 띠었으며, 때로는 아프고 가려웠다.

변호사는 천더광을 면회하고서 화좡 파출소 경찰 장궈웨이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한 사실을 고소한 ‘고소장’을 가지고 나왔다. 가족이 시 검찰원에서 이 사건을 책임진 검사, 시 공안국 감독과 및 훙구구 공안 분국 독찰과에 넘겨 입건하고 정찰할 것을 요구했으나 사방에서 책임을 미루며 가로막았다.

3. 두 부부가 법을 왜곡한 억울한 판결 9년 형을 선고받다

2012년 5월 28일, 란저우시 중급인민법원 형사1청 빙젠펑(邴建峰) 판사가 천더광의 딸에게 어머니 성춘메이와 함께 법원에서 기소장을 가져가라고 통지했다.

대리변호사는 2012년 6월 5일 오후에 란저우시 중급인민법원 형사1청 판사 빙젠펑의 사무실로 가서 수속을 밟고 판사의 통지를 받았는데, 법원 측에서 이미 6월 12일 오전 9시에 천더광, 성춘메이 부부에 대해 불법 개정 심리를 진행한다고 정했다는 것이다. 6월 11일 변호사가 란저우에 도착했다. 그러나 중급인민법원 판사 빙젠펑은 11시쯤 천더광의 딸 천성화(陳盛華)에게 첫 번째로 전화를 걸어 몇 명이 방청하는지를 물었다. 딸이 “당신이 방청을 허락하는 수만큼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빙젠펑은 “좋다.”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빙젠펑은 거듭 전화를 걸어 “‘610’ 사람이 개입해서 당신 부친의 사건을 내일 개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언제 개정하는지를 문의하자 “무기한으로 연기한다.”라고 대답했다.

7월 초, 화좡 파출소 경찰 먀오옌차이(繆彥才)는 보석 기한이 만기되었다며 성춘메이에게 훙구 공안 분국으로 가서 보석 보증금에 서명하라고 했다. 그의 딸은 어머니가 몸이 불편하고 또 불법 납치당할 까 걱정되어, 직접 훙구 공안 분국 법제과로 가서 보석을 해소하는 절차와 요구를 똑똑히 문의했다. 법제과 경찰은 노인의 몸이 불편하면 연기해 서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좡 파출소 경찰 먀오옌차이는 또 두 차례나 전화를 걸어 노인에게 서명하러 가도록 요구했다. 맨 마지막 한 차례는 심지어 직접 그의 딸 집으로 가서 성춘메이 노인을 찾았다.

7월 25일, 경찰은 거듭 성춘메이를 불법 납치했다. 성춘메이에게 진부성 심장동맥경화증, 당뇨병, 고혈압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고, 또 구치소에서 진행한 신체검사에서도 통과하지 못했음에도 란저우시 제2인민병원 의사를 꼬드겨 신체 검사표에 도장을 찍게 하고 성춘메이를 란저우시 제1구치소에 불법으로 가뒀다.

7월 28일, 화좡 파출소 경찰 먀오옌차이는 성 씨의 딸에게 전화를 걸어 성 씨의 집에 가보라고 했다. 딸이 도착했을 때, 성춘메이는 이미 끌려간 뒤였고, 방안에는 많은 경찰이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진행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인탄로(銀灘路) 파출소, 닝안(安寧) 공안 분국, 훙구 공안 분국, 란저우시 공안국, 란저우시 중급인민법원, 란저우시 검찰원의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2012년 11월, 판사 빙젠펑은 천더광의 변호사 변호 의견을 청취한 후, 천더광의 ‘국가의 정권을 전복하려고 선동한 죄’는 법에 따라 성립되지 않는다고 느껴, 천더광의 사건을 검찰원에 돌려보냈다. 란저우시 검찰원에서도 반송한 후, 훙구구 검찰원에서는 사실 진상과 법률을 돌보지 않은 채 강제로 새롭게 입건했다.

2013년 4월, 훙구구 법원에서는 불법 개정을 진행했는데, 판사 장쉐린(張雪林)이 통지한 절차가 위법이어서 두 변호사는 법정에 나서서 변호할 수 없게 되었다. 장쉐린 판사는 천더광의 딸 천성화에게 변호사의 변호를 포기시키면 그녀에게 가족 변호사로서 법정에 나설 수 있게 해주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천성화는 단호하게 “장 판사, 당신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 있습니다. 첫째는 당신이 강제로 개정을 진행하고, 나는 당신을 고소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당신이 개정을 연기해 사전에 변호사에게 통지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장쉐린 판사는 “그럼 나는 책임자에게 보고하겠다.”라고 말하고는 몸을 돌려 들어갔다.

장쉐린 판사는 거듭나온 후, 천성화와 변호사에게 개정을 연기함에 관한 신청서를 쓰도록 했다. 천성화가 다 쓴 후, 장 판사는 책임자와 회의를 열어 상의하겠다며 또 몸을 돌려 법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훙구구 ‘610’ 사무실[반사교(反邪) 사무실] 인원과 결탁해 천더광과 성춘메이에게 변호사를 해임하고 무료 변호사를 배치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천더광은 엄숙하게 “무료 변호사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거부했다. 천 씨가 두 시간 동안 확고한 목소리를 내자 장쉐린과 ‘610’ 인원은 그만두고 개정 연기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주, 훙구구 형사1청 청장 루창라이(魯常來), 장쉐린은 치리허(七里河)법원에서 개정을 진행한 허젠중(賀建中) 사건을(허젠중과 천더광의 변호사는 동일 변호사) 방청했다.

2013년 5월, 훙구구 법원에서는 거듭 개정을 진행했는데, 형사1청 청장 루창라이와 검사 쒀젠추(索劍秋)는 서로 어울려 못된 짓을 저질렀다. 루창라이는 개정할 때 사건과 관련 없는 것을 말함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개정 과정 중, 천더광, 성춘메이가 파룬궁을 연마해 몸이 건강해지고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고 언급할 때, 또 변호사의 질문이 이와 관련 있을 때, 루창라이는 말을 중단시키고 “파룬궁을 수련해 심신에 이로움을 얻은 것은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개정이 끝난 후, 법원에서 나오던 사법계 관계자마저 “검사의 질문은 변호사가 모두 대답했는데, 변호사의 질문에는 검사가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 몇 년 동안 모두 무엇을 했지!”라고 비평했다.

2013년 8월, 성춘메이의 변호사는 장쉐린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상황을 문의했는데, 장쉐린 판사는 “사건은 아직 결론이 없으며 이미 610에 보고해 올렸다. ‘610’의 결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2013년 9월, 천더광 부부는 9년 형을 불법 선고받았다. 천더광 부부는 불복해 상소를 제기했다. 9월 중순, 변호사는 란저우시 중급인민법원으로 가서 수속을 진행했다. 판사 사오쥔메이(邵軍梅)는 이 사건은 개정 심리를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2013년 10월 하순, 천더광의 자녀는 ‘공개 개정 신청서’를 건넸는데, 신청서에 여러 부분의 위법 행위를 언급했다. ‘형사소송법’에 근거하면 이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개정 심리를 진행해야 하는데, 사오쥔메이는 오히려 고집을 부리고 개정 심리를 진행하지 않겠다며, 변호사에게 변호문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2013년 11월 6일, 란저우시 중급인민법원에서는 억울한 선고를 유지했다. 11월 하순에 불법 선고서를 천더광, 성춘메이 및 그의 자녀에게 송달했다.

4. 성춘메이가 박해로 사망하다

2014년 1월 하순, 67세인 천더광은 란저우감옥으로 납치됐고, 62세인 성춘메이는 간쑤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란저우시 제1구치소에서 성춘메이의 몸은 이미 박해로 여러 가지 합병증, 유전성 심장병, 고혈압이 지속됐으며, 당뇨병과 백내장 합병증이 나타나 거의 실명에 가까웠다. 가족은 성춘메이가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을 때 건강 문제 때문에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제기했으나 줄곧 거부당했다.

간쑤 여자감옥에 있던 기간, 성춘메이가 항상 바오자(包夾, 수감 감시인)가 규정한 일거일동에 따라 인사를 하지 않거나 내가 잘못했다는 등을 말하지 않자 바오자 천리핑은 성춘메이의 허벅지 안쪽을 비틀고 꼬집고 팔의 살을 잡아당기고 잣대로 머리를 때렸다. 성춘메이는 아파서 줄곧 소리를 질렀다. 성춘메이가 몸이 약해 혹독한 구타를 견디지 못하자, 바오자는 늘 그녀에게 세수를 시키지 않고 물을 가득 채운 대야를 받들고 오랫동안 서 있게 하며 괴롭혔는데, 물이 조금만 흘러도 잡아당기고 꼬집고 저급한 말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는 이미 일상이 되어 있었다. 이런 고통에 성춘메이에게 심각한 당뇨병 증상이 나타나 걸을 때 휘청거렸고 앞을 똑똑히 보지 못했으며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그럼에도 바오자는 또 그녀에게 사상 회보 쓰기, 화장실 청소, 세워두는 고문과 쪼그려 앉는 고문을 가했다. 처음의 바오자는 천리핑이었고, 그 후의 바오자는 하오쥐안쥐안(郝娟娟)이었다.

장기간 감옥에서 박해당하던 성춘메이에게 심각한 당뇨병, 실명 증상, 청력 상실 증상이 나타났다. 바오자 천리핑은 성춘메이가 실명했는데도 밥그릇을 씻고 화장실 갈 때 데리고 가지도 않았다. 성춘메이는 더듬으며 스스로 했다. 한 번은 천리핑이 성춘메이의 옷깃을 들어 올려 뺨을 때렸다. 그리고 천리핑은 윗 침대에서 자고 성춘메이는 아래 침대에서 잤다. 성춘메이는 늘 모욕당하고 욕을 먹었다. 그리고 또 핍박에 못 이겨 매일 이른바 ‘사상회보’를 썼는데, 성춘메이가 두 눈이 실명해 보지 못하는데도, 성 씨를 핍박해 이른바 ‘사상회보’를 쓰게 했다. 그 후 성춘메이는 그들에게 쓰지 않을 것이고 또 쓰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그녀들은 성춘메이에게 ‘사상 인식’을 말하도록 했다.

2017년 4월 7일, 간쑤 여자감옥에서 성춘메이의 딸 천성화에게 전화를 걸어, 성 씨가 화농성 담낭염에 걸렸다며 딸에게 수술 서명을 하라고 했다. 서명하지 않으면 성춘메이와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성춘메이의 딸은 서명하고 어머니를 만났다. 성춘메이는 보수 치료를 받겠다고 직접 제기했다. 딸도 수술을 받은 후 어머니가 감당할 수 없을까 걱정돼 보수 치료를 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 기간에 여자감옥 딩하이옌(丁海燕)과 교도관은 법을 집행하는 휴대용 자동녹화 카메라를 지니고 현장에 있었다. 성춘메이의 딸은 어머니가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도록 수속을 밟으려 했으나 거부당했다.

5월 어느 날 밤, 성춘메이는 갑자기 혼미상태에 처해 감옥 의사실로 업혀 갔다. 상황이 심각했기에 또 란저우 대학 제2병원으로 보냈다. 감옥 의사는 성춘메이의 딸 천성화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혼미해져 란저우 대학 제2병원에서 응급처치로 살려낸 후 신차오(新橋) 감옥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그리고 병이 위중하다는 통지를 내려 가족에게 만나러 가도록 했다. 천성화가 당시 감옥 의사의 전화를 받았는데, 어머니가 또 병이 위중해 응급처치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통화 중에 직접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해달라는 요구를 제기했다. 감옥의사는 병보석 조건에 부족하다고 말했다. 성춘메이의 딸이 “사람이 죽어야만 조건이 되냐고 말하자, 감옥 의사는 “당신 어머니의 고혈압은 3급이어서 조건과는 거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성춘메이의 딸이 “당신은 신청하세요. 당신이 신청하지 않으면 당신의 책임이고, 그들이 비준을 내리지 않으면 그들의 책임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그럼 좋아요. 내가 당신을 위해 신청해 볼게요.”라고 말했다.

8월 23일, 성춘메이는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았고, 훙구 사법국에서 인계 수속을 밟았다. 사법국 왕(王) 소장은 성춘메이는 마땅히 훙구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또 가족에게 많은 보증을 쓰도록 했고, 보증인은 훙구 하이스완(海石灣)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추가로 한 조목을 보탰는데, 만약 성춘메이의 신변에 보살피는 사람이 없어 어떤 상황이 나타나면 가족의 책임이고 사법국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다.

장기간 감금 박해를 당해, 성춘메이는 극도로 허약했고 늙어 보였다. 화농성 담낭염으로 성춘메이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감옥에 있을 때 늘 구토한 데다 또 고혈압 증상, 당뇨병, 실명 증상, 청력 상실 증상이 나타났다. 집으로 돌아온 후, 성춘메이는 처음 하루 이틀은 그래도 음식을 약간은 먹을 수 있었는데, 그 후에는 줄곧 음식을 먹지 않았다. 다리도 부어오르고 밥을 먹는 것도 다른 사람이 먹여줘야 했다.

훙구에 있는 성춘메이의 집에 더는 사람이 없어 딸은 훙구 사법국에 일주일간 휴가를 신청하고 어머니를 닝안구에 있는 자기 집으로 모셔 보살펴 드렸다. 그 후 성춘메이는 몸이 불편해져 또 20여 일간 입원했다. 퇴원한 후, 딸은 어머니를 직접 자신의 집으로 모셔가 보살펴 드렸는데, 훙구 사법국에 다시 휴가를 신청하지는 않았다. 10월 1일 장기 휴가 전, 훙구구 사법국 왕 소장은 성춘메이의 딸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의 요구는 성춘메이가 이 구역(훙구구)을 떠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말 안 되면 감옥으로 환송하겠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국장의 전화번호를 주며 국장과 연락하라고 했다.

10월 6일, 성춘메이는 화장실에 가서 앉았다가 일어나지 못했고 발도 부어올랐다. 10일에는 마비돼 자리에 누워있었고, 왼쪽은 이미 마비되어 전신에 아무런 기운도 없어 병원으로 보냈다. 뇌 전반에 걸쳐 뇌경색 증상이 나타났고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병원에서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12일 아침에 의식이 없었는데, 8시 40분쯤 억울하게 사망했다.

성춘메이가 박해당한 상황에 관해 밍후이왕 보도 ‘9년 형 억울한 선고당한 성춘메이, 간쑤 감옥에서 거의 실명되고 청력 잃어’, ‘란저우시 천더광, 성춘메이 두 노부부 억울한 옥살이 당해’, ‘간쑤 여자감옥에서 파룬궁수련생을 잔혹하게 박해하다’, ‘성춘메이가 거의 실명하고 담낭염에 걸렸으나 간쑤 여자감옥에서 보석 석방 거부’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천더광, 성춘메이 부부를 박해하는 데 참여한 란저우 사법 기관과 책임자:

2001년 2월 9일, 천더광은 란저우시 노동교양관리위원회에 의해 1년 6개월 동안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란노교【2001】98호(蘭勞教【2001】98號)]을 받았다. 성춘메이는 2001년 3월 3일에 2년 형 불법 노동교양처분[란노교【2001】179호]을 받았다.

2011년 7월 6일, 천더광, 성춘메이는 란저우시 훙구구 화좡진(花莊鎮) 황싱촌(湟興村)에서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화좡 파출소 소장 레이푸린(雷富林), 경찰 장궈웨이(張國維), 먀오옌차이(繆彥才), 특수 경찰 마빈(馬斌) 등에게 납치, 구류를 당했다. 그 후 란저우시 제1, 제2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성춘메이에게 진구성 심장 동맥 경화증, 심장박동이 너무 빠른 증상 등 심각한 질병이 나타났다. 5천 위안(약 82만 원)의 보증금을 불법적으로 갈취당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2012년 7월 25일, 성춘메이는 란저우시 안닝구 타오하이(桃海) 시장의 세 들어 사는 집에서 안닝 분국 인탄로(銀灘路) 파출소 경찰 리펑쥔(李峰軍), 천위탕(陳玉堂), 펑웨이(彭瑋), 한구이링(漢桂玲) 등에게 납치를 당했다.

란저우시 공안국 훙구 분국 불법 구류서: 란공홍형구통자(蘭公紅刑拘通字) 【2001】83호, 2011년 7월 7일, 이른바 업무 인원: 먀오옌차이, 장훙강(張宏剛)

란저우시 공안국 훙구분국 불법 수사 증:란공홍수【2001】2호, 란저우시 훙구구 화좡 파출소 레이푸린, 장궈웨이, 먀오옌차이, 국장: 왕신위안(王鑫元, 2011년 7월 8일

란저우시 공안국 훙구분국 국가보안대대: 리링(李陵), 차오위안위안(曹媛媛)

란저우시 훙구구 형사 과학기술실 기술원: 훠궈더(霍國德), 천쭤펑(陳作鵬)

란저우시 공안국 훙구분국 불법 체포서: 란공홍형대통자(蘭公紅刑逮通字)[2011]73호, 2011년 8월 12일, 이른바 업무 인원: 먀오옌차이, 장훙강

란저우시 공안국 반(反)사교(중공이 진정한 사교임) 정찰 지대 감정팀: 류융(劉永), 장쉐융(張學勇(2011년 7월 18일), 장나(蔣娜), 캉중창(康中強), 리훙보(李泓波, 2012년 8월 1일).

란저우시 공안 사법 감정센터: 엔지니어:거옌핑, 쑨시쥔(孫希俊, 2011년 11월 2일), 란저우시 청관구(城關區) 우두로(武都路) 482호, 우편 번호:730030, 전화:0931-8718307

란저우시 공안국 훙구분국 이른바 업무 인원: 먀오옌차이, 장궈웨이

란저우시 공안국 훙구분국에서 2011년 7월 8일에 강제로 5천 위안의 보증금을 갈취했다. [란공홍형몰보자(蘭公紅刑沒保字)【2012】3호] 2012년 8월 6일에는 불법으로 몰수했다.

란저우시 훙구구 검찰원에서는 홍검형소자(紅檢刑訴字)【2013】제21호로 천더광, 성춘메이를 불법으로 기소했다. 검찰원에서 지명하여 파견한 검사 장쑹성(張松盛), 쒀젠추(索劍秋)가 불법으로 공소했다.

간쑤성 란저우시 훙구구 법원 형사판결서【2013】홍형초자제18호, 이른바 ‘중화인민공화국 형법’ 제300조 제1항, 제25조 제1항, 제64조로 천더광, 성춘메에게 9년 형 억울한 불법 선고를 내렸다.

재판장: 루창라이(魯長來)

재판원: 장쉐린(張雪林)

대리 재판원: 뉴가오커(牛高科)

서기원: 쑹리쥐안(宋麗娟)

원문발표: 2017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10/3565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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