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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가오이시, 무단장 공안병원에서 학대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최근 입수한 소식에 따르면, 파룬궁수련생 가오이시(高一喜)는 2016년 4월 무단장(牡丹江)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후, 무단장 국가보안지대 및 셴펑(先鋒) 분국의 악독한 경찰에 의해 공안 병원으로 납치됐다. 목격자는 가오이시가 며칠 동안 시달림당하고 공안병원에서 박해로 사경을 헤매다 사망해 복도 안으로 끌려갔다고 폭로했다.


高一喜

가오이시
(高一喜)

가오이시 당시 45세였다. 2016년 4월 19일, 경찰이 문을 부수고 방안에 들이닥쳐 가오이시 부부는 불법 가택 수색, 납치당했다. 가오이시는 구치소에서 며칠 동안 불법 감금당하고 공안병원으로 끌려가 ‘치료’받았다. 4월 30일, 병원에선 ‘심장병으로 급사했다’고 했다. 가족이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해부’한다고 공언했다. 가오이시의 사망사건에는 많은 의문점이 존재한다.

최근, 한 목격자(중공이 좋은 사람을 박해한 사실을 감안하여, 잠시 안전을 위해 이름을 누설하지 않음)는 당시 가오이시가 공안병원에서 박해당함을 직접 목격했고, 아울러 아래의 자세한 사정을 폭로했다.

파룬궁수련생 가오이시는 무단장 구치소로 납치된 후, 줄곧 단식의 방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가, 무단장 구치소와 무단장 국가보안지대 및 셴펑 분국 경찰에 의해 강제로 공안병원으로 납치됐다. 가오이시는 공안병원에 의해 정신질환자를 묶는 속박끈에 전신을 묶였다. 사지는 따로따로 쇠 침대 머리맡과 창문의 쇠 난간 위에 묶고 세게 사방으로 늘였는데, 이것을 ‘늘이는 고문(抻刑)’이라고 불렀다.


酷刑演示:抻刑

고문 재연
늘이는 고문(抻刑)

가오이시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변칙적으로 수감인원을 학대하는 경찰에게 타협하지 않았다. 모두 3명의 경찰이 지키고 관할하며 교대했는데. 한 경찰은 왕쉬(王旭)라고 불렸다.

가오이시가 박해로 사망한 그날 당직을 선 경찰은 무단장 지역 하이린시(林市, 현급시 임) 창팅진(長汀鎮) 사람으로, 이 사람은 가오이시를 박해해 사망케 한 직접적인 흉수 중의 한 사람이다.

그날 마침 이 창팅진의 경찰이 당직했는데, 가오이시는 이미 밥을 먹는 데 동의했으나 이 경찰은 여전히 가오이시를 풀어주지 않고 계속 그를 괴롭혔다.

가오이시는 소변을 보지 못하게 됐을 때, 공안병원의 여 간호사를 찾았다. 이 여 간호사는 정상적인 도뇨 의기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가오이시의 생식기를 훑어 강한 힘으로 그에게 도뇨시켰다. 가오이시가 사경을 헤맬 때까지 이렇게 소변을 보게 했다. 가오이시가 사망한 후, 무단장 공안병원에서 가오이시를 끌고 갔다.

2017년 4월 27일, 가오이시가 박해로 사망한 1주기쯤, 가오이시의 가족—둘째 형, 둘째 누나, 둘째 매부, 생질, 작은 이모 및 그의 딸 가오메이신(高美心)은 함께 룽펑(龍鳳)장의사에 가오이시의 시신을 보러 갔다. 이것은 작년 4월 30일 가오이시가 사망한 후, 가족이 처음으로 면회를 허락받은 것이다. 경찰복을 입은 20여 명의 경찰과 여러 사복 경찰은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며, 현장에서 강제로 안전 검사를 했다. 가족은 두 팀으로 나뉘어져 따로따로 들어갔는데, 시신을 겨우 3m 밖에서 볼 수 있었을 뿐이다. 2분도 안 돼 곧 경찰에게 난폭하게 쫓겨났고, 가오이시의 딸은 경찰에게 밀려 넘어졌다.

원문발표: 2017년 6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6/19/3498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