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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상반기 쓰촨(四川) 파룬궁수련생 박해 현황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쓰촨 종합보도) 밍후이왕 정보통계에 따르면 2017년 1월~6월까지 쓰촨성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58명이 불법적으로 구속되어 재판에 회부돼, 55명이 억울한 형을 받았는데, 그중 량산(涼山)주의 5명은 중급법원에 상소를 제기 후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외 814명이 교란, 205명이 납치당하고 금품을 강탈당했는데, 벌금형식으로 강탈당한 액수가 209,800위안이다. 2017년 상반기 밍후이왕 보도에 의하면 6명의 쓰촨 파룬궁수련생이 중국공산당(중공)의 고문박해로 사망했다.

2017年1~6月四川法輪功學員遭迫害統計
도표
1 20171~6월 쓰촨 파룬궁수련생 박해 현황

표1 2017년 1월~6월 쓰촨 파룬궁수련생 박해유형 및 지역별 인원 현황

지 역 가택수색교란 불법구속재판 납치가택수색 불법 판결
청두(成都) 279 18 61 18
더양(德陽) 181 3 30 8
루저우(瀘州) 39 1 16 4
광안(廣安) 16 1 8
바중(巴中) 35 1 3 3
쑤이닝(遂寧) 100 1 47 3
몐양(綿陽) 4 3 12 4
러산(樂山) 6 4 8 2
난충(南充) 17 14 2 5
쯔궁(自貢) 1
네이장(內江) 10 3 2
야안(雅安) 6 2
판즈화(攀枝花) 10 2 2 1
량산(涼山) 40 3 2 5
즈양(資陽) 15 2 5
다저우(達州) 30 5
광위안(廣元) 12 1
메이산(眉山) 13
쓰촨거주 외지인 1 1 1
합 계 814 58 205 55

1. 성내 각 지역의 교란, 납치, 약탈정황

(1) 2017년 상반기 쓰촨 파룬궁수련생이 교란당한 정황으로 이름과 구체적인 수치가 있지만, 전반적인 지역에서 교란당하고도 이름을 밝히지 사람이 일률로 3명이라, 합계 814명이다. 가장 심한 교란을 당한 성은 청두, 더양, 쑤이닝 등 지역으로 나타났는데, 그중에서도 청두, 다저우, 쑤이닝 지역에서 가장 악랄했다.

1) 청두시 위안(袁) 할머니는 심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실신했다

5월 24일 청두시 진탕(金堂)현 중허(中河) 지역사회의 쌍더후(桑懷虎)와 경찰 청쥔(葉成軍) 등은 무리를 이끌고 파룬궁수련생 리중쉬(李中秀) 집에 강제로 들이닥쳐 그녀의 대법서적을 강탈해갔고, 5월 25일 중허 지역사회의 공무담당자와 경찰 6,7명이 위안수화(袁秀華) 집에 강제로 들이닥쳐 대법서적 10여 권과 법상을 강탈하며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실신했다.

2) 청두시 칭바이허구 장위즈(張玉芝), 폭행으로 넘어져 혼수상태에 빠지다

4월 7일 따완(大彎) 파출소 경찰관과 지역사회직원 일행 4명이 76세 파룬궁수련생 장위즈 집에 들이닥쳐 소란을 피우며 법상을 강탈해가려고 하자, 이를 만류하는 노인을 밀쳐 바닥에 쓰러트려 잠시 혼수상태에 처하게 했다. 그들은 노인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전화로 연락해서 다완(大彎) 파출소장까지 출동하게 했다.

(2) 성의 각 지역 납치박해사례

2017년 상반기 쓰촨 각 지역 파룬궁수련생 205명이 납치당했다. 납치당한 사람은 모두 가택수색을 당했고,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을 당했다. 가장 악랄한 박해를 가한 지역은 청두, 쑤이닝, 더양, 루저우 순이다.

1) 진탕(金堂)현 우춘란(吳春蘭)은 고문박해로 반신불수가 되었고, 충격으로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청두 진탕현 파룬궁수련생 우춘란(吳春蘭.女,53)은 2016년 9월 9일 20여 명의 특수경찰에게 납치되어 가택수색당한 후 피(郫)현 파출소에 1개월간 감금됐다가 검찰에 송치돼 진탕현 러우셴(棲賢) 구치소로 송치됐다. 우춘란은 감금된 상태에서 21차례 조사를 받았는데 혹독한 고문으로 생명이 위급해 12월 21일 경 청두시 병원에 긴급 후송돼 응급처치를 받기도 했다. 원래 건강했던 그는 3개월간 각종 고문과 혹형을 당해 반신불수가 됐다. 2017년 1월 2일(혹은 1일), 반신불수의 몸으로 병보석형식으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우춘란의 남편은 진탕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중이었는데, 아내 우춘란이 납치당하자, 정신적 충격을 받은 남편은 결국 12월 26일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이 상복을 입고 구치소를 찾아가 “어머니를 석방해,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허락하지 않았다.

2) 피두(郫都)구 장슈친(張秀琴) 노인, 경찰 장칭화(張慶華)에 구타와 협박당하다

청두 피두구 탕위안(唐源)진 파룬궁수련생 장슈친 노인은 5월 2일 탕창(唐昌)진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종합치안관리인에게 납치돼 잔인하게 구타당한 후 탕위안진 파출소로 넘겨졌다. 파출소 장칭화 경찰관은 분무기 관으로 계속 장슈친을 혹독하게 구타했는데, 노인이 실신해서야 구타를 멈췄다. 노인은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깨어나서도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자, 악경(사악한 경찰)은 “자신의 악행을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위협한 후 귀가 시켰다.

3) 청두시 리샤오핑(李小平) 등이 불법적으로 1년여 수감되어 박해당하다

밍후이왕의 2017년 6월 26일자 보도에 따르면, 2016년 7월 23일 오후 청두시 우허우(武侯)구의 10여 명 파룬궁수련생이 리샤오핑 집에서 단체법공부를 하다가 같은 동네 악인에게 신고당해 전부 경찰서로 납치된 후 가택수색을 당했다. 그들은 납치 된 후 진양(晉陽) 파출소, 진화(金花) 파출소에 각각 분산 수용됐는데, 진화파출소 경찰관은 파룬궁수련생 한 사람 한사람씩 차례로 심문했는데, 그들 수련생을 모두 족쇄와 수갑을 채우고, 철창 안에 가둬 아주 작은 의자에 앉히는 체벌을 가했으며,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2일 후 자오더팡(趙德芳) 등 5명은 공갈 협박으로 2,000위안을 갈취당한 후에야 풀려났다. 그러나 리샤오핑, 쉬융(胥泳), 저우쯔위(周自玉), 장밍훙(張明紅), 류수링(劉淑玲) 등은 아직까지 피현구치소에 감금돼 있는 상태인데, 1년 가까이 됐다. 그들은 이미 정식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수감된 상태이며, 법원에 기소돼 우허이(武侯)구 법원의 불법적인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리샤오핑은 오랜 기간 감금돼 심한 박해의 조사를 받은 관계로 건강이 악화돼 고혈압과 심한 기침으로 건강이 상당히 악화된 상태다.

4) 쑤이닝 샤오쿤잉(肖坤英) 진상을 알리다 납치된 후 행방불명

6월 7일 오전 8시 경 쓰촨 쑤이닝 룽핑향 파룬궁수련생 샤오쿤잉(肖坤英)은 시왕(希望) 초등학교의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학교경비원의 악의적인 신고로 파출소경찰에게 납치됐는데, 지금까지 행방불명상태다. 납치당일 저녁 쑤이닝 방송국에서는 “샤오쿤잉이 아이를 유괴해 잡혀갔다.”고 허위보도를 했다.

5) 루저우시 탕톈민(唐天敏) 또 불법적으로 수감되다

탕톈민(唐天敏.여.62)는 루저우시 나시(納溪)구 파룬궁수련생으로, 4월 8일 중공에 불법적으로 납치되어 이미 검찰에 송치돼 루저우시 나시구 안푸차오(安富橋)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탕톈민은 납치된 후 불법적인 납치와 감금에 단식으로 항의했는데, 구치소 측은 그럴 적마다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면서 약명 미상의 독극물을 주입했다. 또 구치소 측은 그녀에게 수액링거를 해준 후 1천 위안이 넘는 많은 돈을 갈취하려고 했다. 탕톈민은 과거 선천적인 심장병, 당뇨병, 류머티즘, 부종 통증, 자궁근종, 위염, 질염 등의 고질병이 있었지만, 1998년 파룬궁을 수련한 후 그녀의 병들은 씻은 듯이 사라져 기적처럼 건강해졌다.

탕톈민은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아주 극심한 박해를 받았었다. 2004년, 2008년 두 차례 납치되어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수용소에 감금되어 온갖 고문과 폭력적인 구타를 당하면서 소위 ‘전향’을 강요당해 죽음에 이르렀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2012년 또 다시 납치되어 비밀재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되어 ‘전향’을 강요당하며 온갖 고문을 당했는데, 매달기, 수갑 채우기, 구타, 모욕, 묶기, 벌서기, 호랑이의자에 앉히기, 죽음의 침대에 묶이기, 강제노역 등 몇 십 가지의 고문과 혹형으로 생사를 넘나들었다. 탕톈민은 2016년 9월 22일 또 납치되어 루저우나시 구치소에서 9일간 고문을 받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가족에게 신병이 인계되어 자택감시를 당했다.

(3) 재물을 강탈당한 현황

2017년 상반기 쓰촨성 파룬궁수련생이 공산당에 갈취당한 금품은 벌과금형식으로 현금 209,800위안, 미니버스 1대, 컴퓨터 7대, 프린터기 9대, 컬러프린터기 1대, 설비 1대, 핸드폰 10개, 디지털 카메라 10대, 전화카드 1세트, 소모품, 프린트종이 수 박스, 서적 수백 권 등을 강탈당했다.

2. 쓰촨성 각 지역에서 불법적으로 구속되어 재판받은 사람 58명, 억울한 형을 받은 사람 55명

쓰촨 난충 2016년 11명이 구속당한 후 2017년 현재 재판 중이거나 대기 중에 있는 데, 1명은 재판이 끝나 선고를 기다리는 중에 있다.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불법적인 납치와 구속재판이 가장 심한 지역은 청두시, 더양 지역이다.

(1) 바중시 뤄쥔(羅君), 허둥메이(何冬梅) 2심 때 변호인 무죄주장

2017년 5월 15일 쓰촨 바중시 바저우(巴州)구 법원은 파룬궁수련생 뤄쥔, 허둥메이에 대해 불법적인 두 번 째 재판을 개정했다. 뤄쥔의 가족은 2명의 변호사를 선임해 변론했고, 허둥메이는 남편이 변론했다. 3명의 변호사 모두 피고 3명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은 법률적 근거와 명확한 이론으로 무죄를 주장하는 변론을 했는데, 특히 허둥메이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공개통고 2000년 39호 문건’ 복사 본을 제출했고, 2011년 반포한 ‘중화인민공화국 신문출판본부에서 5번째 규범성문건을 폐지한다는 결정’문도 제출하면서, “이 결정문은 1999년 파룬궁서적의 출판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두 개 통지를 명확하게 폐지한 것이므로 파룬궁서적은 정상적으로 출판하고 인쇄할 수 있으며 출판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라는 입장을 제기했다. 그는 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방 신문이 보도한 14개 사교조직명단에는 파룬궁이 기재되어 있지 않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허둥메이의 변호인은 또 현 정부가 들어서서 반포한 관련된 많은 규정을 주시해주기를 바란다고 재판부에 요구하면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과 파룬궁의 믿고 선전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거듭 주장했다.

뤄쥔의 한 변호사인 량샤오쥔(梁小軍)은, 사건의 본질에 대해 충분히 변론했다. 파룬궁의 진선인(真善忍)은 당연히 보호해야 할 믿음인데, 무슨 법률을 끌어다 탄압해서는 안 된다. 어떤 정부도 어느 믿음에 대해 옳고 그름을 구분하며 사악한 것이라고 인정할 권리가 없다고 질타했다. 파룬궁수련생이 족자를 걸고 표어를 붙이는 것은 반박해하는 것이고, 어디에 박해가 있으면 어디에 항거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변론내용은 법정의 판사와 공소인이 할 말이 없게 했다.

피고석에 앉아 있던 사람도,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은 고상한 도덕심을 가지려는 것이고, 또 병을 없애고 건강하려는 것이라고 하면서, 재판장이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하길 바란다고 했다. 법정심문 과정 중 판사, 기록원, 공소인 등은 얼굴표정이 점차 변해갔다. 처음에는 오만한 자세로 피고와 변호인을 째려봤지만, 변론이 진행되면서 특히 허둥메이 변호인의 변론이 끝나자, 그들의 얼굴은 천천히 부드러워졌는데, 어떤 사람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했고, 어떤 사람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었다. 재판장 푸성위안(蒲升元)은, 차후 판결일자를 고지하겠다며 재판을 끝냈다.

(2) 청두 웨이짜이후이(魏再慧), 웨이짜이슈(魏再秀), 천광중(陳光忠) 납치당해 교도소에 수감

청두 쐉류(雙流) 화양(華陽) 파룬궁수련생 웨이짜이후이, 웨이짜이슈, 천광중 등 3명은 2015년 5월 납치되어 2017년 2월 불법적인 형을 선고받았는데, 웨이짜이후이 7년, 웨이짜이슈 7년, 천광중 3년형을 각각 선고 받고, 3명 모두 상소했다. 2017년 4월 2심 재판을 받은 후 현재 3명 모두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인데, 웨이짜이후이는 청두 룽취안이(龍泉驛)구 여자교도소 제5감구, 웨이짜이슈는 제2감구, 천광중은 러산 자저우 교도소 제2감구에 각각 수감되어 있는 상태다.

(3) 납치, 강탈, 모함당한 몐양시 쑨런지(孫仁智)가 경찰을 고소

밍후이왕 2017년 7월 1일자 보도에 의하면, 몐양시 파룬궁수련생 쑨런지가 2017년 4월 9일 납치되어 가택수색을 당해 금품을 강탈당한 후 6월 21일 안저우(安州) 법원에 불법적으로 기소됐다. 쑨런지는 자신이 당한 불법적인 처사와 그로 인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관련 경찰관과 검찰관계자들을 고소했는데, 경찰관은 불법감금죄와 불법 수색죄로, 검찰관은 직권남용죄로 각각 고소했다.

2017년 4월 9일 오전 9시 경 몐양시 안(安)현 제파이(界牌)진 파출소 경찰관 양썬(楊森)과 또 한 여자경찰관은 상부의 명령을 집행한다며 증명서나 구속영장도 없이 쑨런지를 강제로 납치해 제파이 파출소로 끌어가서, 몸을 수색해 집 열쇠를 빼앗아, 당일 오후 3시 경 국가보안부대장 랴오(廖)의 지휘로 다수의 무리(신짜오(新皂) 파출소경찰, 신짜오 지역사회의 사람들)를 대동하고 사람이 없는 쑨런지 집에 들어가서 가택수색을 단행해 금품을 강탈했으며, 국가보안 경찰 팡융(彭勇)과 파출소부소장 추위팅(邱喻挺)은 쑨런지를 안저우(安州) 병원에 끌고 가서 강제로 신체검사를 실시하게 하여 당일 4시 경 안저우 구치소에 감금했다. 당시 그의 혈압은 168, 혈중농도가 22.4로, 의사가 언제든지 기절할 수있기 때문에 수감할 수 없다는 소견을 냈는데도 그들은 강제로 수감했다.

전반 수사과정에서 수색영장을 보여준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수색하고 물품을 압수할 때 본인이 현장에서 압수당한 물품을 확인하게 하지 못했으며, 더구나 제3자의 입회도 없었고, 압수금품 목록 서명도 없었다. 또 경찰이 심문하는 과정에서 쑨런지에게 범죄협의와 소송권리와 의무의 고지도 하지 않았다.

쑨런지는 2017년 4월 9일 불법적으로 구속되었다가 동일 보석으로 풀려나, 2017년 6월 21일 몐양시 안저우 검찰원 관계자들을 고소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불법적으로 납치하고 수사하고 조사한 자들을 국가기관과 쓰촨, 몐양시 공검법, 기율검사위원회, 인민대표대회, 정법위 등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는 고소장에서 공소인 장량화(張良花)는 쑨런지 사건을 조사하고 기소하는 과정에서 증거부족을 무시했고, 명백하게 진실이 결여됐으며, 절차상 위법한 행위였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쑨런지를 기소했는데, 이는 국가사법기관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이다. 그녀의 직무자격이 의심되는바 쓰촨성 몐양시 사법국은 안저우구 검찰관 장량화의 사법시험 성적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3. 쓰촨성 2017년 상반기 박해로 사망한 사례

(1) 시창(西昌)시 허셴전(何先珍)은 쓰촨 여자교도소의 고문박해로 교도소에서 사망

허셴전(何先珍.女.67)은 시창인 시창시 301가족 주택단지에 거주한다. 2017년 2월 2일 새벽 5시 쓰촨성 진탕(金堂) 교도소병원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과거 질병으로 건강이 좋지 못했지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지 6개월 만에 온몸의 질병이 다 나았다. 그녀는 혼자서는 생활 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심했는데, 현재는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돌봐주고 있는데, 반신불수의 노인을 보살펴주고 있었다. 파룬따파를 수련해 건강이 좋아진 노인은 심덕도 좋아져서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는데, 누가 보아도 순박하고 인자했다. 그는 자신을 그렇게 변하게 해준 파룬따파에 대해 항상 고마움을 느끼며 감사했다.

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따파를 비방하고 모함할 때, 허셴전은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무고하게 중공에 박해받고 있는 진상을 알렸다. 그래서 납치되어 고문박해를 받다가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2009년 9월 23일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시창시 국가보안에게 납치되었고, 악경에게 구타당하고 금품을 강탈당했다. 2010년 시창시 법원에서 억울하게 10년형을 선고 받고 2011년 6월 30일 쓰촨성 젠양양마허(簡陽養馬河) 여자교도소 제2감구에 수감 되어 고문박해를 당했는데, 교도관들이 그녀의 전향을 강요하며 온갖 고문박해를 가하는 바람에 2014년 12월 19일 쓰러졌다. 교도소 측 말에 의하면 갑자기 뇌출혈이 나타나 젠양시 인민병원에 후송하여 응급처치를 한 후 뇌수술 등을 했지만 계속 혼미상태로 있다가 깨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병원에 이송되기 전 교도소 측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여러 번 가족에게 신병을 인수해 가라고 통지 했지만, 노인을 돌볼 재정적 힘이 없는 가족은 신병 인수를 포기한바 있다. 2017년 2월 2일 가족은, 허셴전이 사망했다는 교도소의 통지를 받았다. 노인이 세상을 떠난 후 가족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교도 측은 화장비와 가족의 교통비만 부담했다. 그는 그렇게 억울하게 교도소에서 고문박해를 당하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까지 교도소 측에서는 아무런 의사표시도 없다.

(2) 쯔궁시 푸스(富世)진 천다췬(陳大群)은 교도소의 잔혹한 박해를 받은 후 사망

쓰촨성 쯔궁시 푸스진 천따췬(陳大群.女.76)는 두 차례 억울한 판결로 모두 8년 징역형을 받고 수감된 후 출옥할 때는 온몸이 부었는데 2017년 새해 들어 세상을 떠났다.

(3) 청두 청화이건(程懷根) 러산(樂山) 자저우(嘉州) 교도소의 박해당해 사망

程懷根遺照
청화이건
(程懷根)의 생전에 찍은 사진

청화이건은 바아자(白家)제분소에서 근무하다가 후에 해고를 당했다. 2015년 5월 13일 주택단지에서 ‘세계는 진선인(真善忍)이 필요하다’는 현수막을 걸었다가 납치돼 불법적인 4년형을 받고 러산(樂山) 자저우(嘉州) 교도소에 수감되어 수형생활 하던 중에 고문박해로 2017년 5월 29일 사망했다. 사망당시 54세였다.

청화이건과 가족들은 솽류구(雙流區) 법원의 억울한 판결에 불복하고 상소를 제기했으나, 비밀리에 러산(樂山) 자저우(嘉州)교도소로 이송 수감했으며, 그의 아내가 면회를 신청하자, 감옥 측은 “남편이 전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면회가 안된다.”고 거절했다. 2017년 5월 29일 저녁, 러산 자저우 교도소 측으로부터 가족에게 “청화이건이 쇼크 상태에 빠졌다.”는 연락이 왔다. 30일 오후 청화이건의 아들, 남동생, 제수 등 7명의 가족이 급히 서둘러 교도소에 도착했으나 청화이건은 이미 죽어 있었다. 5월 31일 시신을 화장한 후 청두 톈푸신구에 안장 시켰는데, 교도소 측이 장례비를 부담했고 또 가족에게 1만 위안(166만원상당)을 위로금조로 지급했다. 건장했던 청화이건이 교도소에서 감금당한 몇 달 후 교도소에서 죽었는데, 교도소 측에서 1만 위안으로 그의 목숨을 사간 것이다. 과연 청화이건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는 오직 자저우 교도소만 알고 있는 일이다!

자저우 교도소는 수감된 파룬궁수련생들 중 소위 ‘3서(三書)’라는 걸 써서 제출하지 않은 사람은 온갖 잔혹한 방법으로 고문혹형을 가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들은 협박했다. “입감대에서 ‘3서’를 쓰지 않으면 결과는 하나뿐이다. 바로 3일 동안 초췌해지고, 1주일동안 붕괴되며, 보름 동안 병상에서 잠을 자고, 1개월 안에 지옥에서 만나는 것이다.”라고 호언했다. 자저우 교도소가 파룬궁수련생을 잔혹한 수법으로 학살하고 있다는 악명은 이미 소문으로 자자했다. 그러므로 현재 그 사악한 곳은 ‘파룬궁박해추적 국제조직’으로부터 추적당하고 있다. 주웨이(祝偉)는 2006년 이 교도소소장으로 임명된 이후 청화이건을 16번째로 고문학살한 것이다.

(4) 청두시 쐉류현 피아노 여교사 셰샤(謝霞) 신진(新津) 세뇌반에서 박해로 사망

謝霞
셰샤
(謝霞
)

셰샤(謝霞.女.56)는 판지화 출신의 쓰촨 음악학원을 졸업한 후 쐉류구 화양(華陽) 직업고등학교 피아노 교사로 재직했는데, 능력 있고 성품 좋은 교사로 정평을 받았다.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2016년 7,8월에 중공에 납치되어 신진세뇌반에 감금된 후 독극물주사를 맞고 학살당했다.

10여년 동안 쐉류 국가보안 경찰은 여러 차례 그녀를 납치하여 신진 세뇌반, 난무스(楠木寺) 노동교양소에 감금했으며, 감금 기간 동안 그녀의 음식물에 신경성 독극물을 혼합해 먹임으로써 심신에 큰 상해를 입혔다. 그러면서 그들은 야비한 수법으로 금품을 강탈해 착복하기도 했다. 셰샤가 신진 세뇌반에서 풀려나 귀가했을 때 다리가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 있었고, 배는 큰 북통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건강악화로 혼자 생활 할 수 없으므로 친구의 도움으로 뤄양(洛陽)의 아들집으로 보내졌는데, 2개월 만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셰샤는 2013년 5월 28일 저녁 8시경 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정어머니를 병문안 가다가 역전파출소 악경에게 납치되어 악명이 높은 청두시 신진 세뇌반으로 끌려가 감금돼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그 기간 동안 쐉류현 610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셰샤를 고문하고 박해했다. 새로 구입한 집을 빼앗겼으며, 퇴직금도 차압당하고 또 무슨 명목으로 금품을 강탈당했다. 쐉류 화양진 악경, 화양 푸룽(伏龍) 지역사회 짜오스하이(趙似海) 주임 등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셰샤와 그녀의 가족 및 친척들을 괴롭히고 박해했다.

생전에 셰샤가 한 말에 의하면, 신진 세뇌반에서 그녀를 강제 전향시키기 위해 밥에 약명미상의 무슨 독극물을 혼합해서 먹였고, 주사당한 후부터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생명이 위급해지자,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했다. 그녀는 또 말하기를 “전에 나처럼 독침을 맞은 한 파룬궁수련생도 석방됐지만, 얼마 안 돼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5) 광한(廣漢)시 장지팡(蔣智芳) 쓰촨 여자교도소에서 박해 후 사망

蔣智芳遺照
장지팡 생전 사전

장지팡(蔣智芳.女.56)은 더양 광한시 사람으로 중공사당이 16년간 파룬궁을 박해하는 중에 중공에 납치되어 불법적으로 3년형과 1년6개월의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수감됐는데, 수감되어 있는 동안 온갖 고문학대를 받았다. 만기출소 후 집에 돌아왔어도 관할 파출소, 사당 촌서기, 촌장 등이 집으로 찾아와 괴롭히고 소란을 피웠다. 그는 고문박해에 상한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2016년 3월 8일 사망했다.

장지팡은 원래 류머티즘성 관절염(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변형됨)의 고질병으로 고생했는데, 그 병은 의료계에서 “죽지 않은 암”이라고 할 정도로 몸이 붓고, 걷기 어려운 등 현대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괴로운 고질질병인데 16년 동안 그 병으로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인 1998년 9월 파룬궁을 수련하게 되었다. 파룬따파를 배운 후 매우 빨리 그의 병은 다 나았고, 건강해져 집안일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은 기적 같은 현실을 보고 모두 기뻤고 세 딸은 너무나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가족들 모두 파룬궁을 대단하게 여겼다.

장지팡이 이 납치되어 쓰촨성 여자 노동교양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는 매일 구타당해 눈이 퉁퉁 부어올라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얼굴을 구타당할 때 치아를 상해 다 부러지고 떨어져 나가서 치아는 겨우 3개만 남아 있었으며, 5개월 동안 그런 고문구타를 당해 몸은 물론 정신까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더욱 악독한 것은 쓰촨성 여자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기간에 무슨 신체검사를 한다는 핑계로 장지팡의 질을 강제로 벌려놓고 무슨 물건을 마구 쑤셔 대서 극심한 고통과 함께 선혈이 낭자하게 한 것이다. 그녀에게는 아무런 부인병이 없었다. 장지팡은 계속되는 고문박해로 나중에는 두 눈이 거의 실명 되어 앞을 보지 못해 자주 넘어지는 등 혼자서는 생활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졌다.

(6) 허쑤전(何素珍) 불법 판결로 박해당하다가 사망

난충 순칭(順慶)구 허쑤전(何素珍.女)은 억울하게 형을 받고 4년간 수감되어 고문박해를 당한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후유증으로 2016년 12월 28일 사망했다.

4. 쓰촨성 2017년 상반기 남녀 교도소에서 박해당한 사례

(1) 자저우 교도소 파룬궁수련생 학살

자저우 교도소는 러산시 중(中)구 전푸(全福)진에 위치해 있으며, 쓰촨성 교도소 관리국 관할에 속해 있는데, 전 우마핑(五馬坪) 교도소가 2013년 12월 3일 그곳으로 이전해오면서 이곳 관할 교도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저우 교도소는 ‘주웨이’라는 악인이 총 관할하면서 원래의 우마핑 교도소 직원들과 자신이 이끌고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파룬궁수련생을 고문학대하는 수법을 개발하고 실천한 두목이다. 그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강제세뇌 ‘전향’을 목포로 온갖 고문박해로 괴롭히며 악독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학살을 자행했는데, 그가 개발하고 준비한 고문형구가 몇 십 개씩 항상 준비돼 있었고 사용했다.

교도소의 공산당서기와 교도소장 주웨이 등은 2006년 9월 류황(磺廠)공장 교도소에서 우마핑 교도소로 바뀌면서부터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했다. “사람이 죽지 않으면 석방하지 않는다.” 그는 말끝마다 장쩌민의 이른바 ‘파룬궁수련생멸종학살정책’을 떠들어대면서, “교도관들은 ‘전향’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반드시 심한 매질과 혹독한 탄압을 가해야한다.”고 명령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명령하기를 “3서를 쓰지 않는 파룬궁수련생에게는 가차 없는 혹형을 가하라. 모욕하고 구타하고, 결박하고, 최루가스를 사용하고, 겨자를 눈에 넣고, 전기봉으로 가장 민감한 부위에 충격을 가하라. 그리고 잠을 재우지 말라”고 했다. 교도관들은 그의 지시대로 고문하고 학대했으며, 매일 밤 2시간 이내의 취침시간만 허용했다. 또 장시간 부동자세로 세우고 앉히고, 그것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실시했다. 밀착감시를 하면서 누구와도 접촉하거나 말하지 못하게 했다. 즉 자저우 교도소의 교도관들이 기고만장해서 떠들어 댄 대로 실천했는데, “3일에 초췌해지고, 1주일에 붕괴되고, 반달에 병상에서 자게하고, 1개월에 지옥과 만나게 한다.”는 그 수법대로였다.

여기서 특별히 언급하는 것은, 자저우 교도소에서 고문박해를 받고 사망한 16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모두 우마핑 교도소장 주웨이가 자행한 악행인 것이다. 2006년 9월 우마핑 교도소가 이전해온 이후 모든 학살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자저우 교도소는 짧은 몇 년 동안에 그들이 계획한 대로 사람을 학살한 것인데, 희생자는 짜오궈지(趙國吉), 류톈허우(劉天厚), 장싱차이(張興才), 장쿤양(張坤陽), 리위안룽(李源榮), 펑중량(馮忠良), 가오광충(高光崇), 장윈훙(蔣雲宏), 류쉐밍(劉學明), 쉬량저우(徐浪舟), 덩젠강(鄧建剛), 우밍산(吳明山), 쩌우윈주(鄒雲祝), 탄더강(譚德剛), 장스샹(張世祥)등 15명 파룬궁수련생을 학살했다. 이번 청화이건은 제16번째 사망자로 역시 주웨이가 지시한 대로 고문 학살한 것이다.

1) 자저우 교도소 강제로 시체를 화장

徐浪舟
쉬량저우(徐浪舟)

자저우 교도소에서는 2017년 1월 10일 파룬궁수련생 쉬량저우(徐浪舟.남.39)의 시신을 강제로 화장시켰다. 쉬량저우는 쓰촨 파지화시 우수교통경찰이었는데,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2년 9개월, 8년6개월 형을 각각 두 차례 받았으며, 또 노동교양처분으로 감금되어 ‘죽음의 침대, 전기고문, 묶어 매달고 구타, 햇볕에 쬐이기 등 온갖 고문과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2012년 3월 18일 갑자기 사망했다. 사망 다음날 오전 한 친척이 장례식장에서 쉬량저우의 시신을 봤는데, 쉬량저우의 위장 쪽에 칼자국이 있었고, 허리 양쪽에 각각 2개의 작은 구멍이 있었으며, 앞가슴에도 상처가 있는 걸 보았다.

2) 러산시 파룬궁수련생 쩌우궈핑 교도소에서 박해

메이산(眉山)시 파룬궁수련생 쩌우궈핑(저우궈핑), 2015년 4월 5년형을 선고받고 지금 러산시 자저우 교도소의 제6감구에 수감되어 있다.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있기, 철모쓰기, 두 손을 뒤로 묶어 위로 매달기, 입안에 구슬을 머금기(자살 방지), 끈으로 입을 졸라매기(구슬을 내뱉는 것을 방지)의 각종 고문학대를 받아 심신에 아주 큰 상해를 입었다.

3) 자저우 교도소 장신젠(張心鑑) 가족의 면회권리를 박탈

2017년 3월 21일 자저우 교도소 제9감구의 면회 날에 이빈(宜賓)시 추이빙(翠屏)구 76세 파룬궁수련생 장신젠의 가족은, 규정에 따라 지역사회에서 발급받은 ‘면회증명서’를 제출했으나, 교도소 측은 면회신청을 거절했다. 2016년 7월 22일 당일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져 자저우 교도소 주변에 30센치 이상의 물이 2시간 이상 차 있었다. 지난 해 7월 22일 전화로 15분 동안 통화한 후 지금까지 8개월이 넘도록 소식을 모르고 있다. 가족들은 소식을 계속 모르고 있어 무척 걱정하고 있는 중이다.

4) 탕젠핑(唐建平) 자저우 교도소, 피감자를 학대하며 가족면회 금지

난충시 펑안(蓬安)현 파룬궁수련생 탕젠핑(唐建平), 2016년 7월 5일 펑안 법원에 의해 억울하게 3년형을 선고받고, 2016년 9월 자저우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러산 자저우 교도소에 10개월 동안 수감되어 있었는데 그의 아내와 아들은 반년이 넘는 기간에 3회 정도 면회를 갔지만 교도소 측은 매번 면회를 거절했다. 탕젠핑은 수감당시 죄수복 입기를 거절하여 전기고문을 당하는 등 온 갖 고문박해를 당했는데, 그는 고문을 당할 때마다 큰 소리로 “사부님,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 그 목소리는 아주 컸으므로 악인들은 그럴 적마다 벌벌 떨었다. 2017년 1월 탕젠핑은 자저우 교도소의 제1감구에 수감됐고, 복장가공노역에 투입되어 혹사당했는데, 휴식시간이 적고 늘 야근이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5) 자저우 교도소 메이산(眉山)시 파룬궁수련생 리하이핑(李海平)을 박해

메이산시 단링(丹稜)현 파룬궁수련생 리하이핑은 2011년 불법으로 8년형을 선고받고 자저우 교도소 제7감구에 수감되었다. 2016년 7월부터 히라이핑의 가족은 그와 연락이 끊어졌는데, 소식에 따르면,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갖 고문박해를 당해 건강이 몹시 안 좋아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고 했다. 그의 아내가 면회하러 갔지만, 교도소 측은 아내 역시 파룬궁수련자이기 때문에 면회를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수련하지 않는 두 형이 2017년 2월 면회하러 갔는데도, 파룬궁수련생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없다며 역시 면회를 거절했다.

6) 야안 파룬궁수련생 장쥐(張軍), 샤오천(小陳) 박해당한 상황

야안시 루산(廬山)현 전 다핑산(大坪山) 노동교양소 농장 책임자 경찰관인 장쥔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해직당한 후 잇따라 중공에 납치돼 억울하게 4년형을 선고받고, 2013년 또 다시 교도소에 수감됐었는데, 이번이 다시 납치되어 5년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자저우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데, 늘 전기고문 등 온갖 혹형을 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15~20초 내에 식사를 하게 하는 등 야만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다.

7) 파룬궁수련생 박해로 불구되다

파룬궁수련생 황딩청(黃定誠)은 엄한 관리감구역에서 풀려난 후, 두 다리가 심각하게 변형되어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었다. 9감구역의 악독한 교도관 진푸(勁夫)는 단체집합 때, 전기봉으로 파룬궁수련생 밍사오린(明紹林)의 머리에 충격을 가해, 밍사오린의 비명소리는 전체 감구역에 메아리쳤다. 악인들은 생각나면 전기봉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전기 고문하기 일쑤였다.

(2)청두 여자 교도소 2017 박해사례

쓰촨성 청두 여자 교도소는 원래 촨시(川西) 여자교도소, 청두 빈장(濱江) 교도소라고 불렀는데, 2007년 청두여자교도소로 개명했다. 2003년 5월 야안(雅安)시 루산(蘆山)현 훙야먀오시(洪雅苗溪) 노동교양소 농장이 청두시 룽취안이(龍泉驛)구 훙안(洪安)진 룽훙(龍洪)로 200호로 옮겨오면서 쓰촨성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수감하는 박해소굴로 변했다. 교도소에서는 잔혹한 수법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켰다. 구타, 전기충격, 매달아 수갑 채우기, 등 뒤로 수갑 채우기, 달리기, 얼리기, 햇빛에 쬐이기, 벌세우기, 부동자세, 앉기, 독물을 주사, 묶기 등 신체적 학대 고문과 또 고문수단의 하나로 야만적인 음식물 강제주입을 시키고, 강제훈련, 강제체형, 바늘로 찌르기, 물 뿌리기, 벽에 박기, 독방가두기, 면회 및 생활 권리박탈 등의 정신적 육체적인 고문혹형을 가했다. 청두 여자교도소는 지금까지 15명의 파룬궁수련생이 고문박해를 받다가 사망했다.

1) 장이(張翼) 청두 여자 교도소에서 박해당했다

장이(張翼,女.47)는 쓰촨 시창 엔지니어로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3년형에 선고 받고, 2016년 6월 교도소에 수감된 지 1년이 넘었다. 교도소에 수감된 후 처음부터 엄격관리 대상으로 지목 분류돼 체벌고문과 면회금지 등 생활권을 박탈당했다. 잠 안 재우기와 타인과 대화하지 못 하게 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그를 욕하고 구타하고 모욕감을 주게 했고, 1주일에 단 1회 샤워를 허용했고, 생리 때도 생리대나 휴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학대했다.

2) 청두 여자교도소 덩옌(鄧燕), 펑화잉(彭華英), 옌위밍(焉玉明) 등의 박해 경위

파룬궁수련생 덩옌(女세,40여세), 쓰촨성 쑤이닝 사람으로 제5감구에서 강제 전향당했다. 샤워를 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구타로 눈이 시퍼렇게 됐다. 그녀를 구타하며 밀착 감시책임을 맡은 자은 형사범 룽지잉(龍志英)이라는 자다.

파룬궁수련생 펑화잉(女.60여세), 쓰촨성 바중 출신으로 고문박해로 심한 고혈압증세가 나타났는데도 석방하지 않고 계속 수감하고 있으며, 계속 약을 먹으라며 구타하고 잠 안 재우며 괴롭혔다. 그를 감시하는 자는 범죄자 왕솽(王霜), 덩훙샤(鄧紅霞) 등인데, 그들은 교도대장 차오쉐룽(曹雪蓉)의 지시에 의해 구타하고 감시하며 괴롭힌다.

파룬궁수련생 옌위밍(女,60여세) 쓰촨 바중 사람으로, 펑진(馮進) ‘610’과장 랴오(廖) 모라는 자와 교도관 차오쉐룽 등이 옌위밍을 고문 협박하며 파룬궁을 모욕하는 ‘4서’를 쓰라고 했지만, 쓰지 않자, 교도관 차오쉐룽은 잠 안 재우기, 전기고문, 유방과 그 외 여성의 민감한 신체부위를 찌르고 때리는 등의 고문 학대를 가한 후 강제로 손을 끌어다 지장을 찍게 했다.

3) 청두시 후샤(胡霞)는 청두여자교도소에서 잔혹한 박해받다

밍후이왕 2017년 6월 24일 보도에 의하면 청두 여자교도소에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폭력적인 ‘전향’을 위한 고문학대는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었고 더욱 은밀해졌을 뿐이라고 보도했다.

2016년 5월 경 파룬궁수련생 후샤(胡霞)가 교도소에 수감된 후에도 믿음을 견지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소위 ‘4서(四書-수련 포기각서)’에 서명을 하지 않자, 교도관은 살인범 피감자인 장리(姜利)를 시켜 물고문을 시켰다. 그는 몇 명의 형사범에게 그녀를 잡게 한 후 머리를 플라스틱 물통에 눌러 질식하게 했으며, 화장실에서 무자비한 구타를 했다. 후샤의 전신은 상처투성이가 됐다. 심한 구타로 일어설 수도 없는 지경에 처해 있는데도 계속 다리를 걷어찼다. 후샤는 고통을 이기며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그러자 그들은 소리치는 그녀의 입 안에 팬티를 쑤셔넣어 앞니를 2대나 부러뜨렸다. 그리고 후샤를 감방입구로 끌고 가서 물을 뿌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흠뻑 젖게 했는데, 그것들은 “관정(灌頂-정수리에 물을 붓다- 수련용어)”이라고 했으며 물이 마를 만 하면 또 부었다. 5월의 날씨는 매우 차가웠으나 젖은 몸 상태대로 작은 의자에 앉히는 고문을 가했는데, 4층 복도 입구의 추위에 떨게 했다.

2017년 2월 10일 경 후샤는 교도소에서 박해를 반대하며 매주 단체세뇌시간에 참가하지 않았고, 폭로나 비판문장도 쓰지 않았다. 감방에 함께 수감된 죄수는 교도관의 감시지시대로, 그녀가 입장하고 발정념을 했다고 고자질을 했다. 교도관은 감방에 들이닥쳐 큰소리로 “즉시 보고해서, 형기를 연장하겠다.”고 소리쳤다. 후샤는 사무실로 끌려가 창문 난간에 수갑 채워진 채 구타당했다. 밖에서 사람들은 안에서 탁탁 구타하는 소리를 들었다. 다시 6층으로 끌려가 ‘엄격한 관리’ 학대를 당했는데, 그녀의 매트와 옷가지를 갈아치우는 형사범이 들고 나올 때 온통 젖어 있고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렇게 추운 날에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후에 6감구로 이감됐는데, 누워서 움직이지 못했다. 후샤를 접촉한 적이 있는 사람이 은밀히 폭로했는데, 후샤의 털옷 깃과 가슴 부위가 전부 피투성이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팔뚝, 손등도 무엇에 긁혔는지 많은 상처가 있었는데 스스로 긁은 것이라고 했다. 후샤는 독극물을 주입당한 것으로 보인다. 22감구의 한 교도관은, 예전에 한 파룬궁수련생에게 “전향하지 않으면 독극물을 주사하겠으니 잘 생각해보라”고 협박한 적이 있다. 그 후 어떤 사람이 병원에서 후샤가 병실에 누워있는 것을 봤는데 안대를 쓰고 있었다고 했다.

4) 장린웨(張林悅)의 기본 생존권리가 박탈당했다

파룬궁수련생 장린웨(張林悅)는 교도소에 입소했을 때 생활용품이 없었는데 휴지조차도 구입하지 못하게 했다. 감시자인 살인범 장리는 전체 감방을 향해 “누구도 그녀에게 물건을 빌려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느 날, 장린웨가 감구교도관에게. “과거 자신이 제출했던 ‘4서’를 되돌려 달라“며 사악의 강압으로 마음을 어기고 서명한 것이라며 서명을 부인했다. 교도관은 감방으로 들어가 그녀의 뺨을 때리며 “이것은 단지 약간의 보슬비일 뿐이지”라고 말했는데, 더욱 큰 학대는 여전히 뒤에 있다는 것이다. 장린웨는 6층으로 끌려가서 고문학대를 당했는데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는 모른다.

5) 장셴펑은 긴 시간의 체벌을 받았다 – 벌서기

판즈화(攀枝花)시 파룬궁수련생 장셴펑(蔣賢鳳)은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오전부터 밤 12시까지 부동자세로 새워 두 다리가 부었다. 그런 후 약간의 밥과 국물만 조금주어 연명하게 한 후 굶겼다. 옆 감방 사람이 그녀가 ‘쿵’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서 있다가 기절한 것이다. 장셴펑은 어디론가 끌려 갔는데, 병원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느 곳으로 끌려갔는지 모를 일이라서 모두 걱정했다.

5. 쓰촨성의 최근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무죄석방 사례

2017년, 밍후이왕에서는 파룬궁수련생이 무죄 석방된 사례를 여러 차례 보도했다. 갈수록 많은 대륙의 공검법 기관원들이,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게 가르치고 사회에 유익하다는 진상을 알았고,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 공검법 기관원들은 다시는 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참여하지 않았고, 양심적인 선택을 했다.

(1) 검찰원, 사건을 반송, 공안국 고소 취하로, 쓰촨 산타이(三台)현 모녀 석방됐다

쓰촨성 몐양시 산타이현 검찰원은 2017년 1월 또 다시 모함당한 파룬궁수련생 저우샤오리(周小莉), 징환(景歡) 모녀의 사건을 공안국으로 되돌려 보냈고, 2017년 2월 25일 공안국은 사건접수를 취하한 후 모녀를 귀가시켰다.

징환은 2016년 6월1일 오후 산타이현 청쯔(城梓) 간선도로에서 진상스티커를 부착하다가 산타이 퉁촨(潼川)진 파출소로 납치됐다. 오후 징환의 어머니 저우샤오리, 외삼촌 저우파밍이 그녀의 집으로 정황을 알아보러 갔다가 역시 납치당했다. 7월3일 징환, 저우샤오리는 산타이 공안국에 의해 구속되었고, 7월 6일 외삼촌 저우파밍만 보석형식으로 풀려났다.

현지 파룬궁수련생은 끊임없이 관련 기관원에게 진상전화를 하고, 진상서신을 보냈으며, 직접 공검법 관계자들을 찾아가서 진상을 알렸다. 공검법 관계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그들의 미래를 위해 진상을 알렸다. 공검법 기관원들은 진상을 알게 되어 점차 태도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징환, 저우샤오리의 가족들도 관념을 버리고 직접 공안국을 찾아가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했고, 친구와 친척들은 베이징 장(張) 변호사를 선임하여 변호사의 조력을 받았다. 변호사는 검찰원 관계자들과 접촉하면서 모녀의 무죄를 주장했다. 결국 9월 하순 검찰원은 동 모녀사건을 공안국으로 반송했다. 그러나 공안국은 반송 받은 사건을 재수사형식을 취한 후 11월 하순 다시 검찰원으로 송치했다. 현지 파룬궁수련생들은 계속 검찰원 관계자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모녀의 석방을 요구했다. 2017년 1월 검찰원에서는 또 다시 사건을 공안국으로 되돌려 보냈다. 2017년 2월 25일 공안국도 사건접수를 취하한 후 징환, 저우샤오리 모녀를 석방하여 귀가시켰다.

(2) 충칭 허촨(合川) 검찰원에서 파룬궁수련생 샹린(向林)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고 석방했다

샹린, 쓰촨 광안 파룬궁수련생, 전 화잉(華鎣)시 취장(渠江) 시멘트공장의 직공이다. 2017년 2월 27일 오전 충칭 파룬궁수련생 주야오후이(祝躍輝)의 집에서 허촨구 국가보안대대 경찰에게 납치당했는데 후에 허촨 우준(五尊) 세뇌반에 감금되어 1개월 간 박해당한 후, 3월 28일 허촨구 구치소로 이감됐다.

충칭 허촨구 국가보안대대에서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 정황에서 모한한 사건을 검찰원으로 송치했으나, 검찰원은 국가보안대대의 위법한 절차를 받아들이지 않고 증거부족이기 때문에 무죄라는 결론을 내렸다. 2017년 5월 3일 충칭 허촨 검찰원은 샹린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고 석방하여, 2개월 간의 불법적인 수감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3) 검찰원에서 차오쥐룽(曹菊蓉)등 4명의 파룬궁사건에 대해 불기소처분으로 석방하다

2016년 9월 1일 쓰촨성 난충시 가오핑(高坪)구 국가보안대대는 현지 파출소 및 폭력배단속 경찰대와 합세해서 현지 11명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그 중 왕펑잉(王鳳英), 천이신(陳以新), 차오수란(曹樹蘭), 차오쥐룽(曹菊蓉), 후쉐화(胡學華), 장치궈(姜啟國), 런슈리(任秀麗) 7명이 불법 구속당했다. 11월 29일, 가오핑 국가보안대대는 사건을 가오핑구 검찰원에 송치했고, 가오핑 검찰원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사건을 가오핑 국가보안대대로 되돌려 보내면서 불기소처분을 결정했다.

2017년 4월 중순, 차오쥐룽, 후쉐화, 장치궤, 런슈리 4명은 난충 화펑(華鳳)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6개월간 수감됐다가 무죄로 석방되어 풀려났지만, 그 중 3명은 다시 납치되어 세뇌반으로 끌려갔는데, 아직도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4) 량산주 중급법원에서는 덩츙(鄭瓊)등 5명에 대해 불법 판결내리다

량산주 후이리(會理)현 파룬궁을 연마하는 덩츙, 뤄지핑(羅繼萍), 마링셴(馬凌仙), 둥슈환(董秀瓊), 선자펑(沈佳鳳) 할머니들은 억울한 재판을 받은 후 량산주 중급 법원에 상소했고, 5월 27일 오전 9시 반 5명의 할머니는 중급법원으로부터 파기 환송됐다. 판결 이유는 사건의 진실이 명확하지 않다면서 1. 후이리현 법원(2016) 촨3425형초170번 형사판결을 취하한다. 2. 후이리현 법원에 되돌려 보내 다시 심판하게 한다. 그러자 후이리 법원은 선자펑의 2만 위안의 보석금을 즉시 반환했다.

(5) 루저우시 랴오성(廖聖)의 사건이 취하되고 석방됐다

2017년 3월 2일 청두시 왕자과이(汪家拐) 파출소와 가오신(高新)구 공안국의 20여 명은, 톈푸(天府) 소프트웨어 파크 G5구에서 파룬궁수련생 류하이잉(劉海英), 랴오성(廖聖) 및 기타 사람들(파룬궁수련자가 아닌 일반직원)을 납치한 후, 기타 3명은 파출소에서 조사한 후 다음 날 풀어줬다. 3월 2일 왕자과이 파출소에서 사복차림의 한 중년 남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랴오성에 대해 마구 구타했고, 당일 왕자과이 파출소식당에서 또 다른 사복차림의 한 남자가 역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랴오성을 구타했으며, 당일로 류하이잉과 랴오성은 청두시 구치소로 송치되어 감금됐다. 그러나 3월 31일 청두시 공안국 칭양(青羊)구 분국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형사소송법’ 제89조에 따라 랴오성에 대해 ‘사건을 취하하고 석방’했다. 지금 랴오성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최근 몇 년래 중국 대륙에서는 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참여한 중공관원이 잇달아 낙마했다. 보시라이(薄熙來)가 교도소에 잡혀 들어갔고, 소위 ‘정국급’ 저우융캉(周永康)도 무기징역을 받았고, 저우융캉과 관계되는 ‘쓰촨패거리’의 크고 작은 관료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1만 명 넘게 처벌됐는데, 징역형을 받은 자도 있고, 사형이 집행된 자도 있으며, 수감되어 조사 중인 사람도 많다. 저유융캉의 쓰촨 패거리의 정계, 업계, 폭력조직계 등의 패거리들이 끊임없이 제거되고 있는 중이다. 대륙 매체에서는 저우융캉이 “송두리째 뽑혔다” “일족이 멸했다”라고 보도했다.

2016년 크리스마스 전야에 미국의 기본인권법인 ‘마그니츠키(Magnitsky)명단공개’ 법안이 미국의회에서 통과된 후 당시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서명한 후 정식으로 효력이 발생했다. ‘전 세계 마그니츠키(Magnitsky)기본인권문책법안’의 실시를 호응하기 위해 파룬궁수련생들은 관련 중공악인의 범죄사실과 그 명단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있으며, 국제인권조직과 합세해 미국국무부에 중공인권악당의 명단을 제출하고 있으며, 명단은 해매다 제공되고 있다. 명단에 오른 중공 인권범죄자들은 ‘전 세계 마그니츠키(Magnitsky)인권법’에 의해 문책당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미국비자가 불허되거나 취소될 것이며, 미국 내의 재산도 동결되어 거래자체가 금지될 것이다.

선악에는 반드시 인과응보가 있다. 사람이 다스리지 못한다면 하늘이 다스리게 된다. 적극적으로 박해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엄벌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대륙에서 아직까지도 박해에 참여하는 각급 각계 사람들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여, 파룬궁수련생을 잘 대하길 바란다. 그렇지 않고, 응보의 재앙이 들이닥칠 때 후회하고 뉘우친다 해도 이미 늦을 것이다!

원문발표: 2017년 7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대륙종합소식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7/7/12/3509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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