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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 뇌출혈 증상 나타난 장훙쥐, 톈진 감옥서 석방 거부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톈진보도) 톈진시(天津市) 난카이구(南開區) 파룬궁수련생 장훙쥐(張洪聚)의 가족은 3월 21일에 톈진 빈하이(濱海)감옥의 전화를 받았는데, 장훙쥐가 갑자기 병이 도져 톈진 환후(環湖)병원(뇌과 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치를 받았다며, 가족에게 호구부, 집문서 등 증명서를 가져다가 장훙쥐에게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받게 할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장훙쥐의 아내는 부리나케 병원으로 다그쳐 갔는데, 문득 장훙쥐가 몸이 매우 수척하고 얼굴색이 창백해지고 발음이 똑똑하지 않으며 사지를 움직임에 제한을 받음을 보았다.

환후 병원에서 뇌출혈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당시 병원에서는 병세가 위독하다는 통지서를 내렸다. 함께 갔던 교도관은 가족에게 서명하도록 했다. 게다가 장훙쥐의 아내에게 병원비 및 치료비를 내도록 요구했다가 장 씨 아내에게 거부당했다.

환후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은 기간에 장훙쥐는 말을 똑똑히 하지 못하고 사지를 움직이는 것이 불편했다. 의사는 단지 병상에 반듯하게 누워 있어야 뇌혈관이 다시 파열돼 출혈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때문에 밥을 먹고 대소변을 보는 것 마저 가족이 시중을 들어야 했다. 바로 이러한 상황하에 빈하이 감옥에서는 여전히 장훙쥐에게 족쇄를 채워놓아 가족이 그의 몸을 뒤척여 주는 것을 극히 힘들게 했다. 동시에 또 그의 고통을 증가시켰다. 빈하이 감옥에서는 또 그의 병상 앞에 감시카메라 및 녹음 시설을 설치하여, 24시간 동안 장훙쥐 및 가족의 일거일동 모든 과정을 감시했다.

병원에 입원한 닷샛날 장훙쥐의 병세는 조금 호전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링거 치료를 받는 단계에 처해 있었는데, 강제로 캉닝(康寧)병원(원래의 신성(新生)병원임)으로 끌려갔다. 가족이 장훙쥐가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지 않았다며 ‘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는’ 수속을 밟아 전문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게 해달라 요구했을 때, 교도관 상러(尚樂)는 온갖 방법으로 가로막으며 수속을 밟아주지 않았다.

장훙쥐(53세)는 대학을 졸업하고 톈진시 허핑구 지방세무국에서 근무했으며, 1995년에 운 좋게 파룬궁을 수련했다. 그는 사람됨이 충직하고 선량했으며, 집에서 노인을 잘 섬기고 세심하게 아내와 딸을 보살폈다. 그리고 밖에서 그는 다른 사람을 기꺼이 도와주었는데, 사람마다 칭찬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지진과 홍수의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장훙쥐의 전 가족은 주동적으로 돈을 기부하고 물건을 기부했으며, 집안의 솜옷, 솜이불, 담요 심지어 그가 입는 옷과 가죽 바지마저 기부했다. 장훙쥐의 근무 부서는 사람마다 부러워하는 ‘부수입이 많은 자리’였다. 그는 업무 중에서 ‘진ㆍ선ㆍ인(真ㆍ善ㆍ忍)’의 표준으로 명예도 이익도 도모하지 않고, 종래로 거래처에서 보내온 선물을 접수하지 않았으며, 종래로 업무의 편리로 개인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 진정하게 청렴하고 스스로 단속하는 공무원으로, 업계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얻었다.

바로 이렇게 좋은 사람이 오히려 거듭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집단 및 그의 추종자들의 박해를 당했다. 1999년 720 후, 장훙쥐와 아내는 베이징 민원국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납치돼 톈진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그는 불법 구류를 당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장훙쥐가 근무하러 갔을 때, 허핑구 지방세무국에서는 그를 원래의 업무 부서에서 전보시켜 화장실 청소를 하게 했다. 장훙쥐는 원망이 없이 착실하게 근무를 잘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장훙쥐는 직장에 의해 공직에서 불법 해고를 당했다.

2003년 5월 20일, 세인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장훙쥐는 또 한 차례 난카이 분국 광카이 파출소에 납치됐다. 그후 난카이 법원에서 5년의 불법 판결을 받고 톈진 제1감옥(리위안터우(梨園頭))에서 박해를 당했다. 톈진 제1감옥에서 장훙쥐는 고난을 겪을 대로 겪었고 강제 세뇌, 전향 핍박을 당했으며, 각종 고문과 체벌로 학대를 당했다. 심신의 이중 박해를 당한 상황 하에 장훙쥐의 몸은 극도로 허약해졌고 40여 세인 그는 치아가 일부 흔들려 빠졌다.

2008년에 출소한 후, 두 부부는 모두 직업이 없었다. 생활을 유지하고 아이의 공부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국가의 공무원이고 대학교 졸업생이어도 어쩔 수 없이 노점을 열어 일용품을 판매했는데, 또 늘 도시 관리 인원에게 쫓겨나고 야단맞았다.

2015년 7월 14일, 장훙쥐는 거듭 톈진시 ‘610’(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임)에 의해 납치됐다. 난카이구 구치소에 1년 6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한 후, 거듭 난카이 법원에 의해 4년 3개월의 불법 판결을 당했고, 2016년 12월에 톈진 빈하이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 들어가서 3개월만에 장훙쥐는 곧 뇌출혈 증상이 나타났는데, 감옥 측은 그에게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는’ 수속을 밟아줌을 거부했다. 현재 장훙쥐는 혈압이 매우 높고 치아가 전부 빠져 매일 밥을 먹는 것마저 매우 어렵다. 사람은 매우 수척해지고 허약해졌으며, 정신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다. 장훙쥐의 가족은 그의 몸 상태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

교도관의 말에 따르면, 2016년 10월 쯤, 장훙쥐가 난카이구 구치소에 불법 감금을 당한 기간 신장 결석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구치소의 교도관은 단지 가족에게 돈을 보내도록 통지를 내렸을 뿐이다. 게다가 장훙쥐의 병 상태 및 수술 상항은 알려주지 않았고, 또 가족이 면회함을 허락하지도 않았다.

원문발표: 2017년 7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3/3505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