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린성 안도현 파룬궁수련생 장페이치가 박해당한 경험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보도) 지린성(吉林省) 연변주(延邊州) 안도현(安圖縣) 파룬궁수련생 장페이치(張倍齊, 55세)는 1996년 운 좋게 대법을 얻었다. 장쩌민(江澤民)이 파룬궁에 대해 박해를 진행한 후, 장페이치는 ‘진선인(眞善忍)’ 믿음을 견지한 것 때문에 두 차례나 불법 노동교양처분 당하고 두 차례 불법 판결 당했는데, 합해서 13년 9개월의 억울한 옥살이였다. 장페이치는 여전히 객지를 떠돌아다니며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다.
장페이치는 박해당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약술했다.
1999년 7월 19일, 장페이치는 평화적으로 청원하러 베이징으로 갔는데, 다롄(大連)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갈아탈 때, 불법적으로 압송됐다. 그 후 현지 경찰에게 압송돼,안도현 구치소에 1개월 넘게 감금됐고, 집에 있는 대법 자료와 개인 물품도 강탈당했다.
2000년 초, 안도현 국가보안대대 경찰 위쉐(於學), 장칭밍(張慶明) 등 6명은 거듭 장페이치의 집에 들이닥쳐, 대법 자료 및 개인 물품을 강탈했다. 장페이치는 거듭 안도현 구치소로 납치돼 감금당했다. 1개월 후, 장페이치는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연변주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박해당했고 2001년 7월 집으로 돌아갔다.
2001년 12월, 장페이치는 거듭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베이징 사무처로 압송됐다. 그 후 한 수련생과 함께 건물에서 도망쳤으나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했다. 그 후 랴오닝에서 거듭 납치돼 1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이전에 보석으로 앞당겨 집으로 돌아온 것을 보태면, 이번에 합해서 2년의 불법 감금을 당했다. 처음엔 연변주 노동교양소에 감금됐다가, 2002년 7월 성 주타이(九台)노동교양소로 옮겨졌고, 2003년 5월 성 퉁화(通化)노동교양소로 옮겨져 수감돼, 7월에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다.
2004년 3월, 장페이치는 밤사이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납치됐다. 안도현 국가보안대대 경찰 선징주(申京柱), 진전산(金鎮山), 하이거우 금광(海溝金礦) 공안 분국의 경찰 탄광밍(譚廣明) 등 악독한 경찰 10여 명이교대로 장페이치를 꼬박 일주일 동안 고문 학대해, 그의 두 다리가 마비돼 생활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게 됐다. 그 후 장페이치는 5년의 불법 판결을 받았는데, 창춘(長春) 톄베이(鐵北)감옥에서 수감을 거부했다. 안도 국가보안경찰은 장페이치를 던져버린 후 차를 몰고 도망쳤다. 장페이치는 그 후 지린감옥으로 옮겨진 후, 2009년 7월 출소해 집으로 돌아갔다.
2010년 2월 28일(정월 대보름), 장페이치는 산둥(山東) 핑두(平度) 고향 집에서 거듭 연길시(延吉市) 국가보안경찰 샤오빈(肖彬) 등에게 납치돼 핑두 구치소에 일주일 동안 감금됐다. 그 후 연길 구치소로 납치됐다. 국가보안경찰 쉬샤오펑(徐曉峰), 장원슈(張文秀) 등은 장페이치를 3박 4일 동안 고문 학대했다. 이로 인해 장페이치의 몸은 더 심각한 불구가 됐다. 그 후 장페이치는 7년의 불법 판결을 받아 성 궁주링(公主嶺)감옥에 감금됐으며, 2015년 7월 출소해 집으로 돌아갔다.
장페이치가 출소한 후, 현지 ‘610’ 주임 리쉐궈(李學國)는 사람을 데리고 장페이치의 집으로 가서 교란하며 녹화 영상을 찍었고, 장페이치에게 세뇌반에 가도록 했다. 장페이치는 핍박에 못 이겨 안도를 떠나 지린시에 있는 딸집으로 가서 임시 거주했다.
2016년, 안도현 국가보안경찰 탕보(唐博), 지린시 스징거우(石井溝) 파출소 경찰은 두 차례나 장페이치의 딸이 출근하는 회사로 가서 소란피우며 장페이치의 행방을 캐물었다. 그 후 장페이치의 딸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탕보와 다른 한 국가보안 악도 및 스징거우 파출소 경찰이 가을에 두 번째로 장페이치의 딸이 근무하는 회사로 가서 소란피우던 과정에 격렬한 입씨름과 논쟁이 있었다. 그 후 회사 책임자가 나서서 화해시켰고, 탕보 등 경찰은 장 씨 딸이 협력하지 않자, 회사를 위협해 장페이치의 딸을 해고케 했다. 그러나 미수에 그치자, 또 회사에 압력을 가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안도 국가보안과 지린시 경찰은 장페이치의 딸, 사위를 몇 달 동안 미행, 감청, 감시했다. 장페이치는 핍박에 못 이겨 거듭 집을 떠났다. 설을 쇠도 가족과 한자리에 모여 앉을 수 없었고, 고향으로 돌아와 모친을 문안할 수도 없었다. 오늘날 악도는 여전히 박해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안도현(安圖縣) 국가보안대대:경찰 탕보(唐博) 18043306153
안도현 ‘610’ 사무실:0433-5890707 주임 리쉐궈(李學國)
원문발표: 2017년 4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29/346301.html