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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박해로 사망, 랴오닝 류잉 또 불법 판결 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 보도) 랴오닝성(遼寧省) 랴오양시(遼陽市)의 훙웨이구(宏偉區) 파룬궁수련생 류잉(劉英)과 그의 아내 쉬구이샤(許桂霞) 및 79세 노인 쑤뎬싱(蘇殿興)은 2016년에 랴오양시 궁창링구(弓長嶺區)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됐고 랴오양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쉬구이샤는 겨우 10여 일만에 박해로 사망했다. 지금 류잉과 쑤뎬싱도 1년 6개월의 불법 판결을 당했는데, 두 사람은 모두 상소를 제기했다.

이전에 집행유예 5년을 판결 당했는데, 합치면 3년 6개월이다. 가족은 몹시 조급해 이미 변호사를 선임하여 그를 위해 2심 대리를 시켰다.

2016년 10월 27일 오전 10시쯤, 랴오양시의 세 파룬궁수련생 류잉, 쉬구이샤 부부와 쑤뎬싱은 궁창링구 뉴뤼향(牛錄鄉)에서 진상을 알릴 때, 궁창링 탕허(湯河)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날 오후 3시에 경찰은 두 가정에 대해 불법 가택 수색을 진행해 컴퓨터, 파룬따파(法輪大法) 서적 등을 강탈했다. 그 후 3명은 랴오양시 구치소로 보내져 형사 구류처분을 받았다.

쉬구이샤는 랴오양시 구치소 301호에 불법 감금됐다. 이 감방의 교도원 류샤오천(劉小辰)은 쉬구이샤가 감옥 규정을 외우지 않은 것 때문에 그녀에게 폭력을 사용했는데, 그가 사용한 수법은 귀뺨 때리기였다. 그후 쉬구이샤는 ‘판자에 못 박기(釘板)’ 고문 학대를 당했는데, 대소변마저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다. 쉬구이샤는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사흘 후 음식물을 주입했는데, 음식물을 주입한 후 경련을 일으키는 현상이 발생했으나 당시 응급처치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판자에 못 박기 고문 때문에 대소변을 바지에 눴다. 그래서 씻어 낸 후에야 의무실로 보냈으나 사람은 이미 사망했다.

쉬구이샤가 박해를 당해 사망했을 때 얼굴은 볼품없게 되어 그녀를 아는 사람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11월 7일 오후, 탕허 공안분국에서는 실정을 속이고 반대로 선양(瀋陽)에서 공부하는 사망자의 아이에게 통지를 내렸는데, 말로는 그의 모친의 병이 위중하니 돌아오라고 했다. 8일 오전, 공안분국에서는 또 전화를 걸었는데, 말로는 학교로 가서 아이를 마중해 오겠다고 했다. 아이는 두려워 돌아오지 않았다. 11월 10일 아침, 현지 궁눙(工農) 파출소에서는 쉬구이샤의 언니에게 통지를 내렸는데, 말로는 쉬구이샤가 이미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사망했고, 시신은 현지 장의사에 있다고 했다.

가족이 시신을 보겠다고 요구했으나 경찰은 먼저 서명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은 서명 내용을 몰라서 서명하지 않았고, 또 시신도 보지 못했다. 랴오양시 구치소에서부터 탕허 파출소에서는 모두 진상을 힘껏 감추었다.

11월 11일, 가족이 쉬구이샤의 남편 류잉(劉英)을 위해 선임한 변호사가 본 사건에 개입한 과정에서 랴오닝시 구치소에서는 각종 이유로 얼버무리며 변호사가 류잉과 면회함을 금지하고 공공연하게 법률 절차를 위반했다.

구치소 경찰은 쉬구이샤가 사망한 책임을 전가하려고 쉬구이샤를 아는 아무개를 시켜 위증하였는데, 그녀에게 병이 있어 죽었다고 말하도록 했다. 감방을 관리하는 교도관 황쥔(黃俊)은 여러 번 이 사람을 찾아 담화를 진행했는데, 맨 마지막에 이 사람은 위증을 했다. 그 후 황쥔은 오랫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그후 사람을 구타한 죄수 류샤오천은 5년 6개월의 판결을 받고 랴오닝성 여자감옥(전 다베이(大北)감옥)에 갇혔다. 위증한 그 사람은 2년 6개월의 판결을 받았는데, 그는 늘 다베이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맨 마지막에 2017년 4월에 황쥔에 의해 강제로 감방에서 끌려 나갔다.

가족은 여러 차례 궁창링 검찰원, 파출소를 찾아가서 류잉과 쑤뎬싱을 석방하도록 요구했으나 결과가 없었고, 그 후 오히려 그들은 두 사람을 모함한 이른바 ‘서류’를 랴오양시 궁창링 법원으로 보냈다.

원문발표: 2017년 7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17/3512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